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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8  20: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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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알아가기(화란)

화란개혁교회

   
 

네덜란드(화란)
화란(和蘭) 이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은 Holland 라고도 한다. 유럽 북서부의 도시로 인구 1,664만(2008년 현재)이고 GNP는 2만5천불이다. 면적은 4만 1548㎢에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다. 일찌기 발달된 항구도시로 바다와 맞닿아 항해와 해산물 소득도 상당하다. 정치체제는 의회주의 입헌군주제이며 내각책임제로 양원제(상원, 하원)을 채택하고 있다. 국화가 튤립으로 유명하며 언어는 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가톨릭교(32%)  네덜란드 개신교(화란장로교회, 17%)  그외 38% 다.  우리나라와는 1961년에 수교를 맺었다. 조선 말기 1653년 하멜이 표류하고 1666년 표류기를 발표했다. 그외 칼 쿠츠라프 선교사가 선교 차 왔다는 기록이 있다. 

거스 히딩크가 전 한국 국가대표 축구 감독을 한 후 더 알려졌다.  1년 내내 벌어지는 프로 축구 리그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유럽의 프로 축구 리그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많은 선수가 활약하고 있다(박지성도 아인트 호벤에서 선수 생활) 미술도 유명한데 화가 렘브란트와 고흐가 있다. 또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 저자)가 화란인이다. 또 헤이그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근대에는 유럽 최고의 항해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최고의 경제 부흥을 이루기도 했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항해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유럽 남성들의 환락가가 되었다고 한다.  개혁교회의 경건한 전통과 향락문화가 공존하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세속화로 인하여 개혁교회 전통은 많이 쇠퇴하였는데 향락산업이 국가 소득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가장 먼저 경제적 자유시장의 기초를 내리고 그 결과로 1820년 국가소득 1,800불을 달성한 최초의 나라였다고 한다. 그후 이 자본주의 성장의 물결이 영국과 유럽,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지리와 인물
현재의 네덜란드는 화란과 벨기에의 일부지역을 통합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영토는 작은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부르군디 공, 쉬알이 결혼하여 매수와 약탈의 수단으로 강제 합병한 것이었다. 그러나 쉬알 공이 프랑스왕 루이 11세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후로는 영토의 대부분이 프랑스에 합병되고 나머지도 오스트리아 등에 편입되어 버렸으며, 그 후로는 찰스 5세 황제에 의해 게르만 제국의 일부가 되는 등 세계 열강들의 먹이감으로 나눠져 왔다.

그러나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특성상 네덜란드인들은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평생을 스웨터 하나로 사는 이도 많다고 한다. 자유를 선호하고 모험 정신이 강한데 고대로 부터 종교심이 강하여 "토마스 아켐피스"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나왔고 공동생활 형제단(Brethren of the Common Life)과 같은 영성단체와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와 같은 학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네덜란드가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1518년, 마틴 루터의 사상과 철학이 꽃을 핀 최초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는 국가 필독서가 되었고 1523년에는 신약성경이 화란어로 번역 출판되어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와 같이 네덜란드의 종교개혁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스페인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로마 가톨릭의 지속적인 영향력 아래 두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북유럽은 로마 가톨릭과 개혁교회, 루터교회 등 3대 교회의 지배 아래 놓였는데 네덜란드는 로마 카톨릭과 칼뱅주의를 함께 선택하였으며, 스칸디나비아 3국은 루터교를 수용하였다.

'네덜란드'는 낮은 지대라는 뜻으로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해변에 방대한 둑을 쌓아 도시를 형성하고 있고 도심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수로를 만들어서 해상택시(베네치아와 비슷)가 운항하고 있다. 그들은 쌓은 둑이 터지면 바다로 변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환경 때문에 늘 긴장 속에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1523년, 스페인 왕국의 찰스 5세가 지배하는 네덜란드는 5,000여 명이 종교탄압으로 처형되는 등 수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필립 2세 또한 이복 여동생 파라 후작 부인 마가레트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개신교도들을 끊임없이 박해하였다.

