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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목사 원로목사 추대(은퇴식)31년의 목회를 마치며(201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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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23  15: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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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남목사 원로목사 추대(은퇴식) 

충남 당진교회 원로 목사

   
      2012년 100주년 로비에서  총회 농어촌부 독립을 위한 집회에서 설교하는 이명남 목사

우리교단의 “예장 한기총 대책위”의 위원장으로 이번 총회에서 전국의 12개 노회가 “한기총 탈퇴헌의” 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이끌어 이명남목사가 시무하던 당진교회에서 은퇴식을 하였다. 천년에 한번 온다는 2011년 11월 11일 11시 정각에 31년간의 시무를 마무리 하였다.

이명남목사는 총회에서 부회록 서기(79회기)와 여러 부서에서 활동하였지만 특히 인권위원회에서 위원장, 총무, 위원으로 18년간을 봉사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예장 인권운동의 역사에 故 조남기목사(NCC 초대 인권위원장, 청담교회) 이후 인권운동의 최일선에서 일하셨고 현재도 NCCK의 인권쎈타 이사장으로 계시다.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과 목회자운동에도 앞장섰고 사형제도폐지 위원장과 총회 특별재판국장, 특별재심위원장(92회기) 도 역임하셨다.

충남노회에서는 노회장(76-77회기)과 각부 부장을 거쳐서 노회 성서신학원장과 회관 건축위원장, 유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여기까지는 한 노회와 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분들의 일반적인 이력이다. 그러나 이명남목사는 교계뿐만 아니라 충남 대전지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대부셨다. 당일 대전, 충남 민주화운동 계승연대가 드린 공로패와 인사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모든 민주화세력들의 앞과 뒤에서 큰 산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감사하다” 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얼마 전에 은퇴하신 김정웅목사(청주, 명암교회)와 같이 시대에 척박한 토양의 충청도 지방에서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민족 민주 운동의 대부로 이미 은퇴하신 노영우(청주남교회)과 같이 3인방으로 불리우신다.

 
   
                                             2008년 나고야 방문하신 이명남 목사와  같이

그외에도 대전, 충남 환경운동 상임의장(99년-2006년) 과 개신교를 대표하는 진보적 목회자 운동단체인 정평목협의 상임위원장(1987년)과 기사련 위원장(1988년) 재일동포 인권선교위원장(99년-2011년)으로 어려운 시대임에도 더 어려고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의 입과 손이 되여 봉사하셨다.

특히 후배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시고 도와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시면서 사랑하고 이끌어 주셨다. 우리 예장의 목회자운동과 민주화, 인권 운동의 선배들이 많치 않은 가운데서도 항상 어려운 자리와 굿은 일에 몸으로 앞장서 주시고 힘이 되여 주신 분이다. 이미 은퇴하신 금영균, 홍성현, 윤두호, 김덕재, 김종희, 김태규, 이천우, 유경재목사님들과 같이 한 시대에 주연이 되셔서 우리들에게 목회와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통일운동의 본을 보여 주신 분들이다.

이런 운동을 하시면서도 이목사님은 유별 나게 교단에서 총회장 표창도 93회기와 2008년 두차례 받으셨고, 대통령 표창도 2006년, 2010년 2회나 받으셨을 뿐 아니라 2009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으셨다. 이 모두가 성실한 목회와 사회운동을 병행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예로 80년 그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기 위해서 서울서 총알택시를 타고 당진으로 가신 분이다. 맡겨진 강단를 지키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감당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당진교회로 가기 위해서 터미널에서 탄 택시기사에게 이명남목사라는 분을 아시냐? 그분이 오늘 은퇴 한다고 했더니 잘안다고 대답하며 “그 분이 아마 당진 분은 아닌데 여기 당진을 위해서 큰일을 하신 분 이유” 라고 하는 것을 들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밖의 양들을 위해서도 애쓰신 분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충남노회장(양정국목사)의 사회와 총회장 박위근목사의 설교, 이철완 당진군수의 축사에 이여 김영태 목사(전 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였는데 그 외 축하 순서로 당진 지역 신문사와 “당진시 추친위원회” 에서 공로패를 주었다. 이 목사님은 당진시 추친위원장을 맡아서 내년 1월 1일부로 시로 승격되는데 중앙정부와 정치권에 지역를 대표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전했다.

