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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교회(1)김진홍 목사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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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1  0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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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교회(1)

두레교회는 김진홍 목사에 의하여 설립된 교회이다. 두레라는 말은 우리의 옛말로 함께 나누고 협력하는 농경사회의 협동정신에서 왔다. 일찌기 이런 이름을 생각해내고 교회 이름으로 지은 김진홍 목사의 남다른 선각자 정신이 돗 보인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삶과 생애는 많은 책자와 본인의 직접적인 강연에서 많이 소개되였다, 그러나 아직은 이 분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소개한다. 한경직 목사 이후 pck 교단에서 교회성장과 설교라는 측면에서 연구할 인물로 곽선희, 김삼환 목사가 있다면 다른 한면으로는 김진홍, 인명진 목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진홍 목사는 경북 청송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여났지만 일찌기 기독교을 접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 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가난했지만 총명한 진홍은 당시 촌에서 드물게 계명대 철학과에 입학을 한다. 그러나 당시 졸업을 하여도 별다른 길이 없자 내친 김에 대학원 까지 마치게 된다. 그리고 서울로 와서 장신대에 입학을 하게 되고 나서 그의 전환을 맞이 한다. 신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졸업후 당시 변두리던 송정동 뚝방의 판자촌에 들어가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71년 장신대 신학생이던 인명진과 초교파 연합으로 빈민운동 1세대들인 이해학 이규상 박창빈 권호경 등과 같이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반대 성명을 내어 잡혀갔지만 한경직 목사의 주선으로 석방된다. 해방후 최초의 목회자들의 사횦참여로 기록된다. 

그후 수도권 특수선교회와 연세대도시문제연구소를 만든  화이트 목사가 시카코의 솔 알린스키의 주민조직론인 Comunity Oranization(CO)훈련을 받고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 처한 빈민들을 조직하여 민중들이 그들의 삶의 주도권을 갖고 개선하기 위한 투쟁의 전사가 된다.

그러나 송정동 뚝방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한없는 좌절과 절망을 주었고 천국과 지옥까지 맛보게 된다. 젊은 신학생으로써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그후 박정희의 근대화 작업은 도시 빈민들을 외곽으로 이주정책으로 고 제정구 선생이 있던 양평동은 시흥군 보금자리로(부천) 김진홍 목사가 있던 청계천과 송정동은 경기도 남양만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때 김진홍 목사는 먹고 사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인과 결별하게 되고 여전도회 간사였던 촉망받는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고 남양만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된다.
   
 

이주한 그들을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빈궁속에서 몇년을 지내게 된다. 거주할 집도 문제지만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김진홍 목사는 그룬트비 목사의 생애와 철학을 토대로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고대한다. 그의 이런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본 이주민들은 감동을 받아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국가 정책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현재의 두레교회의 모체가 되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재주가 많고 능력이 좋은 김진홍 목사는 서해안의 불모지 남양만을 낙후된 이주민 촌이 아니라 잘사는 공동체로 만들고 싶어서 총회 농촌부의 곽재기 목사를 통하여 선진낙농국가인 뉴질랜드 젖소를 수입하기로 한다. 때는 8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민소득도 올라가고 있었다. 선진국의 예도 먹고 사는 문제가 끝나면 기호식품인 커피와 유제품의 소비가 늘 것을 예상한 것이다. 결국 주민들의 출자를 받아서 젓소를 도입하게 된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젖소를 배에 실고 오다가 긴 항해와 풍파로 젖소들이 죽고 병에 걸려서 투자한 것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김진홍 목사와 총회에 배상을 요구하며 상경 투쟁을 하기도 하고 몰려다녔다. 김진홍 목사는 이는 인재가 아니라 천재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였고 또 실제로 배상할 보험을 든 것도 아니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여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도 별별 소리를 다듣고 큰 시련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바꾸어 주셨는데 바로 한국교회의 성장이다. 남양만에도 봄날이 온 것이다. 김진홍 목사도 한 몫을 하게 된다. 당시 내용없는 자화자찬 부흥사나 고리 타분한 강해설교에 식상한 지식인과 신흥 부자들에게 현장감 있는 메시지는 청정수와 같었다. 자유분방하지만 틀을 넘지 않는 해석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의 설교는 하나의 주제를 물고 늘어지며 매우 쉽고 간결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전개하는 재주가 있다. 거기다가 철학을 전공한 논리에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그에게는 어떤 본문이건 자신의 칼라로 무한정 풀어내는 그만의 특유한 입담으로 김진홍식 강해설교가 새로 태여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유명강사의 반열에 오르고 강사료도 높아지게 된다.
   
