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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열 박사의 WCC 제8차 총회(하라레)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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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18  23: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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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꿈과 북소리  

숭실대 기독교사회연구 소장
   
                                             이삼열 박사와 부인인 손덕수 교수

주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소망 중에 기뻐하자(Turn to God Rejoice in Hope)"

아프리카의 꿈과 북소리

개회예배와 폐회예배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천 명이 예배를 함께 드리는 곳은 하라레 대학 캠퍼스 잔디밭 위에 세워진 대형 천막이었다. 무대 옆 찬양대 석에는 울긋불긋한 원색적 예복을 입은 성가대원들이 아프리카의 북소리와 토속적 악기에 리듬을 맞추어 몸을 흔들며 신나게 찬송을 불렀다. 아프리카의 원시적 맥박을 담은 북소리는 예배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다.

토속적인 울부짖음과 화음이 담긴 찬양은 종교적인 것이었다. 여기에 적나라한 춤과 율동이 인간의 환희와 고통, 온갖 격정과 번뇌를 몸으로 표현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참으로 다이나믹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예배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의 예배를 위해서 전 세계적 예배 전문가들로 구성된 17명의 예배 위원회가 4년 전에 조직되어 매년 한 번씩 회의를 하면서 준비해 왔다고 한다. 14일 동안 드릴 예배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찬송과 기도문과 복음송과 교독문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매일 아침 다른 주제와 내용, 다양한 찬송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4천여 명의 참석자들이 한 마음이 되고, 한 형제 자매됨을 느낄 수 있도록 공동체적 행위들이 하나씩 있었다.

예배 천막의 연단 앞에는 4.5m에 이르는 대형 나무 십자가가 워져 있었다. 이 십자가를 아프리카의 십자가라고 불렀는데 십자가의 가운데 직경 2m정도의 아프리카 지도가 달려 있었다. 그 지도 위에는 아프리카인들의 고통과 억압, 해방과 투쟁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고난과 기쁨을, 절망과 희망을 함께 상징하기에 충분한 십자가였다. 아프리카의 십자가 아래에 수천 명의 세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번 총회의 한 심볼이었다.

그래서 8차 총회를 마치며 만든 대회의 메시지도 ‘아프리카의 십자가 아래서’라는 제목을 달기로 했다. WCC 8차 총회는 아프리카에 특별한 관심과 목표를 둔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북소리(drum)를 들으며, 아프리카의 꿈(dream)을 생각해 보는 것이 전체적 인상이었다. 21세기의 세계교회의 과제를 논한다면, 아프리카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꿈과 문제를 총회가 보다 분명히 느끼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 현실적 고통들을 연극과 비디오, 시와 율동으로 보여주는 발표회가 있었고, 이어서 전체 토론이 있었다.
20세기의 아프리카는 고통과 절망의 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시대였으며, 이제 21세기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꿈을 실현하는 희망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의식이었고, 과제설정이었다.

세계 교회는 아프리카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복음화를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21세기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가 된다는 의미를 조금은 깨달아 알 것 같다. 아프리카를 재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백인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원화 시대 교회의 일치
   
 

이번 WCC 8차 총회인 하라레 대회를 어떻게 결산하고 공적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실행위(3월)와 중앙위(8월)를 거쳐 공식 보고서가 만들어지는 금년 말쯤에나 가서야 판명되리라 생각되지만, 사적인 파악과 평가는 개인이나, 지역, 교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내용들이 있게 되리라 본다.

WCC 총회는 대체로 ▲예배와 설교, 주제강연, 이슈별 발표회 등 전체모임 ▲회무처리와 사업보고, 임원개선 등이 있는 공식 대표들만의 모임 ▲업무분야별로 나누어 보고와 의견수렴을 시도하는 공청회와 분과토의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에는 한가지 장르가 더 추가되어 ▲파다레(padare)라는 시장 형태의 모임들을 곳곳에 벌려놓고,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 파는 식의 의견교환과 대화를 나누어 총회의 여론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도되었다.

