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원 장로(경북 효선교회) 1931-2007 - 예장뉴스
예장뉴스
연못골 이야기(기획)I will miss your(추모)
故 김영원 장로(경북 효선교회) 1931-2007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6.12  23:02:35
트위터 페이스북

故 김영원 장로(경북 효선교회)
1931-2007.1.1.(소천)

김영원 장로는 1931년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1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병약한 아버님을 도와서 농사 일과 집안 일을 거들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지었다.

   

5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33세 때 장로가 되어 1969-1985년까지 16년 동안 목회자 없는 고향의 교회에서 설교를 해 왔다. 예장 농목과 기독교 전체의 농민목회자와 운동가들에게 큰 버팀이 되어 주셨고 기농과 전농의 조직에도 앞장서서 관여하셨다. 예장의 풍토에서 거기다가 경상도의 장로로서 드물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목회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며 가르쳐 주셨다. 안동 일직교회의 종지기셨고 동화작가셨던 권정생 선생과 같이 우리 통합측 평신도로서 목회자 못지 않게 유명한 분이다.

예장의 젊은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자주 모시고 농사 얘기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으면 농사를 지으면서도 어찌 그렇게 해박하신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시는 혜안인 놀랍던 분이시다. 어눌하신 말투지만 인자하시고 영락없는 농부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온 천하를 품고도 남을 넓은 이상과 꿈을 가지신 분이다. 아마 이 분에 관한한 농목친구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김 장로님이 이런한 농촌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는 이렇다. 1978년 김영원 장로는 과수원 농약살포 도중 농약에 중독 되어 쓰러진다. 이 농약 중독 사건은 자신의 농업의 철학을 세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때 돈을 버는 것보다 생명이 소중하고, 내 자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작물도,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뒤 자연스럽게 농민 운동, 민주화 운동, 유기 농업 운동, 환경 운동에 참여한다. 한국 기독교 농민회 전국회장, 유기농업실천협의회 전국회장 정농회 이사, 우리농산물 먹기운동 공동의장, 기독교 사회운동연합 공동의장, 낙동강살리기 운동 공동의장 등을 거치면서 수백회의 강연과 유기농업 철학 전파에 전념하게 된다. 그를 일컬어 유기농업 운동의 1세대라고 할 만하다.

그는 지금도(2005년) 파킨슨병에 힘든 몸을 가누고 번역에 몰두하며 청탁받은 논문을 작성한다. 많은 유기농 운동가들은 노구에 투병을 하면서도 생명 농업 운동을 활발히 펼쳐가는 그를 한국 유기 농업의 대부로 여긴다. 그의 자제(효선농산대표 김정욱)도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농사도 유기농법으로 짓고 지역의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김영원 장로는 유기농업으로 시작할 초기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말한다.

“발에 밟히는 건 낙과들이요, 그나마 앙상한 가지에 마치 탱자처럼 매달린 사과는 심식충에 의한 피해로 스펀지 같고 9월이 되면 내년 봄에 피어야 할 꽃이 벌써 다 피어나니 집사람은 아예 밭으로 가지 않으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3-4년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마냥 포기할 수 없어서 농약을 살포하는 대신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미생물, 초목회, 막걸리, 식초, 마늘즙액, 목초액, 흙설탕 발효액 등 갖가지 민간농법을 총동원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과일과 농산물은 겉모양에서 보잘 것 없어 시중 출하가 어려웠다. 누가 벌레먹은 배추를 사겠는가? 생산된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채효소를 제품화하게 된다.

“이제 이십 몇 년 간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선택을 잘 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14대를 이어 전통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보기 드문 농가를 이루었다. 김영원은 효선농산의 실질적인 창업자이다. 

   
번역하신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위한 용기" 일서 원본

김영원 선생은 어떻게 농사를 짓나(저자미상)  

