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Story를 옮기면서.... (고영근 목사 사모 이야기)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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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를 옮기면서.... (고영근 목사 사모 이야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엄마에 대한 오해가 완전 풀렸다.=
고성휘 집사  |  (고영근 목민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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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7  1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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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Story 1> 

엉엉. 이럴수가. 옥중서신을 다 끝내고 긴급조치 사료정이를 마감하려는 마당에 저희 엄마의 이야기를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왜 이제 나오는 것일까요? 그 조그만 집에 어쩌면 계속 새로운 자료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옥중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에 넣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고야~~~~그래서 조금씩 손을 봐서 올려놓습니다.  고성휘 할일 많은 고성휘입니다.  다음엔 그녀의 스토리를 모아놓아야 하겠습니다. 엄마를 더 자주 만나야 되겠습니다.

 1970년대 고영근 목사는 한국교회 초대부흥협회 총무였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교단의 목사였다. 1971년부터 총회전도부 전도목사로 일하면서 잘나가는 부흥사였다. 남편은 책도 저서하고 부흥집회 인도를 하면서 사례금을 사회봉사 즉,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의 문제를 돌아보며 약한 자 편에서 돌보아주곤 하였다.

 그러던 중 충주 단양교회 초청을 받아 부흥회 도중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서 유치장으로 가니 면회가 안 되어 볼 수도 없고 어찌하나 할 때 단양교회에서 떡을 해서 유치장에 있는 재소자들 돌려준다고 해서 보니 유치장에 남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고 얼마 후 제천경찰서로 압송되어 그 때부터는 면회가 허락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면회하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남편에게 생활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루종일 좌정하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면회시간만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매일 가야 하지만 어린 자식들 살림도 해야 하고 암담해 매일 가지 못함이 마음에 늘 걸렸다.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하던 중에 장사라도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서점을 차리려는데 돈이 없고 해서 일수 70만원으로 시작하고 보니 서점은 책이 많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책을 보충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 책으로 보충하고 모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책을 채울 수 있었다. 하루 1권 팔던, 두 권 팔던 파는 대로 우선 학교 다니는 경신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의 교통비를 충당했다. 학교 준비물, 육성회비를 못 내서 벌 받고 아이들이 우는 것을 보면 가장 없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형을 받으면 내가 강하게 마음을 먹고 웬만한 일은 헤쳐 나가야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였다. 남편이 나올 때까지 용감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Her Story 2>

 Her Story를 옮기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엄마에 대한 오해가 완전 풀렸다.  엄마에 대한 섭섭함. 엄마는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나 했다. 감기가 너무 오래 가면서 중이염으로 번져 베개를 고름으로 적셔야 했던 어린 시절에 엄마는 관심조차 없었다.  

육성회비 밀렸다고 벌서고 온 날에 엄마가 낮잠을 주무시고 있으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나...목사 딸은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고 하시고선  레슨비를 주지 않으니 난 피아노 학원에서 종이건반을 쳤다. 

노래를 부르면서 종이건반을 치고 있으면 옆의 아이들이 놀린다.  종이건반의 위력으로 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로부터 치사한 엄마와는 마음의 벽을 쌓았다. 그런데...

엄마의 글을 이제 50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읽게 되면서 비로소 엄마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럴수가.   어머니.... 하나님의 축복이다. 힐링축복. 

   
 

정부에서는 구속자 가족을 괴롭히는 것이 그들의 할 일 같았다. 서점에서 책을 사서 나오는 사람을 형사들이 “왜 그 서점에서 책을 샀냐?” 고 하니 소문이 빨리 퍼져 나가 아는 이들은 그 서점은 형사가 지켜 본다면서 무서워서 못 온다고 하며 지나다니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 주곤 하였다.

 삼일절 날 기념예배에 구속자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당국은 가택연금 조치를 내렸다. 내가 나가려하니 못 나오게 해서 옆집 담장을 넘어서 종로 오가로 직행하였다. 나로 인해 담당 형사들이 윗사람에게 혼났다는 후문을 들었다.

 이렇게 연금조치가 풀리지 않아 서점해서 생활하는데 너무 많은 지장을 주었다. 주간지, 월간지를 사 놓아야 그나마 장사가 되는데 못나가게 하니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웃교회에서 공과책을 주문해서 금요일까지 전달해야 하는데 못 나가게 하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참 어이없고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사정사정해서 형사와 동행하기로 하고 종로 5가에서 공과책을 구입하고 화곡동교회로 배달하였다. 이렇게 형사들이 서점일을 방해하니 책이 안팔리면 아이들 줄 돈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우리를 걱정해 주시던 차진정 권사님은 매달 쌀을 대 주셨고 어떤 분은 자기 주머니에서 5,000원, 30,000원을 주시기도 하셨는데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종로 5가 서점에서 책을 사 가지고 우리 서점에 채웠다. 그러면서도 남편한테는 염려하지 말라고 웃는 얼굴로 답해야 했다. 담당 형사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남편에게는 오히려 “강하고 담대하라, 당당하게 싸우세요.” 라고 말을 하였다. 면회가서는 보통 주고받는 말만 한다. 그러나 내 손바닥은 세상이 감당 못할 능력 있는 남편을 만들기 위한 글이 써 있었다.

손바닥에 쓴 글은..  ‘밖에 후원의 동지’, ‘교계의 힘’,‘굴복각서 절대 반대’ 면회 때 교도관이 우리의 하는 말을 다 받아 적는데 이상하게도 가족이 면회만 왔다 가면 고목사님이 더 강해진다고 나중에 안기부 요원이 하는 말을 들었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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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교도소에서 당뇨, 신경통이 악화되어 개인병원에 나와 진찰, 치료를 받고 병보석 신청을 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때부터 남편의 당뇨병은 날로 악화되어 갔다.

남편은 병보석으로 가석방되었으나 이내 11월말 전남 강진교회 부흥회 초청으로 인도하고 뒷문으로 나와 버스로 귀가하던 중 버스를 갑자기 세워 도중 하차, 연행되었다. 

   
 

장흥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고 나는 한 주일에 두 번 면회를 갔다. 강진읍 교회 온 교인들이 면회 신청을 하였고 특히 손창순 장로님은 가족 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면회는 못하지만 영치물, 영치금을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셔서 넣어 주시곤 하셨다. 이렇게 정성으로 매일 그 긴 시간을 함께 해 주셨다. 참으로 귀하신 분이지 않은가? 강진교회와 목사님 역시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는 보통 남편을 면회가기 위해서 집에서 밤 11시 출발하여 11시 50분경 광주를 출발하는 버스를 타서 새벽 5시 30분에 도착한다. 기차역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6시 30분 장흥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서 8시 30분에 도착하여 9시에 면회하고 11시 버스를 탔다. 아침식사는 백반 400원. 어떤 때는 면회 장소에 목사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함께 식사도 하고 고생한다면서 그렇게 격려 하신 분들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한다. 

   
 

나는 기차 안에서는 앉아서 잠을 잘 수 있었으나 버스에서는 벌벌 떨며 발이 너무 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찌나 추웠던지. 그래도 목사님을 생각하고 참고 참는 힘이 생깁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집에 오면 10시 반에서 11시가 된다. 저녁을 먹고 나면 몸이 막 흔들거리고 누워도 흔들거렸다.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집에 와서는 남편 을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유치장과 교도소의 시멘트 바닥, 마루 바닥 위에 담요 두 장으로 밤을 이겨내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하는데 나는 따스한 집에 요를 깔며 잔다는 게 죄스러웠다. 장판바닥에 이불을 덥고 자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며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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