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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시대, 농민운동의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여주군농민회 최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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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20  12: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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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시대, 농민운동의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여주군농민회 최재관

Ⅰ. 농민운동 평가

 ○ 지난 20년은 수입개방 반대의 역사 

개인적으로 지난 농민운동 20년은 수입개방 반대 투쟁의 역사였다. 1992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쌀 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전개한 적이 있다. 30여명의 대학생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대선후보들의 쌀 개방 반대에 대해 대통령직을 걸고 약속해 줄 것과 정부차원의 범국민 대책위를 구성할 것 등 3개항의 요구사항을 걸고 삭발단식농성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된 농민운동은 94년 UR반대투쟁으로 대중적으로 벌어 졌다. 저는 대학생 시절이었지만 한총련 차원에서 범국민 운동본부에 참여하여 농민들과 함께 대중적인 거리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쌀 개방의 거센 물결을 막지 못하고 이듬해 1995년에 WTO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1995년 이후 우리나라 농업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수입개방 이전시대의 농업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농업이 몰락하게 되었다. 수입개방에 대한 가격폭락은 농가경제의 파탄과 농가부채의 급증을 가져 온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절에 농가부채 탕감이라는 역사적인 공약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1995년 WTO의 출범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민들의 재앙이었다. 농산물 수출국은 수출국대로 자국의 농업구조 개편이 진행되었고 농산물 수입국들은 거센 개방 압력으로 자국 농업의 몰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들어서는 정부마다 농업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의 WTO 개방대세론에 무역 비교 우위론 등 농민운동은 전 세계적인 거센 조류에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린다.

 2000년 6.15의 민족사적 전환기를 맞고 농민운동이 대중화되는 시기를 맞게 된다. 해남의 배추투쟁으로 면단위 집회가 3000명 이상이 집결하고 의성마늘투쟁의 경우 군단위에서 1만 명 이상이 집결하는 농민운동의 대형화가 이루어진다. 농민회는 빨갱이라는 이념적 인식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농민 생존권 투쟁이 거침없이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맞아, 2004년에 돌아올 WTO의 쌀재협상을 반대하는 농민운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30만 농민대회를 열게 된다. 여의도 광장에 관광버스가 4000여대가 조직되고 노동자들과 대학생 구경꾼까지 실제 13만 명이 집결하는 쌀재협상 반대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것은 2000년 6.15이후 대중운동의 변화된 의식의 발전 정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2003년 선거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새해 벽두부터 한 칠레FTA가 체결된다. 농민운동은 지난 10년간 WTO의 괴물과 맞서 싸워왔는데 그것보다 더한 괴물이 출현하게 된다. 한 칠레 FTA 투쟁을 통해 지난 10여년 이상 갈고 닦아온 대중투쟁 전술을 다 쏟아 붓는다. 처음에 물꼬를 막지 못하면 거센 둑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공식 기록으로 104일간의 상경투쟁,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국회의원 찬반입장 요구투쟁, 서울에서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시군마다 돌아가며 두 달간 이어진 천막농성, 한강대교에 올라가고, 농민운동사상 가강 강력한 투쟁으로 전국의 고속도로를 막게 된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1톤 트럭으로 막히고 특히 부경연맹이 남해고속도로 터널을 막아서 6시간 동안 도로를 마비시키고 임산부의 항의에 비로소 길을 터주었던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어 집단적으로 차량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일 경우 면허가 취소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2004년 드디어 WTO 쌀재협상의 시절이 돌아오고 농촌마다 쌀 개방 찬반을 묻는 농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마을마다 마을교육을 진행하고 이장이 중심이 되어 선관위를 꾸리고 선관위 기표대를 대여하여 각 마을 농민투표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30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하였다. 대중 참여의 투표전술로 농민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2005년 쌀재협상 비준의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열사의 죽음을 맞게 되고, WTO반대를 위한 홍콩 원정대가 결성된다. 1천500명 규모의 민중투쟁단이 홍콩에서 보여준 투쟁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홍콩원정대는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숨진 이경해 열사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또한 전용철 열사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러한 투쟁정신은 12월 한겨울에 300명이 홍콩앞바다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1500명이 함께한 삼보일배는 세계 민중운동사에 길이 남을 장관을 연출했다. 그리고 1500명 전원 고속도로 점거와 전원연행의 기록을 남겼다. 평화적이면서도 강고한 투쟁으로 세계 민중들의 WTO반대 투쟁 모범으로 되었다. 그 이듬해 태국에서 농민들이 홍콩에서 경험한 투쟁을 그대로 재현해서 태국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그 결과 WTO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삐걱 거리며 멈춰서 섰다. 2006년 WTO가 멈춰 서자 한미 FTA가 몰려 왔다. 범국민 운동본부가 꾸려지고 농민들이 그동안의 투쟁경험을 전수하며 민중운동으로 확대해 나갔지만 대중적인 동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쳐 갔다. 그리고 2007년들어 지난 10여 년간 지속되어온 수입개방 반대투쟁의 피로감이 나타나며 어떠한 투쟁을 조직해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농민운동은 조직을 정비하고 대중적인 동력을 새롭게 확보하지 못하면 한걸음도 더 나아가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그리고 농민운동은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기 시작했다. 현장 작목반에 눈을 돌리고 로컬푸드와 학교급식 등 지역농업으로 점차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2008년에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벌어지면서 백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하지 못하는 수입개방 반대투쟁이 국민들의 촛불로 다시 점화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수입농산물의 확산에 따른 국민들의 먹거리 위기감이 더 없이 고조되면서 생협은 지난 6년간의 회원 가입수보다 지난 6개월간의 가입수가 더 많아 졌다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매년 20% 이상씩 친환경 시장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2009년 이후 한미 FTA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다가 결국 2011년 체결하게 되고 2012년 총선의 과정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2012년 대선을 통해 재협상의 실마리를 찾는 중이고 2012년 한중 FTA가 개시되고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년의 농민운동사는 결국 수입개방 반대 투쟁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수입개방 반대 투쟁시기 농민운동이 갖는 특징

 첫째, 농민운동은 투쟁하는 조직의 특징을 갖는다. 

투쟁하는 전농, 승리하는 전농이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 투쟁하는 조직이다. 수입개방을 막아나서는 투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면서 수입개방 반대를 위한 강한 조직력과 전투력이 요구되었다. 마치 군대조직과 비슷한 편재를 갖게 된다. 전농차원의 강한 규율과 일사불란한 조직체계와 강한 규율이 중요했다.  

둘째, 반대 투쟁에는 복잡한 내용이 필요 없다.

 무엇을 반대하는 과정에서는 반대의 명분이 분명하면 된다. 그 명분을 정리하면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 그리고 수입개방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막고 투쟁하는 것 이상의 다른 대안을 나올 수 없다.

