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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경제 - 성서와 하나님 나라 경제-윤리학의 연장인 구약성경의 경제 김회권교수
유재무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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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20  09: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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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경제 - 성서와 하나님 나라 경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가 주최한 포지엄이 2월 14일 명동 청어람에서 열렸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 기윤실 사회정치윤리운동 본부장)의 사회로 총 3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와 과제(백종국 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기독교와 우리의 현실 정치(김선욱 교수), 성서와 하나님 나라 경제(김회권 교수, 숭실대 기독교학과)에 대한 발제 및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3 번째 '한국교회와 경제 - 성서와 하나님 나라 경제' 를 소개합니다.

   
 

/ 김회권 교수(숭실대)

윤리학의 연장인 구약성경의 경제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 나라 경제는 모세오경와 예언서에 집중적으로 진술되어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체계적으로 공문서화 되지 않고 많은 경우 이야기 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구약성서는 이런 체제를 지지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좀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구약성경은 자발적인 친절주의, 자발적인 상호돌봄주의 사회를 지지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경제는 화폐로 계산되는 무한성장개념에 있지 않습니다. 생존자체에 목적이 있는 생존경제(subsistence economy)에 대부분 할애되어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경제성장을 통하여 무한히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부를 창출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의 살림살이가 균형감 있게 배분되었는가, 다시 말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 즉 야훼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유농민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파괴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확보되는가를 구약성경은 중요시합니다.

구약성경의 경제는 공동체의 평화로운 관계성에 목적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창녀와 탐관오리와 지주가 벌어들이는 GDP는 경제개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정당하게 벌어들이는 소득만 부가가치가 되고 경제적 가치가 되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삶의 터전을 위험하게 만들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GDP로 산출되지 않는 겁니다.

오늘날처럼 국민 대다수를 만성적인 구매력결핍으로 몰아가면서까지 특정기업이 17조원을 벌어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17조를 벌어들인 기업의 지분 46퍼센트가 외국자본이기 때문에 막대한 소득이 우리에게는 한 푼도 유통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런 만성 구매력 결핍증을 ‘불황’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특정 소수가 수백조의 돈을 창고에 쌓아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고 있는 것은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날처럼 수량과 화폐로 계산되는 경제체제에서는 국민대다수가 굶고 있더라도 많이 벌어들인 특정 소수에 의해 경제지표가 높으면 경제성장을 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근거하면 이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시급 4,300원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한히 양산하여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의 가난과 굴욕 속에 절대다수를 빠뜨려야 만이 소수의 번영이 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대다수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면, 대다수에게 발버둥 치며 살아야하는 삶의 위기를 조성해 주지 않으면 가진 자들은 재미가 없는 겁니다.

환경미화원도 골프치고, 말단 직원도 골프치고, 사장도 골프 치면 사장은 골프 칠 맛이 안 나는 것과 같습니다. 골프가 재밌는 이유는 특권적으로 할 수 있는 스포츠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재화와 용역을 독점하여 절대 다수를 가난하게 만들고자하는 무서운 악마적 탐욕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자유주의경제학, 시장만능경제학에 의거하여 어떻게 번 돈이든 상관없이 그 돈에 숭배하게끔 하는 ‘맘모니즘’입니다. 예수님은 돈을 축적한 과정을 보시고 숭배할 수 있는 돈과 숭배할 수 있는 돈을 구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형제간끼리 위화감을 조성하는 형제의 부, 다시 말해 흥부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굴욕으로 몰아넣은 놀부의 엄청난 부는 마이너스 성장, 반 경제(anti-economy)입니다. 이코노미라는 말 자체가 헬라어로는 오니코미노스, 즉 공동체의 살림살이(household management)라는 뜻입니다. 공동체 전체 구성원가운데 연약한 지체들을 굴욕과 존엄성 파괴의 지경으로 몰아넣는 것은 반 경제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480만 년의 반간기가 있는 세슘, 라듐과 같은 원자력으로 국토의 대분을 오염시키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닙니다. 미래 세대의 건강을 480만년까지 파괴하겠다는 앞선 세대의 무서운 폭력인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그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

하나님 나라의 자비 경제학

구약성경에서는 공동체 내 가장 연약한 사람인 고아와 과부의 행복지수가 그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됩니다. 상위 5%에 속하는 유력한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잣대로 삼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가 하나님과 같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과 예언자는 항상 동맹상태에 있습니다.

예언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옹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숨결이 그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내지르는 탄성과 아우성이 하나님의 보좌로 직통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BC 8세기, 웃시야와 여로보함 2세가 통치하던 경제적 번영의 절정기에 이사야, 미가, 호세아, 아모스 선지자가 일어나서 나라가 망했다고, 처녀 이스라엘이 쓰러졌다고 외치며 그 시대의 번영기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들은 모세5경의 상호 계약적이고 상호 돌봄적인 인애에 입각한 율법을 정통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당시 사회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절대로 굶어죽지 않을 만큼 엄청난 자원이 있지만, 세계 곡물시장을 쥐고 있는 메이저기업의 신축성을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식량들이 태평양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기근과 식량의 문제는 절대로 천재지변이나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죄와 탐욕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비옥했던 아프리카 땅이 19세기에 여러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 식물만 자라는 농장으로 바뀌고, 그로인해 영토가 다 부식되버려 기근이 끊이지 않는 현재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중세 때는 하루 4시간만 일하고도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지어진 노트르담 사원 같은 곳은 자발적 노동력의 산물입니다. 착취경제가 아닌 수준이 낮지만 다 같이 먹고사는 경제원리가 작동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먹고 살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쌀입니다. 반도체, 휴대폰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2,700만 명이나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이런 모든 것들을 재조정한다면 가난한 사람을 먹여 살리는 문제는 손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쉬운 일을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의 대리행위(순종과 믿음)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하나님 나라

선거는 평화로운 혁명입니다. 공화국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날이고 내가 존엄한 인간임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지금 20대의 투표율이 2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정치는 갱생이 가능합니다. 성경에서처럼 공동체 전체의 살림살이를 인간관계, 범죄율의 감소, 출산율의 증가 등 모든 생활의 행복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그런 참된 경제학으로 정책을 평가해야합니다. 표퓰리즘으로 함부로 표를 팔고 사지 않으며, 파편적 개인주의 보다는 공동체적 돌봄주의를 약간 장려하는 경제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만약 공동체적 돌봄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잘못하면 4년 후에 또 바꿔버리면 됩니다.

구약성경의 급진적 경제학을 오늘날에는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건강한 낙관주의를 보여줘야 할까요. 우리는 이것이 점진적으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은혜 받은 자들의 자발적 순종이 필요합니다.

정치의식이 고양된 다수 시민들이 존재할 때 선한 정치를 만들고 선한 시대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20대 투표율을 77%까지 올리면 다시는 ‘88만원 세대’라는 수치스런 책제목이 등장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 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늘의 별자리처럼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정치입니다. 정치는 각성한 청년들의 행동이 있을 때 개선될 수 있습니다. 정치를 무조건 혐오하거나 정치가들 욕하는 데 선동되지 말고 깨어서 의식 있는 그리스도의 청년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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