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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평화(Just Peace)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 전문WCC 한국 총회 주제
예장뉴스 기자  |  webmaster@pc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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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27  23: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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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평화(Just Peace)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 전문

1. 평화가 없다면 정의가 있을 수 있을까? 정의가 없다면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평화는 정의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 평화와 정의가 없을 때 우리는 우리의 길을 수정해야 한다. 일어나서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불의를 없애고 평화를 건설하는데 함께 노력하자.

2. 사람들의 증언 : 폭력, 인간존엄의 침해, 자연파괴 등 많은 이야기가 있다. 들을 귀를 활짝 연다면,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전의 영향으로 계속 불안에 떨고 있고, 인종적 ․ 종교적 적대의식이 국가에 타격을 입히고 추한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향을 떠나고, 집을 잃고, 국내 난민이 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은 흔히 그러한 갈등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인신밀매를 당하고 살해당한다.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져서 고아가 되고, 강제로 소년병이 되며 학대를 당한다. 일부 국가의 시민들은 준군사조직, 게릴라, 범죄조직, 정부군에게 매일 폭력을 당한다. 많은 국가의 시민들은 수년 동안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보안군과 무장군사조직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소수의 사람을 우대하고 소비를 유일한 인간적 권리로 보는 치명적인 정치경제적 결정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매일 영양부족으로 죽는다.

3. 성서의 증언 : 성서적 전통은 정의와 평화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시편 기자는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추었으며”(시 85:10)라고 선포한다. 이 입맞춤은 미래의 약속이자 현재 주어진 것이다. 미래의 희망이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주어진 선물이다. 평화는 비록 부서졌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세상에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화를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4) 예수 그리스도의 삶, 교훈,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정의로운 평화를 이해한다. 그는 다른 편 뺨을 돌려대고,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살인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평화는 지극한 기쁨의 영에서 비롯된 것이다.(마 5:3-11)

4. 예수께서는 적극적인 비폭력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약자의 편을 들고, 그 시대의 부자와 권력자의 불의를 비판하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극적인 비폭력을 견고하게 유지하며 죽음에 직면해서도 한결같다. 정의를 위해 바친 그의 삶은 그 당시 고통의 도구인 십자가 위에서 끝난다.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의 확고한 사랑과 순종과 믿음이 실패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확증해준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진리이다.

5. 십자가의 길, 즉 자기희생, 비폭력, 대가를 치루는 제자도는 비겁함과 폭력 사이의 좁은 길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악에게 굴복하는 겁쟁이와 악과 싸운다고 착각하면서 사실은 악의 힘을 늘리기만 하는 폭력을 피해야 한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42와 78)

6. 우리는 용서, 인간존엄에 대한 존중, 관대, 인간의 일상생황에서 약자 보호가 있는 곳에서, 비록 희미하고 불완전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얼핏 볼 수 있다.

7. 성서는 정의와 평화를 뗄 수 없는 동반자로 제시한다. (사 32:17) 정의와 평화는 서로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보완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인간사회에서 올바르고 지속가능한 관계, 지구와 인간의 관계성의 중요성, 지구의 ‘행복’, 창조질서의 보존에 대해 말해준다. 따라서 질병, 불의, 가난, 아울러, 갈등, 폭력, 전쟁이 우리의 몸과 영혼, 사회와 지구에 상처를 줄 때 평화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성서를 사용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8. 하지만 성서의 일부 구절에서 폭력을 하나님의 뜻과 연결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구절을 토대로 일부 기독교 종파는 자신과 타인의 폭력 사용을 정당화했거나 계속 합리화 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평화를 향한 거룩한 소명에 우리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그런 성서구절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믿는다. 오늘날 우리는 폭력과 증오와 편견에 대해 말하는 성서구절이나, 다른 민족을 멸망시켜달라고 하나님의 분노를 요청하는 성서구절에 대하여 신중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구절을 통하여 성서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목적, 계획, 증오, 열정, 그리고 습관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울러, 성서는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기록했으며,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폭력과는 멀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9. 교회다운 교회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기독교 평화운동의 맨 처음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에 토대를 둔 신앙공동체는 평화를 찾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길을 제시하는 모델이자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평화로운 삶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인간사회의 제도가 이루어야할 큰 과제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교회가 선포하는 평화를 실제로 증거하는 교회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언덕 위의 마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화해의 사역을 실천하는 신앙인들은 교회를 초월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을 드러낸다. (고후 5:18 참조)