역사
1566년, 필립 2세는 모든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트렌트 종교회의의 결정사항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고백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 1556년 결성되어 많은 성당을 파괴하는 등 저항과 보복을 가하였으나 1567년, 필립 2세 또한 군대를 동원하여 개신교도 동맹을 학살을 하는 등 양측의 대립은 첨예하였다. 1576년, 엘리사벳 여왕의 지원으로 필립 2세의 알바 장군과의 일전을 거듭한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William of Orange)이 암살을 당하였다. 하지만 1609년, 네덜란드인의 저항은 스페인 군대를 화란에서 추방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1648년에는 웨스트팔리아 조약(Westpalia treaty)에 의하여 독립을 쟁취하였다.

1561년, 벨직 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를 채택하고 개혁교회를 정식 국교로 승인하였다. 1571년 엠덴 제1차 총회가 개최되었고, 루터파교인들이 합세함으로써 전국적인 개혁교회를 창설하였다. 1575년에는 라이덴 대학교를 설립하여 개혁교회 신앙인들을 양성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577년에는 재세례파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아르미니안들에 대한 교리적 관용은 불허하였다. 그러나 1621년 도르트 회의에서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us,1560~1609) 사상을 정죄하였고 칼뱅의 5대 교리를 개혁교회의 기초로 정하였다.

개혁교회 역사
화란개혁교회는 역사적으로 제네바의 존 칼뱅에게 직접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교회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의 장로교회 보다도 칼뱅의 가르침과 사상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도 칼뱅의 신학체계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와 동일하지만, 실제 교회 형성에 있어서는 칼뱅에게서 배웠던 존 녹스에 의하여 스코틀란드에서 발전된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에 직접적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교회 사이에 교리나 기본적 신학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교회 제도나 예배 형태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자면 개혁교회에서는 서리집사나 권사 제도가 없으며, 또한 성가대가 없다거나 예배 시 시편찬송을 부른다든지 하는 것도 눈에 띄는 차이들이다.

현재의 화란에는 여러 다양한 “개혁교회” 교단이 존재하는 데 한국에서는 “화란개혁교회”라고 하면 마치 하나의 단일한 교단이 존재하는 듯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장로교회라고 할 때 어느 교단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신학적 입장과 교회 실태가 다른 것처럼 화란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대략 일곱 개의 개혁교회가 있다. 교단 명도 영어나 화란어로도 같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신학교의 주소와 신학교 교수들, 교단 지도자들을 알아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 교단 가운데서 가장 큰 두 개의 교단이 신학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 예를 들면 동성연애 등을 용납하고 있다.

그래서 화란자유대학에서는 성향을 달리하는 신학교를 여럿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자유대학의 기원도 왕권과 교권으로 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의미심장한 대학으로 복음주의 계통의 손봉호 박사가 자유대학 출신이다. 또  pck의 천영철 목사(WCC 지역 연락관)가 박사학위를 받았고  김혜숙 목사도 유학한바 있다.  한국에서는 고신측 학자들이 주로 유학을 많이 다녀오고 있다.  그 외에도 가톨릭의 루팽대학 사회학과는 남미의 해방신학자 토레스 신부와 쿠티에레즈가 해방신학의 철학적 이론의 기초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교회 직제
화란 개혁교회는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 운영 면에 있어서도 잘 정비되고 체계화되어 있어서 직분들 사이의 구별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교회에는 세 직분이 있는데, 곧 “말씀의 수종자”(다르게는 “설교자”라고도 불리는데 목사를 뜻한다)와 “장로”와 “집사”이다(교회헌법 제 2조).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부름 받기 전에는 위 직분을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제 3조). 따라서 설교자의 직분과 장로의 직분은 분명히 구별된다. 화란개혁교회에서는 장로가 설교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설교란 합당한 신학교육을 받고 노회의 시험에 합격하고 청빙을 받아 안수 받은 “말씀의 수종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화란은 인도네시아를 300년 이상 지배했는 데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설교자가 설교단에 오를 때 평신도 대표가 강단으로 설교자를 인도하며 강단에 오르기 전 정중히 인사를 하고 성경을 건네고 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 예외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지 않고 설교자가 되는 길이 열려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총 노회의 허락을 받아 노회에서 시험을 치러 합격한 경우에 한하며, 그럴 경우에도 일정 기간을 정하여 “강도사”로서 시험해 본 후에 노회가 최종 결정한다(제 8조).