 셋째, 농민들은 투쟁의 동력을 형성하기 위한 수동적인 대상으로 된다.

농민들은 매년 벼랑 끝에 몰린 농업 을 구원하기 위한 의병으로 계속 궐기하면서 지쳐갔다. 그리고 매년 되풀이 되는 투쟁에 동원되면서 농민들의 참여가 점차 하락하게 된다. 

○ 더 이상 막을 것이 없는 조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농민운동 

UR부터 한미 FTA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수입개방 반대 투쟁의 역사를 뒤로하고, 수입개방의 봇물이 터져서 들판을 집어삼킨 조건에서 농민운동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은 22.6%로 떨어지고 농가 소득은 도시가구 대비 59%로 추락한 조건에서 어떻게 농업을 풀어갈 것인가. 

첫째, 건설은 다양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반대투쟁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러나 무너진 농업을 일으켜 세우는 활동에서는 목표가 필요하고 다양한 계획과 과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식량주권, 먹거리기본권 실현 등의 목표와 실현방도의 마련, 그리고 학교급식, 로컬푸드, 조례제정, 농협개혁등의 현실 과제들을 해결하기위한 지식과 과정의 일정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건설의 과정은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농업 현실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새롭게 설계도를 그리고 구체적인 실현 경로까지 고민해야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과거 농민운동에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현재의 농민운동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지식과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주체의 주객관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농촌의 고령화로 인해 사람이 없고 농촌에 투신하는 농민 운동가들이 없다. 그 과정에서 개별 활동가들의 짐은 점점 무거워져서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도연맹 간부이자 군 농민회 간부이고 면지회간부까지 겸임하고 다른 농민단체의 사무장을 겸하고 마을에서는 총무, 농협에서는 대의원등 젊은 농민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너무 많다.

 지난 농민운동의 과정에서 활동가들의 살림은 더욱 피폐해 졌다. 아이들은 커가고 농업소득은 낮아지면서 더 많은 면적을 농사짓거나 하우스 등으로 더 많은 노동시간이 투여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득은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빚이 늘어나고 이자가 늘어나면서 농사지어서 농협 직원들 월급주고나면 남는 게 없는 형편이다.

 셋째, 농민들의 동지를 더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지난 총선을 거친 후 여야가 31개의 당론 입법발의를 하는 과정에서 농업과 농민에 직접 관련된 안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 간접적으로 광우병쇠고기 검역 관련법과 학교급식에 관한 법이 상정되는 정도다.

농민들은 그 수가 140만 가구로 줄고 그중 전업농의 수는 70~80만이 될까? 등록 장애인 250만 명보다 훨씬 수적으로 적다. 이제 농민이 산업역군이거나 경제의 한 축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사회적 소수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게다가 평균 나이가 60세를 지나서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입장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단결되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보수집단으로,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Ⅱ.식량위기시대의 도래

 ◯ 배 아픈데 먹는 약은 있어도 배고픈데 먹는 약은 없다 

약이 없으면 더 아프겠지만 음식이 없으면 아예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의 먹거리는 약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주는 이가 없다. 이 세상이 석유로 굴러 간다지만 석유 없이는 살아도 식량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먹거리는 인간 생존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 소중한 먹거리에 위기가 닥쳤다.  

70년대 녹색혁명을 거쳐 굶주림을 해결하고 90년대 수입개방을 통해 값싼 수입농산물로 부족함을 몰랐다. 최근 국제적인 식량파동을 봐도 남의 나라 일이었다. 정부는 남아도는 쌀을 걱정했고 소비자들은 시장에 넘쳐나는 수입농산물을 보며 식량위기가 무슨 잠꼬대냐며 비웃는다. 그러나 세계는 식량부족 시대로 들어가고 있으며 돈이 있어도 사올 식량이 없는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표 1] 세계 곡물 생산량 및 소비량 변화

(단위 : 백만 톤)

곡물년도

생산량

소비량

생산-소비

1990/1991

1,779

1,711

68

1995/1996

1,872

1,808

64

2000/2001

1,846

1,860

-14

2005/2006

2,016

2,031

-15

2008/2009(E)

2,124

2,147

-23

2009/2010(P)

2,179

2,234

-55

※ 주 : E(추정치), P(전망치)

※ 자료 : USDA,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http;//fas.usda.gov/psd) 

◯ 식량위기는 ‘온다’가 아니라 ‘왔다’ 

지난해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치솟는 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소가 굶어 죽는 일이 생겼다. 올해도 미국은 56년만의 가뭄으로 인해 옥수수 가격이 50% 폭등했고 콩값은 20%가 올랐다.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은 99%를 수입하는 나라, 주요4대곡물(쌀, 밀, 옥수수,콩)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식량위기는 왔다. 사람이 굶어 죽어야 식량위기가 온 것인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사료 값을 견디지 못해 소가 굶어 죽는 현상이 우리나라의 식량위기를 반증하는 사례이다. 

[표 2] 세계 주요 곡물가격의 증가율

(단위 : 달러/톤)

구 분

옥수수

2000년($/MT)

88.22

206.69

193.02

118.63

2008년($/MT)

223.13

697.48

474.74

344.58

00/08 증가율

252.9%

337.5%

246.1%

290.5%

2010년($/MT)

174.25

512.45

390.54

228.78

00/10 증가율

197.5%

247.9%

202.3%

192.9%

 ※ 주 : 쌀은 FOB 기준, 밀, 옥수수, 콩은 선물가격 기준

※ 자료: UDSA, ERS (http://www.ers.usda.gov)에 기초하여 증가율만 별도 계산

 ◯ 사람은 석유를 먹고 자동차는 곡식을 먹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90%는 석유다. 모종은 육묘장의 온풍기로 키우고, 밭은 트랙터로 갈고 , 논은 이양기로 심고, 벼는 콤바인으로 베고, 건조기로 말리고, 비닐하우스에 땅을 덮는 비닐에, 농약에 비료에 그 무엇 하나 석유 아닌 것이 없다. 석유 값이 오르면 곡물가격이 오르고, 곡물가격이 오르니 사료 값이 오르고, 곡물생산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 사용량이 늘어나고 다시 비료 값이 오르고, 석유를 대체하는 바이오연료로 다시 옥수수가 사용되면서 곡물가격은 더욱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녹색혁명을 주도하던 화학농업이 석유자원의 고갈을 향해 달려가면서 식량위기는 상시화 구조화 되고 있다. 전 세계 50개 남짓 산유국의 절반 이상이 석유정점(피크오일)을 지났다. 석유정점이 되면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돈 주고도 석유를 사기 어려워진다.

 아래는 여러 산유국별 피크 오일을 나타낸 그림이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독일은 1967년 피크 오일을 맞은 것을 시작으로 영국과 호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이 모두 피크 오일을 지났다. 

