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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적 공유 사회를 준비하는 마을 교회한계효용 제로 사회를 준비하는 협동적 공유 마을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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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30  15: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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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적 공유사회를 준비하는 마을 교회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절기에 우리는 어떠한 지역과 사회와 마을의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 지를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때이다.  

마가 복음의 부활의 메시지는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 즉 다시 갈릴리 마을에서 보자는메시지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부활의 메시지로 다시 갈릴리 마을로 가자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운동의 핵심은 마을운동이기에 마을에 부활할것이라는 이야기이다,그런데 에수님 당시나 지금 우리의 지역과 마을과 사회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1. 그 첫째는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소외 시키는 고립과 자폐의 상태이다,
2, 그 둘째는 차별과 베제의 상태이다, 이것이 테러를 낳고 이것이 폭력을 낳는다,
3, 셋째는 불안과 공포인데 이것이 바로 이시대의 무능력과 무기력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와 지역과 마을의 가장 심각한 현상은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사로 잡혀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일할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오랜 식민의 경험과 독재의 경험으로 자치의 능력을 다 상실했다,
최근 국정화 국면을 맞이하며 성공회 김동춘 교수의 한국 사회는 왜라는책을 내셨다,

그 책을 보면 우리의 역사가 오랜 식민지의 경험과 오랜 독재의 경험에서오는 불안과 공포가 바로 오늘 우리 젊은이들을 일할 의욕이 상실된무기력 무능력한 지옥과 같은 헬조선으로 만들었음을 잘 알려 주고 있다,

이처럼 오늘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사회 구성원들은 점점 더 일할 의욕과 자치의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음성을 듣는다,제임스 러스킨이라는 미래학자에 의하면 미래는 한계효용 제로의 사회라는 책에서 이제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자연을 착취해서 살아갈수 있는

그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제 석유화학 에너지의 시대가 끝난다는 것 이다, 한계효용 제로 사회란 결국 이윤을 위해 극한 경쟁을 하던생산자들의 기술의 발달로 결국 이윤이 제로가 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보면 경제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새 통신기술, 에너지, 교통 기술의 발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한다, 한사회가 변화를 시작하려면 우선은 에너지의 변화 소통의 변화 기술의 변화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20세기는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다. 산업혁명 시기 경제활동 범위는 석유 에너지 활용, 전국 철도망 형성, 통신 기술 발달 등으로 지역에서 전국으로 혹은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 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우리는 3차 혁명 초입에 서 있다고 한다, 에너지는 석유에서 재생 에너지로 바뀌고 그렇게 되면 수직적인 소통에서 소통적 소통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일하는 방향도 경쟁에서 협동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바로 자동차에서 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카 셰어링(Car sharing)’ ‘하우스 셰어링(House sharing)’ ‘재능 교환 네트워크 서비스’등 앞으로는 내차를 마이카시대가 아니라 공유자동차 공유집이 탄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역사상 최초로 자신이 필요할 때 네트웟으로 언제든지 차를 빌리고 공유하고심지어 집을 빌리고 공유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협동적 공유 사회는 먼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 보듯이낡은 세계를 전복시키고 반전을 가져오는 새로운 세상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시말해 이제 마을에서 경쟁과 소유와 독점의 길에서 협동과 공생애 기초한생명적 협동과 자치의 공생의 미래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최근 마을의 핵심을 ‘자공공’,곧 “스스로 돕고(自助) 서로를 도우면서(共助)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 가자(公助).”는 개념으로 풀어 가기 시작하신다,
다시말해 최근에는 돈거래 없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동육아를 꿈꾸는 어린이집이 생겨나기도 하고, 스스로 집을 짓고 고치는 목수들이 적정 기술을 살려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텃밭을 가꾸는 새로운 유형의 농사꾼과 새로운 먹거리 운동과 새로운 의료 협동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래의 이 세가지 일 즉 재생에너지 사용과 수평적 의사소통과 그리고 협동이 가장 잘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라는 것이다,그러기에 이 공유와 협동과 자치의 시대를 잘 살려면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제 미래 사회는 남과 협동 공유할수 있어야 살수 있는 사회가 오고 있다,

특별히 마을 살이에서 남과 공유하고 협동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살펴보아야 할 일이 있다,   서양의 협동은 마치 버스가 진구렁에 빠졌을 때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일정한 방향으로 힘을 합쳐 밀고 있는 경우와 같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는 서구인의 협조가 철저한 분업주의에 의한 기계적인 것이라면 우리 한국인의 협조는 마음과 몸이 한 덩어리를 이루는가래질 3박자 협동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서양적 협동에 있어서는 설혹 한 사람쯤 빠져도 힘이 모자랄지언정 방해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의 협동방식이란 그와는 다른 것 같다.

그것은 가래질과 같은 것이다. 힘을 합치되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한사람은 오른쪽으로, 또 한 사람은 왼쪽에서 자기 앞으로 끈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중심 부분에서 앞으로 가래를 내밀고 있다.방향이 모두 다르고 잡아당기고 떠미는 힘이 다 각기 자기 중심적이다.그러므로 서로의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힘이 분산되고 가래는 멋대로 끌려다닌다.

   
 

여기에 바로 한국적인 협동의 비밀과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협동은 가래질과 마찬가지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힘이 있다고 해서 자기쪽으로만 너무 당겨도 안 되는 것이며 힘이 약하다고 해서

자기 끈을 늦추어서도 안 된다. 자기 힘만 마음껏 발휘해서 협동되는 것이 아니다.

가래질을 하는 사람처럼 개인의 힘을 자기 중시적으로 사용하되그 힘의 작용과 균형과 호흡이 잘 맞아햐 한다는 것이다,한국인의 일상생활은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누리는 호흡의 협동화와 생활화 이다,그러므로 한국에서 협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와 호흡을 맞출 것인지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그 감각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열매가 바로 적 협동조직체인 두레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협동적 공유사회가 도래하는 이때

오늘 한국 사람은 협동이 잘안된다고 한다,마을마다 서로 무엇을 좀 도우라고 하면 잘 돕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가래질 협동의 공동체적 호흡이 단절되어오늘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절대로

자신만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려고 하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숨이 상실되고 호흡이 멈춤 상태이고 일할 의욕을 잃은 무기력증이 온 사회에 퍼져 삼포 5포 구포의 헬조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려면 이러한 협동적 공유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데그 출발은 소유적 인간에 사로잡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자신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려는그 삶의 태도를 새로운 협동적 공유의 시대를 향한 호흡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적 공유의 시대를 위한 첫 호흡은 우리가 삶의 시간표을 짤대 반드시 이웃과 공동체의 시간을 배려하기 시작해야 한다, 

가족과 부부와 이웃과 공동체의 시간을 배려하고 공유와 협동의 시간과 물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공동체의 생명적 숨과 호흡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것이다,

특별히 마을과 공동체의 축제는 이러한 협동적 공유의 삶의 미래적 가치를‘ 배우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러한 공동체 축제에 적극 참여를 유도하여  협동적 공유의 미래 가치를 배울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갈릴리 마을에서 나를 만날것이라는 이 갈릴리 마을의 부활을 기도해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가래질에 비유되는 한국인의 협동은 협동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한번 협동하면 신바람나는

협동을 만들어내는 신바람 협동이 우리 마을마다 일어나길 기도해야 할 이때에 다시 마을에서 만나자는 부활의 영인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다시 협동적 공생의 새로운 세상인 갈릴리 마을로 출발하는 대림과 성탄의 계절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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