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못 박은 사람들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나는 설교다
예수를 못 박은 사람들마태복음 27:11-26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4.12  15:44:38
트위터 페이스북

예수를 못 박은 사람들
(마태복음 27:11-26)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안녕하세요? 안동교회 원로목사 유경재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27장을 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이 땅에 충만한 악의 현실과 그것을 극복해 가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독한 십자가의 길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부터 시작된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길은 가장 고독한 길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동행해 주는 이 없는 철저하게 혼자서 걸어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평소 그를 따르며 그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던 제자들마저 그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하였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성부 하느님은 그 길에서 철저하게 침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하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분위기와 여론은 예수님을 등졌습니다. 그의 처형은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변호하기에는 너무 무기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함께 나설 용기도 없었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호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결국 제자들도 속수무책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참여한 자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넘겨받고서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로마를 반역하는 정치범도 아니요, 어떤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 석방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군중의 함성에 묻혀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었으나 빌라도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를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권력의 상징으로 자기 권력의 유지를 위하여 진리를 헌신짝처럼 내어버리는 파렴치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넘겨받은 로마 군병들은 온 군대를 불러 모은 가운데서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희롱하며 침 뱉고 갈대로 그 머리를 쳤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죄수를 자기들의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행한 희롱은, 저들의 사려 없음과 무지막지함과 맹목성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혼자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아니하였으며 누구도 이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지 않은 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결국은 예루살렘 전체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아니 온 인류가 달라붙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손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예수를 못박은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가 볼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다 무지한 자요, 무책임한 자요, 악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비겁자요, 배반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그 상황에 돌아가 냉철하게 돌아보면 우리도 별 수 없이 그들처럼 판단하고 그들처럼 행동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를 더러운 배반자라고 하지만, 마태복음 27장에 나타난 대로 본다면 그는 결코 파렴치한 배반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뉘우치고 스스로를 목매어 죽은 것을 보면, 그가 내린 판단이 잘못되긴 했지만 처음부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룟 유다는 결코 우리보다 더 더러운 자요, 더 파렴치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잘못된 판단과 그보다 더 파렴치한 행동과 그보다 더 마비된 양심을 따라 행동한 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유다와 더불어 예수님을 배반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또한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를 비난합니다. 위선자들이요,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 악한 자들이라고 서슴없이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그들 자신의 사악한 계략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가장 유익하리라고 여겨지는 것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들이 수호하여온 종교적인 전통과 율법을 지키려고 내린 어쩔 수 없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 천년의 전통을 가진 율법 종교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는 한 도전자를 희생시키므로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신성하고 중요한 의무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제자들을 비겁한 자들이었다고 비난합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를 욕합니다. 그러나 과연 예루살렘의 그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용기 있게 나서서 예수님을 변호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난날 유신체제 아래서 긴급조치가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용기 있게 나서서 그 불의를 지적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제자들을 비겁한 자들이라고 욕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는 결코 제자들을 비난하려는 뜻에서 그들의 비겁한 행동을 상세히 적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들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비겁한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준 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예수님은 바로 그런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그리고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거룩한 성자가 아니셨습니다. 그는 강도와 동류로 취급되셨습니다. 그는 종교지도자들처럼 위선자로 간주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배신자로, 제자들처럼 비겁한 자로 간주되어 못 박히셨습니다. 결국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자신들의 위선입니다. 가룟 유다가 팔아넘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자신의 그 더러운 이기심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 준 사람은 바로 자신과 같이 권력에 집착하며 그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가들이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사려 없고 무자비한 폭력배와 같은 자신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내어준 것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하셨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자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온 인류의 모든 죄를 걸머지고 가는 죄수인 예수입니다. 그 죄수를 향한 하느님의 공의는 냉철한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철저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냉철한 침묵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놀라운 기법으로 이런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를 우리에게 적어 남겼습니다. 마태는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악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계신 하느님을 우리로 보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악으로 충만하였던 예루살렘 전체가 달라붙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악이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섭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신비로운 하느님의 역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비록 악이 성하고 불의가 판을 쳐도 바로 그것은 악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는 순간이며, 불의가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고 있는 것임을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파멸의 역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죄를 적나라하게 보면서 동시에 그 죄가 십자가에서 소멸되므로 거듭나는 우리 자신의 새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기사]

유경재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