선생은 논 1,200평과 미나리 200평, 밀 600평, 마늘 700평, 산을 개간한 사과 과수원 2,000평 농사를 짓는다. 사과는 성기게 심고 간작으로 고구마, 감자, 고추, 배추, 무, 민들레, 돌나무, 쑥, 신선초, 머위, 아카시아꽃, 질경이, 홍화, 호박 등을 연중 재배한다. 논은 손으로 잡초를 뽑는 방식으로 유기재배하고 있는데 어느 날 물이 깊은 곳에는 풀이 안 나길래 자세히 보니 투구새우(철갑새우)가 물을 흙탕물로 만들어 잡초의 발아를 억제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논뚝을 30센티미터 높게 만들고 잘 고른 후 물을 좀 깊게 대어 투구새우와 함께 김을 맨다고 자랑한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은 논에는 다 투구새우가 있다고 한다. 알로 월동하니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새로운 농법으로 주목된다. 사과는 완전 무농약으로 키우기까지 애도 많이 먹었다. 과도 적고 병도 많아 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풀과의 전쟁을 하다가 서로가 살길을 찾았는데 그것은 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풀로 효소를 만들고 찌꺼기는 물을 타서 목초액, 현미식초 250-300배와 함께 1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뿌려주니 사과도 지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사과나무는 키를 높이 키우지 않고 6월10일 전후해 가족농에 의존해 봉지를 씌운다. 야채효소 ‘풀의정'은 삼투압을 이용하여 유효한 성분들을 전통 항아리에서 6개월이나 자연발효(효모수 평균 3억/ml)시켜 만든 건강음료이다. 쑥, 미나리, 민들레, 보리순, 무청, 아카시아꽃, 모과, 유자, 씀바귀, 잔대잎, 두릅, 돌나물, 솔잎, 박하잎, 어성초잎, 질경이, 삼백초, 원추리 등 35가지 야채를 넣는다. 가족농으로 적은 양을 생산하기 때문에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풍족한 양을 공급하진 못하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다.

퇴비는 산야초, 낙엽, 부엽토, 깻묵, 쌀겨, 밀기울, 발효약찌꺼기, 농부산물, 초목회, 인분뇨, 토착미생물 등과 함께 발효시켜 사용한다. 3번 정도 뒤집기 한다. 인분을 퇴비로 넣기 위해 동네 변소 청소는 선생 부자가 도맡아 한다. 역시 선생의 지론 한마디 “3년 안에 자기 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똥과 밥은 항상 순환되어야 한다. 유기농업이란 우리 뒷간을 복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선생은 항상 주장한다.

/효선농산 홈페이지 (http://www.hyo-sun.co.kr/)

연락처 (아들 김정욱) : 011-9598-5704,   효선농산 : 054-833-5704 / 843-0501 
 

▶ 김영원 장로 이력 

한국 유기농업 운동의 1세대, 1930년 경북 의성 춘산면 효선리 출생,   5대 기독교 집안으로 33세에 장로가 되다.   1969년-1985년까지 16년간 목회자 없이 강단에서 설교,  과수원에서 농약살포 중 쓰러짐 (1978),  농약의 위험성에 대한 고민, 유기농업을 홀로 시작,  한국기독교 농민회 전국회장,  오기농업실천협의회 전국회장,  정농회 이사,  우리 농산물 먹기운동 공동의장, 기독교 사회운동연합 공동의장, 낙동강 살리기 운동 공동의장,  기독교사회운동연구원 집행위원,  한살림 생산자협의회 초대회장, 가톨릭농민회 유기농업자문위원, 전국귀농운동본부 고문,  국민은행 환경상(1회),  안동 MBC 향토문화상

▶ 김영원 장로님 책 소개

<농민예언자 김영원의 들소리> (흙과 쟁기),  <효선리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 (종로서적),
<눈뜬 장님밥상, 김영원의 유기농업이야기> (소나무) 

   

 <김영원의 유기농업 이야기 “눈뜬 장님 밥상”>

출판사 : 소나무 / 출판일 : 2002년 10월

주요내용
1부 ― 왜 유기농업인가? (환경 생태학적에서 바라본 우리 농업의 미래)
2부 ― 유기농사 짓기
3부 ―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미국은 늘 한국에 식량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사람들은 밭으로 돌아간다.” 등 인문사회적 에세이가 실려있음. 

<효선리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

출판사 : 종로서적 / 가격 : 4,800원

주요내용 / 농업은 정말로 포기되는가 / 유기농업은 공존과 평화의 원동력 / 벌레가 먹을 수 있어야 사람도 먹을 수 있다. / 자연과 공존 못하면 이웃관계도 끊긴다.

