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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국제 컨퍼런스 마쳐"제국" 이라는 화두에 관심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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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5  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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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국제 컨퍼런스 마쳐

"제국" 이라는 화두에 관심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캠퍼스(GIT)에서 열린 민중신학 국제 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njung Theology, Liberation Theologies,and Contextual Theologies)가 23일(목) - 25일(토) 에 막을 내렸다.  이 행사는 한국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 30주기를 기념하는 한국민중신학회가 개최하고 대학과 기관이 후원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민중신학, 해방신학, 상황신학이라는 주제에 걸맞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한국 민중신학계의 생존하는 원로들 김용복 박사, 서광선 박사, 노정선 박사, 김흡영 박사, 안재웅 박사와 2-3세대 민중신학자 권진관(성공회대), 강원돈(한신대), 최순양(이화여대), 최형묵(한신대), 김희헌(한신대), 김영철(생명평화), 이인미, 신익상(성공회대) 손호연, 박영민(연대), 손양래(호주), 신익상(감신대), 정경일(새길교회), 전  철(한신대), 황남덕(새민족), 김명실(연대), 홍콩에서 활동하는 Pillip Wickeri과 Angela Wang(홍콩대학),  Sweety Helen(인도 NCCI 간사),  Wati (세람포신학교), 필리핀의 Yahu, 페르난데쯔, 미국의 노영찬(George  Mason), Banawirtma(인도네시아), Paul Y Chang(하바드), 독일 마인쯔대의 Voker Kuester 교수와 제자 허주미, 대만의 長營대학 부총장 Po Ho Wang과 ya tang Chuangrhk교수와 박혜경 교수, Grace Moon(CCA),  등과 함께 현재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3세대 학자들과 지방에서 김영태 교수(전남대 은퇴)까지 참가한 명실상부한 한국과 세계 민중신학자들이 모인 국제대회였다.

   
좌로부터 김용복 박사, Pillip Wickeri(홍콩), 미국의 노영찬(George Mason)

민중신학은 사실 교수들이 강단에서 내려왔기에 세상에 빛을 본 신학이다.  이들이 대학의 강단에 있었더라면 민중신학은 태동할 수 없었거나 늦게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1세대 민중신학자인 서남동은 연세대에서 안병무는 한신대에서 해직된 교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시대에 해직된 기자, 노동자들, 제적된 학생, 산업선교와 농민들의 현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고난의 이야기를 성서적으로 해명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격려하고 싶었던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이날 Key Note를 한 서광선 박사(전 이화여대)와 성서연구를 한 노정선 박사(전 연세대) 그리고 이 모임의 호스트 김용복 박사(전 한일장신대 총장) 역시 모두 대학에서 해직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주제 강연을 하는 권진관 교수(성공회대)

198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민중신학 연구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서남동 교수와 안병무 박사의 기념사업회 그리고 한국민중신학회로 이어왔는데 주류는 아무래도 신학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한신대와 연세대, 성공회대에서 주로 학위들을 했다.  이 모임은 코디네이터 권진관 교수의 “ The story of Minjung Theology ang its Future" 와 서광선 교수의 “Suh nam dong and MinJung Theology in the Age Globalization" 이라는 주제 강연을 시작으로 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집중적인 토의와 종합 발표를 하였다.

한국 토종신학인 민중신학은 사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짓밟힌 학문이기도 하다.  학자들 간의 건강한 학문적 논쟁을 통하여 발전 성장하지 못하고 매도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성 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그들의 논문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정부가 써준 비판만을 반복해 댔다.  특히 국가 권력(정보부)등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는데 한국적 상황인 반공주의 이념의 구도로 굴레를 씌웠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민중신학은 사실 언터쳐불의 신학이다.  그런 이유로 보수 중도신학이 주류인 pck에서는 전공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중신학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세계 신학계의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안병무 박사가 마가복음의 “민중”에 대해서 재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서구신학에서는 그 동안 주로 예수와 바울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안병무는 예수 보다도 예수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 즉 oklos(무리, 군중)에 관하여 관심 갖은 최초의 학자였다. 사실 예수를 더 잘 알려면 그가 언급하고 관심갖고 함께 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예수에 대하여 더 깊게 넓게 연구하는 길이다.  또 서남동 교수가 주제로 삼은 “한의 사제” 등은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수 많은 저항(亂이나 정적의 숙청), 노예나 민중계층들의 저항으로 인한 억울한 고난과 죽음을 재해석하고 역사의 지배층이 그들에게 가한 폭압으로 인한 한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것이 바로 목회적 돌봄이라는 지평을 열어 민중교회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당시의 한국의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삶은 근대화와 산업화 속에서 무한의 희생을 강요했고  그들의 삶은 너무도 고단했고 비참했다.  법에 규정된 8시간 노동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이 무색했으며 비인격적인 대우와 동물적인 삶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1971년 청계천의 봉제공들의 현실을 고 전태일이라는 22세의 청년은 그 사문화된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않고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절규하며 분신함으로써 어린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장을 세상에 알리 게 되었다. 