목사가 없는 교회이거나 설교자를 구할 수 없을 때는 장로가 강단에 올라가서 다른 목사의 설교를 대신 “낭독”한다. 이런 예배를 소위 “낭독 예배”라고 부르는데, 어떤 교단에서는 설교자가 매우 부족하여 태반이 넘는 교회에서 “낭독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때 장로들이 여럿 있을 경우 그 중에서 경건하며 낭독을 잘하는 이가 올라가서 낭독하는데,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해서 제법 손짓도 하며 억양도 넣고 해서 목사의 설교 못지 않게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화란에서는 오래 전부터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좋은 설교들을 모아서 출판하여 낭독 예배를 도와주고 있다. 어떤 예배에서는 무려 7,80년 전의 어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낭독하는데 그 내용의 깊이와 경건함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기도 한다고 한다.

화란개혁교회에 있어서 장로의 주요한 직무 중의 하나는 '심방'이다. 한국교회에서는 교역자들이 주로 심방을 하지만 화란개혁교회에서 심방은 일차적으로 장로의 직무에 속한다. 물론 목사도 심방을 하지만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가능한 한 설교 준비와 교리교육에 시간을 투자하도록 교회에서 배려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교인 관리는 교회에서 구역을 나누어 각 구역마다 장로 1인과 집사 1인이 배정되어 자기 구역 식구들의 영적 상태와 생활 상태를 돌아본다. 장로는 1년에 두 차례씩 정기 심방을 하고 그 외에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심방하여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당회에 보고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대개는 교제와 격려의 기회로 삼는다.

장로는 임기제
화란개혁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로직의 임기제이다. 이 제도는 화란에 개혁교회가 형성되면서 얼마 안되어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 당시 장로들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막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장로는 4년 정도(그 기간은 개교회의 규정에 따라  다르다) 봉사 후에 장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장로로 피택될 수 있다. 투표 방법은 먼저 당회에서 장로 후보를 2배수 공천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투표로 선택하게 한다. 이 투표에서 당선되면 다시 장로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 사이의 1년 동안은 휴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장로직에서 물러나서 평신도로 지내게 된다.

그들은 장로직을 명예 또는 권세 직분으로 생각지 않고 순수히 봉사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장로직을 맡으면 열심히 자기 구역 식구를 돌아보며 4년간 봉사하고 나면 스스로 원해서 대부분 물러난다. 그리고 1년을 안식한 후 다시 장로 후보가 되어 피선될 수 있지만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지금 개혁교회에서는 장로 지원자가 부족하여 은퇴하신 신학교 교수님들이 장로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화란개혁교회의 장로임기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던 화란개혁교회의 조상들의 지혜이다. 사실 종신직은 전문적으로 발전되는 경향도 있지만 대부분 권위적이 된다. 그런데 개인(의사와 변호사) 사업자가 아닌 공적영역(공무원)과 결정권을 갖은 직위들은 대중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않으면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부패 되었다고 비난을 받는 정치인들도 4년마다 물갈이를 하기에 거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신 장로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교회 장로들은 장립의 목적과 사명을 위하여 다른 나라 교회들의 예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종신제를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요, 자신을 희생해서 성도를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후대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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