10. WCC는 하라레 총회 이후 교회에게 말했다. “우리는 폭력의 정신과 논리와 실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정치 ․ 사회 ․ 경제 구조에 정의와 함께 화해와 평화의 대리자가 되기 위해 함께 매진할 것이다. 우리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바탕이 되는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정의로운 평화의 길

11.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평화에 이르는 길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삶에 영감을 받은 신앙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는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를 촉구한다.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과 동시에 정의로운 평화를 실현하고 분명히 증거하기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 이 헌신은 삶과 존재의 방식으로 온전히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삶으로 정의로운 평화를 증거해야 한다. 정의로운 평화는 단순히 ‘정당한 전쟁’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평화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정의로운 평화는 이것을 훨씬 초월한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된 평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정의로운 평화는 성적 ․ 문화적 폭력, 대중매체를 통한 폭력을 비롯하여 모든 형태의 구조적 폭력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수단뿐만 아니라 태도에서도 폭력을 없애고, 비폭력 저항을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12.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서 아주 중요한 비폭력 저항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잘 조직된 평화로운 저항은 적극적이고 끈질기며 효과적이다. 그것은 정부의 억압과 권력 남용, 취약한 지역사회와 환경을 착취하는 사업에 맞선다. 비폭력 전략은 힘 있는 자들의 힘이 시민과 군인, 점차적으로 소비자의 복종과 순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에서 비폭력 저항으로 바꾸면 전쟁의 정당성이 점차 줄어들고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전쟁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뿐만 아니라 국가들 사이의 정의와 평화로운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13. 우리는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여정의 신비를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화”에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언어와 지성의 한계를 느낀다. 우리는 정의로운 평화가 다양하고, 집단적이며, 역동적이면서도 토대가 탄탄한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두려움과 궁핍에서 해방되고, 증오와 배척과 억압을 극복하며, 가장 약한 사람들의 경험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고, 피조물의 통합을 존중하는 올바른 관계를 확립한다.

14. 정의로운 평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강해서 비폭력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아울러, 우리는 타인과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연약함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연약함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타인과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들의 고통을 줄이려는 책임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러한 연약함 가운데서 정의로운 평화를 이루라는 책무를 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정의로운 평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책임감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 즉 우리의 선조,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자들에게로 확장된다. 또한 우리는 미래의 세대인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 누가 이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정의로운 평화의 길의 표지판

15. 정의로운 평화와 갈등 해결. 하나님이 주신 평화의 선물은 하나님, 자연, 자신, 타인의 올바른 상호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속가능한 복된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관계가 손상되면 갈등이 발생한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 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는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향하여 갈등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대행자로 헌신한다. 갈등 해결 사역에는 피해자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폭력을 은폐하는 거짓 평화를 깨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갈등해결의 과정은 우선 폭력상황을 드러내고, 숨겨진 갈등을 공개함으로써 지역의 여러 사회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피해자를 분명하게 보게 해야 한다. 갈등해결의 목표는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갈등이 공동선을 지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와 화해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임무는 폭력의 희생자를 옹호하고, 그들과 함께하며, 또 연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회와 종교단체들은 모든 차원의 위기와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 정치적 도구를 강화하는 역할을 시민사회 내에서 확실하게 수행하게 된다.