그 개인은 희생했지만 그 희생의 불꽃을 통하여 새롭게 깨어난 지식인과 기독학생들과 청년들이 나섰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부활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후 종교계는  산업선교와 JOC, 가톨릭 농민회, 빈민운동 등이 시작되었지만 군사독재 정부는 이들이 대중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탄압하고 기성교회들과 격리시켜 왔던 것이다.

서구 신학자들은 이미 꽃을 피운 해방신학과 흑인신학 여성신학과 함께 민중신학을 현장신학, 토착화신학으로 새롭게 평가했다. 그 당시 한국의 학자들이 민중에 관한 주제들을 영문으로 모아 '아시아교회협의회'(CCA)에서 발표한 결과였다. 그리고 지난 세월 민중신학은 강단에서는 물론이지만 전공자의 부재와 교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일종의 써클 이상의 수준에서 더 나가지 못했다. 또 2세대 민중신학 전공자들이 가졌던 민족주의 바람으로 해외유학이 단절되어 영어 논문을 생산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한국신학의 주류는 교회성장 신학과 번영신학 등 돈이 되는 신학에로의 집중으로 인하여 계속 전공자들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민중신학은 세계 신학계에 겨우 명함만 내민 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서남동, 안병무의 제자들 중 권진관 교수의 끊질긴 노력과 후배 김용복 박사의 애정으로 다시 뭉쳐서 이 날의 국제 컨퍼런스를 준비했다. 연세대학과 한신대 그리고 CCA의 지원으로 이 국제적인 자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이중 2세대 민중신학자이며 학회장인 권진관 교수의 삶이 바로 민중신학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새문안교회 대학부 시절 민청학련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재학 중인 서울대학에서 제적된 후 공장에 들어가 민중적 삶을 체험했으며 한 때 산업선교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영등포산선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해직된 교수들과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기독교장로회의 선교교육원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는 데 수료 후 기독교장로회의 준목이 되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1978년 YWCA 위장결혼식사건으로 다시 구속된다.

그후 NCCK, EYC 간사를 거쳐서 스승인 문동환 박사의 주선으로 피츠버그대학으로 가서 공부한 후 드류대학원에서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지금까지 성공회대학 신학부 교수로 23년간 재직하고 있다.  본인은 말하기를 '나는 예장에서 자라나 기장의 목사가 되고 감리교 계통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성공회에서 가르치니 진정한 에큐메니스트이다'고 한 적도 있다.

그는 풍요로운 미국사회에서 유학을 마치고도 한국 민중신학을 배신하지 않고 전공대로 민중신학 현장의 과제들을 붙잡고 서남동 선생의 신학적 물음에 진정성 있게 답을 찾고 있는 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주일에는 평신도 중심의 새길교회에서 한완상 박사 등과 같이 설교도 하는 신앙과 신학의 조화를 실천하는 학자이다.

1980년대 이후  PCK에서는 많은 인물들,  걸출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니왔다. 그러나 교단의 신학적 기류는 같은 색깔의 학문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모두 한 가지 색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특히  학문은 서로 조화와 긴장이  있어야 발전하는 것인데도 교권은 십자가 밟기로 요구하며 지성과 학문적 양심의 전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구약성서의 민중인 '하비루'를 발견한 문희석 박사와 주체사상과 기독교를 연구한 홍성현 목사(전 수송교회)가 있었으며 이후에도 영등포산선의 성문밖교회의 경험으로 민중교회론으로 인명진 목사가 SFTS에서 D.Min을 한 이후 정식으로 해외에서 Ph.D를 한 이들은 모두 URM 출신으로 황홍렬(영국 버밍햄), 김영철(카나다 죤 낙스), 황남덕(미국 하트포트) 등이다.

그러나 PCK의 1세대 신학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겼었다. 김용복 박사도 탁월한 신학적 안목으로 WCC 등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신학자이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노정선박사(프린스톤, 유니온) 도 동학혁명과 기독교를 연구한 최초의 신학자(미국 유니온)이지만 교단과 그의 모 교회인 영락교회에서 마저도 좌파로 낙인 찍었고 진영논리에 가두었다. 이