 

1982년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기독교의 젊은이 사이에서는 빈민과 약자에 대한 선교와 봉사를 깨우치는 젊은 기독교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설교는 대체로 보수 교단에서 인기가 많았다. pck만 하더라도 청년운동이 유행으로 전국적 집회가 왕성했다. 그러나 합동측을 비롯한 보수적 교회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교회밖에서 나가서 사회 참여를 하는 것을 금기시 했다.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신앙으로 다스려왔던 젊음들에게 김진홍의 대중집회는 유일한 해방구 였다. 그래서 합동측의 복음주의  세대들과 같이 가게 된다.

이 책은 김진홍 목사의 신앙 수기인 동시에 활빈교회를 왜 세우고 왜 빈민들을 위한 선교와 교회가 세상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하는가를 몸소 실천한 내용이다. 책은 전두환 정권의 억압속에서 교회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였고 이 책으로 복음주의권의 사회참여가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윤실 교갱협 성토모등이다.

그의 강연은 세련되고 돈은 있지만 적절히 비판의식이 있는 지식인들이 좋아할 소리였지만 그들이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에 대한 비판을 대신 해주니 좋아했다.  그는 당시 재야 운동권으로 골머리가 아픈 정부와 기업들을 대신하여 이들을 과격과 친북 이미지로 덧입히는 전문가가 된다. 그는 자신이 과거를 팔아서 시민사회 운동은 철부지들이 하는 것이라는 너스래를 떨며 고해성사를 하면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장악한다. 

그러자 두레기업까지 진출하고 대기업 임원과 직원 안보 교육을 겸한 정신 교육강사로 시장을 넓혀 갔다.  그래서 가장 높은 강사료를 받는 사람이 되였다. 사회운동과 결별하고 예수운동으로 자신의 보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순박하고 열정적인 많은 젊은이 들이 그를 한국의 구룬투비 처럼 존경하고 따르며 그곳으로 투신했다.

이렇게 두레는 김진홍 목사의 입으로 하는 앵벌이로 모금을 하여 집을 짓고 재투자하여 건강식품 사업에도 진출하게 된다. 오늘의 두레는 한마디로 김진홍 목사의 땀과 그의 말에 녹아서 낸 기부금으로 이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후 김 목사는 자신의 고객이 가장 많은 서울 강남에 두레성경공부를 시작하고 기성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불만이 있는 지식인들의 입맛을 맞춰가며 성경공부 공동체를 설립하여 모임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심리적 속성을 잘아는 그는 그들이 무엇을 듣기 원하는 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기성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며 구별이다. 동역자를 까서 먹고사는 의적이 된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잘믹스한 재미난 성경이야기와 실패담을 담은 설교태이프는 날개를 돗친듯 국내외로 팔려나갔다. 실제로 속초의 한 교회에서 한 장로는 이 설교태프에 매료되여 자기가 구입한 김진홍 목사의 설교태프를 예배후 나오는 교인들에게 나눠주는 무뢰를 범한 적도 있다. 이렇게 김진홍 목사가 이룩한 부와 성장에는 불신자를 신자로 한 선교와 전도가 아니라 기성교회에 불만을 갖고 돈도 벌고 싶고 신앙생활도 하고 싶은 리버럴한 엘리트 신도들이 고객이였다.

이때 부터 김진홍 목사는 교회 지도자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는데 대부분의 기성 교회에서 변화없는 설교와 우민화에 염증을 느낀 엘리트 신자들을 빼가는 양도둑놈으로 낙인찍힌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의 행보는 한국보수 정치와 기업가들의 품으로 우크릭을 한다. 당시 LA흑인 폭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한인사회의 낙심과 절망을 치유하고 위로해줄 강사로 김진홍 목사가 초청을 받고 대히트를 치고 호평을 받자 그 기세로 두레는 미국지부 일본 지부등으로 확장을 한다.

