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시작부터 이양(移讓)을 생각하자.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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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시작부터 이양(移讓)을 생각하자.전 남미 선교사, 쿠바신학대학 교수)
홍인식 목사  |  webmaster@pc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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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30  08: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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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역지 시작부터 이양(移讓)을 생각하자. 

홍인식 목사(전 아르헨티나 선교사, 쿠바신학대학 교수)

들어가면서

오늘 한국 선교가 세계선교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이 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그곳에서 활발하게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열심히 선교사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선교업적은 놀라울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망각하거나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선교사역을 향한 부정적인 평가 중에서 현지 교회와의 마찰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현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는 부정적인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오늘의 사역의 모습을 반성하고 내일의 선교 사역을 계획하는 것은 세계 선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될 한국 교회로서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본 소고는 지역교회와 한국 선교 사역의 마찰 부분 중에서 “선교 지도력 이양”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물러섬

삶에 있어서 시작하는 것보다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실지로 우리는 좋은 시작과 훌륭한 과정이 나쁜 끝맺음으로 인하여 희석되고 낭패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좋은 끝맺음은 좋은 시작과 훌륭한 사역을 기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역의 연속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물러섬(사역과 지도력의 이양)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성서에서 나타나는 모세의 여호수아에 대한 지도력 이양은 모세의 사역에 대하여 새롭게 평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기존 사역이 훌륭하게 여호수아를 통하여 계승발전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해 주었다.

성서가 모세의 물러섬에 대하여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서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수 34:7~9)는 기록은 성공적인 지도력 이양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한국 선교가 선교지와 선교지도력의 이양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일 것이다. 오늘 선교 현장에서 선교지도력과 사역의 이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선교지 이양의 관심 포인트

현지의 선교사들이 선교지 이양에 대하여 갖고 있는 관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선교지 이양 이후에 발생하는 선교 사역의 연속성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재정과 재산권에 대한 문제이다. 셋째는 지도력 이양에 관한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사항이 선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역의 연속성으로부터 출발해서 재산권이나 지도력 이양의 가능성이 판단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선교사들의 염려와 걱정은 재산과 지도력 이양 이후에 현지 교회 지도자들이 과연 그 사역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오용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선교지 이양에 대하여 당위성과 정당성은 모두 다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서 이양의 실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에 위한 사역의 연장과 연속은 선교지 이양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소고는 선교지 이양의 핵심인 사역의 연속성을 이루기 위한 몇 가지 전제적인 제안을 하려고 한다.

이양의 준비

먼저 우리는 선교지 이양이 선교사의 사역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계획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해야만 한다. 현지인 지도자에 의한 선교사역의 연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교지 이양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선교지 이양에 대한 확실한 준비와 계획 없이 효과적인 이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본 소고에서 선교이양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례 혹은 방법론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한국 선교의 구도적인 면에 대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과연 오늘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구도가 선교이양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혹시 우리의 선교사역의 구도 자체가 선교이양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혹은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한국선교의 구도 본 선교구도에 대한 설명은 2008년 10월 장신대 세계선교연구원과 에큐메니칼 연구원이 주관한 선교 심포지엄 “한국교회 선교는 건강한가?”에서 발표된 필자의 논문에서 발취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한국 선교사들이 유럽이나 미국 선교사들과 비교하여 갖고 있는 많은 장점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고 다만 바람직한 선교이양을 어렵게 하는 몇 가지 선교구도를 유형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한다.

1. 대결(전쟁)구도(차지함과 승리의 선교, victory-oriented mission)

선교는 영적 전쟁으로 간주된다. 전쟁에서는 철저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어야 승리를 위하여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선교를 전쟁으로 생각하는 구도는 선교에 참여하는 자들로 하여금 전투적인 자세를 갖게 만든다. 대결구도는 선교의 형식을 전투적이며 공격적으로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형식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선교 형식이 봉사, 구제 혹은 기타 여러 모양의 부드러운(?)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구도인 면에서 있어서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 또한 결과적으로 전투적인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 소고의 공격적이라는 표현은 형식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구도적인 측면에서의 언급임을 밝혀 둔다. 그리고 선교의 목적을 정복의 개념으로 도치시키기도 한다. 엄연히 수백 년 전통의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는 선교지에서도 이들은 현지 교회를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기 일 수이다. 이런 개념 하에서 현지 교회와의 협력은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2. 주관-감성적 구도(나 중심의 구도, I-oriented-mission)

