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교회, 누구의 교회인가?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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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교회, 누구의 교회인가?주인의 자리에 앉으려는 종들
박의관 장로  |  ekpark43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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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5  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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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교회, 누구의 교회인가?

박의관 장로

박장로는 19 66년 청주대학교 법학과 졸업하고 ROTC 4기 소위 임관(포병) , 68~69년초 주월백마부대 파월, 73.4.육군법무병과로 전과-대위, 76.4. 제9사단 법무참모(백마부대)-소령, 80.10. 제3군단 법무참모-중령, 83.8. 육군특수전사령부 법무참모, 90.2. 제1야전사 법무참모-대령,  93.7. 육군법무감실 고등검찰부장, 고등심판부장,  95~98.4.30 법무차감을 겸임했다.  
교회경력으로는 1961년~65년 청주북문교회 아동부교사, 75.1~80.10 봉천교회 아동부장,78년~79 서울남노회 교회학교 아동부연합회 총무, 90.10.7 봉천교회 장로장립, 90.10~봉천교회 찬양부장. 교육위원장. 당회서기 역임 
2013년 10월 봉천교회 시무장로 12명과 교회 분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봉천교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누가 세웠건 성장을 시켰건 그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이 말에 동의 한다면 봉천교회가 지금 주인을 주인되게 하고 있는가? 를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이유는 지금 봉천교회에서는 주인은 밀려났고 종들이 주인의 자리에서 서로가 자기가 주인이라고 소리를 치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투쟁도 하고 공의를 구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다소 무리를 한적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며 결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봉천교회의 슬픈 소식을 듣고 그동안 잊고 싶었던 일들이 회상되어 반성과 회고의 마음에 잠시 젖어든다.

나는 1943생으로 교회법에 의하여 작년 말로 정년 은퇴를 하게 된 박의관장로다. 나의 짧은 일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조국의 해방과, 한국전쟁, 월남전,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를 모두 경험하고 가는 세대다.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길고 아름답게 그리고 슬프고 힘들게 기억이 되는 곳은 다름 아닌 교회생활이다. 지금으로 부터 40여년전 서른한살의 나이, 청년의 때에 봉천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장로가 되고 존경하였던 박영선 목사와 귀한 성도들과 신앙생활을 한 것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러나 이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지 못한 채 1년 전 하나님의 강권으로 240여명의 성도들과 봉천교회를 나왔다. 그리고 즐겁고 기쁨 마음으로 ”하나님 교회“ 설립을 위하여 힘쓰면서도 가슴 한 쪽이 빈 것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던 차에 최근 봉천교회가 교계의 큰 근심이 된 것을 듣고 더욱 슬픈 가을을 맞는다.

다시는 그곳에서의 아픔과 추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내가 감히 다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봉천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내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누가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지만 나도 이제 인생 선배, 53년의 신앙 경험을 가진 자로서 누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배경에는 일전에 예장뉴스의 담당기자에게 전화가 와 만나서 이런 저런 대담을 하는 가운데 차라리 저희 신문에 심경을 투고하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고가 있어 사양하다가 조심스럽게 몇자 적는다.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고 또 누구를 편들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가장 먼저는 봉천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교인들 나아가 이 글을 읽는 모든 교회들이 반면 교사로 삼아서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믿음과 고백을 따라서 맡겨주신 사명만을 감당하기 위하여 드리는 나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고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교육을 받고 기독교 장로교 계통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ROTC 4기로 임관하여 복무 중 장기복무로 전환하여 대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32년간 모범적인 군인으로 근무를 했다고 자부한다.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백마부대, 3군단, 특수전사령부, 제1야전군사령부 등 각급부대의 법무참모와 육군고등검찰부장, 심판부장, 법무차감을 역임하였다. 군 생활 32년중 25년을 육군 법무계통에서 오랫동안 복무하여 현재 법조계 안팎에 호형호제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법무계통에서 일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법전문가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혹시 그 분야에 오래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법 지상주의, 혹은 법 만능주의로 인한 오류는 없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사실 나는 내 자신이 자랑인지 흠인지는 모르나 오랫동안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체화된 준법정신으로 인하여 타인의 불법에 대하여 너무 과한 잣대를 대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봉천교회에서 박영선 목사와 그를 돕는 후배 장로들에게 고소와 고발을 당하여 폭력등으로 전과 00범이 되기도 했는 데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였다. 길고 지루한 싸움에서 내가 끝내기를 원했다. 내가 사활을 걸었던 재판의 최종심에서 패소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대법원판결 2일전 나와 뜻을 같이 하였던 이들과 함께 결단을 제안했다. 13명의 장로들과 교인들에게 이제 그만하자, 깨끗이 나가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하여 2013년 11월 20일 200여명이 분립을 했다. 내가 분립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당회원의 다수(22명중 13명)이기도 하고 봉천교회 장로들중 선배들은 다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이 봉천교회를 살리는 길이고 내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결단은 유효했고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 더 앉아서 각을 세우고 서로 내편 네편을 가르고 반대파들과 이전투구를 하면서 남아서 싸워 이기든지 지든지 할 수도 있었으나 이제 나이도 그렇고 내 영혼과 가족들과 자라나는 후진들을 생각하면 영혼이 너무 피폐해진 것을 느꼈다. 그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무일푼으로 정말 새로운 공동체를 통하여 이상적인 교회를 꿈꾸며 광야로 나왔다. 벌써 1년이 되가는데 이제 정식으로 담임목사 청빙도 결정되었고, 노회도 정하여 조직교회로써의 면모를 갖추려고 한다.