특히 축사를 하신 백도웅목사(전 NCCK 총무)는 “이 목사님은 색깔이 분명하신 분이다, 색은 분명한 색깔을 내야만 아름답다. 무지게를 보라, 일곱개의 색이 분명하니 아름답다. 그러나 더 큰 아름다움은 그 색이 조화로울 때이다. 자기 색만 분명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 그 분명한 색이 다른 색과 어울릴 때 더 아름다운 것이고 조화로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면서 이명남목사는 분명한 칼라(철학과 신학)을 가졌기에 아름다우셨고 다른 색들과 어울리면서 이 길을 걸어오신 것이다“ 라고 덕담을 하셨다.

 
   

   2011년 좌측 유경재, 이형기, 금영균, 이명남,정성진, 임규일, 이천우 조준래 목사  


이명남목사의 목회여정은 지역의 한목사가 법적 정년으로 은퇴하는 일반적인 목회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애를 살아오셨다. 그렇기에 이 목사님의 은퇴는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좀 쉬어가면서 일하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까이서 지난 세월 30여 년 간을 봐왔지만 그 분의 정신과 행동에는 후배인 우리도 머리를 숙이고 존경해 마지않는다.

지금도 그 흔한 자가용 하나 없이 오직대중교통으로 서울과 지방을 부지런히 오고 가시며 일하시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시다. 하나님 생명과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맡겨진 목양의 장에서는 목회로 최선을 다하시며 또 나와서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를 위하여 지금 까지 좁은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무엇보다. 31년간 한 교회를 목회하려면 건강도 있어야 하고 목회밑천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모든 것을 두루갖추신 분이다. 특히 마음이 넓은 분이다. 사실 교계 일은 그래도 회의비도 주고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 통일운동은 희생하는 일이다. 지금이야 너도 나도 다 운동권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8-90년대는 정말 신앙과 결단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였다.

언젠가 목사님과 동숙하는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하루는 대전에서 민주열사 장례식에 지역대표로 순서를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데 앞장서서 긴 막대를 들고 서 있는 청년의 얼굴이 낮이 익어 자세히 보니 큰 아들이였다. 차마 얼굴을 맞추칠 수가 없어서 얼굴을 돌렸다고 하셨다. 그때 마음이 얼마나 착찹하셨겠는가?

그러나 남의 자식더러는 민주화운동 하라고 하고 내 아들보고는 빠지라고는 못하겠더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 길은 나 혼자만 해야지 니 엄마를 봐서라도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싶었지만 결국은 못했다고 하신다. 그런 아들이 이제 민주화운동을 끝내고 우리 교단의 목사가 되어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한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보게 된다.

혼자 민주화운동을 혼자서 한 경우는 많아도 자식까지 이어 운동한 가정은 사실 많치 않다. 그러나 이명남목사님은 아들도 감옥까지 갔다 오는 등 부자가 민주화운동에 함께 했으니 사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 까?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부자를 말리지 않고 묵묵히 내조하신 위대한 사모요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아프고 타는 마음을 누가 위로해주었을까? 이 모두가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없이는 결코 오늘이 있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가정이요 여인이였다고 본다.

끝으로 고별인사에서 이명남목사는 당회와 교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지난 세월 “뒷바라지 해주시고 참아주시고 허물도 덮어주신 것을 감사하다” 는 말씀에서 참 목자다운 정직함과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는 말씀을 실천하신 분이였다. 마지막 모습이 이리도 솔찍한 분이 또 어디 있을까? 걸핏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라고 교인들의 수고와 정성을 가볍고 값싸게 습관처럼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목사님은 정말 자기 색깔대로 진지한 감사를 표현하신 분이다.

우리의 색깔은 무엇일까? 아니 색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여서 그져 편리와 실익에 따라서 변하는 회색분자는 아닐까? 우리가 지도자라면 나의 색깔을 한번 점검해 보고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색깔도 탓하지 말자, 서로의 색을 분명히 하고 살다보면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게 볼 것이다.

모두가 큰 교회, 성공주의 목회를 할 수는 없다. 또 모두가 한 교회서 긴 세월을 목회을 하고 은퇴할 수 없다. 어디에서 하든지, 무엇을 하던지, 자기 색을 가지고 롱런하면 그게 아름다운 것이다. 자기가 무슨 색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 처럼 불쌍한 것은 없다. 자기 색을 분명히 갖으셨기에 아름다운 목양과 사회사교의 사역을 마치신 이명남목사의 건강과 축복을 후배들은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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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석
(125.XXX.XXX.202)
모델이 되어주셨던 분이 한 분씩 우리곁을 떠나 가시는데 그 분의 그림자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니 ...
(2013-03-02 15: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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