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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뵈옵는 하느님유경재 목사의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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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5  21: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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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뵈옵는 하느님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구약의 욥기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욥기에는 우리 인생이 당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나열되어 있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우리가 납득할 만한 논리적인 답이 없습니다.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욥기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신앙의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 방황하면서 그의 고난에 대하여 바른 답을 줄 수 있는 참 하느님을 찾아 헤매던 욥은 문득 푹풍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신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그의 모든 문제와 고민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이제까지 그가 항변하고 질문하고 자기의 의를 주장한 것은 귀로만 듣던 하느님께 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하느님을 뵈온 후에는 그 모든 항변, 그 모든 질문이 무지한 것이었으며, 자기 의를 주장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나를 다 깨달았습니다. 욥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어떤 교리나 전통 속에서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삶 한 복판에서 직접 만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욥기는 처음에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먼저 사탄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물이나 건강 같은 것으로 복을 내려 줌으로 맺어지는 관계로 보았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은 금방 하느님 섬기는 일을 중단하고 떠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의 이 주장은 오늘날 우리 신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때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사탄은 하느님께 말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사탄이 우리의 약점을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 시험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1:21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습니다. 욥이 첫 번째 시험에서 넘어가지 않자 사탄은 다시 하느님께 제안 하였습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2:5). 그러자 욥은 악창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인조차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욥에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을 뿐 아니라 남편마저 몹쓸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이 여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부자에서 가난뱅이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일까요?

그러나 욥은 이 시험에서도 결코 그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욥의 신앙은 이런 점에서 위대합니다. 하느님은 때로 우리를 그와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가 의존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가게 만드시기도 합니다. 하느님 이외에 어떤 것도 우리가 사랑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철저한 신앙의 자리에까지 내려가게 하시고자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시험을 잘 감당할 때 진정한 신앙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비울 때 만나는 하느님
욥의 고통은 모든 재산과 가족 그리고 자기 건강을 잃은 데서 비롯되었지만,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하느님이 왜 갑자기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그의 고난이 그의 죄악 때문이라고 한결같이 그를 몰아 부칠 때 그는 그 사실을 받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자기도 그런 인과응보의 역사를 믿었지만 이제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 지금 그는 인과응보의 전통 교리가 너무나 일방적이요 틀에 박힌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인과응보의 사상이 옳다면 자기보다 악한 자들이 더 많은데 하느님은 왜 그들에게는 벌을 내리시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혹독한 벌을 내리시는가? 그는 의롭게 살기를 힘썼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욥은 하느님을 직접 만나서 자기의 정당성을 변명하고 싶어 했습니다(23:3-).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그가 무죄하다는 판결을 받고 싶어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그가 무죄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한다(10:7)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욥은 마지막까지 그의 무죄함을 고집하였습니다(31:36).

그러나 욥의 문제는, 그가 의롭게 행하였다고 주장하는 모든 행위가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그가 하느님 앞에서는 재물이나 건강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지만 그가 올바로 살려고 했던 그의 의로운 삶만은 주장할 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고난을 통해 아무 것도 없는 존재,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철저하게 가난한 자로, 철저하게 겸손한 자로 하느님을 붙잡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을 부르시어 그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38:4  하느님의 이 추궁에 장광설을 늘어놓던 욥은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욥에게 큰 능력으로 이루어진 천지창조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 때 비로소 욥은 이제까지 그가 주장했던 의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제까지 갇혀있던 이념의 틀을 깨고 하느님 앞에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가 이제까지 자기 신념을 너무 고집해 왔음을 고백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세계는 무한하고 그 신비는 오묘하기에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이념으로 혹은 교리로써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제부터 마음 문을 열고 하느님이 새롭게 열어 보이시는 세계를 받아들이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 대하여 귀로만 들으면서 자기의 의를 구축하여 왔지만, 그 모든 것이 깨어지면서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뵈옵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귀로만 듣는 하느님은 이념화된 하느님, 교리화 된 하느님이라면 눈으로 뵙는 하느님은 민족의 역사 속에서 혹은 나의 삶 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만난 하느님을 뜻합니다. 따라서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매일 새롭게 이어지는 나의 삶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늘 새로운 하느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정된 하나의 틀에 담을 수 없는 하느님, 언제나 우리 앞서 가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오늘 가질 수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욥은 새삼 이런 진리를 깨달으면서 머리를 조아려 회개하였습니다.

욥은 큰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느님을 이제는 눈으로 뵙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졌던 물질과 가족과 그의 신앙까지도 한꺼번에 다 잃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기쁨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느님은 나중에 욥에게 전보다 갑절이나 되는 복을 내려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가진 이 땅의 모든 욕망과 오만을 못 박아 우리로 철저하게 가난한 자가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욥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철저하게 가난한 자, 겸손한 자 되게 하셨고 그 때에 그를 만나 주셨던 하느님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철학이나 사변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비울 때 거기서 하느님을 뵈오며 거기서 그가 주시는 풍성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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