16. 정의로운 평화와 무력 사용. 그러나 우리는 폭력 현장과 폭력적 갈등의 위협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때가 있다. 마지막 수단으로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특히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법의 통치를 다시 시행하기 위해 무력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갈등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장애물이 된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합법적인 유엔당국이 유엔헌장의 정신과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국제법의 통제 아래 군사력 사용을 비롯하여,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군사력 사용에 대한 신학적 또는 다른 어떤 정당화 논리도 거부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전통적인 이론인 ‘정당한 전쟁’이 낡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한 전쟁 전통에서 제시한 기준은 무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윤리적 틀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찰작전을 허용하고, 모든 대량파괴무기 보유나 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무력사용 형태들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인 우리는 갈등을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새로운 윤리적 교훈에 헌신하고, 세상에서 정의로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에 계속 참여할 것임을 함께 다짐한다.

17. 정의로운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으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허락받았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이해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법치의 목적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법적 장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 중이거나 평화로운 여러 사회에서 인권이 많이 남용되고 있으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신성함을 지키는 일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에서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일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주장한다. 여기에서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비전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우리는 인권을 옹호하고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를 강화하려는 시민사회의 모든 파트너들과 우정을 나누고 협력한다.

18. 정의로운 평화와 자원의 배분. 창조자는 인간에게 땅을 돌보라는 청지기직을 주셨다. 자연세계에 대한 착취와 자원 남용은 폭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죽음과 궁극적으로 하나님 ․ 창조세계 ․ 타인과의 죄악된 관계에 이르게 하는 삶의 양식이다. 기독교인이며 신앙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또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과 창조세계에 대해 죄를 지었음을 인정한다. 정의로운 평화의 비전은 인간사회 내 그리고 인간사회 사이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초월한다. 그것은 또한 지구를 우리의 집으로서 돌보는 관계를 받아들인다. 기독교 공동체인 우리는 우리의 청지지적 사명이 충만한 삶을 위해 지구의 자원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나누는 것임을 확고히 주장한다.

19. 평화의 문화 건설. 인간존엄과 인권을 보호하고 아울러 갈등을 해결하는 사역은 다른 종교적 전통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평화의 문화를 건설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폭력을 거부하며, 가난한 자, 빼앗긴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해 정의를 추구하라는 복음의 명령에 응답하려고 노력한다. (마 5:1-12) 평화의 문화를 건설하려는 집단적 노력에는 모든 사람들, 즉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 지도자와 하급 노동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다양한 재능과 특별한 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평화건설에서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와 참여를 격려하고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의 독특한 역할과 사회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또한 종교적 지혜와 통찰에는 인간존엄과 정의로운 평화를 촉진하는 해방의 잠재력이 있음을 인정한다. 아울러, 우리는 전통문화와 종교들이 오랜 동안 인간사회를 억압하는데 일조하고, 종교지도자들이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남용한 사례에 대해 슬프게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종교적 근본주의와 ‘영적 전쟁’ 개념이라는 공격적인 형태에 대해 특히 우려한다. 이 개념은 전자매체와 인쇄매체를 통해 널리 퍼진 선동적인 수사를 통해 악화되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과거와 현재에 ‘타자’를 악마로 여기는 억압적 구조에 참여해왔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자기민족 중심주의, 외국인 혐오, 그 밖에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태도에 맞서 싸우는데 헌신할 것이다.

20. 평화 교육. 평화의 비전에 영감을 받은 교육은 평화사역의 전략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인격이 영적으로 깊이 성숙하고, 도덕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교육이며,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하여 일생동안 계속된다. 우리는 이러한 심오하고 실제적인 목표를 인정하고 기독교 공동체로서 평화의 영을 육성하고, 폭력에 거부하는 대안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매진한다. 평화교육은 비폭력으로의 변화 가능성이 과소평가되지 않는 낙관적 현실주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인격과 양심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은 평화를 찾고 추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평화 여정의 지속성

21. 정의로운 평화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22. 평화의 여정은 어렵다. 우리는 여정 내내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폭력의 공범자임을 인정하고 폭력에서 떠나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훈련함으로써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고, 잘못을 고치고, 용서하고 또 받으며, 화해를 배운다.

