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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01  10: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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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거려도 정의의 길로 가자

시편 37: 23-24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의 가는 길을 기뻐하신다면 그 사람의 발걸음을 굳게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비틀거릴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If he stumbles, he’s not down for long)  사역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는 녹색평론에 김종철선생이 번역한 책의 제목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에 적합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전생애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원제는 “Stumbling Toward Justice” 이라는 책으로 저자인  ‘리 호이나키’는 자신의 삶이 정의(justice)를 향한 여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 링컨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가정이였다. 그는 링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1946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중국에서 근무를 하였고, 제대 후에는 ‘제대군인 원호법’ 에 의거하여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대학시절 그는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토머스 머턴의 자전적 기록 《칠층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아마도 이것이 그 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회고하고 있다. 그는 1951년에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갔고 1959년에는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60년에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서 중남미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민중교육학자 이반 일리치를 만났다. 일리치와는 평생에 절친한 벗이 되었다. 2년 뒤 그는 남미 칠레로 갔고, 그리고 다시 4년 뒤에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일리치가 쿠에르나바카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합류했다. 1967년이 돼서야 미국으로와 결혼을 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대학원에 들어가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박사논문을 작성하는 도중에 베트남전쟁의 배후인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가족과 함께 다시 남미 베네수엘라로 자발적인 망명을 하였고 거기서 여러 해를 지낸 다음,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일리노이주의 생거먼대학이라는 새로 개설된 실험대학의 교단에 섰다.

 

그러나 7년 후 그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가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대학을 나와 시골로 가서 농부가 되었고, 거기서 “경제주의/화폐중심 사회를 벗어나  얼마나 벗어나서 살 수 있는지” 를 실험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일리치와 협력해서 일했다. 2002년 이반 일리치가 고인이 되기 직전 The Challenges of Ivan Illich (2002) 등의 책을 편집하였고, 다시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가르쳐왔다.  이민자로 미국에서 안정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는 그가 평생을 신앙인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세상실천이라는 과제를 고민하며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우리는 구약성서의 아모스나 다른 예언자들의 책에서 쓰고 있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라는 용어를 발견합니다. 그 책에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히 말한다면 정의와 공의가 없는 세상, 아니 정의와 공의가 묵살되고 짓밟힌 세상에서 용감하게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기뻐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늘 불온한 사람으로 취급되였고 사상적으로 낙인찍혔다.  브라질의 돔헬더 카메라라는 주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왜 가난한지를 말하면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한다”

 

  정의와 공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첫째는 ‘올바름’, ‘의당 그래야 할 바, 표준에 부합하는 것,  둘째는 ‘일을 바로잡는 것’, ‘잘못되고 압제적이거나 통제 불능의 상황에 개입하여 그 일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正義는 正意되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행동이다. 리호이나키는 자신의 전생애를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미국의 최고대학(세계최고 지성의 전당) 하바드대학의 최연소 종신교수가 된 마이클 샌달이라는 교수가 강의하고 가장 인기 있고 많은 학생들이 수강한 “무엇이 정의인가”? 라는 장좌가 세계적으로 큰 열풍을 일으켜서 그 강의가 책으로 출판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적년에 한국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 데 한 100만부쯤 팔렸다고 합니다. 비소설 분야인 인문서적이 그것도 최고의 엘리트들이 들을 수 있는 쉽지 않는 강의 내용인데 이 정도면 한국의 지적 수준은 최고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강의 동영상도 듣고 평론도 보고 책도 보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내용이였습니다. 어려운 내용인데 이렇게 많이 팔렸나? 그런데 그것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살 때 꼭 필요해서 사지만 베스트셀라라고 하면 지성인들은 우선은 다삽니다. 장서로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필요하지는 않치만 그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그 책를 팔아줍니다. 즉 이 책의  제목인 “정의” 라는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우리사회의 정의가 무너진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그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출판시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국고를 들여서 한 토건사업 4대강 정비로 건설업자는 돈을 벌었지만 고용은 되지 않았고 이로 인한 국가재정의 불균형 지출로 1,00조의 국채가 누적되였습니다. 전월세의 급등과, 부동산경기의 하락, 불경기 고물가, 거기다가 부산의 제일, 토마토등 제 2금융권의 대출에 전현직 고위층과 대통령측근들의 연루로 인하여 사람들은 국가정의가 무너졌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샌달이 그것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정의에 대한 갈망이 욕구가 그 책의 판매를 추킨 것입니다.

    

 리 호이나키가 살았던 당시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킵니다.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군사력을 주둔하려는 속셈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해병대가 판견됩니다. 수렁속의 전쟁은 지루하게 미국을 수렁으로 넣습니다. 급기야 한국군대를 파병합니다. 미국은 이미 중남미 리콰라과등에서도 미국의 자본과 대토지 지주들을 위하야 수많은 침략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미국정치와 사회의 타락과 부패에 대항하여 미국의 지성들은 반전운동(히피와 마리와나 락음악)과 병역거부로 대항했습니다.