< 그림1> 산유국별 피크오일 현황 
   
                                 ▲ 산유국별 피크오일.

                                       지난 50년간 석유처럼 세계 곡물시장은 늘 과잉생산과 과잉 공급 상태였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서 공급과잉에서 공급부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4년 초 중국이 마침내 밀 800톤을 수입하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  

◯ 매해 되풀이되는 ‘이상기후’는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니다

‘가뭄이 들려거든 아예 바삭 말려 죽이고 비가 오려거든 너나없이 쓸어 버려라 그래야 농민들이 비로소 소중한 줄 알 것이 아니냐’

 농업을 하도 천시하다 보니 농민들은 입버릇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다 망가져야 농업의 소중함을 알아주지 않겠느냐 생각했다.

그리고는 농민들의 저주 때문인지, 104년만의 가뭄, 55년만의 한파, 18년만의 폭염 그리고 3연속 태풍의 한반도 상륙등 이상기후가 닥쳐왔다. 이상기후는 농민들이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다. 남쪽부터 피어 올라와야할 꽃이 동시에 펴서 여러 날 딸 꿀을 잠깐 따고 마는 양봉농가의 한숨소리로 느낀다. 과수는 나날이 기후 한계선을 뚫고 북상하다가 이른 봄 강추위에 다 얼어 죽는 수난을 겪고 있다. 가뭄으로 고구마가 말라죽고 폭염으로 닭들이 더워죽고, 태풍으로 하우스가 무너지고 농민들은 농가소득의 감소라는 고통으로 이상기후를 느낀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104만의 가뭄이 104년 뒤에나 다시 닥칠 가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기후는 곡물파동을 수반하고 있다. 최근 10년 주기로 나타나던 곡물 파동이 3년 주기로 당겨지고 다시 1~2년 주기로 당겨지고 있다.

<그림2> 곡물파동주기

 매해 되풀이 되는 ‘이상기후’는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 최근 곡물가격 상승이 식량수입 개발도상국에 유가 상승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APEC차원의 국제 공조방안을 제안했다. 과연 이러한 식량위기는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깨닫고 농업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가

 ◯ 식량위기를 해외곡물투기의 기회로 삼는 정부와 재벌

 서규용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우리나라 농업의 특성상 규모화와 경쟁력에 한계가 있어 해외농업개발로 눈을 돌리자고 한다. 해외의 값싼 땅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농산물을 생산하고 국내로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지난 해 6월 해외농업 개발협력 지원법이 통과되어 해외농업투자 대기업들은 연간 300억 원의 지원과 각종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해외식량기지로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연해주에 여의도 면적의 23배에 달하는 농장을 세웠다. 대우인터내셔날은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 농장을 조성중이다. LG상사도 인도네시아 농장을 인수했고 삼성물산과 STX, 한진,농수산물 유통공사는 시카고에 곡물유통회사를 세웠다.

과연 해외농업개발이 우리나라의 식량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것인가.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대기업들이 곡물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낮고 곡물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으로 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기위해 투자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의 식량위기를 걱정해서 사회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대기업에게 자비심을 구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지난 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자 세계 곳곳에서 곡물 수출 중단조치가 내려졌다. 해외식량기지는 식량위기에 대비해서 만드는 것인데 정작 식량위기 시에는 수출중단 조치로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했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림3> 2008년 곡물수출 금지 현황

그럼에도 정부는 ‘식량자주율’이라는 허구적인 개념을 만들어 해외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해서 수입하면 식량 자급하는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정부는 식량자주율을 2020년까지 65%로 높인다고 한다. 그것은 수입의존율을 더욱 높이겠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반증하듯이 최근 식량자급률이 26%에서 22.6% 떨어지고 농지가 매년 17000ha씩 감소하고 있다. 식량자주율을 높이는 정부는 식량 자급률을 낮춘다.

 ◯ 먹거리 실험 대상이 돼 버린 국민

 프랑스에서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수 실험으로 난리가 나고 미국산 쌀에서 발암물질인 비소가 검출되고 하면서 먹거리 불안은 높아만 가는데 우리는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잘 체감을 못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제초제로 근사미가 있는데 뿌리면 작물이 흡수해서 뿌리까지 죽게 한다. 그게 영어로는 몬산토사가 만든 라운드 업이라는 농약이다.

 <그림 4> 유전자 조작 옥수수 실험 쥐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라운드업 농약을 쳐도 죽지 않고 산다. 작물이 농약을 흡수해도 죽지 않는 신비의 옥수수인데 이번 생쥐 실험에서 90일까지는 아무 탈이 없다가 180일이 지나자 각종 종양이 부풀어 올랐다. 우리가 먹는 수많은 수입 가공 식품이 이런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것인데 정말 우리는 안전할까?

 미국산 쌀에서 비소가 검출되었는데 우리 정부가 하는 말은 캘리포니아산은 안전하다 고한다. 캘리포니아 산에서도 검출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직도 인터넷에 칼로스가 팔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먹거리를 미국에게 너무 많이 맡겨 왔다. 미국은 그동안 WTO와 FTA를 통해서 국가 간의 먹거리 장벽을 없애고 미국 중심의 생산체계를 만들어 왔다. 대규모로 경작하기 위해서 GMO 작물을 개발하여 제초제 저항성 품종을 만들어 내고 대량생산을 해왔는데 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생산체계에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맡겨온 것이다.

 또한 미국이 가뭄이 들자 세계가 곡물파동을 겪고 공급의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GMO도 아무 말 없이 먹어주고, 비소가 들어간 쌀도 먹어주고, 광우병 쇠고기도 먹어줘야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가?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먹을거리를 공급받을 권리는 없는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쉽지만 위험한 길, 어렵지만 안전한 길,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우리는 이제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편안하지만 국민들에게 위험한 길, 아니면 힘들지만 국민들에게 안전한 길, 해외농업으로 대기업이 외국에서 농사 지어오는 것에 식량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늙고 병든 농촌이지만 식량자급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스스로 확보할 것인지 어떤 길을 택해야 하겠는가?

 미국산 GMO, 미국산 비소 쌀에 국민의 건강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면 귀농귀촌을 해서라도, 일손이 부족하면 농번기에 군대를 투입해서라도, 국민농활, 학생농활을 조직해서라도, 이모작 할 수 있는 땅은 다 이모작을 하더라도, 그래도 모자라면 도시텃밭을 만들고 도시농업을 해서라도, 육식을 줄이는 국민 식생활을 개선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식량자급의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자고 하는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 다른 나라의 식량보장 사례 

▣ 브라질 벨로오리존찌시

 ◎ 대중식당

시가 직영하는 식당으로 시민들에게 낮은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식당은 시 소유 건물, 1,100m² 면적의 카페테리아 형태로 변두리에서 도시 중심부로 출퇴근하는 하층민들이 이용하기에 유리한 시내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하루에 12,000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점심에는 BRL 1.0에, 저녁에는 BRL 0.5에 제공한다.

