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지금 찾아갑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신학생들 팽목항 찾아 기도회 열어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6.21  01:24:26
트위터 페이스북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신학생들 팽목항 찾아 기도회 열어

세월호 참사 797일째인 6월 20일(월) 신학생들은 1학기 종강을 앞두고 팽목항을 찾았다.  이른 장마비 소식에도 불구하고 장신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이 행사를 조직한 것이다.  이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선채인양을 지켜보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위로하고 기도하기 위해서다.  일행은 장신대 외에도 감신대, 목원대, 서울신대, 한신대, 호남신대와 기독청년들 40여명이 동행했다.

장신대에서 6시 30분 출발한 버스는 남도의 빗길을 맞고 기도회와 간담회를 마치고 오후 11시 30분경에 다시 장신대로 돌아왔다.  거리로만도 왕북 10시간이 걸리는 먼길을 왜 신학생들은 갔을 까? 그 이유는 바로 이 기도회의 제목에서 보듯이 “유실없는 인양을 위한 현장기도회” 를 위해서다. 
   
 

세간의 관심은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기간 연장이 관심이지만 아직도 맹골수도 밑의 뻘에 2/3가 쳐박혀 있는 세월호에는 미수습된 9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기도하는 가족들이 있는 데 이들은 유별난 사람 치부하거나 사람들의 머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아픈고 슬픔을 간직한 마지막 남은 가족들이다.

지난 5월 4일 중국의 국영기업인 상하이 셀비지 구난회사는 선수를 들어올리고 하부에 리프팅 빔을 설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맹골수도의 조류는 워낙 빠르고 급해서 계획되로 하지 못했다. 15일 간격으로 조수가 변하여 소조기에만 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양작업은 언젠가는 될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너무도 긴 시간을 고통당하고 있다.  미수숩자인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 라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두려움이 있다. 인양되어도 거기서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에 불안해 하고 있다. 그토록 인양을 기다리면서도 죽은 시신이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애환은 점점잊혀져 가고 있다.
   
 
학생들은 바로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는 말씀 처럼 세월호 유족중에서도 가장 오랜기간 슬픔을 간직하고 애간장이 타는 미수습된 9명의 가족들이 있는 팽목항을 찾은 것이다. 장신대 ”하나님의 선교“ ”암하렛츠“ ”은혜와 정의“ 에 소속된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이번 방문에 예장뉴스와 뉴스엔죠이 기자도 동행을 했다.

2014년 4월15일 단원고 학생들은 학창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학여행길에 들뜬 마음으로 단원고 학생들과 교직원은 인천에서 배에 오른다. 청해진 해운의 세월호는 기상의 악천후에 화물을 가득싣고는 출항을 한다. 그리고 진도 앞바다 가장 물살이 쎄고 깊은 맹골수도에서 급변침을 하고 침몰한다. 진도 VTS는 긴급한 상황을 전하지만 긴급하게 구조되지 못했고 국가는 안전과 구조에 총체적인 부실만 증명한 사건이었다.

침몰당시 승객의 안전과 구조에 책임이 있는 선장과 승무원들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는 방송을 하고는 제일 먼져 구조선에 올랐다. 한마디로 학생들을 바다에 수장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그리고 해경과 해부부의 신속하지 못한 대응과 대통령마져 그 긴급하고 중요한 골든타임을 지나쳐 7시이 넘도록 긴급하게 국가적인 대책을 간구하지 못했다. 이 문제로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수부 장관등은 모두 자진 사임을 한바 있다.
   
                   *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권사의 상황보고
가족들과 국민이 가장 분노하고 안타까워 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대통령이 어딘가에서 이 상황을 유선이나 문서로 보고는 받았다고 하는 데 왜 관계장관이나 실무자들을 독대하여 긴급하게 대책을 논의하지 않았는 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래서 전국민이 배안에서 서서히 수장되는 것을 눈뜨고 언론의 중계방송만 본 꼴이이다. 또 일부 언론사는 특종과 경쟁으로 볼거리를 위해서 슬픔을 당한 가족들을 또 한번 울렸다.  급히 달려간 가족들의 절규, 민간잠수부를 동원한 구조활동 전개도 맹골수도의 물살은 무심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제발 누가 우리 애들을 살려주세요” 라는 외침을 국가는 외면한 것이다. 사고였을 까? 그렇다 사고였다. 그리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허망하게 그렇게 많이 죽어야 하는 사고였을 까?  사고였지만 너무도 큰 사고가 된 것이다.