23. 평화의 여정은 길다. 평화협정은 종종 부서지기 쉽고, 일시적이며, 불충분하다. 평화가 선포된 지역에도 여전히 증오가 팽배할 수 있다. 평화를 향한 여정은 전쟁과 갈등이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오래 걸린다.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지만 평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앞으로 더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약속해준다.

24. 폭력과 전쟁의 죄는 사회를 깊이 분열시킨다. 그것은 사람과 하나님을 분열시킨다. 적대자를 악마로 보고 그들에 대해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극복하고 치료받기 위해 장기간의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적대자들 간의 관계회복과 화해는 길고 긴 과정이며 또한 그 자체가 목표이다. 그것은 보복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화해 과정에는 힘 있는 자와 무력한 자,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 권세 있는 자와 비천한 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변화된다.

25. 평화의 여정은 혼자 갈 수 없다. 각 기독교 집단이 자신의 길을 따로 걸어간다면, 정의로운 평화의 여정은 늦어지고 정지된다. 평화에 대해서 분열된 교회, 갈등으로 찢어졌거나 서로 다투는 교회는 평화의 증인이나 사역자로서 신뢰를 받을 수 없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의 능력은 교리와 교회직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섬김이라는 공동의 목적에 따라 좌우된다. 이 목적은 또한 다른 신앙인들과 선한 의지를 품은 사람들과도 함께 공유된다.

26. 우리는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동체로 여행하며, 용서, 원수사랑, 타인의 생명과 위엄에 대한 존중, 절제와 온유와 자비를 비롯한 평화의 윤리를 나눈다. 우리는 자기희생의 정신을 공유한다.

27. 함께 여행하는 사랑하는 신앙공동체 안에는 지친 자들의 짐을 들어주고, 쓰러진 자들을 견고하게 붙들어줄 손과 팔이 많다. 고통을 많이 당한 사람들은 ‘용서하겠습니다’라고 말할 힘을 발견한다.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통해 개인적 ․ 집단적 죄의 엄청난 짐, 곧 전쟁의 유산인 분노, 그리고 쓰라린 고통과 증오를 내려놓게 된다. 용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돌아 볼 때 그 과거를 치유 받은 기억으로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 짐을 길옆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28.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한다. 평화의 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걷는다. 우리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시도를 넘어서서 하나님에 주신 선물인 이웃들과 함께 관대하고 열린 삶을 사는 법을 배운다. 평화의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이웃을 존중하고 모든 이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끌어낼 때 발견할 수 있다.

29. 평화의 여정에는 항상 풍성한 열매가 있다. 예수의 길을 걷는 제자들은 정의와 평화의 섬김 과정에서 크고 작게 자신의 삶을 나누어준다. 개인, 가족, 지역사회, 국가, 국제, 사회구조 차원의 다양한 폭력의 모습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다른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비폭력운동을 하라고 요청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운동가가 되고 있다. 그들은 인종, 국가, 계층간 분열을 극복하고, 가난한 자와 함께 하고, 멀어진 자와 다시 화해한다. 그들은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고 창조세계의 선물을 공공선을 위해 사용한다.

30. 평화의 여정은 흥미롭다.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는 자신의 발이 평화운동가로서의 발임을 깨닫는다. 다른 원리와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를 건설하고, 폭력을 예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이방인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평화의 길과 여정을 함께 나누어야 할 동료 인간으로 본다.