이번 8차 총회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토론하면서 중요한 에큐메니칼 아젠다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나름대로 판단하여 이번 총회에서 특별히 부각된(highlight) 주제가 다음 네 가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는 앞으로 WCC의 중점적 과제가 되는 것이기도 한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과 교회의 일치 ▲세계화와 외채탕감 ▲폭력의 극복과 평화의 문화 ▲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관계의 윤리라고 정리해 보았다.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들이며 다룬 문제는 21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과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 가는 문제였다. WCC는 지난 50년동안 로마 가톨릭을 제외한 정교회와 개신교회의 대부분을 가담시킨 대표적 개신교 연합체이다.

사실 지난 50년동안 커다란 분열은 없었으나 이번 총회에 앞서서도 정교회 측에서 총회참석을 보류하겠다는 경고가 나올 정도로 WCC 내부의 갈등은 심각했다. 분열과 탈퇴의 위협 속에서 WCC는 어떻게 하나의 교회로서의 모습과 구조를 유지해 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번에 채택된 ‘WCC의 공동의 이해와 전망’(Common Understanding and Vision, CUV)이라는 문서이다.

이 문서의 기본 핵심은, WCC가 모든 교회들 위에 군림하는 초교회(super church)가 될 수 없고, 모든 교회들의 연합체도 아니며 한가지 특정한 교회론이나 신학적 교리에 근거해서도 안된다는 토론토 선언(1950)을 재확인하면서, WCC는 교회에 부과된 공동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교회들의 친교와 협의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있었다. 그러나 WCC가 너무 기구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이었다는 비판과 반성은 여러 곳에서 나왔고,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되기도 했다.

이런 요구를 수용한 보완책이 이번에 결정된 ‘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관들의 포럼’창설이다. WCC가 제안해서 세상의 모든 교회, 기독교 단체들을, 회원 비회원을 따지지 말고, 가능하면 가톨릭 교회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협의하는 광장(Forum)을 따로 만들자는 안이다.  이런 구조변화를 시도하는 새로운 문서(CUV)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milestone)라고 평가되었고, 21세기 WCC운동에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 같이 보였다.

세계화와 외채 탕감문제

이번 하라레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회의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를 대라면 아마도 ‘세계화(Globalization)’가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나 다 복음적 실천과 선교의 상황(context)을 말하면서, 오늘 20세기말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세계화를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교회대표들의 세계화에 대한 설명과 주장은 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선진국에서 온 대표들은 세계화 현상에는 부정적인 것도 있고 긍정적인 것도 있다고 하는데 비해, 제3세계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화는 부정적인 것이며, 심지어 ‘더러운 것(dirty things)’이라고 하기도 했다.

많은 토론과 논쟁 끝에 정책위원회가 만든 문서에서는 ‘세계화란 오늘날 모든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불가피한 현실이며, 경제에서만 아니라 정치·문화·윤리·환경 등 전 분야에서 매우 중대하며 도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 책임있게 대응해야하며 특히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막대한 피해자(victim)들과 사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한다’는 요지로 정리되었다.

하라레 총회의 여러 결의문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관심거리가 된 문제는 외채탕감(debt cancellation)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8차 총회는 WCC 희년(Jubilee)총회이기 때문에 개회시부터 희년의 정신이 강조되었고, 노예를 해방시키고 빚을 탕감해주는 희년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세계의 최빈국들의 감당할 수 없는 외채를 탕감해주어야 한다는 결의문을 상징적으로 채택했다. 이 결의문의 효력에 대해서는 물론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후진국의 외채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WCC가 이미 70년대부터 여러 가지 조사연구보고와 결의문을 발표했고, 최근의 외채위기에 대해서도 몇차례의 협의회를 가졌다. 그리고 여러 에큐메니칼 운동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후진국의 외채탕감운동을 전개해 왔고 특히 서기 2천년이라는 희년을 맞으며 “상징적으로 최빈국 몇나라의 외채를 탕감하라!”는 운동이 ‘2000년 희년(외채탕감)’이라는 이름으로 1996년부터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외채문제를 토론하는 분과토의와 파다레(padare) 행사들을 쫓아 다녀보았다. 특별히 9일 저녁에 ‘2천년 희년운동’(Jubilee 2000)이 주최한 외채문제 공청회는 큰 성황을 이루었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외채문제 진상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졌다.

