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반성과 전망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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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반성과 전망고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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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0  12: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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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반성과 전망

 이 글은 2016년 3월 31일(목)  7:30,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순신 장군 상 앞)에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와 목민연구소 고성휘 이사장(성공회대 신학박사과정)이 광장신학 천막카페에서 있었던 강의내용이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올린다.

2. 참사에 대한 교회의 태도

(1) 위로함과 위로받음, 그 왜곡된 응시

신학논쟁에서 보았듯이 사회적 상호관계성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교회가 고난 받는 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지성어머니; 언젠가 위로 합창을 해 주신다고 1주기 때, 근데 그 때 내 마음은 우리 하고 같이 손잡고 이거 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었는데 잠시 내 마음 잠깐 스쳐지나가는 거 난 싫다 그렇게 해 주는 거 싫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우리를 한 번 간담회로 우리를 불러라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하지 마라. 잠깐 우리 앉혀 놓고 노래 불러 주는 거 우리한테는 그냥...
창현어머니; 잠깐 위로도 아니고 그건 그들을 위한 거야
지성어머니; 자기네들이 뭔가 우리에게 해 줬다, 우린 이거 했다 이러고 싶어서 자기네가 위로 받고 싶은 거야. 우리가 유가족한테 이렇게도 해 줬다. 이건 교회를 위한 거예요
지성어머니; 우리는 거기 앉아서 유가족 데려다 놓고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거든요. 그 사람이 우리 마음을 알고 같아 동화가 돼서 같이 힘이 합쳐져 있다면 받아요. 못 받을 이유가 없어요. 같이 우리 마음은 전혀 모르면서 자기네는 자기들 나름대로 해 준다고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그게 좋은 거라고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우리한테 안 맞는 거를 해 주니까 필요 없습니다.
지성어머니; 그것도 서운해 하시더라고요. 해주려고 했더니 유가족이 안 받았다는 거야
창현어머니; 항상 하는 게 행사용이에요.
지성어머니; 교회의 자기 입장이에요. 위로를 해 주는 게 자기를 위로하고 있어요. 교회에 상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자기 멋대로에요. 그리고 나중에는 짓밟잖아요. 내가 위로 해주려고 했는데 너는 왜 거절하니? 이러면서....휴

위의 사례를 보면 성과중심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의 내면적인 이해와 참 마음으로 전하는 위로에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중심, 성과중심, 결과중심적 사고들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위로함이 아니라 위로받음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지배방식에 교묘하게 뒤얽혀 성과를 내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은 사회적 불안감의 반증인 결과중심적 사고를 자처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결국 타자의 담론에 종속된 자아상으로 한국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이면서도 자신이 약자이기를 거부하는 타자의 욕망이 우리 내면에 가득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약함을 증오하게 된다. 이는 맘몬의 거짓논리이다. 자본주의의 통치속성이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우리 자신을 지배하려 하는 거대한 음모 속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라보고자 하는 곳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맘몬이 바라보고자 하는 그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이 응시하는 그 시선을 자신의 시선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타자의 응시는 바로 약함을 거부하는 응시이다. 내 이웃의 약함을 우습게보고 내가 조금이라도 강자의 시선에 머무르기 바라는 환상이다. 왜곡된 응시, 바로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이 극복의 과정은 우리의 약함을 서로 보듬어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강자의 시선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왜곡된 자아상에 대한 응시의 예 를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의 이야기 한 편을 들었습니다.

"개썰매를 끌 때 썰매는 사람은 가장 약한 개를 제일 짧은 줄로 매달아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그러면 약한 개는 비명을 지르죠. 그 비명을 듣는 다른 강한 개들은 자기들이 저 개처럼 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립니다. 주인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바라볼 틈도 없이 달립니다. 그리곤 생각하죠. 저 개는 왜 이리 약할까? 약자를 비난합니다. 자신들도 분명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자아상을 심어 주어 서로를 위하고 연대하는 끈을 끊어 버립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자본주의와 권력의 지배방식은 이렇게 우리를 향하여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작동, 지배하려는 것이며 이것에 야합한 교권 역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비난하며 돌봄을 꺼려 하게 됩니다."