평화 운동의 새로운 일치 추구

31. 평화를 향한 기독교인의 순례는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 평화 공동체를 건설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교회는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영적이고 인간적이며 지리적인 장소다. 교회가 섬기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국민 및 종교인들과 함께 경제생활에 참여한다. 우리는 성서의 교훈을 통해서 정의로운 평화, 우리의 책임을 명확히 깨닫게 해주는 전 세계적 도전들, 널리 확산된 관심을 집단적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주요한 운동방향을 발견한다. 또한 교회들은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치를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 공동체 안에서의 평화(Peace in the Community)
─ 모두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함께 살기 위해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32. 세계적인 도전. 수많은 지역사회가 계층과 피부색, 인종과 종교, 그리고 성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성과 아이들의 권리는 흔히 무시되고 침해당한다. 가정과 학교에는 폭력과 학대가 만연하다. 직장과 교회는 지역사회의 갈등으로 손상되어 있다. 편견과 인종차별주의는 존중과 관용과 존엄을 위협한다.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여러 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공공보건은 빈약하고, 의료 서비스는 비싸거나 매우 부족하다. 지역사회를 건설하고 강화시키는 전통은 외부의 영향과 새로운 생활방식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다. 대중매체, 게임, 오락에는 지역사회의 가치를 저해하고 파괴적인 행태를 불러일으키는 폭력과 음란으로 물들어 있다. 폭력 또는 무장폭력이 발생할 경우, 젊은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되고 여성과 아이들은 가장 큰 위험에 처한다.

33. 주요 운동방향. 교회는 가족, 교구, 지역사회에 평화의 문화를 건설하는 주체이다. 이를 위해서는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전통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척당한 사람들을 보호 및 지원하며, 평화 건설과 갈등해결에서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그들을 모든 평화활동에 참여시키고, 정의와 인권을 위한 비폭력 운동을 지원하고 참여하며, 교회와 학교에서 평화교육을 바르게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와 다른 종교와 지역사회 단체는 오락, 게임, 음악에 만연한 폭력을 비롯하여 폭력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폭력에 맞서야 한다. 모든 이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무장폭력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인 무기들이 금지되며 또한 지역사회에서 제거될 때, 그리고 가족 폭력이 중지되고 해결될 때 평화의 문화는 실현된다. 포용적인 지역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교회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려고 한다면 교회는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지구와의 평화(Peace with the Earth) ─ 생명의 지속을 위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되 온전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셨다. 하지만 죄가 사람들의 관계를 깨고, 사람과 창조세계의 관계를 파괴했다.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명과 정의와 사랑의 청지기로서 나타날 때를 고대하고 있다.

34. 세계적 도전. 인간은 창조세계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탐욕, 자기중심주의, 무한성장주의가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를 착취하고 파괴해왔다. 화석연료 및 다른 유한한 자연자원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사람과 지구는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가난한 자와 약자들의 울음소리가 지구의 신음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인간의 생활방식의 결과로 발생한 기후변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정의로운 평화를 위협한다. 지구온난화, 해수면의 상승, 심각한 가뭄과 홍수의 잦은 발생 등이 특히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산호섬의 거주자, 원주민, 가난한 해변지역민은 지구온난화에 가장 책임이 작은 사람들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다.

35.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인 자연을 보호하고, 생태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의 핵심적인 원칙들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이 원칙들은 지속적인 회심을 바라는 복음의 요청을 보여주는 것이다.

36. 주요 운동방향. 전 세계의 교회회중들과 교구의 탄소배출량은 어느 정도인가?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독교인의 생활방식을 따라 산다면 지구를 지속될 수 있는가? 교회와 회중들은 지구의 유한한 자원과 생산물, 특히 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교회는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더 많은 ‘생태 교인’과 ‘녹색’ 지역 교회가 필요하다. 공정하고, 도전적이고, 구속력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수준에 대해 세계교회들 간의 더 넓은 합의와 홍보가 필요하다.