이처럼 저렴한 식사가 가능한 것은 연방정부, 시정부의 지원 그리고 식자재로 시가 가격규제를 하고 있는 지역농산물을 사용하고, 또 식당이 임대료나 이윤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중식당은 이용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개인은퇴자, 가족, 은행원, 행상, 대학생, 거리의 아이들 모두 식당에서 같은 대접(가격, 영양가)을 받고 있다.  

그린푸드 바스켓

근래에 새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시조달국은 소규모 농산물 생산자들로부터 과일이나 채소를 직접 구매하기를 원하는 병원, 식당, 기타 기관과 소규모 농산물 생산자들 간에 중간역할을 담당한다. 27 명의 허가증을 받은 판매자, 2 개의 농업생산자 협회, 44 명의 생산자, 1곳의 우유협동조합 등이 참여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4,901 톤이 거래되었다.

 ▣ 베네쥬엘라

 ◎ 수매보조

농민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안정적인 판로와 적정한 소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먹거리체계의 확립과 더불어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곡 작물에 대해 가격안정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정부운영 공공기업을 통해 직접수매를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중간상인의 폭리를 막기 위한 것으로 유사한 지원이 소규모 어민들에게도 이루어지고 있다.

 메르깔(Mercal)

정부지원을 받으며 식품을 판매하는 국영 네트워크로, 고품질의 식품을 평균 40% 이하의 가격으로 누구에게나 판매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6,532개의 메르깔 매장이 개설되어 1,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150만 톤 이상의 식품을 판매하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식품유통네트워크이다.

 ▣ 인도

◎ 국가식량보장법

인도는 지난해(2011) 12월 선별적 먹거리 복지의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국가식량보장법을 내각에서 통과시켰다. 빈곤선 아래 절대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에 대한 차등지원으로 이 법이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농촌인구의 75%, 도시인구의 50%, 전체 인구의 62.5%에 해당하는 7억 3천만 명이 정부의 공공배급체계를 통해 식량을 지원 받게 된다. 

<표3> 인도의 국가식량보장법의 주요 내용

구분

세부내용

비고

지원대상

● 우선지원대상: 빈곤선 이하의 절대빈곤층

● 일반지원대상: 차상위 계층

● 농촌인구의 75%(6억 5천만 명), 도시인구의 50%(1억 8,000만 명)에 해당

● 우선지원대상은 농촌인구의 46%, 도시인구의 28%

지원내용

● 우선지원: 매달 7kg의 먹거리를 kg당 쌀 3루피, 밀 2루피, 곡물가루 1루피로 구매

● 일반지원: 매달 3~4kg의 먹거리를 최저지원가격의 50%로 구매

● 학교급식의 경우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 실시

● 6세 이하 영유아 영양개선 프로그램 지원

지원방법

● 공공배급체계

● 각 지역마다 설치된 배급소를 통해 공급

정부지원

● 물량 기준 500만 톤에서 1,000만 톤 추가 확보

● 비용 기준 510억 루피~2,000억 루피 투입

● 원으로 환산할 경우 약 1조 1천억~4조 3천억 원

  ◯ 농민은 생산자 국민은 공동생산자 

우리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에 나선 백만의 촛불행진을 보았다. 왜 국민들은 거리로 나섰을까? 농업과 농민이 몰락할수록 식량위기와 먹거리는 국민의 문제로 된다. 농업이 망할수록 수입산 먹거리에 의존하게 되고 GMO와 비소 쌀, 광우병 등 국민의 먹거리가 그만큼 안전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먹거리의 문제는 농민의 문제를 떠나서 국민 모두의 관심사로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정치현실도 보았다.

 식량에 관한한 농민과 국민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농민은 식량 생산의 주체이고 국민은 식량 소비의 주체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동안은 농업을 농민의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봤다. 하지만 이제는 더 중요한 동전의 뒷면을 봐야 한다. 농업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식량과 먹거리라는 관점으로 전환되면서 국민들은 더 이상 먹거리의 구경꾼이 아니다.  

“먹는 것도 농업이다” 국민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농민이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이 수입산을 먹으면 수입 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국민이 친환경을 먹으면 친환경이 활성화 되는 이치이다. 그래서 농민은 생산자고 국민은 공동생산자가 된다.

 농업은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농민의 직업은 점차 사라질 수 있다 국민의 식량은 점차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민의 식량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농업을 국민식량 생산 측면에서 보면 농업은 미래 산업이다, 반드시 지켜내야만 할 국가 기간산업이다. 국민들이 농업을 지킬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농업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어 줘야 우리 농업의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 농업문제가 아니라 식량문제가 본질이다.

 과거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아이들이 자라듯이, 농민들의 희생으로 국민의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젖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장성한 아이들의 힘으로 어머니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식량에 관한한 농민과 국민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농민은 식량 생산의 주체이고 국민은 식량 소비의 주체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동안은 농업을 농민의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봤다. 하지만 이제는 더 중요한 동전의 뒷면을 봐야 한다. 농업은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농민의 직업은 점차 사라질 수 있다지만 국민의 식량은 점차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민의 식량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농업을 국민식량 생산 측면에서 보면 농업은 미래 산업이다, 반드시 지켜내야만 할 국가 기간산업이다.

 ◯ 공공급식 확대는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 회생의 길  

공공급식은 우리 농업의 판로를 열어주는 길이다. 국민이 판로를 만들어 주고 농민이 생산을 뒷받침하면서 우리 농업 회생의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다. 그동안 학교급식에서 국내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는 것은 WTO위반이었다. 그래서 경기도의 경우 2003년 학교급식조례의 ‘우리 농산물 지원조항’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5년 동안 표류하다가 결국 2008년 ‘우수농산물 지원조항’으로 변경하여 학교급식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11년 12월 15일, WTO 에서는 급식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부 조달 협정이 타결되었다. 급식프로그램에서 국내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국제접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친환경뿐만 아니라 일반 농산물도 학교급식의 우선 지원이 가능해 졌으며 학교급식뿐만 아니라 정부가 조달하는 모든 급식프로그램에 국내산 농산물 우선 지원이 가능해 졌다.

 이제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가 얼마나 많은 공공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에게 더욱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고 농민들에게 소득보장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급식과 관련해서는 WTO의 빗장이 풀린 것이다.