 <농민 예언자 김영원의 들소리>

출판사 : 흙과 생기

<효선교회 100년의 숨결 - 평신도의 교회사>  대한기독서회 / 2003년
 

효선교회 100년사 대한기독교서회 / 183쪽 / 7,500원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개인 역사의 날줄과 씨줄이 엮여져 만들어진다. 한국교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 없이 묵묵히 자기 소명을 감당해온 작은 교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교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한 개인 혹은 개교회의 역사에 아로새겨진 세월의 나이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경북 의성에서 평생 정직한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신앙을 지켜온 김영원 장로의 육성은 그저 한 노인의 목소리로 치부하기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73세의 노인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그의 곁에 존재했던 효선교회의 100년 역사 이야기는 단순한 개교회 역사가 아니다. 이 작은 농촌교회 역사에 한국교회의 역사가 녹아있고 농촌교회의 아픔과 교회분열의 절망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교회 역사를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첫 부분은 을사보호조약(1905년 11월)이 성립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1906년 1월 세워진 효선교회 초창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 김 장로는 일제의 검은 속내가 점점 드러나는 상황 앞에서 교회가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있었는지 잔잔한 필치로 적어가고 있다.

1912년부터 3년 동안은 효선교회 역사상 최대 부흥기.  200여 명의 교인들이 너나 없이 하나가 되어 교회를 건축하는 광경이나, 당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감격적이다.

지금 교회처럼 목회자가 강단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하는 모습이나, 180리 길도 마다 않고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봇짐을 지고 걸어가는 성도들의 모습은 잊혀진 우리 선진들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이 교인들의 일상에 밀착되었던 장면을 보면, 지금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교회문화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효선교회 역사에 칭찬할만한 사건이나 널리 알릴 미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수난기를 겪으며 신사참배 문제로 순교를 당한 권중하 전도사 이야기나, 막상 해방이 되고 당회장으로 처음 부임한 사람이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이다.

아직까지 이어지는 아픔도 존재한다. 작은 산골마을 교회가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으로 분열되던 여파로 둘로 갈라진 얘기는 현재 진행형인 비극이다. 김 장로는 교회 분열의 아픔은 평신도가 나설 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는 전망으로 글을 맺는다.

이 책은 단순히 효선교회라는 작은 농촌교회 이야기가 아니다. 일찍이 유기농업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16년 동안 목회자 없는 농촌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며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동참한 노장로가 외치는 한국교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김 장로는 지금 우리의 신앙이 불과 100년 전의 조상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너무 변질되었다고 한탄한다. 다시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선진들의 장단점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당당뉴스 

김영원장로님이 남기신 말씀

정부에서는 이념이 아닌 자본의 논리로 유기농업을 이끌고 갑니다.   이념을 가진 사람은 죽기까지 합니다.유기농업을 하면 생활도 자연히 해결 됩니다.   8시간 노동한다고 해서 해방된 노동이 아닙니다. 농약 2시간하고 하루 종일 쉰다고 해방이 아닙니다.원진레이온에서 1주일 3일만 일한다고  해방이 아니지요. 노동 해방은 시간이나 양의 개념이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가 실현되는 노동이 해방된 노동입니다. 소득이 높아지면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병원에 가지않고 자본의 논리에 따른 강요된 선택을 하지 않고,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 공업사회의 붕과라는 책을 쓴 스치다 다까시는 석유문명 다음의 문명에 대해서 축력 문명이라고 말 합니다. 부족 자원의 중심으로 한 문명은 페기물을 버릴 곳이 없어서 자멸하게 됩니다.

축력문명 시대에는 식량 약탈 시대가 도래하여 식량을 감추는 기술이 발달하게 됩니다. 도시의 약탈자로부터 식량을 숨기기 위하여 스치다는 마를 심으라고 권합니다.마는 활용도가 높은 식량 자원일 뿐만 아니라 위기의 시에 위에 나온 줄기만 잘라 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줄 알고 약탈로 부터 안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 구원의 방법은 공생의 문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자에게는 공생의 이웃이 없습니다.석유 문명에 대한 예견은 종교적 발상이 아니라 학자의 학문적  소신으로 제안된 것 입니다.

권정생 선생은 생활 수준을 70년대 수준으로 저하하자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성서를 보면 초기 성서저자인 누가는 '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했는데 부자로 구성되었던  마태 공동체는 복음을 재 해석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 ' 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됩니다.  제도난 체제에 의한 가난은 쟁취해야 합니다.그러나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게 되면 모두가 부자가 됩니다.이것이 천국의 모습 입니다.

