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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으로 귀농한 목회자들진안은 귀농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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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3  2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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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으로 귀농한 목회자들 

전북 진안(眞安)군은 마이산(馬耳, 말의 귀 모양에서 유래)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이 과연 이름대로 편안하고 살기좋은 좋을 까? 이번에 가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과거 교통이 좋지 않고 자연마을과 생활반경이 많이 떨어져 불편했을 곳으로 보인다.  세계관이 좁았을 때지만 불편에 대하여 자족하기 위한 역설적인 이름이으로 보인다.  작은 언덕과 물길,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가능한 터전들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유일의 고산지대로 해발 200m-600m까지 산간마을이 분포된 오지의 약점을 강점으로 “하늘 땅, 진안 고원 길“ 등의 테마를 5개 구간으로 편재, 마을과 사람, 논길, 숲길, 산길, 물길, 고갯길, 옛길를 통하여 사람과 바람을 만나며 느리게 걷는 여행 길로 이름을 올렸다. 

       
 

옛부터 진안은 무주군과 장수군과 인접하여 “무진장”으로 불려지던 중부권 이남 내륙의 척박한 마을이다. 무진장은 같은 전북지역인 김제와 달리 산세가 험하고 전답이 적어 좁은 밭과 다랭이 논과 산간을 개간하여  살아갔던 곳이다. 그래서 다른 곡창지대의 천석꾼 만석꾼은 없다. 자연부락이 산악으로까지 연장된 마을로 긴 겨울과 추운 날씨로 인하여 재배할 수 있는 농산물도 제한된다. 그러나 부지런한 우리 조상들의 손과 발을 누가 이기랴. 끊임 없이 갈고 닦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었다. 한말 천주학의 박해를 받던 이들의 유배지 혹은 은둔처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진안의 산골들이다.

이렇게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산간마을의 우리 조상들은 그 좁고 적은 땅을 맨손으로 일구어 집을 짓고 가축을 기르고 개간하고 옥토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장비의 발전으로 악토을 개간하여 부가가치 높은 인삼과 오미자, 천궁과 천마, 흑돼지, 표고, 한우등 천연 먹거리 농산물로 잘사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진안군이 유명해진 것은 2000년 이후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귀농 귀촌 바람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뭉쳤다. 그리고 10년 후를 생각했다. 그때 누가 얼마나 남아있을까?를 고민했다. 당시 농촌은 젊은이들이 사라졌고 더 이상 어린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과 주민들이 생겼다. 농촌이라고 해서 농민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서로 다른 기능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렇게 귀농한 이들이 조직한 “진안군 귀농귀촌협의회” 가 선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협의회의 초창기 멤버이며 “삼백오십” 이라는 계간잡지(통권 27호) 발행인 박후임씨가 만드는 문집 이번 봄호를 보니 “진안에서 산지 올해로 십년이 넘었습니다” 라는 글이 보인다.

'일하는 예수회' 호남지회 방문
호남지역에서의 모임으로 방문한 진안군의 옛 동지들과 반가운 해후를 하게 되었다. 먼저 황금리의 신승원 목사네와 다음은 학선리 박후임 목사 가정이다. 그녀는 10여 년 전 구로동의 새터교회 2대 목사로 창립자였던 손은하 목사(김제 황산)에 이어 귀농한 대찬 여성 목회자다. 두 분 다 산업선교 훈련을 받고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과 어린이집 사역을 하던 싱글들이었지만 귀농을 작정하자 하나님은 평생 동반자인 새 신랑들도 보내 주셨다. 이를 두고 여성 목회자들이 귀농을 하면 하나님이 신랑을 보내주신다는 말이 나왔는 데  그후 용기를 얻은 여성 후배들인 전영미 목사(담양)  신미경 목사(?) 모두 싱글이었지만 귀농을 하자마자 하나님께서 맘 좋고 능력있는 자연염색가와 양봉가를 보내주셔서 결혼하고 잘들 살고 있다.

   
 

이들이 목회를 그만 두고 귀농을 한 것은 성직자로 가르치고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 동안 섬겨온 이 땅의 사람들, 변두리 인생들, 생명의 뿌리이며 고향인 훍과 풀향기 내음이 가득찬 원초적인 고향으로의 귀촌이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며 욕심버리기, 내려놓기를 실천한 것이다. 특히 박후임 목사 부부가 짓고 거주하는 봉곡리의 넓직한 스트로 베일((Straw Bale - 볏짚을 압축하여 벽재료로 삼는 공법으로 친환경 재료로 인한 단열과 환기에 최고) 주택은 상쾌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과 생활에 최소한의 필요한 것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 많이 거두고 팔아 돈 벌기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농기구도 나혼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가정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공재이다.