† 시장에서의 평화(Peace in the Marketplace)
─ 모두가 존엄성을 누리며 살기 위해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할 때 인간과 다른 생물들의 수많은 후손들이 살아가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자연자원을 함께 만드셨다. 하나님은 계층 ․ 성 ․ 종교 ․ 인종 ․ 민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37. 세계적 도전. 전 세계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엄청난 부를 축척하는 반면, 14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 살고 있다. 소수의 탐욕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을 가난으로 내모는 세계금융위기를 촉발시킨다. 사회 내부와 국가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더욱 심화되면서 시장중심과 경제자유화 정책이 모든 사회의 중차대한 목표인 가난 극복과 경제성장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되고 있다. 과소비와 박탈감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연결된다. 이러한 격차는 전 세계 인류공동체의 정의와 사회적 통합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38. 시장의 평화는 ‘생명의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자라난다. 생명 경제의 핵심적인 기초는 공평한 사회경제적 관계, 공정한 분배, 지속가능한 자연자원 사용, 모든 사람들이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식량, 그리고 폭넓은 경제적 의사결정 참여이다.

39. 주요 운동방향. 교회와 시민 사회단체는 지배적인 무한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성장, 일반재의 보편적인 공급 등 생명지향적인 대안적 경제정책을 주장해야 한다. 규제체계와 정책은 금융을 경제적 생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요구와 생태적 지속가능성과도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 민족들 사이의 평화(Peace among the Peoples)
─ 생명의 보호를 위해
우리는 생명의 수여자이시며, 생명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시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국가가 광장에서 진실을 선포하고, 무기를 농기구로 바꾸고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기를 요구하신다.

40. 세계적 도전. 인류 역사의 발전은 평화와 갈등해결, 법의 지배, 힘의 사용을 통제하는 기준과 협정, 그리고 오늘날에는 국가의 최고위직까지도 견제하는,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새로운 법률을 용기 있게 추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것에 대한 도덕적이고 정치적 반대들, 즉 외국인 혐오, 공동체간 폭력, 증오, 전쟁, 노예제, 인종 대량학살 등에 의해 얼룩졌다. 폭력의 영과 논리는 인간 역사에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런 죄의 악영향의 규모가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경제적 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악영향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41. 오늘날의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요인은 에큐메니칼운동이 탄생한 이후에 나타났다.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과제는 오늘날의 위험들의 속성과 범위 때문에 새로 개척할 분야가 많다. 우리는 생명과 생명의 토대를 파괴하는 인간 능력의 거대한 발전을 목격하고 있다. 위협의 규모, 인간의 집단적 책임, 세계적 대응의 필요성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엄청난 규모의 두 가지 위험, 즉 핵전쟁으로 인한 대량학살과 기후변화가 정의로운 평화를 파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창조세계에 속한 에너지를 극단적으로 잘못 사용한 것이다. 핵무기 재난은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에서 비롯되며, 기후변화는 대량멸종을 초래하는 생활방식의 확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 두 가지 위험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러 국가들은 이 위험에 대한 적절한 대응능력이 있는지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난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가?

42. 주요 운동방향: 교회는 거룩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법, 조약, 상호책임과 갈등 해결의 수단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치명적인 갈등과 대량학살을 예방하기 위해 다른 신앙공동체와 연합하여 국가의 전쟁능력을 감소시키고, 인류와 지구를 사상유례가 없는 위험에 빠뜨리는 무기를 제거하고, 전쟁수행 조직의 법적 근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43. 희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우리의 집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생명은 억압될 수 없지만 평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고 있다. 세상권세들은 이 세계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승리를 누리고 있고, 우리는 평화가 승리할 때까지 쉴 수 없을 것이고 깨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평화 만들기는 당연히 비판하고, 고발하고, 주창하고, 저항할뿐만 아니라 선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화해하고, 치유하는 일을 할 것이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찬성하고 반대하고, 무너뜨리고 세우며, 애도하고 경축하고, 또 슬퍼하고 기뻐할 것이다. 우리의 바람이 하나님 안에서 만물이 완성되는 것과 하나가 될 때까지, 평화의 사역은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의 깜빡임으로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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