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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에 관한 보도를 보고박정희가 위대하면 아합왕도 위대하다
하은규 목사  |  oikos78@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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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4  0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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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에 관한 보도를 보고

일제 식민지배와 전쟁이 정당하고, 위안부 문제도 사과 요구할 필요가 없다? 

(1) 저는 기본적으로 박근혜 씨의 대통령 당선이 국정원의 정치공작 등 무수한 불법과 불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본이 잘못된 정권임으로, 이 정권에 아래서 인권과 사회정의와 평등(보편적 복지를 포함해)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아무런 희망을 두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람이 누구를 총리로 세우고, 장관으로 임명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빨리 국민들에 의해 쫓겨나거나, 양심의 가책 가운데 스스로 물러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리로 지명된 사람이 우리 교단에 속한 교회의 장로이고, 그가 강연한 내용들이 생각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나아가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비난과 반감을 크게 낳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인 목사로서 책임의식을 느끼고, 저의 생각을 밝힙니다.

(2) 먼저, 그는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 등 모든 불의와 질곡과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사상과 의식, 역사관이나 철학의 체계가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서는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으로, 구약 성서의 중심 메시지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자유와 해방으로 인도하신 출애굽의 사건에 있다고 제대로 공부한 구약학자들은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 6장 2-9절의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 속에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ㄱ) 6절과, 8절의 “나는 여호와라” 라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말씀은 마치 괄호처럼 그 하나님이 누구이며, 또 어떤 하나님이시인가 하는 그 내용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야웨(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구원)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라는 말씀에는 강한 동사들이 (“빼어내며”, “건지며”, “구속하여”, “삼고”, “되리니” 등) 그 귀절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들어 오셔서 “무거운 짐”과 “고역”에서 “편 팔과 큰 재앙으로” 구원하고, 압제를 당하는 백성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을 위한 하나님이 되시는” 하나님이 바로 야웨(여호와) 하나님, 구약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서 행동” 하시는 하나님 속에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ㄴ) 6장 2절 끝에서는 “나는 여호와로라.” 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3절에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 (야웨)로는 알리지 아니하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 이전, 족장에게는 ‘전능의 하나님’ (엘-샤다이)으로 계시하셨지만 (*엘-샤다이의 하나님은 역사 보다는 족장들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억압과 압제 속에 자유와 해방의 사건을 만드시는 하나님은 ‘야웨(여호와)’ 하나님으로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 앎과 인식을 새롭게 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삶을 넘어 역사 속에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문자와 종교에 매달려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셔서 역사 속에 자유와 해방의 사건을 일으키시는 행동하는 하나님이십니다.

ㄷ) 그러나 애굽은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12절), 이스라엘 마저도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일)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 (9절) 그래서 단지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웨)인 줄 너희가 알지라” (7절) 라고, 내가 이런 하나님임을 알아 달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우리들에게 간청하고 계십니다.

구약성서가 쓰여진 히브리어로 ‘안다’는 말은 ‘야다’로 이 단어의 뜻은 그리스적인 철학적 앎, 즉 사물을 관조 함으로 그 내적 본질을 깨닫는 앎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몸으로 부딛쳐 아는 앎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내가 인간들의 억압과 압제의 역사 속에 개입해 들어가서 고통과 신음 중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끌어 가는 ‘역사 속에 행동하는 하나님’임을 너희들이 그 해방을 몸으로 부딛쳐 체험해 보고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ㄹ) 출애굽 사건의 주제는 구약성서의 “율법서” (모세오경) 뿐만 아니라,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등)와 “성문서” (시편 등)의 일관적인 주제로 관통해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적 회고와 감사의 노래, 시편 136편 등) 출애굽 사건이 구약성서의 주제이고, 이 사건에 “하나님의 뜻”이 알려져 있습니다.

ㅁ) 한국 교회사에 1910년 부흥운동을 위대한 사건으로 기록하나 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특히 회개운동이 기독교 신앙을 탈역사화, 탈정치화시키며, 개인의 영적인 문제로 축소시킴으로, 이 후 우리나라 기독교인 대다수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적이고 역사적 문제에 침묵하거나, 외면하거나, 기득권 세력을 정당화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해 왔고, 지금도 계속 저지르게 하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일제 시대에 신앙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출애굽의 사건을 성서에서 읽고,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유년주일 학교에서 출애굽의 성극을 연출하며 가슴이 떨리고, 눈물을 흘리고, 두 주먹을 쥐어가며, 우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꿈꾸어 오지 않았나요? 이런 믿음은 이제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요? 문창극 씨의 역사 이해에는 이런 대부흥 운동의 잘못된 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식민지배와 전쟁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문창극 씨의 주장은 악을 “하나님의 뜻”으로 용인하는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악의 문제는 신학에서 “신정론”(Theodicy)으로 다루며, “하나님이 계신다면, 악은 어디로 부터 왔는가?” (Si Deus, unde malum?)는 악의 기원과 더불어, “하나님이 전지(omniscience)하시다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악이 오리라는 것을 모르셨을까?” 라는 질문과 더불어, “하나님이 전능(omnipotence)하시다면, 왜 하나님은 악을 없애지 못하시는가?” 라는 하나님의 전지와 전능의 문제의 상충과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니체(F. Nietzsche)가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y)로 하여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의 입으로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의 현실에 “천국의 조화로 들어 가는 입장권”을 하나님께 반환하는 “저항적 무신론” (protest atheism)을 기술하게 합니다. 신정론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과 그들이 빚는 역사의 악과 불의와 고통을 자기의 운명으로 바꾸시고, 고통과 죽음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신약 성서의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자유와 해방의 출애굽 사건(Exodus)”과 더불어,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의 뜻”이고, 성서와 그리스도교 신앙은 출애굽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외의 다른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 않으며, 그 밖의 다른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오 십자가여 - 유일한 희망이여!” (Ave crux – unica spes!)

문창극 씨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문제는, 그에게는 악이건 선이건 모든 수단으로 성공한 기득계층의 사람들만 중요하고, 위안부로 “역사의 악몽”을 살아야 했던 억눌리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와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인권과, 그들의 비참과 눈물과 한숨에는 아무런 관심과 위로를 갖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자유와 해방의 출애굽”과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4) 문창극 씨는 어느 글에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데는 재벌의 창업자들과 더불어 그 정점에 박정희 씨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면 경제개발이란 이름으로 인권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뭇 젊은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행방불명이 되게 만든 독재자를 훌륭한 지도자의 장점으로 기록할 수 없겠지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당시 해상 강국이었던 페니키아와의 무역을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상 18-19장에서, 성서는 가장 나쁜 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역을 통해 부와 더불어 이방종교인 바알 종교(번영과 풍요의 신)와 아세라 종교 (성적인 쾌락과 다산의 신상)를 가져와서 이스라엘의 야웨(여호와) 신앙과 정신을 혼미화시키고 정신을 타락시킴으로, 예언자 엘리야는 그와 더불어 투쟁하는 가운데 “갈멜 산의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지도자론은 성서에 비추어 기독교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요?  박근혜 씨를 도와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일은 참으로 불안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박정희 씨와 더불어 그의 딸, 박근혜 씨도 지도자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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