공청회에선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외채들은 잘못 들여와 잘못 쓰여졌기 때문에 탕감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많은 독재자와 독재정부들이 갚을 수 없는 외채를 들여와 사치 방탕하고 허비한 뒤에 국민들에게 갚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무의 계약은 국민의 동의없이 만들어져 높은 이자를 내야하고,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늘이는 외채 누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채는 그래서 해가 갈수록 늘어나 점점 갚을 길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세계화와 외채문제가 주는 도전과 역기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세계교회들과 연대하며 대처해 가야 하리라 생각된다. IMF 관리체제 속에서 무조건 우리의 외채탕감이나 감축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외채를 누가 들여다 어떻게 쓴 것인지, 과연 국민들이 혈세와 고이자로 갚는 것이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옳은지를 따져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외채위기가 강 건너 불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은 함께 사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려는 하나의 교회운동이었다. 이번 8차 총회에서 WCC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로 설정한 프로그램들을 보더라도 결국 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을 교회가 어떻게 제거하도록 노력하느냐에 촛점이 모아져 있다.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고 화해와 평화의 세계를 만들려는 노력도, 성차별을 극복하고 성에 대한 대립되는 의견과 이로 인한 분열을 극복하려는 운동들도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총회가 특별히 주목한 세계분열의 상황은 세계화로 인한 빈부격차의 세상말고도, 종교와 문화, 인종과 지역간의 차별과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전쟁의 계속적인 증대에 있었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 심각히 논의된 문제는 성의 이해와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현대사회는 서구적 근대화와 합리성의 가치관이 주도하던 시기를 벗어나 포스트 모던이라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물결 속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이중에도 성문화가 크게 변혁을 일으키고, 전통적 기독교적 성 윤리도 많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결혼과 이혼, 피임과 인공유산, 혼전 성교와 동성애 등의 문제에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크게 달라지고 새로운 성문화와 형태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제 성 문제는 교회 안에도 침투되어 많은 논란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l번 WCC 하라레 총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의 공식적 집회와 발언은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로 인한 논쟁과 토론은 여러 곳에서 심각하게 벌어졌다. 앞으로 교회가 성(sexuality)에 관해 획일적이며 규제적인 윤리와 규범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인가에 심각한 의문과 이견들이 제기되었다.

성의 쾌락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하나라고 보았을 때, 기독교가 요구하는 성 윤리는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 전통적인 성 관계나 혼인 속에서 성의 쾌락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쾌락과 안정을 추구하는 경우 이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타당한가의 문제들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혼전 동거가 보편화됐고, 이혼률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기독교는 어떤 결혼과 성 윤리를 가르쳐야 하는가? 더욱이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AIDS)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수백만의 인구까지 줄어들 위험에 놓여 있다. 부부간에도 콘돔을 사용하라는 보건학자들의 충고를 과연 교회의 성교육이 수용할 수 있겠는지 여러 토론장에서 지대한 관심과 흥분 속에 토론이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위원회의 결의문에는 최종적으로 이렇게 간단히 적었다. 총회의 전체회의와 공청회, 파다레 등에서 인간의 성생활 문제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성의 이해에 관한 이슈들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에 대한 이견이 교회의 불일치와 차별, 불의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인간학과 성서적, 해석학적 이해, 신학적 사회학적 연구가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아마도 성 문제와 성 윤리에 관한 담론이 21세기 세계교회에 중대한 이슈로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을 필자는 느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을 교회가 포용하는 일이 불가피한 과제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8차 총회에서 WCC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로 설정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을 교회가 어떻게 제거하도록 노력하느냐에 촛점이 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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