두레왕국을 이룬 김진홍 목사는 모든 것에 자신감이 붙었고 남양만이라는 변방에서 이제 수도권으로 진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강남에서 이룩한 성공도 단단한 버팀목이 되였다. 그리고 서울로 입성을 하려고 하자 지역의 반대로 장소를 찾다가 구리로 이주를 결정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구리지역에서 김진홍 목사의 입성을 반대하기 시작하였고  지역노회에도 가입이 거절되여 이북노회인 평양노회로 가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대형교회와 호화건축을 비판한 터라 똑같이 할수는 없자 새 성전은 장막성전이라고 하여 빅텐트 모양을 한 대형몰을 3,900평에 3천명이 들어가는 79억 짜리를 짓는다. 그러나 난방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말들을 하니 그게 그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무엇이든지 남이 한 것 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좋아하고 그런 도전과 실험정신이 바로 오늘의 김진홍 목사를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실수가 될뻔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는 성공을 한다. 2007년 국민승리연합이라는 정치단체를 만들어 좌파정권 종식을 위한 운동을 하게 되고 경기도 김문수 도지사에게 부목사들의 이름까지 빌려서 정치헌금을 한 것도 문제되여 기소까지 당한다. 그가 받았을 반대급부는 잘모르니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거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pck 교단이면서도 교단을 넘나드는 활동으로 그의 인맥은 정부와 기업등 마방발로 통한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은퇴하기 1년전에는 총회 총대로 가서 총회 새벽기도회 설교자로 총대들을 놓고  너스레를 떠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지만 그는 pck 교단에 그렇게 기여한바는 없다.

그가 한일이 많치만 그 일 가운데 가장 칭찮받을 받는 일은 김진홍의 키드로 불리우는 유능한 해외 유학생  장학사업이다.  선발된 학생들을 유학까지 보냈고 많이 길러냈다. 많은 돈을 모금하고 만졌지만 그래도 후학들을 위하여 그만큼 투자한 것이 다른 사람과 다른 면이다. 그리고 복음주의 계열의 학자나 목회자들과 많은 교류를 하게 되면서 교파의 담을 넘어 넓은 지평을 연 지도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2003년 두레내출럴이라는 다단계사업을 하다가 이권문제로 치부가 드러났고 뉴라이트 후배들로 부터도 고발을 당하였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후임자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회하던 분을 청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화근이 났다. 아무래도 1세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가 지게 되면 그 다음은 그분을 만든 당회가 권력을 이양하게 된다. 온누리교회도 마찮가지다. 교인들이 좋아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이미 그권력의 맛을 본 당회는 자기들의 파워에 순종할 관리형의 후임자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누리도 타교단 목사를 청빙 한다.

그러나 두레교회도 타 교단 목사를 청빙하여 실패한 것이다. 그것은 후임자가 장로들에 의하여 길들여지지 않았기도 하였지만 파워가 약한 면이 있었다. 후임자를 고려할때 그런 점들이 간과되였다. 즉 통합교단의 정서를 후임자가 무시하고 자기 교단의 부목사들을 불러드린 것도 장로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교회가 내분에 휩싸이자 말하기 좋아하는 김진홍 목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에 멀치감치 떨어져 동두천에 영성 공동체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공동체도 교회분란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교회문제가 일어나자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일부는 1부 예배후 그곳으로 가는 모양이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한국적 수도원 운동’을 벌이겠다는 포부를 품고, 지난해 10월 3일 경기도 동두천에 ‘두레수도원’을 설립했지만 큰 시험대위에 서 있다.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로서나 우리 겨레로서나 여러 가지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올바른 영성의 회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남은 인생 동안 두레수도원에서 영성회복운동을 하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려 한다.”고는 밝히고 있다

두레교회의 지금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김진홍 목사의 카리스마에 의하여 길들여진 장로들이 은퇴후 행세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고 젊어서 한 몇년 고생을 평생 풀어 먹고 살고 또 모금을 해서 뭔가 하려고 하는 김진홍 목사도 문제다. 그리고 현재 담임목사로 있는 분의 미국식의 사고방식과 목회방식 생활태도가 문제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사건을 중계방송식으로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다. 그리고 상회가 문제다. 늘 분쟁의 교회에는 지도력을 상실한 노회가 있었다. 강북제일교회가 그렇고 부천노회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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