       
 

그래서 제철에 나는 농산물인 쌀과 현미 각종 채소류와 오미자등을 기간별로 꾸러미로 만들어서 약 20여 가정과 나누는 것이 수입의 전체이다. 박후임 씨의 남편 이재철 씨 또한 진안 귀농귀촌의 젊은 지도자로써 “마을 살기와 만들기” 를 제일 먼져 주창하고 이것을 실험적으로 진안에서 뿌리 내리게 하고 전국적으로 전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 부부의 마을사역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은 행복한 노인학교와 학선리 마을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지금은 폐교된 봉곡분교에 만들어졌다. 이 봉곡교회는  출석 교인 30여 명에 불과한 작은 교회지만 PCK 98회기 총회장이였던 김동엽 목사(목민교회)의 모교회이다. 부친은 이 분교의 교감 선생님이었고 이 분교를 유치하기 위하여 대지를 헌납한 당시 봉곡교회의 집사였다.

   
* 마을 박물관에 물품을 기증한 분들이 직접 작성한 설명서가 정겹다.

그러나 그후 다시 학교는 폐교 되어 진안교육청에 귀속 되었고 그후  김동엽 목사는 부친이 헌납한 이 땅을 다시 구매해서 마을에 헌납하여 학선리 마을박물관 건물로 사용하고 다른 교실에는 어른들의 한글학당과 취미활동(서각과 흙공예)장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박후임 목사는 이곳의 한글 선생님이다. 잊혀져 가는 시골 집의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을 모아보니 역사가 되고 자료가 되었다. 작은 앨범과 사진,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되자 마을의 볼 거리가 되었다. 

       
 

현신 동문들과도 해후
이외에도 진안군 백운산에는 정선웅 목사(부인 이혜순 목사)가 2008년 귀농하여 자연을 벗삼은 자연농법을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산을 태우고 개간하고 파헤치는 정복적이고 공격적인 농업이 아닌 나무와 돌과 풀을 받아 드리는 자연에 기대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하여 자연과 숨쉬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이었다는 것이다. 조상들은 원래 산이 주는 무한의 자원들인 산채와 버섯 열매, 땔감과 물 등 무한의 혜택에 감사하고 공경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농경문화가 정착되자 인간은 자연에 대하여 더 이상 공존하는 방식이 아닌 개간과 인위적인 개입은 증대와 성장론으로 자연 파괴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미 선진국에서 나온 것이 바로 경영농업이 아닌 자연농업으로 경운기, 농사용 비닐, 농약, 비료, 제초제 사용하지 않기 농업으로 지난 7년을 살아왔다.

정 목사 부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로도 사역한 바 있는 데 남아공에서의 경험이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도 흑백 문제 외에도 11개의 부족과 언어를 갖고도 큰 갈등없이 살아가는 남아공의 국가 정책인 Rainbow Nation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다양성속의 독립성 혹은 공존을 경험한 것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빠르게 걷기 그리고 더 많이 거두기에 노예가 된 우리의 농촌 현실에서 볼 때 꺼꾸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 말로 가장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보존(JPIC 신학)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말과 글로하는 신학이 아닌 몸으로 사는 생활 신학자인 것이다. 

여기서 만난 동문들이 비록 다른 동기들처럼 화려한 목회를 하지는 않지만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왔던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같은 음식과 삶의 자리에서 생활을 하며 친구들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승용차를 타고 좋은 식당에서의 음식과 자녀들의 높은 교육은 포기했지만 산에서 들에서 나무와 돌 풀과 바람을 맞으며 자연을 돌보고 있었다. 그외 강수은 목사 부부도 진안에 귀농하여 마을 사업과 함께 살기를 하고 있었다. 

원래 우리의 일정은 정기 모임으로 운장산 부귀면 황금리에서 7년째 하늘 길 수도원을 지키고 있는 신승원 목사(전 영등포 산업선교회 총무)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 수도원은 '일하는 예수회' 초대 회원인 김영락 목사(현재 홍천 하늘길 수도원)가 일찌기 수도적 삶을 살기 위하여 귀농하여 직접 지은 흙 돌담집이었다. 그러나 홍천으로  다시 이주를 하시면서 후배인 신승원 목사에게 수도원을 맡긴 것이다. 지금 황금리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신승원 목사는 그 동안 전기도 사용하지 않던 수도원에 전기도 넣고 수도하는 이들을 위하여 수도원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일상의 감사를 느끼기 원하는 이들이 방문하면 원하는 만큼 묵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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