“오늘의 바울이 전망했듯이 우리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크신 긍휼 안에 들어와 모두가 긍휼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가난하고 겸손한 존재로서 우리를 비롯하여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입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악한 상황에 처한 이웃들에게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흘러가게 하는 공동체로 서는 것입니다. 부활을 둘러싼 하나님의 긍휼과 현재적인 부활 의미 그 안에서의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선함이 흘러가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서로가 강해지기보다는 약함을 자랑하는 공동체… (기도) 우월보다는 긍휼함이 늘 필요한 존재들. 우월감으로 초월의식으로 배타적으로 왜곡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자리에 어린아이처럼 서게 하소서. 우리도 악하고 우리도 약합니다. 모든 고난 받는 이들과 더불어 함께 걷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세월호 이후의 하나님 2014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인천 부활절 연합 예배 설교”, 김성률 2014. 04. 23 , 뉴스앤조이) 1

왜곡된 응시는 반성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반성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는 소리는 드높일지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반성을 해야 하는지, 누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비난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릴 뿐이다. 바로 우리의 변하지 않는 속성과 태도와 인식에서부터 반성과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타자가 만들어 낸 상을 가지고 내 이웃을 정죄하고 내 이웃에게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왜곡된 응시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욕망을 지켜내야만 한다.

(2) 시혜자? 동반자!!

자신의 방식으로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려는 태도는 우리나라의 기독교 전래과정에서 학습되어진 선교의 시혜적 차원을 배경으로 한다. 처음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그들이 베풀었던 선교의 형태, 그리고 현재 기독교가 해외에 나가서 선교를 하는 형태 거의 시혜적 차원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베풀 수 있고 너희들은 무언가가 모자르기 때문에 받는다 라는 타자를 보는 시선이 대상으로서만 존재할 때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선교적 태도들이 역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학습되어 왔었기 때문에 시각과 태도를 변화시키는데에는 더욱 많은 자성과 고민들이 필요로 한다. 고난 받는 자들의 고난의 원인은 경제적 부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과 사회경제적 구조의 모순에 기인한다. (경제적 부의 결핍 역시 같은 맥락, 즉 사회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이 세상의 어떤 현상도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들이 서로와 서로에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제공자의 입장도 일시적인 선한 행위 자체도 무의미할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 참사 직후 교단의 움직임 중에 시혜자의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모금활동과 치유상담활동이다. 물론 참사 직후 재난구호활동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 우선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지원보다는 문제해결, 사건의 진상규명 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문제를 극복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기초활동이 된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순서가 뒤바뀌어 간헐적인 경제적 지원이나 치유상담의 시도들이 우선시된다면 그것은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소통의 문조차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총회의 재해관련 모금 실시는 여러 곳에서 행해진다. 이에 관련해서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섣부른 모금을 사양한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기독공보 2014. 4. 30) 4월 29일 세월호사고 유가족 대책위원회 일동 명의로 발표된 입장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금모금이 유가족들의 의사와 무관하며 모금에 동참하는 국민들에게도 죄송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진상규명과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촉구에 유가족들의 요구 중심이 가 있는 상태에서 교단의 모금활동은 소통이나 문제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중심적 만족을 위한 행위가 되어 버린다. 교단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희생자 가족들 개개인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함께 하는 일이다. 즉 집단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행동은 외면한 채 사건의 본질을 개인적인 구호활동과 시혜로 돌리는 것은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위의 입장표명 며칠 후 모금활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교회는 자꾸 모금을 하더라고요. 우리는 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철저하게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나서 서명을 받는 거고요. 정부가 분명히 잘못한 부분이 있는데도 목사님들은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큰 교회 목사님들은 오히려 두둔하는 모습까지 보이잖아요. 유가족에게 막말이나 뱉어 대고. 그런 거 보면 힘이 빠져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공장 한쪽에 자리 잡은 불교 정토회 부스. 세월호 참사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정토회가 지금까지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주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유가족, "진실 알려 달라는데 교회는 돈만 걷어"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직접 나선 유족들, "개신교 영향력은 못 느껴" 2014.07.12, 뉴스앤조이)