 WTO는 국내산 농산물에 대해서 차등하여 지원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그래서 국내산 농산물에 대해 가격 지지정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가격지지 정책이라고 해서 쌀의 수매제를 폐지하였다. 공공급식과 관련해서는 계약재배가 가능하고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가격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국내 농산물 우선 구매를 할 수 있다  

< 표4 >급식유형별 단체급식 이용자수 추정(2010년)

급식 유형

1일 1끼 급식대상자(천명)

급식끼니

특기사항

13,901

 

 

보육시설

1,280

1식, 간식

종일반은 2식 제공

유치원

539

1식, 간식

초ㆍ중ㆍ고

7,179

1식

연 180일,

사업체

3,4301)

1식

 

병원

2852)

3식

 

사회복지시설

아동 돌봄센터

1513)

1식

 

사회복지 생활시설

1664)

3식

 

노인여가시설

1045)

1식

 

군대

6876)

3식

 

교정시설

807)

3식

 

 자료 : 김혜련(2012)

 이것은 우선 국민의 먹거리 복지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700만 명의 초, 중고등학생들의 먹거리를 친환경과 국내산 모두 우선 구매하여 지원할 수 있으며, 68만 명의 국군장병에게도 수입 산을 배제할 수 있다. 나아가 저소득층의 무료급식 활성화와 3백만 명의 대학생에 대해서도 국내산을 우선할 수 있고, 250만 명의 장애인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500만 명 중 100만 명이 영양결핍이라고 한다. 정부가 급식 관련하여 부분적으로라도 예산을 지원하면 그들이 먹는 모든 음식을 국내산 재료로 우선하여도 WTO에 위반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국민 건강은 물론 농민들에게 획기적인 일이다. 그동안 UR부터 WTO까지 수입농산물을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국내농산물을 차별하여 지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다.  

정부조달에 의한 공공급식을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먹거리 복지가 향상될 것이고 그만큼 국내산 농산물의 사용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공공급식이 전체 농산물의 10%만 되어도 농민들의 숨통이 열릴 것이다. 30%가 되면 농산물의 특성상 나머지 70% 농산물의 가격도 조절될 것이다. 농가는 계약재배, 국민은 가격안정의 상생을 실현할 수 있다.

WTO가 모든 급식프로그램에서 예외를 인정한 것은 전 세계 민중들의 승리다. 식량은 세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홍콩바다에 뛰어들었던 농민투쟁의 결과다. 식량은 주권이라는 20년 민중 투쟁의 결실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소비해 주지 않으면 농민들이 살아갈 길이 없고, 농민들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해 주지 않으면 국민들도 건강해 질수 없다. 농민과 국민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두 개의 큰 기둥과 같다. 어느 한 쪽으로는 건물이 바로 설수 없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공급식에 동의하며 정부 예산을 세워 우리 농산물을 먹겠다고 할 것인가에 달렸다.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처음 올림픽이 열리고 육상 경기를 했다. 모두 서서 달릴 때, 처음 쪼그려 앉아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운 채 출발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금메달을 땄다. 역사발전은 인간 창조성의 역사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통해 역사의 진보를 이룬다. 우리가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민의 직업이라는 좁은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식량이라는 넓은 관점으로 전환하자. 농업은 민족의 생명줄이고 농민은 어머니 땅을 지켜는 존재라는 것이 우리 농민운동의 역사였다. 농민은 생산의 주체고 국민은 소비의 주체이다. 측면은 다르지만 함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동안 식량문제는 농민문제였고 국민은 방관자 혹은 동조자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이 광우병 촛불과 무상급식에서 보듯이 식량소비의 당당한 주체로 나서고 있다. 한미 FTA를 거치며 좌절한 농민들이 이제 국민과 함께 식량생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동안 식량안보의 논리로 국민의 건강과 농민의 생존은 무시당해 왔다. 이제는 식량주권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대한 권리와 농민의 지속가능한 생산의 권리가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체계로서 식량보장체계가 필요하다. 정부차원의 식량보장 종합 관리시스템이 구축되고 농민과 국민이 협력하고, 정부와 지역사회단체, 농협, 생협등 수많은 협력 모델을 만들어 지역농업 협력체계를 통해 국민 식량을 보장해 나가야 한다. WTO정부조달협정의 개정은 세계 민중들의 부분적인 승리다. 급식과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이 WTO의 예외를 인정받은 만큼 우리는 공공급식의 전면 확대에 나서야한다.

 Ⅲ. 협동을 통한 주체역량 강화

 ○ 농민운동 역사의 계승과 혁신의 지점은 무엇인가

 첫째, 식량주권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국민) 

지난 20년은 수입개방 반대 투쟁의 역사였다. 반면에 식량주권 쟁취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식량주권을 쟁취하는 문제는 농민만의 과제가 아니며, 지난 20년은 그 자각의 역사이기도 하다. 식량주권은 농민의 생산자 권리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주권을 쟁취하는 과제는 국민 모두의 과제로 된다.

 수입개방의 홍수는 국내 농산물의 몰락과 함께 국민의 먹거리불안 식량위기를 동반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2008년 광우병 촛불로 동력화 되고 2010년 친환경무상급식운동으로 조직화 되었다.

 이제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문제는 농민들의 수입개방 반대투쟁에서 국민들의 먹거리 기본권 쟁취와 농민들의 식량자급 요구로 구체화 되고 있다. 따라서 농민운동의 방향도 농민만의 투쟁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으로 방향전환이 이루어 져야 한다.

 둘째, 주체역량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협동)

 농민운동은 주체세력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조건에서는 발전할 수가 없다. 농민운동도 주체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농민운동의주체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주자립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현 단계 농민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주체가 없는 운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 몰락하는 조건에서 농민운동 주체가 농업으로든 운동으로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동의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농촌현장에 다양한 작목반이 출현하고 영농조합과 마을 영농회의 협동이 자연스럽게 추진되는 것은 어려운 농촌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농업은 기계화에 의한 규모화와 기계화를 통한 개인 영농의 발전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폭등하는 기계 값과 기름 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협동을 통해 농업문제를 풀어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마을 단위의 공동 모내기와 공동 벼 베기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고 작목반과 영농조합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작목반에 얼굴을 비추고 농민회 회의를 갔으나 이제는 농민회에 얼굴을 비추고 작목반 회의를 간다고 한다. 농민운동가의 헌신성에 기초해서 하는 운동은 몇 년은 가능하지만 지속 가능성은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운동은 발전할 수 가 없다.

 협동을 통해서 농민운동이 조직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가격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에는 반드시 참여해야한다는 작목반의 정관이 만들어 지고 있고, 영농조합 운영주체의 농민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협동은 농민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 농민들이 사람답게 어울려 사는 세상이 농민운동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민운동은 협동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동원을 위한 수단으로 농민조직화에 주력해 왔다. 그것은 단적으로 이슈가 있으면 모이고 없으면 흩어지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그러한 과정은 농민을 대상화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농민운동을 점차 약화 시키게 된다.