 

그래서 밥딜런과 죤 바에즈같은 대중가수들이 사랑이나 낭만이 아닌 평화와 생명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요. 요즘도 우리사회에 배우 김여진이나 방송인 김미화, 작가  이외수 사회자 김제동, 가수 정태춘과 안치환같은 이들의 사회적 발언도 그런 맥락입니다. 호이나키는 제국주의의 불의와 노동자들의 희생속에서 만연되고 부추키는 미국의 소비주의 문화에 저항하며 순례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속도와 량, 성공과 제일을 중요시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리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고 힘을 내게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인생길이 ‘직선’ 트랙이길 바라고 그가 원하는 목적지에 단번에, 최단시간에 누구보다 더 먼져 도달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호이나키는 시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자원하는 ‘순례자의 여행’ 을 통하여 시대를 고뇌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선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하고 좋은 길을 원한다. 그래서 범죄하는 것이고 남을 누르고 이용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지적으로 안전된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투자하고 헌신하고 부를 축척하여 유산으로 남겨준다. 누구도 자기 자녀들이 낭떠러지, 평원과 산맥, 웅덩이와 흙먼지, 작렬하는 태양빛과 강도나  맹수와 위험이 혼재된, 정리되지 않은, 정돈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경쟁사회의 피해자이며 낙오자이면서도 자기 자식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도록 자신이 대신 나서서 희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자녀들에게도 소박한 꿈과 삶을 가르쳐야 하고 출세와 욕망을 버리고 공생과 상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저자의 여정도 이러한 비틀거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타국으로의 망명생활, 조국으로의 귀환, 교수생활, 교수직을 버리고 시골 소농으로 살았던 시간, 돈이 필요해서 하게 된 학교 식당이나 주방에서의 노동, 멕시코로의 여행등등..... 그의 길은 흔히 안정된 출세와 편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지만 빛과 같은 삶은 경쟁에 기반한 탐욕의 경제가 아닌 공생과 공락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적인 경제에 대한 비전, 시대정신과 지배문화를 거스르는 삶을 추구하는 혹은 추구했던 ‘거룩한 바보’ 들에 대한 예찬입니다. 


 사회적 기업, 일자리 창출, 협동조합 운동 모두가 경쟁에서 낙오되고 뒤쳐진 이웃들의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비틀거릴지라도 그 길로 가는 사람이 축복된 것입니다.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고 자본이 주인이 되여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다. 대기업의 탐욕과 교만과 더 많이 벌기 위한 경제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합니다.

 

이제는 공생과 상생의 경제가 대안입니다. 이 보다 더 무슨 발전과 번영을 원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집을 봐도 사는 것을 봐도 예전보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늘 허기진 짐승처럼 물질의 번영을  탐구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범죄는 저는 감사를 잊어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나라들이 많습니까?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살리는 정치와 경제가 되야 합니다. 지구와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부는 전 세계를 충분히 먹일 수 있지만 너무 평중되어 있고 이윤추구를 위하여 악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을 풀어줄 대안을 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한 정치나 제도가 절대로 자동적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제가 기고한 글을 소개하므로 마무리합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2012년 1월 25일-29일까지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대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주제로 세계 최대 경제 포럼(WEF)이 열렸다. 현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40여 개국 정상과 18개국의 은행관계자, 유엔의 반기문총장, 라가르드 IMF총재 등 세계의 정치, 경제 지도자 2천 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이 회의가 이번에도 주목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최근 유럽경제의 위기와 이에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경제성장으로 인한 무한의 이익을 누린 소위 부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런 기대를 예견했듯이 개막 전야 환영 리셉션에서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지금 세계화로 인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가 20~30%의 낙오자를 양산했기 때문에 사회 통합이 깨어졌다고 하면서 “우리가 죄를 범하였다” 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세계는 심각하게 고장 난 이 시스템을 이대로 더  끌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아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대변혁을 해야 한다는 긴급제안을 했다. 이에 힘입어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대부분의 지도자들도 이구동성으로 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약점과 한계를 공감하고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표현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인식을 했음에도 어떤 대안도 내놓치 못했다.  말잔치에 불과한 그들의 포럼에서도 소득이라면 제대로 된 진단은 했다는 것이다.  중병임을 자인한 것이다.


사실은 그들이 답도 알고 있지만 그 답을 내놓아야 할 이들이 자기 희생과 결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우리 교회는 이런 사회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진단하는가?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세상과 짝하지 말고 영적세계를 사모하라고 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인한 양극화와 경제정의가 무너진 이 사회에서도 적극적인  방안을 내놓치 못하고 대다수 교인들에게 권위와 상전에 순종하며 인내와 절제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한다. 그리고 부자들에게는 적극적인 투자, 야곱의 비젼과 아브라함의 번영을 믿고 미지의 세계로의 축복을 사모하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빈자 보호법이나 공생의 법을 통하여 그 사회의 지속가능한 장치를 두었다. 이 법이 실제로 언제 어떻게 실현되였는지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그 정신은 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채택한 자본주의 경제의 자유와 자율의 힘은 보장했지만 그 경쟁에서 쳐지고 낙오한 이들에게 대한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는 사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과거 선성장 후분배(파이를 우선 크게 만들고 나누자) 를 주장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으니 이제 파이를 나눌 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하고 공정경쟁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그동안 정치에만 맡겨왔다. 그러나 그들은 말은 그럴듯하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우리가 죄를 지었다” 라는 수사적일지도 모르는 멘트지만 우리나라의 부자와 정치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 말귀를 못알아 듣는 다면 “너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시혜와 자선의 나눔이 아니라 돕는 자들도 자립하고 홀로 설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나라가 가난 구제는 못한다 해도 나라는 백성을 걱정하고 위로하고 만져줄 수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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