렇게 1세대들은 그래도 어렵지만 그들의 학문적 지명도와 성과로 생존을 할 수는 있었으나 학계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후진들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고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교단의 신학교가 목회자 양성을 위한 위탁기관이 되었기 때문에 후진들에게 학문적인 지평을 열어주고 과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pck 안에서 민중신학은 유령이었지만 민중교회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1983년 PCK 최초의 민중교회로 기록되는 성수삼일교회(정태효, 유재무) 와 대전(김규복), 대구(안기성), 안양(박지석) 등을 위시하여 전국의 3-40개까지 세워졌고 지금까지 "일하는 예수회"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민중신학은 한국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번에 참여한 제3세대 격의 연구자들의 면모를 보아도 국제적이었고 그래서 민중신학은 바로 국제적 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신학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과거 제국주의와 신 식민주의 다국적 기업을 넘어서 세계경제체제로의 진화로 세계화라는 것(피터 드러커 등)이 나타났고 바로  그 세계화는 세계의 민중을 더욱 단결하게 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국제적 연대가 필수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이태리계 출신 하트와 네그리라는 사제는 "제국" 이라는 책에서 "다중" 이라는 용어로 이 새로운 시대를 해석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학을 해외에서 공부하고 학문만하는 이들에게 맡겨놓을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그 동안의 신학풍조가 대중과는 높은 담을 쌓고 고고한 강단신학, 교파신학, 교수신학에 매몰되어 현장을 위한 기대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제라도 신학은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목회자들은 신학자들과 달리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고 있기에 그들의 정황과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다. 민중신학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 하는 신학방식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민중신학의 내용에는 모든 목회자들이 갖춰야 하는 품성론과도 관련이 있다.  목양이 대중을 향한 것이고 특히 가난한 노동자, 농민, 빈민, 이주민, 노인, 장애인(민중의 실체와 개념은 변화해왔고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새롭게 규정되고 있다)들을 섬기며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동안 기존 목회자들이 강조한 교회에 대한 충성과 열심, 전도훈련, 봉사와 나눔, 권면과 축복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 또한 여기에 있다.

   
                 좌로 부터 김용복 박사, Dr. Po Ho Wang,  김명실 교수  

이제 민중신학은 더 이상 학자들의 언어와 논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초국적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민족 민중과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다중(Multitute)들은 바로 세계를 무대로 이주하는 이민자, 이주 노동자가 되어 다른 문화권에서 언어의 장벽과 경제적 차이로 민중적 삶을 강요 받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다국적화로 이제는 1세계가 3세계를 착취하는 구조가 아닌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고 생산없는 성장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높은 이자율과 주택정책의 실패, 비정규직의 증가, 농산물의 개방으로 인한 식량주권 문제, 핵발전소 문제 등은 이제 어느 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닌 세계 제국(Empire)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민중신학 국제컨퍼런스에 제출된 논문들은 제출자들이 서로를 한 번도 만나거나 사전에 대화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인 이슈가 제기 되었다. 이 논문들은 앞으로 CCA에서 영문으로 출판되고 아마존닷컴에서 판매 될 것이다. 논문들은 거의가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상부와 하부구조(Subartern)이라는 분석의 틀을 통하여 억압(자본, 국가, 남성, 언어, 문화)적인 지배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이

러한 세계 상황에서 우리의 교회는 과연 어느 자리에 설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들의 의식과 자리,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누구와 함께 하셨고 바울은 제국과 초기 제자들이나 유대주의 율법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를 다시 찾아봐야 한다.

예수와 바울이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자들의 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면 답은 바로 거기서 찾아야 한다. 교회를 어떻게 얼마나 크게 지을지, 자기의 이름내고 사회적 지위와 자녀교육 등의 예우에 관하여는 성경 어느 곳에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데도 분별없이 그런 일에 집착하고 있다. 특히 인위적인 구조인 노회와 총회 등 연합회에서의 감투 싸움과 지위 다툼은 전형적인 인본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질책하는 성경보다도 더 집착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제 민중신학은 오늘날 민중의 삶의 자리에서 또 민중의 마음에서 질문을 찾아내고 진지하게 답해야 하는 것이 과제이다. 자신이 자리한 곳에 있는 민중들의 얼굴에서 웃음과 기쁨이 돌아오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생애에 관하여 애기하고 나누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만 한다. 교회는 죽어서 천당에 가는 대합실이 아니다. 교리로 입으로 말로만 하는 언어 유희의 구원이 아니라 온전한 삶과 사회적 구원에까지 우리의 목회적 지평은 당연히 넓혀져야 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신주의, 소비주의 노예로 끝날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요 빛의 아들 딸로서 당당히 이것들과 맞서서 주님의 양들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것인가?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번영과 초월주의, 형이상학적 허상의 노예가 되지 말고 내 삶과 목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제 서남동 신학이 던진 신학적 질문들을 오늘에 재해석한다면 세월호 사건으로 아픔과 고난의 현장에 있는 가족들과 이들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자리에 오늘의 교회가 과연 얼마만큼 동참할 것인가도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눈물과 아픔을 가진 자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의 사명이다,

민주화와 평등화, 자유화를 향한 국제적인 연대로써 홍콩에서의 우산혁명과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죽음들, 중동에서의 종교 억압과 살인, 그처럼 진정 정의와 평화, 생명이 절실한 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서야 한다. 이제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과학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노동과 국가정책, 여가와 스포츠 등 인류가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민중신학은 도전해야 하며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민중신학 국체컨퍼런스에 참여한 아시아의 젊은 크리스찬들이 던지는 공통된 메시지였다.

   
 컨퍼런스 자료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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