한국 선교의 한국적-감성구도는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들의 문화 혹은 감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배려하지 않은 채 한국 교회의 감성을 주입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선교사 중심의 감성적 구도는 선교지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의 현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극심한 불신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3. 메시아니즘적 구도(가르치려는 선교의 모습, teacher-oriented-mission)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갖게 되는 목회-선교적 reference는 한국적 목회 모델이다. 선교사들은 대개가 한국적인 모델을 현지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가를 염두에 둔다. 한국 교회의 성장 모델 이식은 선교지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 교회의 모델은 현지 교회들에게는 메시야니즘적인 모델이다. 메시야니즘적인 선교 구조는 필연적으로 현지 문화와 교회 전통에 대한 무시 혹은 경멸로 나타난다. 그것은 곧 바로 현지 교회와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4. 성공적 사역 지향 구도(경영 중심의 선교, job-centered-mission)

사역 중심 그것도 성공적 사역 중심의 구도는 선교사들로 하여금 많은 일을 이루게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많은 사역으로 인하여 오히려 정작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는 잘못을 범하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현지인들과의 관계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사역 중심의 구도는 한국인 선교사들끼리의 사역 경쟁으로 인한 불협화음도 초래하고 있다. 교단이 다르고 또 교단이 아닌 선교단체에서 파송되는 평신도 선교사들은 서로 협력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만의 선교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Mission이 아닌 missions를 수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났던 라틴 아메리카의 한 선교 신학자는 ‘한인 선교사들은 개개인이 하나의 선교본부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성공적 사역 중심의 구도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선교비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선교유형,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사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그만큼 재정 부담이 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선교 구조의 변화

위에 열거한 선교구조는 선교이양을 말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로 하여금 효과적인 선교이양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의 이러한 선교구조 하에서 효과적인 선교지 이양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전 준비 없이 선교이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선교구도 자체가 현지 교회와의 원활한 협력을 불가능하게 하고 또한 현지 지도자들로 하여금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선교이양의 실현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이고 올바른 선교이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교사역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작단계에서부터 어떠한 선교구조가 원활한 선교이양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나는 몇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선교구조의 변화를 위한 제안을 하려고 한다.

먼저, 기존의 대결적인 선교 구도를 극복하고 평화의 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에큐메니칼적 선교 구도로 전환 한 것을 제안한다. 에쿠메니칼 선교는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연합을 추구하는"에큐메니칼 정신"(ecumenical spirit)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타자에 대한 개방적 자세에 근거한 대화적 태도를 필요로 하는 선교이다. 한국일, 통전적 선교신학: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칼선교의 대화적 관점, 2쪽

오늘 한국 교회의 선교 구도가 대결 구도 혹은 주관-감성적 구도 등 선교사 중심의 구도가 됨으로서 선교지에 대한 배려의 부재를 보여 주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무엇보다도 ‘집’(oikos)의 개념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선교 구도가 ‘집’의 개념으로부터 출발되어 질 때 우리는 대결(전쟁) 구도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하는 평화의 구도로 변환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한 “집”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 참여하면서 선교사나 혹은 현지 교회 지도자나 서로 신뢰함을 배울 것이며 경험을 나눔으로서 선교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원활하고 올바른 선교이양은 이처럼 선교사와 현지 교회가 에큐메니칼적인 선교구도 안에서 한 “집”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때 가능해 질 것이다. 그래야만 선교의 연속성도 보장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집”에 대한 경험공유는 결국 선교사로 하여금 “좋은 끝맺음”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또 현지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 줌으로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게 되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사람중심의 선교

삶과 사람에 대한 존중과 진정한 하나님의 의미 추구의 기능을 하는 선교 구도로 변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 사역을 하느라 사람을 잃고 있다. 한국 선교사 주위에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역자들은 양성하면서도 정작 ‘친구’는 만들지 못하는 이러한 선교 구도는 변화되어야 한다.

사역 중심 구도를 벗어나서 삶과 생명과 사람 중심의 구도로 변환되어야 한다. 주관-감성적 하나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는 인간 세상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선교구도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 사랑이 선교의 최대의 목표가 되어져야 한다.

결국 선교이양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무리 좋은 구조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교사역과 선교지도력을 이양 받을 만한 적합한 사람의 존재여부가 선교이양의 성공을 가늠하게 된다.

배움과 참여의 선교

현 사회에서의 공동체성과 연대성 강화를 위한 통로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선교 구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현지 교회들과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인상을 주고 있는 한국 선교는 하루속히 현지 교회들 간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특히 현대선교의 과제인 선교의 통전성과 현장화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지 교단들 간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선교구도가 위에서 언급한 선교사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서 공동체성과 연대성의 구도로 변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현지 교회들의 조언과 협력을 통하여 우리 한국 선교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침의 구도에서 벗어나서 배움과 참여의 구도가 한국 선교의 주를 이루게 될 때 오히려 현지 지도자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한국 선교사의 선교 사역의 연속성을 살려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어떻게 선교사역과 지도력을 이양할 수 있을 까의 문제는 끝맺음의 단계가 아니라 사역 시작의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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