다음 시대의 문명은 공생의 사회와 문명으로 태어 납니다.  현실을 보는 데는 두개의 눈이 필요 합니다. 하나는 벌레의 눈 입니다.벌레의 눈은 주위를 살피는 눈 입니다.  또 하는 매의 눈 입니다. 높히 떠서 전체를 관조하는 눈 입니다.  21세기의 를 보는 눈이 있어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양식이라는 한자 말을 풀어보면 양 (糧)은 米 (쌀) 과 量 (수량) 이 합쳐졌습니다. 량이 보장 되어야 하죠. 이 말을 보면 양식은 기본적인 양이 보장 되어야 하고,사람의 몸에도 좋아야 한다는 말 입니다.   캄보디아 폴 포트정권은 물물 교환 경제를 시도 했는 데 이 제도가 시행되자 마자 식량을 확보 하기위해 도시를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을 합쳐 7천만이 먹을 식량이 자급되지 않으면 통일을 그냥 줘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식민지 (植民地)를 食民地라고 얘기하는데 다국적 기업에 의하여 식량이 지배당한 것이 식민지입니다.  영국에서는 리카르도의 비교 우위론과 멜더스의 인구론 이라는 두가지 가치가 영국의 미래를 놓고 토론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은 섬나라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리카르도 이론에 따라 공산품과 농산물의 교환이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따른 문제는 2차 대전에서 찿아 왔습니다.독일은 영국의 해안을 봉쇄했고,영국은 식량의 수입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아마 전쟁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영국은 독일에 손을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현제 영국은 식량 자급도가 120%입니다.농업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 했습니다.

농업은 반드시 복권됩니다. 무엇을 선택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장래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농업의 내일을 보는 철학이 없는 상태입니다. 농업을 짓되 자급 자족을 기반으로 가난을 수용하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유전 공학에의 도전은 신에 대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약탈 농업은 어느 시점에선가 농약,비료로 인한 기간을 초래 할 것 입니다.

문명의 종말은 기근 등의 비극의 사태를 초래 합니다.  낙관론은 집권 세력의 이론 입니다. 비관론은 양심 세력의 입장 입니다.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결코 낙관적 이지 않음을 인식하고,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의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감리교 농목의 정주 목회훈련생들의 김영원 장로님 방문기

날 짜 : 2004년 9월21일 (정원재 목사, 5기)  장 소: 의성 효선리 김영원 장로님 댁

김영원장로님은 뵙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분이시다. 또한 우리나라 생명농업대부이시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다. 도착해 인사를 드리고 장로님을 뵈었다. 15년전부터 파킨스병에 걸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떨리는 데도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떨림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드시고 말씀을 이어가시는데 얼굴이 정말 환하다. 여러 가지 한국농촌이 직면한 문제 쌀개방이라던지 가족제도의 붕괴등을 이야기하시며 꼼꼼하게 자신의 삶과 연계해 말씀해 주신다 .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서도 10월에 있을 유기농관련 모임에서 발제하실 원고를 차목사님께서 대신 읽으며 우리는 중간중간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했다. 마음속에 와 닿는 말씀은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척도는 농업이라는 말씀이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농업을 어떠한 가치로 여기는가?

평생 농사꾼으로 사셨는데 어찌도 그리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지 전문가들도 와서 배워갈 정도란다. 그 이유는 우리보다 농업선진국인 일본의 서적들과 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연구하고 삶을 통해 적용함으로 얻어진 진짜 지식이다. 점점 지구는 온난화다 사막화다 이상기후로 기아시대는 다가오는데 농업을 포기하는 우리나라는 도대체 제정신이냐고 호통을 치신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일제신민지 시대를 살았듯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이러한 시대에 대안은 “공생공빈” 이라 하시며 너무 많이 먹고 가지려하고 나누려하지 않는 인간의 악한습성을 꼬집으시며 하나님께서도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음을 다시 깨우쳐 주셨다. 왜 김영원장로를 “농민예언가”라 하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며 맛있게 지어주신 저녁식사를 하는 중 부인되시는 권사님께서 아침식사 준비 할 터이니 먼길 가시는데 먹고 가란다.

차목사님은 원래 아침은 않먹기로했다고 사양하시자 권사님말씀이 “우리 집에 엘리야의 기름병 있는 것 모르세요?” 라며 꼭 먹어야 한단다. 이집엔 일년이면 많게는 1천명의 사람이 손님으로 온단다. 그런데 지겹고 짜증날 법도 한데 정말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장로님이 있기까지 아내와 아들 며느리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던지 주께 하듯 하라 하셨는데 이분들의 삶을 보며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과 과연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과 불이익이 되는 사람을 나누어 대하지 않았다 되돌아보게 된다. 떠나는 길 직접쓰신 “효선교회 100년의 숨결”이란 책을 일일이 싸인해서 주시며 문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신다.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며”.... 