또한 집단 트라우마, 정신적 외상에 대한 치유가 우선시되어서도 곤란하다. 사건경위도 모르는 채 진상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유는 사건의 본질을 회피하는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종자의 조속한 구조와 수습, 명확한 사고 원인의 규명, 엄중한 책임자 처벌 등도 바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그들의 마음에 닥친 충격과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들어주고 그들의 말이나 행동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은 치유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치유적 경청이라고 하는데 이 경청만 잘 해주어도 치유의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녀들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시신조차도 수습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그 때 우리는 그들의 우울증의 회복을 위한 사랑의 섬김이 절실히 필요하다. 방안에 칩거하기만 하기보다는 맑은 공기, 따스한 햇살, 아름다운 경치를 접하며 자연을 통한 생태치료가 효과적이다. (롬 1:20)("세월호와 교회; 치유의 사명“, 2014. 6. 10, 한국기독공보)

“정부와 정치권이 또 다시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나서서, ‘세월호 특별법’을 수용하도록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강력히 나서야 할 것이다”, (“세월호 100일 이후”, 금주섭, 2014. 7. 22, 한국기독공보)

“지금은 국면전환의 때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검과 국회 국정조사,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 모든 법적인 수단이 동원될 때”(“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한국교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회자 1000인 선언문 중에서”, 2014. 5. 29, 에큐메니안)

위의 각각 다른 시각의 두 주장은 시혜자와 동반자의 두 모습이다.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을 택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선교의 관점 위에 있는 시혜자로서의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웃을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함께 서로 기대며 밀어주고 끌어 주는 동반자로서의 교회가 될 것인가. 

3. 대응과정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새로운 흐름

(1) 중앙에서 지역으로

부록에서 볼 수 있듯이 참사 직후부터 2주기까지 교단의 활동경향을 보면 초기에 교단의 역할이 중차대한 부분을 차지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교단의 활동보다는 개별교회의 활동이 점차로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체 교단에서 개별 교회 및 소규모 단체들로 참사에 대응하는 주체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구호활동 등 규모가 큰 활동은 교단에서 주로 담당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교단은 활동이 줄고 개별교회나 소규모 단체들의 돌봄사역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교단활동이 재난구호활동 내지는 입장발표, 연합기도회 및 집회를 만들어 내는 대신에 개별교회들은 소리 없이 조용히 돌봄사역으로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교회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는 경향은 그동안 생명평화마당, 작은교회운동 등의 흐름 속에서 작은 교회들이 활동의 주체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갖기 시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은 교회 박람회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 줄 수 있다. 침몰해 가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구조할 수 있을까.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고 과제다. 단순히 대형 교회에 맞서 작은 교회 박람회를 여는 것은 아니다. 바라기는 작은 교회 운동을 통해서 대형 교회 지도자들도 변화했으면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트리고 해체해, 작은 교회로 나누는 운동이 일어나길 바란다.(김영철)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한국교회의 근본 문제는 고통의 감수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규모가 크고 가진 게 많을수록 작고 약한 자에 대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장과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한 교회, 대형 교회가 반생명 반평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반면 작은 교회는 작기 때문에,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이웃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다.(정경일)
결국 생명 평화가 대안이다. 그게 핵심이다. 제왕적 목회자 위주로 가는 대형 교회는 생명과 평화의 길을 가기 어렵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교회는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작고 민주적인 교회다. 작은 교회 운동은 그걸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교인들과 함께 생명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방인성) (세월호 참사 이후 작은 교회가 나아갈 길[좌담] 제2회 '작은 교회 박람회' 준비하는 김영철·방인성 목사, 이정배 교수, 정경일 원장 2014. 09. 21, 뉴스앤조이)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2주기까지의 활동경향>

