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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민족의 말씀(사순절)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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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3  21: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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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민족의 말씀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렘 31:31-34; 히 5:5-10; 요 12:20-33) / 황남덕 목사

사순절 다섯 번 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이미 주보에 나오는 설교제목만 보아도 아,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이렇게 저렇게 하겠지 하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포기하라는 것이지 하고 결론까지 이미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 요한복음 본문을 앞 뒤 전후 과정과 연결시키어 보면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도 그래서 같은 본문을 두고 평생을 설교해도 늘 새로운 것을 알고 깨닫게 됩니다.  요한 12:20-33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그리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있은 후 유월절 명절 기간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20절에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다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오순절과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키는 3대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해방절이라고도 하는 유월절은 라틴어로 파스카라고 하고 영어로는 ‘넘어간다’라는 의미를 지닌 pass-over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파라오가 내 백성을 해방하라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자 열 가지 재앙을 받는데, 이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이집트의 장자와 짐승의 맏배까지도 죽는 재앙을 받습니다. (출12장) 그날 밤 흠 없는 수컷 양의 피를 문틀에 바른 집은 하나님의 재앙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문틀에 그 피를 바르지 않은 이집트 사람들은 집에 있는 장자가 모두 죽게 되는 재앙을 받습니다. 

“그 피를 보고 내가 너희를 치지 않고 넘어갈 터이니 너희는 재앙을 피하여 살아 남을 것이다. (출12: 13b)유대인들은 이 유월절, “넘어감 (Passover)” 를 종교적 절기로 지키며 선조들에게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의 해방의 사건, 구원의 은혜를 자손대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람 중 그리스 사람이 나옵니다. 이 그리스인들은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태생이 헬라인으로 유대교로 전향한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였고 안식일법과 음식 규정 등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들을 “경건한자 들”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유월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인 이 그리스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라는 예수의 제자를 찾아가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방인들이 예수를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가 탄생하자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찾아온 것과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줍니다. 마태복음의 전승에 의하면 예수가 탄생하고 나서 얼마 후 베들레헴까지 직접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동방은 페르시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듣고 그 먼 길로부터 찾아온 것입니다. 

이제 그 아기 예수가 장성하여 그의 공생애를 다 마치고 죽음을 앞둔 순간, 또 이방인들이 찾아옵니다. 예수의 생애 처음 순간에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이방인들이 예수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마태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의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물론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 사이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찾아와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리스 사람,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찾아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통 사정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중풍병 걸린 친구를 위해 네 친구들이 지붕을 뜯으며 그와 함께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이 예수께 왔습니다. 눈먼 사람들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이름 모를 왕의 신하가 예수께 와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냐고 하며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지식인,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를 찾아가서 거듭남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실의 찬 사람들, 희망 없는 사람들이 ‘선생님 우리를 살려주소서’ 하며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물론 예수를 찾아간 사람들 중에는 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려고, 어떻게 하든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로서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찾아간 사람들의 대부분은 갑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을중의 을, 병중의 병에 속한 사람들로서 당시에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이었든지, 이방인이었든지 시시때때로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 아닙니까? 동기야 어찌되었든지,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으로, 혹은 중고등학교 때 전도를 받아서, 혹은 청년/학생운동 때 예수를 알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예수를 만나고 싶다는 단순한 심정에서 그를 따르겠다는 비장한 결심과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예외는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의 경우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는 근심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결론이 열려진 open-ended story입니다. 그 이후에 이 부자 청년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실천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이야기는 우리의 실천을 요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양적 성장을 위한 교회성장론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살기에 동참하는 예수 따르미들이 많아져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의 마지막 죽음을 앞둔 시점에 이방인들인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가는데 먼저 이들이 예수의 제자인 빌립을 만나 예수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고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께 말을 전합니다.  여기서 빌립과 안드레라는 제자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열두 제자들 가운데 유독 이 두 제자만이 헬라어식 이름으로 표기됩니다. 또 요한복음 6:7-8에는 이 두 사람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닌 제자들로 보도 됩니다. 

아마도 빌립과 안드레는 헬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했던 사도들이었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인들이 빌립과 안드레를 만났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 빌립과 안드레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요한복음서 기자의 신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이 등장하고, 이방인 사도로 쓰임을 받는 빌립과 안드레가 나오는 것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서 장차 이루어지게 될 보편적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의 벽을 넘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포함하는 보편적인 구원의 선포입니다. 이것은 이미 요한복음 4장을 통해서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때가 오면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또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장소를 넘어 지금 새로운 ‘때’를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를 뵙겠다던 그리스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23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빌립과 안드레에게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이 ‘때’는 예수의 전 생애가 목표로 삼고 있었던 때요, 예수의 사명이 완결되는 때입니다. 이 ‘때’는 그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가능케 한 ‘때’입니다.

그 인류의 구원이 바로 유대인도 이방인도 구원받는 보편적 구원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 ‘때’를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가 탄생하자마자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로부터 달려간 것이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온 것을 성서의 기자는 아주 의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 구원의 ‘때’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그를 미워하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기자는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1장)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개인적인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한 대속적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의 본문은 인류를 새로운 생명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만들기 위한 예수의 보편적인 구원을 말하고 이 생명공동체에 반하는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가 영광 받는 그 ‘때’는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쫓겨 나가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kosmos)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현실로 로마제국의 지배, 폭력, 그리고 죽음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 ‘체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알의 밀알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생명문화에 역행하는 로마체제의 죽음의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를 믿고자 하면 예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오늘 우리를 포로가 되게 하고 죽음의 길로 이끄는 이 체제의 시스템에 대해 아니오 해야 합니다. 천박한 자본주의, 소비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 전쟁, 종교적 편견 등에 대해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우상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생명을 죽이는 죽음의 문화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로마가 강제하는 폭력과 죽음의 체제(시스템)을 거부했습니다. 로마의 지배신화를 거부하고 하나님나라의 생명의 신비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몸으로 보여주고자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는 그의 죽음으로 사람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고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의 세계가 올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32절이 그런 의미입니다.“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요한복음은 ‘영광을 받을’ 것과 ‘땅에서 들려 올라갈’ 것이라는 묵시문학적의 표현을 통해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체제를 넘어 생명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새민족 교우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경귀절에 익숙하고 교리에 익숙하면 할수록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는 길은 예수를 날마다 찾아가 만나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밀알 한 알이 되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 다같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새민족을 생각해 봅니다.

[설교 동영상 보기]   http://youtu.be/69-DxEzhd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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