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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목회인가, 겸업 목회인가?선교적 관점에서 목회자 이중직을 논의해야
이 진 기자(충남, 대전)  |  ckaskan1@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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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2  17: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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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목회인가, 겸업 목회인가?

선교적 관점에서 목회자 이중직을 논의해야

'겸업 목회' 또는 '전업 목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우선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다소 거슬리는 표현이더라도 그 만큼 이미 바짝 다가와 있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읽어 주기 바란다.

생활 현장으로 내몰리는 목회자들

우리교단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설교, 기도, 전도, 심방 등 전통적인 기존의 목회를 훈련 받았으며 또한 그것을 통해 누구보다 큰 교회를 이룰 것을 꿈꾸었다. 아마 여기에서 자유로운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기존의 목회활동만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기는커녕 자기 가족의 생활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엄청난 정신적 압박과 함께 목회자로서의 자긍심은 물론 그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목회자들에게는 자신이 원치 않게 주변 지역의 사회적 환경이 갑자기 변하거나 자신과 가족이 처한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소위 특수 목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숱한 목회 현장의 아픔을 경험한 뒤 심기일전, 평범한 농촌에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있던 충남의 어느 목사의 경우가 그와 같다.

교회 개척 후 3년 동안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도와 심방으로 공을 들였는데 주변 지역이 하루 아침에 공업단지로 바뀌었고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그의 평범했던 목회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가정마다 수십 억 원씩의 보상을 받은 마을은 삽시간에 인간적인 온정과 신뢰가 사라졌고 가정들은 파괴 되었으며 마을에는 발 빠른 금융기관과 향락업소들이 줄을 지어 들어섰다.

하루하루 유입되는 낯선 타 지역사람들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로 넘쳐나 마지막 평범한 목회지를 꿈꾸었던 그의 목회 환경은 아닌 말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결국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아동들과 그 가정들을 위한 특수 목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장으로 내 몰린 것이다. 그리고 은퇴를 얼마 앞두고 있는 그는 체력과 영력까지 고갈된 상태로 이렇게 탄식하는 아픈 말을 내뱉곤 한다. "전통적 목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시급한 목회자 이중직 논의

이미 목회지는 포화상태이고 임지를 대기하는 목회자는 넘쳐난다.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신다... 통일 후 북한 교회 재건하러 보내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인일한 자세로 신대원생 수를 무작정 늘려 받은 결과이다. 하지만 실은 신학대학들이 양적이고 외형적인 자신들만의 위상 제고와 방만한 확대 경영이 그 이면의 목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일과 겹쳐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작은교회들을 섬기고 있는 목회자 가정들의 생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로 내 몰린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사그라진다고 하나 차라리 농촌교회는 아닌 말로 ’삽질(농사)‘이라도 할 데가 있으니 다행입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 총회에서도 ‘목회자의 이중직’ 또는 ‘자비량 목회’라는 시급한 문제를 더 이상 피해갈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인즉 '목회자의 겸직 또는 이중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현실의 핵심을 피해가는 말로 보인다. 보다 솔직하고 분명하게 ‘목회자의 겸업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용어가 무엇이든 이미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의 선교 실패 이후 고린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모본을 보이게 된‘자비량 (Tent Maker)' 목회를 이제는 우리가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이 중대한 일을 단순히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런 식의 관점으로 총회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면 이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의 소명과 자긍심에 두 번 세 번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이미 소위 자립교회 목회자들에 비하여 여러 부분 자립대상교회 목회자들은 각각의 노회나 시찰회 안에서 그런 일을 반복해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교회 자립화 정책이라고 하지만 수년 전에는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이었고 그것이 결국 <국내 선교>라는 차원이 아니라 교역자 생활비를 지원하는 관점에서 시행되었기에 절대 다수의 수많은 목회자들의 소명을 고취시키기는 커녕 자괴감에 시달리도록 본의 아니게 총회가 만들어 왔던 것이다. '교회 자립'이라는 말도 우습다. 교역자 생활비를 자체 지급할 수 있으면 그 교회가 자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교역자 한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 되고, 교인들의 의식 속에 목회자들이 생활비에 연연하며 살고 있는 존재들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좀 더 큰 교회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들을 스스로 마다하고 전국 곳곳에서 작은교회들을 지켜내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사역을 하고 있는 우리교단 내의 수많은 목회자들을 무능한 목사로 내모는 것만큼이나 한심하고도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오히려 전업-목회자의 자긍심과 꿈을 스스로 저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생활 현장 속에 들어가 선교적인 사역을 감당한다는 사회 선교적인 차원으로 보고 제도는 물론 선교신학적인 방향에서 격려하고 지원해야 할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생활인 국내 선교사들

목회 전문 사역자들은 사실 제 발로 들어와 잘 적응한 울타리 안의 양을 치는 목회자이다. 하지만 두려움 없이 일반 교우들의 생존 현장으로 들어간 <생활인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이라는 광야에 방목하며 돌보시는 양들을 치는 목회자들일 수 있다. 해외 선교사도 전문 목회자보다 일반 직업인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는 것이 많은 부분 보다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국내 목회만은 꼭 전업 목회자가 하여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자신들만의 리그(울타리 안)'에 만족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교인 모집에 기를 써 왔다. 하지만 운 좋게 그에 합세하지 못한 더 많은 영혼들은 그야말로 <가나안 교인>(거꾸로 읽으면 교회 “안 나가”는 교인)으로 불리고 있으며 누구도 그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가 그 현실에 동참하며 그들의 애환과 아픔으로 인한 방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주님의 위로의 손이 필요한 그곳(울타리 밖)으로 선교적인 훈련 받은 전문 목회자들이 찾아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국내는 목회와 전도, 해외는 선교라는 이 단순한 논리를 이제는 전 교회가 타의에 의해라도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교(Missio Dei)하시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의 민중신학이 고통 받는 세상을 위해 나선 이후 많은 민중목회자들은 지금까지 그런 박수 받지 못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보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시 갈릴리 지역의 지배자였던 헤롯 안티파스가 가버나움과 나사렛 사이에 거대한 헬라도시 ‘찌포리’를 세우고 끌어 모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자만심에 취하여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당시의 고단한 갈릴리 농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동고동락하셨던 길을 또한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총회 차원에서 소위 목회자 겸직,  겸업 문제를 논하려는 자리가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관점들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전업 목회만으로도 충분하여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울타리 목회자들이 울타리 밖의 험난한 세상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겸업 목회자들을 감히 예단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업' 목회자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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