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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운동과 농촌교회 살리기
오필승 목사  |  ops5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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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4  21: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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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귀촌운동과 농촌교회 살리기

오필승 목사(예장귀농상담소장, 신동리교회 담임, 마을 이장,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 공동준비위원장)
   
 

우리나라 농업, 농업인은 순박한 바보가 갖는 직업이다. 한국사회에서 농촌은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농업문제의 해결은 국가(정부)적인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농업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농사가 대박이 나게 잘 되거나 농사가 흉년으로 안 되거나> 농사를 짓는 생산자인 대다수의 농민은 매년 생산원가에 가까운 수입으로 자기 노동력을 파는 대가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타 산업 간의 실질소득이 점점 격감하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지속돼 왔다.

우리나라 농업인의 자격은 1000㎡이상을 경작하거나, 연 120만 원 이상의 소득이 나면 농업인이라고 자격을 인정해 준다. 농업인이 되기가 얼마나 쉬운가? 농촌에 살면서 실질소득이 연 1000만원도 안 되는 농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를 안 해 봐서 모르지만 부지기수일 것이다.

농사를 짓는 분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연 매출액으로 수입을 따진다. 어제도 농림어업종사자가 이장인 나를 찾아와 연 소득을 묻는데 매출액으로 묻더라. 국가의 통계가 부풀리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득을 따지면 총수입에서 지출된 부분을 빼고 나머지가 소득을 따지는 것이 맞는데 농업부문만 이상한 셈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경제논리로 보면 전혀 맞지 않는 바보의 셈법을 오래도록 관행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공무원들이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도록 농업부문에 연 소득을 잡을 래야 잡을 수가 없으니까 소득을 매출액으로 잡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것일 것이다.

농사를 지어봐야 품값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농사는 옛 부터 농민 스스로가 천시해 왔고, 이 고생은 내 대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농민들의 생각인지라. 60년대 말부터 산업화시대 농민의 이농현상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 지난 40년 기간에 1천만 명이 농업 농촌을 탈출해 도시로 떠났던 것이다.
농사를 지어봐야 소득이 안 된다. 그러니 취직을 하거나 남의 집 일을 해서 일당이든 월급쟁이가 훨씬 낳았기 때문에 자연히 농업 농촌을 떠났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본의 맛을 알고 영악하고 똑똑해 지면서 셈을 하게 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과 땅을 뒤로 한 채 대도시로 공단지역으로 떠났다.

농민은 옛 부터 순박하게 땅을 일구며 살아온 이들로 땅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매년 농사를 짓는데, 반복되는 것은 농사가 잘 돼도 문제요, 안되면 더 큰 문제는 빗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을 놓지 못한다. 이렇기 때문에 바보농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F. T. A로 우리 농업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해가 갈수록 완전 해체되는 사태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농업문제의 해결은 갈수록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농촌에 2000년 역사에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귀향운동이 국가적으로 일어나고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던 적은 역사의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고비마다 있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6. 25 사변 후, 4. 19혁명 후, 그전에는 3.1운동 후 이런 현상은 있었다. 도시를 떠나 고향이나 농촌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변란이나 혼란의 시기는 가장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가족이 있는 곳으로 또는 고향으로 돌아와 안정된 시기를 엿보게 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농촌에서는 민생고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데는 농촌이나 고향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시기에 귀농 귀촌 귀향을 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지금이 전쟁이 일어난 후처럼 우리사회가 계속 어렵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농촌에서는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가장 큰 1차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생태고 뭐고 는 2차적인 문제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난민이란? 박해나 전쟁, 테러,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런데 오늘 우리사회가 자살률이 OECD 국가중 세계 1위인데 OECD 평균 자살률이 11.3명인데 한국은 28.1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자살자가 전 세계 전쟁 사망자수보다도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결과 2007-2011년 5년간 자살자수 7만 1,916명인데 이라크전쟁 사망자 3만 8,625명. 아프카니스탄 전쟁 사망자 1만 3,719명 합이 5만 3,344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오늘의 시대는 그래서 한마디로 난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전쟁 상황에서처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 몰리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3포 세대’. 그리고 3포에 취업과 주택을 더해 5포 세대, 인간관계와 희망을 잃은 7포 세대, 더 나아가 건강과 학업까지 포기한 9포 세대라는 비극적인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젊은이들은 이런 세태를 ‘헬조선’ 또는 지옥불 반도라고 부른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오늘 우리국민은 바로 국내에서 난민이 되어가는 상황이니 우리가 더 이상 난민이 아니라 주민이 되려면 바로 마을을 살려야 한다고 일갈 한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 왜 그런가? 이 땅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꽉 막혀 있는 모습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 88만원세대, 그마져도 힘들다. 그래서 청년들도 귀농 귀촌의 대열에 가끔 눈에 띄게 보인다. 결국은 농촌에 농업노동력에 품팔이로 자신을 던져도 월 150만원 내외의 수입이 되니까 그 일을 당분간 하게 되지 않나 보인다.