기간
활동특성
4월 16일 ~4월 30일까지
재난구호 활동과 위로 및 목회서신, 기도회 시작(세월호 참사를 사고와 재난으로 봄)
5월 초순경
거리시위 및 시민운동 시작, 연합기도회 및 촛불집회 기도회, 교단연합 움직임 활발, 정부와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요구, 퇴진 운동시작(사고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참사였음을 알기 시작), 일부 교회지도자들의 막말파문으로 교회 자체 내 신학논쟁과 회개가 산발적으로 잇달아 나타남
5월 중순경
한국교회 신학적 자성과 회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요구, 단식농성, 삭발농성, 기습시위 등의 강경대응에 돌입(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총체적 모순에서 나온 결과였으며 국가폭력의 결과임을 재확인하게 됨, 아울러 교회를 되돌아보게 됨)
6월 초순경
엔씨씨 세월호대책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여 본격적인 기독교적 참여, 교단연합활동 강화
6월 중순경
거리서명 활동 시작, 대중확산 활동 시작, 연이은 기독인 양심선언 및 시국성명서 발표, 거리집회
7월 초순경
릴레이 금식 확산, 김영오 씨를 필두로 김홍술, 방인성 목사 40일 금식 돌입. 다른 목회자들 속속 대열에 합류
8월, 도보 및 자전거 전국 순례 시작, 전국이 기도회와 순례, 성명서, 서명운동의 확산
9월
진상규명촉구 및 기도회, 집회 지속, 세월호를 바라보는 기독교의 신학적 접근이 토론회나 세미나를 중심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함. 유가족 초청 세미나로 세월호가 주는 신학적 의미를 재생산하기 시작. 기록물 발간활동 시작.
10월~4월
세월호 참사 1주기까지 기도회, 서명활동 유지. 연합움직임 저조해지기 시작. 교단별 대응도 뒤쳐지기 시작함. 오히려 개별 교회나 소규모 단체(신학연구단체)들이 활동을 활발하게 지속함. 세월호 참사대응의 주체가 교단에서 개별교회와 소규모 단체로 넘어옴. 세월호 희생자가족과 개별적인 접촉으로 명맥을 유지해 나감.
2015년 4월~2015년 3월
안산; 개별 교회 및 소규모 단체 그리고 각 신학대 학생들의 참여
광화문; 촛불교회, 광화문 천막까페 목요기도회(9월 시작), 금요기도회(이학산 목사, 세월호원탁회의) 교단움직임 현저히 감소, 작은 교회 및 신학연구단체들의 참여가 많아지면서 연합움직임보다는 개별 움직임의 경향이 두드러짐. 대응의 양상이 성명서 발표와 시위 및 기도회에서 문화제 형태로 바뀌기 시작함.

많은 수의 대형교회가 맘몬이 형성한 성장이데올로기라는 타자의 욕망의 덫에 종속되어 거짓신앙을 꿈꾸는 사이에 작은 교회들이 성장이데올로기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길을 간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있어 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약자임을 고백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돌보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고된 사역을 마다하지 않을 작은교회들이 더욱 더 늘어나서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한다. 돌봄은 영적 치유나 상담, 그리고 지원에 있지 아니하고 함께 하는 데에 있음을 한국교회는 더욱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

“사실 어려움이 많았지만, 도움을 주고 힘이 되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러한 이들 중에는 꼭 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거였어요. 오히려 젊고 순수한 이들에게 더 진정성을 느낄 때가 많았지요. 인상에 남은 것은 갈 때마다 1년간 우리의 예배에 함께 한 총신의 학생입니다. 계속 우리의 예배에 함께 하고 있어요. 최근에 우리 아이들의 영상도 그 친구가 만들어 주었어요. 지금까지의 단체들 중 총신에서 적어온 기도문이 가장 강력한 것도 참 재미있지요! 그리고, IVF가 기억에 남네요 너무 스마트 하고 그러면서 진정성이 있다고 하셨어요. 간담회든 무엇이든 맘 하나하나가 참 와 닿았다고 했어요. 교회이야기 중에서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인상에 남는데요. 찾아오셨다가 오히려 지금껏 대형교회들을 대신하여 비판을 쎄게 받았어요. 그런데 묵묵히 그 얘기를 듣고 계셨어요. 미안해 하셨구요. 우리의 전부를 이해한 것은 아니죠. 우리의 싸움에 다 참여하진 않아도 그분이 하실 수 있는 노력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찾아 오기도 하고 부교역자가 다녀가기도 하고 자신들을 초청해서 예배 때 인사도 시켰어요.” (예은어머니 인터뷰 중에서)