 농민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협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동조합이 많이 만들어 져야한다. 새로운 협동조합은 작목반, 영농조합, 마을영농회의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모두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새로운 협동조합은 기존의 농협에 의해 발전과 성장이 가로 막히고 있다. 농협의 독점 구조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잡아 먹듯이 농협이 소규모 신생 협동조합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

 농협은 조합간의 협동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소규모 영농조합의 발전을 가로막고 돈 되는 부분은 어디라도 손을 뻗고 있다. 심지어 신경분리 이후에 중앙회가 지역농협을 삼키는 일도 대수롭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협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농협개혁은 반드시 넘어야 야할 산으로 되고 있다.  

----------------------------< 이하 참고자료 인용>------------------------------

- 충북 괴산군 불정농협의 성과와 과제 - 녀름 연구소 이호중

 ◯ 조합원은 생산하고 조합은 제값에 팔아주는 시스템의 구현

 남무현 조합장은 당선이후 조합내에 수탁중심의 판매계 외에 매취사업을 위해 유통계부터 만들었다. 첫해부터 수매를 통해 농가수취가격제고에 힘을 쏟았다. 물론 초기 2~3년간은 경영 안정화단계이었기에 이익금은 유통손실보전금으로 적립하며 본격적인 전량수매 & 최저가격보장을 위한 단계로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남조합장이 취임 이후 4년째 되던 해인 2009년부터 조합의 판매사업은 일취월장하여 지금은 전체 판매사업중에서 자체판매사업의 비중이 70%를 넘고 있는 상황이다. 농약, 비료, 기름 등 농자재도 싸게 공급하고 생산외 품질관리, 선별, 판매 등은 모두 조합에서 전담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령농도 손쉽게 농사지을수 있도록 기계화가 진척되고 있다.  

◯ 불정농협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콩 연합회

 2012년 3월 불정농협은 8개 농협과 전략적 업무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들 지역의 콩까지 수매하고 있다. 2010년 다른 지역 두 개 농협에서 매입하던 것이 2011년에는 관내 3개 농협으로 늘어났고 2012년에 8개 농협으로 확대된 것이다. 2010년 불정농협의 콩 생산량은 1,593톤 이고 괴산군 관내 타 지역농협(군자, 괴산, 청천)이 생산한 1,372톤과 관외 5개 지역농협(음성, 증평, 함창, 김제원예, 대야)이 생산한 413톤을 매입하여 총 취급량은 3,378톤에 달한다.(2012년 통계 업데이트 필요)

또한 불정농협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CJ, 풀무원 등 국산콩 가공업체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선별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시장교섭력을 갖게 되었다. CJ가 1년에 필요한 국산콩은 5,000톤 규모라고 한다. 불정농협은 2011년산 콩 1,300톤을 CJ에 공급한바 있다.

 올 상반기 콩 유통종합처리장(SPC)이 가동되면 7,000톤까지 처리할수 있게 되는데 이를 위해 전국 30여개 농협 또는 생산자작목반과 계약재배를 통해 콩을 전량수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명실상부한 중부권 콩유통의 집결지이자 사실상의 품목연합회인 콩연합회 기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계에서 농협개혁의 주요 방안중 하나로 얘기되어왔던 전국단위 품목별 연합회를 지역농협이 주도하여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적인 형태였던 농협중앙회 주도형 연합사업이 아니라 지역농협 주도형 연합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 “지역농협이 지역농업을 고민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남 조합장은 “지역농협이 지역농업을 고민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이것이 불정농협이 추구하는 ‘제1 가치’다”라고 역설한다. 농협은 막강한 경제력과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지역농업을 이끌 계획을 갖지 않으면 농협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불정농협이 조합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괴산군의 농업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괴산군 농업은 밭작물 중심의 친환경농업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전국 제일의 콩 주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또한 불정농협의 사업은 주변 조합에도 영향을 미쳐 농가소득증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 성공적인 정치세력화 모델 

그동안 한국 농업의 문제를 말할 때 항상 문제의 근원은 정부정책, 다시말해 중앙정부농정에 있다고 얘기해왔다. 1970~80년대에는 산업화 공업화를 위해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왔던 산업화정책이 추진되었다. 1990년 이후에는 자동차 등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 농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며 UR협상, WTO협상, 농산물 수출강국과의 FTA협상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입각한 농정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으며 한국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촌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바꿔 농정의 근본전환을 이루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정치세력화가 중요하다는 것이 농민운동의 주된 고민이었다.

 그런데 중앙정부 농정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아니지만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하고 조합이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주며 지역농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불정농협의 사례 역시 성공적인 정치세력화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세력화가 결국 농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농협개혁을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고 지역농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는 불정농협의 사례는 분명 유의미한 정치세력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지역에서 농협은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다. 농민들의 경제활동 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매우 강력한 기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농협개혁이야말로 농가경제와 농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참고자료 인용>-----------------

 ○ 전농의 새로운 선택, 정치세력화

 지난 2003년 11월 전농의 대의원 대회는 역사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민주 노동당을 통한 전농의 정치세력화를 결정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인 지지를 결정하고 참여하지 않는 농민회의 예외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농민 정치세력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치세력화는 기존 농민운동이 겪어온 투쟁의 길과는 다른 길이다. 그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적이 분명한 대중투쟁과 달리 정치세력화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이는 전농의 매 투쟁과정에서 목표와 방법 등에 차이를 보이면서 대립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분화하고 통합진보당으로 되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농도 내부 활동가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전농 내의 노선차이보다는 진보당 내의 노선 차이나 갈등이 그대로 전농으로 투영되는 방식이 되면서 실제 농민운동의 방향과 노선에 대한 대립보다는 당의 방침에 대한 활동가들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정치세력화는 농민운동이 가지고 있던 전민항쟁의 변혁노선에서 선거를 통한 당의 집권전력으로 바뀌는 운동노선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민중독자 집권론에서 이명막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과 진보신당과의 분열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진보 연합정부를 지향하는 진보적 정권교체론 등으로 변화하게 된다.

 민주 노동당은 진보신당과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채 참여당과 합당을 통해 진보당을 창당한다. 진보당은 야권연대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많은 의원들의 원내 진출에 성공했으나 내부 분열이 투표부정으로 표출되면서 다시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하는 과정을 겪으며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농민운동의 정치세력화 과정은 농민들의 집권 전략으로서 당의 대한 새로운 인식은 주었으나 정파 간의 이합집산에 대한 갈등과 분열로 큰 실망감을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보당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농민들은 여전히 자신을 정치의 주인으로 내 세우지 못하고 있다.

