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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의 현대강단진리의 영이 오시면 (요14:16-20,25-27,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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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5  13: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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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영이 오시면


 본문말씀: 요한복음 14장 16~20, 25~27, 16:13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승천 주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늘로 올라가심을 기념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오래 전부터 제자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던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7장까지의 기록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예수님이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얼마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자들의 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예수님은 진정으로 제자들을 위한 말씀을 남기고자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하는 말에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곤 합니다. 그 마지막 말에는 늘 진정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의 성경기록은 많은 성경기록 중에서도 애절함과 진정함이 묻어나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삶과 관련되어서 설교되어지거나 가르쳐져 왔습니다. 교회의 시작이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것이 강조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그러한 공적인 분야에서의 성령의 강림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의 성령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년도 성령강림주일의 설교는 공적인 영역보다는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삶과 관련된 성령에 대하여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활동하시는 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령강림과 또한 성령 충만은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보혜사 성령의 오심

먼저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14:16) 보혜사라는 말의 의미는 “변호해 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 helper”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강림절에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도움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서 우리는 늘 도움을 받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서로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도움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야 말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두고 떠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혼자 남게 되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놓여 있는 것은 참담한 현실과 앞으로 그들이 넘어야 할 수 많은 인생의 파도입니다. 그들의 앞에 보여지는 것은 결코 밝지 않은 현실입니다.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들은 자신의 삶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제자들에게 성령, 보혜사 돕는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강림절은 이처럼 우리를 돕는 분으로 오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하고 성령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임하시도록 요청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하는 동행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도와주십니까? 먼저는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삶 한 복판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에 있어서 ‘함께 있음’은 도움의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정한 도움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행복해 하는 것 없이 진정한 도움은 없습니다. 많은 경우 함께 함이 없이 베푸는 도움은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 간의 관계가 깨어지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있음은 도움의 첫 번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은 이처럼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세밀한 부분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발견하고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은 삶의 은밀한 부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의 현장에서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분노, 증오, 기쁨, 행복, 고통과 고민 갈등 가운데서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지쳐 쓰러져서 일어날 힘조차 없고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아야 할 그 순간에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을 드는 그 순간에도 성령님은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으시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외침을 통하여 그의 고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혼자 남게 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14:18)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고 그리고 나를 대적하고 공격하는 것 같은 절대적인 외로움 가운데서도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또 다시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힘을 내서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2012년 성령강림주일은 이 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시는 성령님이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성령님(25∼26)

갑자기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홀로 남게 되는 제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기 십상입니다. 아직도 진리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재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25~26)

보혜사 성령은 교육의 영이십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정정해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기억하게 해 주시고 그로 인하여 진리와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가 없는 곳에는 진정한 의미의 도움이 없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을 설교자로 살아오는 사람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여 그 의미를 해석한 후에 그것을 글이나 혹은 말로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깨우쳐 주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령의 조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 깨우침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해석되어질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해와 받아들임에 있어서 성령님의 깨우침과 가르침은 절대적입니다. 이것 없이는 설교는 설교자에게는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고 합리화하며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어지는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성령님의 조명과 가르침입니다.

듣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깨우침과 조명 없이 듣는 설교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왜곡되게 만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가르침과 깨우침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깨우침이 있어서 그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거듭나고 변화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를 무지의 세계에서 이끌어내셔서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 성령 강림주일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교정해 주시는 성령님

이러한 진리의 영, 교육의 영으로 오시는 보혜사 성령은 또 어떤 역할을 하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만들어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도록 하신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고(잘못된 확신과 절반의 진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보여주십니다. 이처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지혜가 없기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올바른 생각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하는 행동과 일들이 어떤 경우에는 아니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나중에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 이전에 깊은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에게 깊은 영적인 감화와 영향을 미쳤던 수도승들은 “기도 없이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말과 행위 행동에 앞서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를 통하여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요즘 매주 금요일마다 경기도 있는 여러 곳의 기도원을 찾아 철야예배를 드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조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저에게 그의 뜻을 보여주시고 혹시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교정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았다는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주위의 기도원의 금요철야예배는 저의 신앙적인 유형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하면서 참여합니다. 한편으로는 저와 신앙유형이 다른 형태로 기도하는 것도 유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6월 달까지는 이런 기도를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가르침과 조명을 기다리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습관처럼 될 때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이 교정되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교정하도록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년도 성령강림주일에 임하시는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온전히 성령님의 가르침과 조명에 우리의 삶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고 무엇이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인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령 충만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교정되어지고 점차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인생과 현대교회로 바뀌어 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

성령님의 오심에 대하여 약속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또 다른 약속을 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14:27)

홀로 남는 제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따르며 의지하던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부재는 그들로 하여금 근심하고 걱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은 결국 그들이 이룬 공동체를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이고 결국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들은 공포를 극복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는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누리는 평안함입니다. 그것은 샬롬입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인하여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서 이루어지는 평화가 그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외형적으로 느끼고 갖게 되는 안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한 안전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편안함도 넘어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는 하나님과 인관과 자연의 완벽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서 파괴되어져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순간에 맛보는 평화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평화적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공동체 내에서 화평을 이끌어내며 회복을 이루어 나갑니다. 진정하고 영원한 평화는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에 이끌려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오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의 각자의 삶에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의 삶에 평화를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가요? 왜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성령이 아니고서는 진리를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삶을 교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영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의 삶은 진리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그 분의 교훈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 있는 삶입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날마다의 삶에서 매순간마다 예수님 닮아가는 삶의 영역이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것입니다. 나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나야 합니다. 나를 볼 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생각나게 만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에서 그리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면’(성령 충만) 그가 우리를 진리 가운데(예수님 닮기, 예수님의 마음을 담고 예수님 따르기)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2012년 성령강림주일은 우리의 개인적인 이 같은 성령 충만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우리의 삶과 교회를 더욱 행복하고 평화로운 장소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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