다음은 안산 기독인 주일예배 및 목요기도회에 참여한 교회들이다. 전국 곳곳에서 함께 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데 그 중 작은교회, 개별교회의 움직임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말로서, 선언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물질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정한 마음으로 아파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힘을 받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2) 신학과 교회의 빈번한 만남

이번 참사를 통해 교회는 신학적 입장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참사 이후 대부분의 교회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신정론’이다. 신정론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교회 내부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동향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았으며 희생자 가족들의 끊임없이 지치지 않는 진실을 향한 활동들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신학적 고민들을 더욱 많이 하게 만들었다. 또한 참사를 계기로 신학자들의 지속적인 신학토론, 세미나, 참사에 대한 입장표명과 접근하기 쉽게 풀어놓은 신학 서적 등은 사회와 교회가 분리될 수 없듯이 신학과 교회가 분리될 수 없음을 알게 해 주었다.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를 커다란 분기점으로 나눌 정도로 신학은 한국교회와 더욱 밀접한 관계로 한 발 다가왔다. 그동안 신학과 교회와의 관계의 부재 속에 한국교회가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점 역시 그 어떤 통제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교회 안에서의 신학의 부재현상.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활발히 진행되는 신학논쟁을 통해서 교회 안으로 신학이 성큼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의 문턱도 크게 낮아져 많은 신앙인들이 수시로 볼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도록 신학서적들이 출판되었다. 또한 신학 세미나 가 빈번히 이뤄짐을 볼 수 있다. 신학자들의 살아있는 노력들이 한국교회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접근들은 연구실 뿐 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빈번하게 이뤄져야 하며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과제를 오늘에 역시 안고 있다.

4. 정 리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면서 한국교회는 커다란 신학 논쟁에 휩싸였었다. 바로 신정론과 신앙의 공공성이다. 신정론으로 대비되는 두 가지의 신학적 입장들의 차이점이 행동양식에 얼마나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가를 한국교회는 이번 참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정하신 뜻으로 받아들일 때 참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너무나 한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이러한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싸움 방식임을 통감하게 되었다. 참사의 책임과 응답을 신으로부터 찾으려 할 때 자칫 한국교회가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권력과 자본과 동맹하여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개인영성에 치중했던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함을 보게 되었다. 먼저 함께함보다 위로함에 치중하였고 위로함보다 위로받음에 무게중심이 더 가 있는 유아기적이며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이 폐쇄적인 사회적 관계형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회가 먼저 세상을 향해 나와서 사회적 관계형성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자신만의 공동체를 꿈꾸는 많은 수의 교회들이 신앙인들을 유아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게 만들었음을 통감하였다. 그래서 사회적 영성을 통한 신앙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상의 신학적 입장들의 상이함이 보여주는 태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시혜자의 입장에 서있는 한국교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던 예들을 보면서 약자이기를 거부하는 타자의 욕망에의 종속현상들을 볼 수 있었으며 맘몬의 거짓된 성장이데올로기에 빠져 있을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은 철저하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음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반성 위에 올라선 희망의 움직임은 작은교회들의 자기정체성 확립에 있다. 돌봄사역이 시혜적 차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사회적 약자임을 고백하며 함께 껴안고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머리를 맞대는 사역을 보여주는 작은교회와 소규모 단체들의 움직임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희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추상성에서 구체성을 띤 돌봄사역의 증가는 한국교회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하는 암울한 상황을 충분히 딛고 일어서는 산물이 되었다.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를 더욱 강하게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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