 당면 당의 사태를 통해서 느낀 점은, 그동안의 정치세력화 과정은 농민이 당의 주인으로 나서는 과정이었다기 보다는 당의 요구에 농민이 끌려가는 비주체적인 모습에 머물렀다. 전농이 당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전농을 좌우하게 되었고, 농민들의 낮은 참여의식은 여전히 대리투표와 억지 참여의 과정으로 표출되면서 당면 투표부정 논란으로 이어져 왔다.

왜 우리 농민들은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지 못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가하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농민 정치 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노동당과 통합 진보당의 사태를 겪으면서 농민 정치세력화의 가장 주요한 고려사항으로 대두되는 것은 농민의 주체성 확립이다. 농민 정치세력화의 주체는 농민이다. 그것은 농민의 자주적 요구에서 출발하는 내용 이어야하고, 농민의 의식수준과 조건을 고려해야하고, 농민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 농민 정치세력화 과정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과정이거나, 진보적 인텔리의 정치세력화 과정이지 농민의 정치세력화 과정으로는 되지 못했다. 그것은 농민 정체세력화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되면서 진보당 대리투표 진원지로 되었고 진보당 분당사태이후에 현장 당 조직이 쉽게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전민항쟁을 통한 변혁노선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현재의 당과 선거를 통한 정치세력화가 현시대의 조류에 맞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농민운동에 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농민 정치세력화가 가져야할 주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정치세력화의 대상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또한 농민들이 주인 되는 정치세력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조직된 강력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따라서 강력한 조직력을 담보하는 지도와 규율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하던 시기에는 정보를 유통하고 지침을 하달하는 비합법적인 조직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또한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건에서 조직의 지도와 규율을 강조하고 강력한 부대를 형성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  

오늘날 에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방식으로 더 많은 대중의 동의를 얻어 내는가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더욱 유용한 방법으로 되고 있다. 따라서 느슨한 조직형태와 소통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가 오히려 중요한 수단으로 나서고 있다.

 따라서 농민운동은 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농민 대중에게 맞는 정치세력화의 경로와 계획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폐지와 2015년 전 국 농협 조합장 동시선거가 농민 정치세력화의 획기적 전환기로 되고 있다.

 Ⅳ. 농민운동의 정치세력화 전략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의 의미 

지난 10여 년간 농협 개혁의 과제는 연합회방식의 신경분리 였다. 그것은 농협을 진정한 조합원의 협동조합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농협법이 개악되면서 우리가 원하는 연합회방식이 아니라 지주회사방식의 신경분리로 되고 말았다.

 첫째, 농협개혁의 주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농민조합원이다.

 농협 개혁이 아닌 개악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농협 개혁의 주체가 농민조합원이라는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지난 10여 년간의 농협개혁 투쟁 과정에서 농민조합원은 주인이 되지 못했다. 연합회 방식의 신경분리안이 무엇인지 자각하기 어려웠고, 조합원 자신의 내용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면서 농민조합원들은 조합개혁의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되었다.

결국 농협을 주무르는 국회의원들과 학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농협법이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더욱 협동조합과 멀어지고 말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으로 나서서 스스로 일어서지 않는 한 어떠한 외부의 개혁도 가능하지 않으며 올바른 방법도 아니다.  

둘째, 농협의 주인은 농민 조합원이다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는 농협의 주인이 농민조합원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역사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수많은 자회사를 만들어 내고 , 주식회사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앙회 직원들은 지역 농협의 출자분은 크지 않기 때문에 중앙회의 주인은 농협 임직원들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앙회장 직선제를 통해 당장에 우리가 권리행사를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농민 조합원이 주인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셋째, 농민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자주적으로 단결하는 계기이다.

 1961년 대통령 임명제로 출발해서 조합장 직선제를 거치고 2009년 대의원 조합장들의 간간선제를 거쳐 오는 동안 농협은 조합원의 자주적 조직이 아니라 정부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며 농민들을 지배 통제하는 수단으로 되어 왔다.

중앙회장 직선제는 농협의 힘이 정부가 아니라 조합원으로부터 나오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전국 240만 조합원의 단결의 구심을 만들어 내면서 자주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게 된다.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는 240만 조합원의 대표체를 출범시키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전국적으로 10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200조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농민들의 정치적 대표체가 출현하는 것이다.

 ○ 2015년 전국 농협 조합장 동시선거의 의미 

첫째, 농업판 총선, 대선의 농협 민주화 공간이 열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악한 농협법에 의해 2015년 전국 농협 조합장 동시선거라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 1200개 지역 농협이 동시 선거를 치루는 이 공간은 농민에게 있어서는 지자체 선거와 같다. 또한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까지 1인2표 방식으로 동시에 실시되면 농민에게 있어 대선투쟁의 공간과 같다.

 둘째, 전국적인 농협개혁의 연대투쟁을 실현할 수 있다.

 그동안 농협 개혁의 과제는 엄중했으나 개별지역의 각기 다양한 선거로 치루어지면서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그러나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공동공약을 추진하여 농민후보를 선정하는 등 공동 대응이 가능해 졌다.

 셋째, 농협개혁의 의제가 전국화 전면화될 수 있다. 

중앙회장 직선제의 경우, 정부로부터의 독립과 정치적 자유를 주장할 수도 있고 파격적인 농협 개혁 공약을 통해 농민들의 경제 민주화 요구를 더 높일 수 있다. 지역 농협의 경우에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발전된 농협의 더 좋은 공약을 서로 공유하며 농협 개혁의 요구 수준을 높이게 된다.

 ◯ 2015년 농협 조합장 동시 선거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첫째, 농협개혁의 주체를 준비하자

 아무리 좋은 기회도 주체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우리의 기회로 되지 못한다.

 사례1>

우리 농협(여주 흥천농협)에서 있었던 일이다. RPC 통합 이후 지역의 농협들은 수매관련 모든 시설을 통합 RPC로 투자한 상태였다. 우리 농협도 시설과 현물 현금을 합하여 17억을 투자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 지역에 부족한 벼 건조시설을 지으려는 계획이 대의원 총회에 올라왔다. 물론 낙후된 시설로 수매 때마다 조합원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그 사업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통합 RPC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농협의 돈으로 공사를 해서 통합 RPC에 추가 출자 한다는 것은 부당한 방법임을 지적하는 의견이 나왔다. 대의원총회에서는 사업을 추진하자는 조합장의 의견과 잘못된 방법을 지적하는 대의원들간의 대립 끝에 표결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표결은 거수로 하기로 하였는데 중요한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표결 결과 찬성 9, 반대 9, 기권 40이 나온 것이다. ‘아! 조합장 앞에서 거수로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지 못하는구나’

우리는 비밀투표로 표결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표결을 진행한 결과 찬성 17, 반대31, 기권 10의 결과가 나왔다. 결국 농협의 잘못된 사업방식은 부결되었지만 손을 들지 못하는 대의원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낀 당혹감은 많은 교훈이 되었다.