이기선 목사 (9월 21(화)일)   장소: 의성 효선리 김영원 장로님 댁 방문

강문필 선생님 댁에서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린 후에 의성에 계신 김영원 장로님 댁을 방문했다. 김영원 장로님은 기독교 농민회부터 시작해서 농민운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분이라 한다. 처음 방문해서 뵙는 분이지만 그 모습에서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김영원 장로님은 농민 운동을 하면서도 그때부터 관행농법이 아닌 유기농법이 대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농사를 유기농법으로 짓고 계신다고 한다. 김영원장로님댁은 김영원 장로님 내외분과 그리고 아드님이 김영원 장로님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계신다. 이렇게 그의 자손이 대를 이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 정말 훌륭해 보였다.

그것도 농사를 대를 이어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그 아드님도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면서 농민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고 농촌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면서 김영원 장로님은 대가족 제도의 부활이 문화의 부활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김영원 장로님과 같이 대화를 나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몇 년안에 정말 식량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연은 황폐해지고 그로인한 자연 기이현상, 그리고 농촌의 몰락등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식량위기에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식량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농법과 대안사회의 대안은 공생, 공빈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모두가 가난해져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만 부유해지고 농촌은 가난해지는 이런 기이현상으로는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없다는 것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모두가 가난해져서 나누는 삶을 삶아갈 때 다같이 함께 살아나갈 수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참 답답함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김영원 장로님이 말씀하신 이 위기들이 지금 내 마음에 그리고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유일 목사 (5기)   9월 21일(화) 장소: 김영원 장로님댁  

 마늘로 유명한 의성, 김영원 장로님댁은 94년에 한번 와보았던 곳이다. 장로님은 병으로 불편하신 몸인데도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고 바른 자세로 정성껏 대하여 주셨다.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호전되어 보이셨다. "누구에게나 질병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뜻 없이 병을 주시는 게 아니다. 병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한다. 병을 모시고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로님은 지금도 번역작업과 집필활동을 하고 계신단다. 손수 집 지었던 얘기를 하시던 중에, 목수의 4대 덕목을 알고 그것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첫째, 다림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물반 곧 수평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로는 각도 곧 직각(90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로는 용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로님은 이것은 목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림줄을 볼 줄 안다는 것은 수직을 볼 줄 안다는 것으로 정의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며, 물반 곧 수평을 볼 줄 안다는 것은 평등을, 각도를 볼 줄 안다는 것은 편향이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용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곧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시며 교회는 그렇게 지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과연 귀담아 들을 말씀이라고 생각되었다. 기독교 농민운동의 대부라고 하면 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더 강하게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직접 만나본 장로님의 모습은 올곧고 진실된 신앙인의 모습이셨다. 이번이 차목사님과 우리일행을 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성심껏 대해주시는 태도가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아름답고 선하다 !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길을 걸으시더니

바야흐로 오늘 아침,

육신의 옷 가벼이 벗어놓고서

떠나온 본향으로 돌아가시는가?

위대하고도 의연하다, 농부 김영원!

 나 살려고 세상 죽이던 어둠의 길에서

세상 살리려고 나 죽이는 빛의 길로

일찍이 돌아섰던 바울 선배의,

이 세상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간곡한 권면을 쫒아

때로는 준엄한 저항의 깃발 앞장서 나부꼈고

때로는 세상의 차가운 외면 등에 지고서

향기로운 똥거름으로, 남몰래 사과나무 뿌리만 껴안고 울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 읽으라는 옛 조상의 가름침 받들어

손바닥은 나무껍질로 갈라졌고

돋보기는 해마다 두꺼워졌다.

 새벽 제단 눈물로 지키던 보수 장로가 시위 주동하는 운동권 진보 장로로,

농약투성이 거짓투성이 관영 농부가 무농약 무공해 자연 농부로,

환골탈태의 눈부신 길을 걸었지만,

유유한 강물처럼 언제나 고요하고 한결같았다.

 진실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길 홀로 걸으시더니

오늘 마침내 고단한 육신 벗어놓고서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시는가?

아름답고 선하다, 인간 김영원!  

<2007년 1월 4일  이현주 목사 씀>

[관련기사]

예장뉴스 보도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aum.net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왕보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