결국 청년실업이 도시에서 청년들을 밀어내고 농촌을 떠나는 시대에도 도시에서 농촌으로 떠 밀려오는 이 현상은 난민사회 임시 정착촌이 오늘의 농촌은 아닐지? 우리사회의 너무도 슬픈 현실이다. 거들 떠 보지 않던 농촌, 농업에 농민이 되어보려고 기회를 엿보는 젊은이들이 더해지고 있다.

청년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찌라도 농사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고, 회사를 다니는 것과 비교해보면 몇 몇 이들은 잘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이들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다수는 농업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며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하며 지인들과 나누는 자족하는 삶을 살아 갈 것이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귀농 귀촌 귀향하는 이들은 농촌이 과거에 망해서 떠났던 이들이거나 그들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오늘의 도시에 있어봤자 별 볼일 없다. 정리하고 농촌이 도시에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겠다는 생각에서 막상 귀농 귀촌을 결행하는 것이다.

유랑하던 도시의 난민들에게 귀농 귀촌시대 농촌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귀농 귀촌을 장려하는 국가시책에 전쟁 때 구호물자 하나 챙기듯이 지원정책을 받아볼 요량으로 줄서는 분들도 상당수 있다.

그래서 이 곳 저 곳 지방을 순회하면서 교육도 받고 지원을 비교도 해보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국가적으로 인구의 대도시 집중화를 막고 국토의 균형개발과 맞물려 인구 분산정책의 기조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 농촌의 목회자들은 이러한 귀농 귀촌시대를 맞아 시대에 흐름을 읽고 농촌을 새로운 귀농 귀촌 귀향인들을 잘 받아들이고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귀농자들은 이민을 온 사람들과 같다. 이민 목회를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겠지만 이민자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돕는 일들을 손, 발, 입, 눈이 되어 다 한다. 그렇듯이 우리 목회자들은 귀농자들을 위해 예장귀농상담소를 열어서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귀농자의 심정을 가지고 귀농교육도 받고, 귀농인들과 대화, 소통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지자체나 귀농인 단체 등에서 하는 귀농 귀촌 교육에 참여해 자신의 노후도 준비하고, 귀농 귀촌자의 입장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의 노후 설계도 하면서 귀농자의 입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것을 파악해 그 일을 해 나간다면 앞으로 행복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왜 이일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농촌교회는 농촌의 현실과 닿아 있다. 농촌에 고령인구가 많고 젊은이들은 떠났고, 이제 시간이 지나도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면 마을이 과소화가 진행되다가 마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농촌의 위기요. 한국농업의 위기다. 이 위기시대에 경제적인 여파로 청년실업률의 증가와 고령화율의 증가는 우리사회에 가족 간 계층 간 일자리를 빼앗고 잃게 된 이런 현상을 낳게 되었다.

농촌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난민이나 이민자와 같다. 종합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살 집이나 농지, 또는 일자리(취업), 농촌에 적응하는 문제, 농사일을 배우는 것 등에 도움이 필요하다. 농업인 자격을 갖추는 것, 건강보험, 연금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 알려주는 일 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상담자는 주택이나 토지를 구입하는데 수고비를 생각해서 부동산을 구입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집을 사거나 토지를 사는 것보다는 지역에 귀농을 하려고 하면 먼저 6개월에서 1년은 살아보고 이 지역에서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구입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내 지역에 정착을 시킬 욕심으로 소개하거나 수고비를 챙길 요량으로 하게 되면 그 뒤부터는 부동산업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경계를 해야 할 일이다.

농촌마을과 교회에 좋은 성도 한 사람이 이주를 해오면 그 뒤에 그 주변에 지인들이 줄줄이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귀농 귀촌운동은 한국농촌에 새로운 기회다. 그러나 얼마나 교회가 지탱하고 버틸지 미지수다. 왜냐하면 총회의 미 자립 교회에 대한 정책이 중요한데 지금 지원교회들이 어려워지니까 일방적으로 정책을 바꿔서 하려고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방의 정책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생사박탈권을 주장하는 일이다.

이에 앞서 출구정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성숙한 교회, 상식이 통하는 논의의 틀을 마련하고 지원 받는 교회의 입장을 듣고 소통하는 총회의 정책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이중직연구위원회도 당사자들의 입장이 반영된 현장의 시대변화에 맞는 논의와 제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제에 미 자립교회를 스스로 자립형 자비량교회로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핼 조선, 핼 도시의 시대, 농어촌에서 새로운 희망,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는 귀농 귀촌의 생활이 되도록 돕는 상담자들이 되어 농업농촌을 살리고, 농촌교회를 살리는 돌봄의 목회자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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