 사례2>

마찬가지로 우리 농협에서 있었던 일이다. 위에서 있었던 일 말고도 결산총회 시에는 부실한 자료를 대의원들에게 제출함으로써 이에 대한 시정과 책임의 문제가 대두되어 결산보고 안건이 일주일 연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합장, 전무 등은 반성하기 보다는 대의원협의회가 과도한 문제제기로 원할한 조합운영에 걸림돌이 된다고 불평하였다.

두 번째 결산총회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의원협의회 총회를 갖게 되었다. 총회 전날 조합장은 친한 이사들과 대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총회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표시했고, 결국 대의원협의회 총회는 과반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위에서 살펴본 두 번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대의원들의 의식이 전진하지 않고는 농협의 개혁이 시작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치 사회의 민주화가 제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민주의식이 성장해야 정착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개방반대 투쟁이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문제이든 농민운동 앞에 가장 먼저 나서게 되는 농민대중 의식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를 넘어서지 않고서 농민운동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설사 부분적인 성공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농민운동이 답보상태에 있는 오늘의 현실은 농민대중의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농협 개혁 투쟁은 그러한 면에서 농민회를 다시 농민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농민들이 가장 아파하는 곳, 소외와 착취와 굴종의 집합터, 농협에서 다시 시작하자.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후회할 시간도 없다

2015년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진행되고 나면 지역 농협은 통폐합과 구조 조정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휩싸일 것이다.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조직적 이익만을 위한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조합원들은 제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더 깊은 굴종을 강요받는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농민운동의 토대를 강화하고, 농민회가 대중 속에서 강화된다는 것은 농민들과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더 밀접히 결합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후회할 시간도, 자격도 없어지게 된다.

 농협개혁에 뜻이 있는 시군 주체를 발굴해서 지속적으로 조직 교육해 나가야 한다. 전국의 대략 10만 명에 달하는 농협 대의원들을 조직적으로 결속시키는 “협동조합 전국네트워트 (가칭)”의 건설은 어떨까?

 시군단위에서 뜻있는 대의원과 이 감사 등으로 시군 네트워크를 만들고 점차 시군조직을 확대해 나간다. 전국단위에서는 지속적인 교육사업의 전개와 소식지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대 강화해 나갈 수 있다.

 둘째, 중앙회장 직선제 투쟁을 통해 농협 개혁을 대중적으로 벌여나가자

 농협중앙회장의 직선제를 쟁취하기위한 시군단위 교육 혹은 도 단위 교육 사업을 대중적으로 벌여나가면서 참가자들을 계속 조직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전국 농협 노조와 연대하여 직선제 서명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직선제에 대한 홍보와 교육 사업이 병행되면서 농협개혁의 대중적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힘으로 ‘협동조합 네트워크’ 조직 사업을 벌여 나가야 한다.

 셋째, 매 시기 지역농협 개혁과제를 함께 풀어 나가면서 조직을 단련시키자

 예결산 총회시기마다 공동대응 전략을 세워내고 전국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지역 농협 대의원들에 대한 교육과 조직의 과정으로 된다.

 ○2014년 지자체 선거의 의미

 2012년 대선의 가장 큰 화두는 정치 개혁이었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그리고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동안의 지자체 선거는 각 지역별로 나뉜 낡은 정당의 틀로 인해 좋은 공약, 좋은 사람 중심의 선거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달라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처럼 지자체 선거에 정당공천이 폐지된다면 낡은 정당의 틀이 아니라 공약과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의 일꾼을 뽑을 수 있게 된다. 갈 길은 멀고 험하다. 기초지자체와 의회의 제도는 개선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는 정당의 선거조직을 가동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이 특정지역에서 특정정당의 작대기를 세워나도 당선이 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정당 내부에서도 단일화 하려고 하겠지만 분열할 것이고 잘 준비된 사람에게 그만큼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는 지자체 선거나 농협선거나 똑 같은 지역사람들이 똑 같은 선거운동을 벌이는 양상을 뛰게 된다. 농민운동지영은 2014년 지역의 일꾼을 통해 농업, 농촌공약과 인물을 발전시킬 수 있고 2015년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와 지역조합장 선거의 준비과정으로 된다.

이런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우리가 얻을 것은 협동조합 전국네트워크라는 농협개혁의 주체 세력과 지역 농민회의 조직적 성장, 그리고 지역일꾼의 발굴과 교육 등이 주요 과제로 된다. 특히 두 개의 선거를 치루면서 탄탄한 지역 선거조직 또한 갖게 되면서 조직과 주체역량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농민정치세력화의 실행이자 또한 준비단계로 되는 것이다.

 마치며 

식량위기는 왔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은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식량위기를 맞아 국내 농업의 회생을 고민하기는커녕 국내농업을 포기하고 대기업의 해외 농장개발과 곡물투기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지는 길이고 식량자급률을 더욱 떨어뜨리는 일이며 장기적으로 해외식량의존도를 더욱 높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식량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쉽지만 위험한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어렵지만 안전한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한다. 해외농업에 의존하는 것은 당장은 쉽지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는 길이다. 우리농업은 이미 심각하게 망가져 있고 당장 자급률을 높이기에 매우 어려운 여건이기에 우리 먹거리를 국민 스스로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은 생산자, 국민은 공동생산자로서 국민이 판로를 만들어 주고 농민들과 함께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 국가는 자급률 50%를 목표로 나아가고 곡물 자급을 위해 남과 북의 농업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보편적 복지 확대로서 공공급식을 전면화해서 국민의 먹거리 복지를 확대하고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판로와 계약재배를 실현하고 국민들에게는 농축산물의 가격 안정을 기할 수 있다. 농업은 쇠락하는 산업이 아니고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오래된 미래다. 건강과 생태, 환경이 어우러진 미래다.

 새로운 농업을 개척하는 힘은 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농들이 생존할수 있으며 식량위기 시대의 새로운 농업판을 만들어 나갈수 있다. 그것은 우리 농업의 새로운 기회로 된다. 우리가 스스로 준비하면 그 기회는 우리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앙회장 직선제와 농협개혁에 대한 전면적 대응 그리고 정당공천이 폐지된 지역 자치단체 선거는 농민운동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나이 들고 힘없는 조직이 아니라 지역에서 높은 정치력을 발휘하고 농협을 통해 대중적으로 정치적으로 결속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향후 농민운동은 식량 먹거리의 과제를 국민과 함께 풀어나가고, 농협개혁과 지자체의 주인으로 서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모여진 역량은 농민 정치 세력화의 기반으로 되면서 다시금 정치역량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운동 네트워크(농민운동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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