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총회장 채영남 목사 부활절 설교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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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8  21: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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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생명을 온 누리에"

에스겔 37:9-10; 요한복음 21:15-17 / 내 양을 먹이라

   

*   3월 27일 한국기독교 부활절연합예배 설교하는 총회장 채영남 목사(광림교회) 

I
할렐루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부활의 생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공동체와 피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도 부활의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역사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 세상을 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부활의 생명과 빛은,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몰아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으로 반드시 넉넉히 이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과 빛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모될 온 누리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그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사망과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벨기에의 자살테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파도에 떠밀려 터키 해변에 주검이 되어 누운 시리아 소년 에이란 쿠르디의 차디찬 손이 느껴집니다. 집단살육의 전쟁을 피해 살 길을 찾아 국경을 넘는 수십 만, 수 백 만 난민들의 지친 발걸음이 보입니다.

모두가 애타게 구원의 생명과 빛을 찾고 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의 공포에 사로잡힌 수 백 만 명의 어머니들도, 에볼라 바이러스나 에이즈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아마존 강의 사라져가는 밀림 속 원주민들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도, 구원의 생명과 빛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수난의 여왕,” 이 땅 한반도에서 터져 나오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생명과 빛에 대한 갈망과 외침에 마음 문을 열고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분단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7천만 동포들의 갈구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과, 그 유가족들의 처절한 절규도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로, 인간성을 처참히 유린당한 채 생존해온, 우리 할머니들의 정의를 위한, 한 맺힌 외침이 우리의 귀전을 울립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생명과 빛을 갈망하는 이 시대에 그들과 함께 수난 당하시며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퍼지도록,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최선을 다해 증거 하십시다.

II

오늘 신약의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혼돈과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들은 갈릴리로 돌아와서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습니다.

그 때 바닷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상황은 바뀐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입고 절망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사랑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그로 인해 제자들은 치유와 화해를 경험하고, 사랑의 친교를 회복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빈 손 뿐이었던, 갈릴리 호숫가의 제자들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허무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으면 짙을수록, 생명을 향한 갈망도 깊어집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의 빛을 기다리는 마음도 깊어집니다. 지금 온 세상은 구원의 생명과 빛을 찾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치유와 화해를 갈망하는 애절한 외침과 몸부림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다 함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생명과 빛의 복음을 온 누리에 힘써 전합시다.

III

21세기에 인류는 이제까지 어떤 시대보다도, 생명의 위기를 깊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시대가 끝날 때, 우리는 희망과 평화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중동전쟁으로 곧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류는 냉전보다 더 무서운 생명위기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전쟁과 폭력, 경제적 불균형, 가난과 기아,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와 물 부족 현상, 유전자 조작과 생명복제,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 핵무기와 테러, 종교 간의 충돌, 세대 간 갈등과 문화의 단절, 새로운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 참담한 영적 혼돈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도 인류 문명의 위기 앞에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생명경시로 인한 자살과 폭력은 심각합니다.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와 가정공동체는 해체되었습니다. 저성장시대와 인구절벽시대를 맞아 경제양극화문제, 저출산 고령화문제, 청년실업문제, 동성애문제와 이슬람문제를 포함한 다문화사회의 문제 등, 위기 상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분단으로 인한 냉전의식은 사회통합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북갈등의 고조와 동북아시아의 신 냉전으로 인해, 전면전과 핵전쟁을 불사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분단의 아픈 세월이 70년이나 지났지만, 평화적 통일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세력이 자기 이익을 다투는, ‘노름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서 보듯이,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의 잘못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전쟁수행국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동족상잔과 집단살해의 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어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민족공동체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은 성취될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디에 참된 소망을 둘 것입니까?

옛날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절망의 소식이었습니다. 돌아갈 고향도, 신앙의 터전도 무너졌습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극한의 절망을 마른 뼈로 가득 찬 골짜기에 비유했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를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겔37:9).

그러자 생기가 불어와서 뼈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이 뼈와 저 뼈가 서로 맞아 연결되었습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습니다. 드디어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도저히 살아나지 못할 것 같은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오늘 에스겔 선자자의 비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마른 뼈처럼 생명의 기운을 잃은 우리를, 다시 살리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새로워지는 소망입니다.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임하면, 고통과 절망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소망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시대에, 애굽을 의지하던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끌려가서 죽었습니다. 애굽도 바벨론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맙니다. 애굽도, 바벨론도 유다가 의지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국의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만 의지하는 정치와 외교만으로는, 온전한 평화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핵폭탄이나 싸드 미사일이나 강대국과의 군사동맹으로는 항구적 평화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와야 생명이 소생하며, 참된 평화가 임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시는 부활의 생명과 빛이 한반도에 충만할 때,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만이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그것만이 절망과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할 유일한 좁은 길입니다. 이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음껏 생명과 빛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로 온전히 돌이켜서,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사진출처 뉴스엔죠이

IV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길, 그 사명의 길을 버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다시 고기를 잡는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아무 탓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곤고한 그들을 환대하셨습니다.