이전의 봉천교회는 좋은 교회였다. 좋은 목사님과 어렵고 가난했지만 정말 행복했고 은혜스러운 교회였다. 나는 현역 소령으로 있으면서도 서울남노회 교회학교 아동부총무를 역임하며 교회학교에 열심을 한 교사였다. 그러나 우리의 소박한 꿈들은 박영선 목사님의 두 번의 부총회장 출마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번도 힘들었을 것인데 두 번씩이나 출마를 하고 실패를 했으니 본인의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박 목사님을 뒷바라지한 당회와 교인들의 심정과 형편이 어떠했을지 상상을 해보기 바란다.

교회에 이런 짊을 남기시고도 은퇴를 앞두고 교회는 생각지 않고 자신의 예우 문제와 후임목사 청빙 문제로 인하여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전체 당회원 22명중 옳은 소리 하는 자들, 아니 쉽게 표현하면 자기방법에 반대하는 13명을 남은 인원으로 면직처리했는데 기적같은 일을 하신 분이다. 총회 재판국에 로비를 하고 온갖 힘과 돈을 동원하여 우리를 죽였다. 나도 법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지만 정상을 벗어난 행위에는 별 재간이 없었다. 그들과 똑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법 양식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때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으로 부터 그런 수모를 당하고 쫒겨 나고 영적 불효자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아쉽다. 지금 생각하면 상회는 왜 이토록 극심한 혼란과 갈등으로 인해 이미 교회로써의 자격을 상실한 봉천교회를 사고교회(사고당회) 하여 모든 당회원들의 권한을 중지하고 수습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다. 목사나 장로나 직무가 정지되야 더 이상 교인들을 동원하고 교회 돈을 갖고 활동을 못하는 것인데 상회의 방치로 말이암아 당회원들이 패거리 정치를 하여 교회는 난장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몸에 배인 법치주의 법리주의의 노예가 되어 틀린 것은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천성으로 인하여 봉천교회 문제는 더 악화일로를 걷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혼란의 주역이 되지 아니하고 봉천교회를 떠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감사한다. 지금의 봉천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곳)의 시대라고 하면 너무 과한 비판일까? 현재 기독교언론과 99회기 총회에는 봉천교회의 사건으로 도배가 되어 이제 봉천교회 사건은 노회를 넘어서 총회적으로 아니 사회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없게 되었다.

나는 지금 봉천교회 사건은 크게 3가지 문제로 본다.

첫째는 당회원의 직무에 대한 무지가 가져온 결과다.
정준 목사의 청빙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당시 청빙위원들이 먼져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지금 그가 총회 재판국에 의하여 위임목사로써의 지위가 박탈되었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정 준목사가 박영선 목사의 후임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고 그의 위임식를 물리력으로 막았던 장본인이지만 한 마디만 하면 그 불법을 공모하고 동의한 이들이 먼저 치리를 받던지 공동으로 사임을 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당시 그 청빙에 관여하지도 못한 자(같이 임직한 장로)가 그 결의를 불법이라고 소송을 냈다고 하니 참으로 지나가는 개도 웃을 판이다. 이는 법의 당사자 주의도 모르는 무식한 처사고 그것을 재판과정에서 검토하지 않은 재판국은 개판국이라는 소릴 들어도 싸다.

