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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부활절 설교눈이 가리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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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31  09: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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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가리워져
눅 24:13-27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오늘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기라도 하듯이 새 봄의 꽃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작은 꽃 하나라도 그것의 향기를 맡고 즐기려고  한다면 그것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것에 시선을 주고 몸을 가까이 하고 감각을 최대한 기우리고 집중하여 그 채취를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향기와 분위와 느낌에 제대로 합일할 수가 있습니다. 매년 맞는 부활절 아침이지만 그 감격과 느낌이 자꾸 작아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우리 주님의 향기를 맡기 위하여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집중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올 부활절 예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예수님에게 집중함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느끼고 감격하는 이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이해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는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활의 진한 향기를 맡지 못하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한맞마로 낙향을 하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5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16절 말씀에서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눈이 가리어져서”는 단순히 시각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함께 동행하는 분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리어졌다”는 것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 사람에게는 ‘이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정력“ 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이해력에만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로는 ”이해“ 라는 것은 나의 좁은 생각에서 나오기에 그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것은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오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처럼 우리의 생각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닳아야 하는 것은 무엇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해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인정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폴 투르니에라는 기독교 상담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임종하는 친구가 그에게 “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 라고 말합니다. 그 때 폴은 그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는 것이다” 라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성경이나 신앙을 다 이해가 되고 나서 믿겠다고 하면 그것은 안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 상대자도 그 사람을 다 이해하고 나서 결혼하고자 한다면 결혼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못하는 분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따지지 말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나면 더 어렵습니다. 생각이 단순하고 그냥 미쳐야 결합이 됩니다. 이성이 뚜렷하고 생각을 하고 계산을 하면 못합니다. 이것 저것 따지다가 보면 열이 식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서두르는 것입니다. 저지른다고 하지요. 부활이라는 사건도 내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못믿어 하지 말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먼저 인정할 때 우리 마음에 찾아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보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미 여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습니다(22,2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 안에 부활에 대한 확증이 없었기에 아직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처럼 우리 안에 믿음이 없다면 지금 예배당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면서 “내가 부활한 예수다” 라고 “ 날 몰라보냐 내가 부활한다고 했지” 라고 하지 않으시고 조용한 말씀을 통하여 그들 안에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오늘 25절 말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그 믿음이 여리지만 더욱 진보할 수 있다는 전제아래 “더디믿는 자들”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얼마전 천안함 침몰 1 주년 추모행사가 있었는데 아직 진실은 모릅니다만 그때 배안의 생존자를 찾으려고 잠수부들이 들어가는 데 워낙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빨라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한 준위가 잠수했다가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습니다. 최신예 핵잠수함도 수심 700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찌그러집니다. 그런데 몇 천 미터 심해에는 이 지상에 알려진 종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의 심해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수압보다 더 내적인 압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우선 물고기들이 넓적합니다. 광어나 홍어 가로리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악한 이 세상을 피하여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부디펴서 이겨내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외부의 압력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자신 안에 확고한 주관과 믿음이라는 압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 하는 의연함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성령 충만을 통해 믿음의 압력이 강해지면 어떤 고통과 상처의 압력이 그를 무섭게 짓눌러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정죄가 아니라 회복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훈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훈계를 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정죄하며 징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훈계를 통하여 그들을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훈계를 들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는 마음이 회복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훈계를 들은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라고 반응을 합니다(32절). 예수님은 그들의 식어진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뜨거우면 음식도 상하지 않고 질병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엔진이 가열되양 추진력이 생깁니다.  그 뜨거움은 우리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훈계와 정죄는 다릅니다. 정죄는 과거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훈계는 미래에 바르게 변화와 발전을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부활을 믿지 못하는 과거의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깨달지 못하는 말씀을 설명함으로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과거의 잘못을 언급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는 일에 격려하고 돕는 말씀으로 그를 세워주셨습니다. 율법은 의로움의 경쟁으로 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복음은 허물을 감추워 주고 그것을 이겨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죄는 상대방에게 분노나 적개심의 감정을 품게 합니다. 그러나 훈계는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게 훈계인지 정죄인지도 못알아 듣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 두 제자에게 부활한 자신을 몰라본다고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줌으로 두 제자의 집에 초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밤새워 고기을 잡아도 허탕인 베드로에게 모닥불까지 준비하고 식사를 대접하는 사랑과 관심을 통하여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 사모가 옷을 사입고 와서 남편에게 어떠냐고 보여주는 데 그 목사가 마음에는 안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할까봐 “당신 지팡이 하나만 들면 광야의 선지자 같네” 한마디로 거지 발사께다 라는 의미죠. 그렇더니 그 보인이 자기가 원하는 말은 아니지만 뭔가 고상하다고 생각하고는 화는 내지 않터랍니다. 그렇습니다.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부딛치는 말보다 우회적으로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죄를 하면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방아기제가 나옵니다. 순간적으로 모면을 하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훈계를 받으면 평안하게 됩니다.

여기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은 모두가 제 갈길로 갔구나 하는 낙심하는 마음과 두려움과 불안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마음이 뜨겁게 회복되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도 더 이상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랑을 확인하고 죄책감이 사라지고 영적인 평안을 누렸습니다.

부활은 회복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정죄하는 일보다 회복에 초점을 두워야 합니다. 물론 회개도 없고 뉘우침도 없는데 무작정 덮고 가자는 회복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말씀의 훈계를 통하여 회복을 시켜야 합니다. 오늘 저는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생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은 외부의 압력을 이길 수 있는 내부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정죄보다는 회복이 목적이 되어야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부활절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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