구운 생선과 빵을 내어 주시고, 따뜻한 숯불도 쬐게 하셨습니다. 그로인해 단절되었던 성만찬의 친교는 회복되었고, 제자들은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새로운 소망으로 힘을 얻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6,17) 세 번 반복된 이 짧고 단순한 질문이, 베드로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와 화해의 은총에 압도당하여, 예수님의 대한 사랑을 세 번 고백합니다.

그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역시 세 번을 반복하여, “내 양을 먹이라”(요21:17)고 간곡하게 부탁하십니다. 베드로의 사명을 거듭 재확인해 주시고, 변치 않을 확신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절망한 베드로와 제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다시 하나 되는 참된 용서와 화해의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봄과 여름과 가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입니다. 위기이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입니다.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회복의 기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파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회복하신 것처럼, 오늘 한국교회를 화해의 자리로, 참된 목자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지금 우리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초대의 말씀을 함께 듣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영광스런 몸에, 십자가의 죽음의 상처를 여전히 간직하신 채, 주님은 거듭하여 우리를 향해 애타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참회와 사랑의 고백을 드립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위탁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과 빛으로, “내 양을 먹이라!”고 목양을 위임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입니다. 유리방황하는 이 세상의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선교와 목회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선교와 목회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로 대변되는 그들이 바로,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인,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이 시대의 작은 자들이 아닙니까? 지금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나그네 된 자들이 아닙니까?

일제식민주의 치하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당한 우리의 할머니들, 분단체제의 희생자들과 이산가족들, 미래를 포기하고 절망하는 청년들, 전쟁으로 고향을 버리고 떠도는 난민들, 경제양극화로 인한 절대빈곤자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당하는 노동자들, 불의한 죽음을 당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들,

이들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으로 목양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해야 할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들이 아닙니까? 우리 한국교회가, 바로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겸손하게 섬길 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계절은,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이긴 새 싹이, 봄의 전령사가 되어 돋아나는 계절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찬란한 햇빛이 온 누리에 퍼지는 계절입니다. 우리 함께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한 새 봄을 소망합니다. 온 누리에 정의와 평화, 치유와 화해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로워진 한국교회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주권을 부활하신 만왕의 왕 예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과 빛으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들에게, 치유와 화해의 복음의 꼴을 먹이실 때,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한국교회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막이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              ◇              ◇
 

부활의 생명과 빛을 온 누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 세상을 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소망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도 영원한 생명의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역사의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마른 뼈처럼 생명의 기운을 잃은 우리를 다시 살리는 소망,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임하여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소망, 부활의 생명과 빛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임하므로 이 시대가 고통과 절망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소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인류는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냉전시대 이후에 펼쳐진 세계화시대에, 인류는 냉전보다 더 무서운 생명위기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전쟁과 폭력, 가난과 기아, 에너지와 식량 위기, 유전자 조작과 생명복제,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 물 부족, 핵무기와 테러와의 전쟁, 종교 간의 충돌, 세대 간 갈등과 문화의 단절, 새로운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 참담한 영적 혼돈과 말씀의 기근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분단된 한국사회에도 공동체의 해체와 생명경시로 인한 자살과 폭력, 저성장시대와 인구절벽시대가 가져온 경제양극화문제, 저출산 고령화문제, 청년실업문제, 동성애 수용과 이슬람 확산 등 다문화사회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생명과 빛을 갈망하는 이 시대의 외침 속에서 수난 당하시는 하나님의 부름을 들어야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제자들을 온전히 회복하신 것처럼, 오늘 주님은 한국교회를 새로운 성만찬의 친교의 자리로, 치유와 화해의 자리로, 하나 됨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지금 여기 우리는 부활하신 영광스런 몸에 십자가의 죽음의 상처를 여전히 간직하신 채 우리를 향해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함께 서 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용서와 사랑의 고백을 드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사명을 위탁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이 세상의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선교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선교와 목회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인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이 시대의 작은 자들, 지금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나그네 된 자들이 아닙니까?

일제식민주의 치하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당한 우리의 할머니들, 분단체제의 희생자들과 이산가족들, 난민들, 절대빈곤자들, 노동자들, 세월호 희생자들과 미수습자들의 유가족들, 미래를 포기하는 청년들, 이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빛으로 목양하므로, 풍성한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해야 할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들이 아닙니까? 우리 한국교회가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행한 나눔과 돌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빛을 온 누리에 전하는 은총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부활의 계절은 생명과 빛이 죽음과 어둠을 이기고 온 누리에 퍼지는 계절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생명과 빛으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양들에게 치유와 화해의 복음의 꼴을 먹이므로, 부활의 생명과 빛을 온 누리를 충만하게 하는 한국교회가 됩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반드시 넉넉히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모될 온 누리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그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을 믿습니다.

2016년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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