또 당회원은 당회의 관할이고 목사는 노회의 관할이다. 상하급 치리회의 엄연한 직무와 구별이 있다. 그런데 당회원의 권징을 총회 재판국이 병합심리 하였다는 것도 황당하다. 당회도 재판국을 설치할 수 있고 노회도 재판국이 있는데 왜 총회에 이를 맡겼을까? 이것이 오늘의 문제이다. 현재 재판국장이나 구성원들을 보건데 법과 양심이 아니고 불법이 난무하고 힘있고 안면이 있다는 것이 기준이 되는 재판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이것은 내가 누구의 편을 들기 위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특히 내가 봉천교회에 남아서 지금과 같은 치욕의 한편에 가담하지 않게 하나님이 도우셔서 모든 분노와 인간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물러나게 하신 의미를 알 것 같다.

두번째는 장로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나는 이제 현역에서는 은퇴를 하였지만 처음 장로가 되어서 동기들과는 우리는 교회일 외에 노회총대를 하거나 정치를 해서 상회의 일을 하지 말자고 약속을 하기도 했고 그것을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하는 12명의 장로들과 개척을 해서 현재 한 240여명이 모여 “하나힘 교회”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앞서 말했다. 나는 이 교회에서는 설립예배를 드림과 동시 시무은퇴를 할 것이지만 봉천교회에서 배우고 실패했던 것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봉천교회 장로들은 왜 교회에 나오는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나와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기 바란다. 장로끼리 물고 뜯고 죽이는 일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교인들의 본이 되야 할 장로들이 교회 돈을 갖고 송사를 하고 사심과 사욕의 노예가 되어 교회를 망치고 자신의 영혼과 가정마저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끝으로 박영선 목사님에게 드리고 싶다.
박 목사님 좋은 모습만 기억하고 싶습니다.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좋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셨습니까? 너무 오래 사신 것은 아닙니까? 자신이 세운 봉천교회에 남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분열과 분쟁 고소와 고발 시기와 질투 욕심과 시기, 우리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고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들 아닙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앞세워서 분열의 똑두각시로 이용하지 마시고 임직과 은퇴시의 서약을 기억하셔서 멋지게 생을 마감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비숫한 연배의 은퇴한 이들이 어떻게 처신을 하는지도 배우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다른 곳으로 정하시고 봉천교회를 그대로 두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분열의 배후 조정자로의 오명을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나는 더 이상 봉천교회에 관하여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회상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교회를 나온지 1년도 안돼 이 지경이 된 것은 전적으로 나의 부족과 부덕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그래서 평생 장로로써 섬기고 배운 도리로 보건데 봉천교회의 일은 일찍이 어느 교회도 없었던 일이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고 무서운 교회이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가? 지금 봉천교회를 위한다고 하려고 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일이 주께 기도하고 하는 일인지?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예장뉴스의 간절한 부탁으로 쓴 노종의 간절한 호소를 가볍게 듣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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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움
(223.XXX.XXX.30)
지금에 와서 이런 글을 올리는 저의가 무엇인지...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한 두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다 떠 넘기지 말고 조용히 자숙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2014-10-02 12:45:50)
시몬
(220.XXX.XXX.98)
봉천교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청년시절부터 청춘을 함께 보낸 교회입니다.
저희 부부 결혼예물, 아이들 돌반지 까지 교회 땅사고 건물짓는데 기쁜마음으로
드리고 생활했던 터전인데 너무나~ 타락하여 지금은 멀리 떠나왔습니다.
지금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납니다.
교회가 어디까지 타락하고 나락으로 떨어 져야 됩니까?
그 끝이 어디입니까?
더 이상은 안됩니다. 주님~ 눈물로 기도드립니다. 회복하소서~

(2014-09-26 21:44:38)
시몬
(220.XXX.XXX.98)
박의관 장로님은 오랜 세월 보았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한국교회 특히 예장통합 목사 장로 지도자 분들 제발~ 하나님 생각하세요~
더이상 수 많은 영혼 죽이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주님 생각하세요~
주여! 더이상 멈추게하소서~

(2014-09-26 20:40:26)
100난주
(223.XXX.XXX.42)
5균셥 장로병과 함께 봉천교회 잘 해먹어 보겠습니다. 박0선 어르신 우리 힘냅시다!
(2014-09-26 14:09:16)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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