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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0  2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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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식구

   
행 8:26-40; 요일 4:7-21; 눅 2:41-50

 2012-5-6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가정주일

가정주일에 새민족교회 김영철목사

눈부신 5월입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 추었고, 그리고 짧았습니다. 봄꽃이 피었다 싶었는데, 봄비가 내리더니 여름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 선뜻 다가 왔습니다. 옷장에 반팔 옷들과 긴팔 옷들이 자리를 교체했습니다. 5월 이번 주간에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있어 가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집 아이들, 교회의 아이들, 부모님들과 교회 어른들 그리고 많은 스승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가정의 변화와 위기’가 심각합니다. 다양한 가족들이 생겨났습니다. 한 가족들도 한데 모여 사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경우가 많고 외국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설사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물리적으로 같이 살 뿐이지 정서적인 일치감은 별로 없습니다. 서로 자기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함께 사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교회의 가정들은 그래도 참 좋은 가정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런 표어를 내 걸었습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로, 교회는 큰 가정으로’ 멋진 것 같습니다. 이런 구호가 내걸어진 것은 한편으로 보면 교회가 가정공동체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마가의 집에서, 에베소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라오디게아교회는 눔바의 집에서,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골로새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교회가 큰 가정이 되는 것을 강조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 건물들이 세워지고 대형화 제도화 된 교회에서 그러한 가정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원 창설자이신 故토레이 신부는 한국 기독교가 크게 잘못한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기독교 할 때 가르칠 ‘교(敎)’ 자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가르침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르칠 ‘교(敎) 자’를 쓰는 것보다는 사귈 ‘교(交) 자’를 쓰는 것이 더 옳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의 만남이요, 하나님의 가족들의 사귐이요, 교제요, 관계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가족이나 가정보다 더 중요한 조직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조직이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정

가정을 생각하다 보면 오늘 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정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2장에 있는 이야기는 예수님이 12살 되던 소년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여서 아주 귀중한 기록입니다. 성경에는 소년 예수가 유월절에 갈릴리 시골에서 유태나라 서울인 예루살렘으로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했다고 합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최대의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로 살다가 모세의 인도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나라 방방곡곡에서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고, 그래서 숙박시설이 동이 나고, 온 시내가 순례자들로 붐비는 때이기도 합니다. 저는 유대인의 이러한 관습이 그들의 민족적 일체감을 가지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가족도 그 순례자들에 끼어 이리 저리 구경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소년 예수는 귀향길에 오른 가족들 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소년 예수가 순례객들 틈에 끼어서 집으로 가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비로소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소년 예수를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찾으려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눅 2:44)"고 합니다. 요사이 같으면, 자동차로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지만, 2000년 전 험한 산길로 200리 길을 걸어 가야하는 머나 먼 길이었습니다. 하룻길이면 절반 좀 못되는 길을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셈입니다.

소년 예수의 부모, 목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장남인 예수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 복잡한 예루살렘 길을 이리 헤매고 저리 달리면서 아들을 찾았습니다. 어제 같은 어린이날 서울대공원이나 에베랜드 같은 복잡한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부모들은 당황하게 되는데 예수의 부모도 엄청 당황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직감이었는지 예수가 성전 안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전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사흘 뒤에야" 아빠 엄마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눅 2:46).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흘 동안이나 예루살렘 도성을 헤매며 어린 예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지친 몸으로 헐레벌떡 성전에 들어 선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 눈에 들어 온 것은 어린 소년 예수가 하얀 수염을 한 어른들, 제사장들과 성서학자들 틈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소년 예수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눅 2:46,7). 여유가 있었다면 대견하게 예수를 바라볼 수도 있었겠지만 예수의 부모님은 예수에게 달려가서 소리 질렀습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아냐?" (눅 2:48)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눈물 섞인 꾸중이었습니다. 그런데 12살 아이 예수의 대답이 맹랑합니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조용히 응답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어요? 안 찾으셔도 되는 데.... 아니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어요? (48절 하반 절)"

이런 일이 있은 후, 소년 예수는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면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눅 2:51). 그리고 덧붙이기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 2:52)고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전에서 예수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2:50, 51하반 절).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가정의 모습을 얼핏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그 나이 10대의 반항기가 얼핏 보이기도 하는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예수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관심이 많은 유대청년으로 자라났으며 아버지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아주 훌륭한 목수가 되어 가구도 만들고 아이들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고 아버지를 따라서 동네 집도 짓고 수리도 하며 30세가 될 때 까지 모범적인 효자 노릇을 했고, 전설에 의하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의 장남으로서 가장 노릇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하던 예수가 30세가 지난 어느 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더 큰 가정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길을 떠난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자매인가?"

마가복음 3장 31절-35절에는 예수님이 열심이 설교하고 병자들이 몰려와 정신없이 병고치고 있는 와중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자매들이 찾아 왔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에게 동생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기 저기 있지만, 자매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주 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가정을 떠나 큰 가정으로 옮기셨는데 이러한 예수님을 가족들은 걱정이 되어 예수를 만나러 왔습니다. 식구들 귀에 들려오는 예수에 대한 소문은 예수가 미쳤다고도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에 쳐 들어가 유대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등 불길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은 집안의 큰 형님 오빠에 대한 염려로 그들은 예수를 강제로라도 데려다 요양을 시키든지, 아무튼 군중들로 부터 풀려나게 하고, 로마 당국의 주목을 이제 그만 받도록 보호해야 하겠다고 예수님 구출작전을 하려고 찾아 나섰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왔다는 얘기를 들으신 예수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며 누이들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자매들이다” (눅 8:21).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가 3:34,5).

하나님의 가족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가족을 말쑴하십니다. 12살 어린 시절 부터 자기는 가족에 예속된 인간이 아니고 독립된 생각을 가진 한 자유인이고 육신의 아버지 집 보다는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들과 형제자매들 앞에서 당신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자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식구들이 내 어머니며 형제자매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이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족이기주의, 가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계십니다. 모두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뜻을 따라 살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식구가 되는 일이 구원 받는 일이고 축복 받는 일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됩니다.

영적인 가족은 혈육관계의 가족보다 더 중요합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은 죽음으로 끈이 끊어지지만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가족은 필요에 의해 멀리 떨어져 살수도 있습니다. 이혼으로 헤어지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늙고 죽어 영원한 이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값진 일은 육적인 가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이 땅에서만 아니라 저 천국에서도 함께 살 영원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라고 하면 먼저 건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교회는 빌딩이나 건물이 아닙니다. 조직이나 기관도 아닙니다. 써클이나 클럽도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갑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어떤 장소에 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건물 안으로 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갑니다.”라는 말은 영적으로 하나 된 가족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가족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새민족공동체가 서신서의 말씀과 같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큰 가정을 이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식구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들과 우리 가정 그리고 우리교회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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