선사인 청해진은 일본에서 20년 이상 운항한 노후한 배를 116 억에 구매한다. 그러나 청해진은 겨우 12억을 내고 100억은 산업은행에서  융자를 받는다. 그리고 수습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서류에서 국정원 퇴직자들이 투자한 배라는 소문까지 났다.

애매한 유병헌과 청해진 회사 때려잡기에 이단시비, 도망중 자살등 어는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행각이 그해에 이뤄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배에는 약 400톤의 제주강정마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 철근이 실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배의 인양만큼 중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진실의 인양"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를 규명하고 재발방지와 책임자 처벌 가족에 대한 보상을 통하여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는 다.

아직도 남는 문제는 이런 불의의 사고에 대하여 대통령은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청문회에서도 그렇고 대통령은 자신도 그렇고 비서실에서도 그 긴급한 7시간에 대한 철저한 은폐는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특조위의  조사대상이라고도 하고 너무 큰 사건이라 제외해야 한다는 논쟁이 있다.

대견스런 장신대 학생들 

1학기 종강을 앞둔 신학생들이 찾은 팽목항 기도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봉사활동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행동이나 자세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만큼 세월호 사태는 정치적인 것도 이념적인 것도 아닌 가장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자유주의와 인간의 보편주의 정신세계에서 성장한  요즘 학생들로 오히려 누가 하려고 하면 저항하는 세대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발언을 소신있게 하는 주체성은 고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은 과거 7-80년대 민주와운동과 산업선교, 도시빈민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함께 했던 예전 선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국문제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당시의 운동 상황이 지금과 달리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는 군사독재의 거대한 권력과 이에 결탁한 교권에 대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런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준엄한 현실을 이겨낼 수 없었다.  요즘은 있지도 않치만 졸업후 농촌목회를 지망하고 농정을 걱정 하며 연구하고 복무하려는 농목회원들도 길거리 정치 투쟁을 외면 할 수는 없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성경도 아닌 교파가 만든 종교적 계율을 넘어서고 금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것을 어기면서 나름 운동권 집단 문화를 통하여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성장했던  과거세대들과 비교해서 본다면 많이 달라졌다고 본다.

이 기도회에 참석한 신학생들은 모두 목사후보생으로의 기본인 경건한 삶의 모습으로 긍휼의 기도와 자비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독교신앙의 정수인 하나님의 도우심과 예수께 고대하고 있다. 거대한 악의 권력과 음모앞에서 선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악의 구조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성찬집례를 인도하는 김영명 목사
예전의 학생들과 비교하여 보면 나이브할 수도 있지만 신앙인으로 신학도로  간직해야 할 신앙의 중심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리고  기도와 성만찬을 통한 자기성숙과 자기비움, 그리고 낮은 자리에 서는 훈련과정으로도 보여진다. 예전에는 군사독재의 만행에 동지들이 피흘려 쓰러져 가는 데 기도갖고 되겠는가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과거 학생들과는 확연히 구분

80년대는 사회변혁과 개혁 운동의 대의를 위하여 신학생으로의 경건과 학문에 대한 훈련을 애써 외면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철저한 신앙심에서 구하는 자를 도우시며 함께 하신 다는 말씀을 믿고 주님 긍흉과 자비로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가 언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기도를 간절히 원하는 가족들이 있는 한 기도의 불은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은 이런 저항의 정신문화나 정서는 운동으로 승화되야 한다는 면에서 인자들의 재생산이 안된다는 면에서 철저한 이론과 학습이 부재한 것은 아니었는 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에는 적어도 시위를 하고 국가폭력가 물리력 앞에서 주체적으로 서서 대항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사회과학 서적 300권 이상은 기본으로 독파를 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론은 운동의 정신과 조직의 재 생산이 이뤄질 수 있는  자산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변함없이 민중선교 현장의 선배들은 목회나 사회저변에서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지금의 세태는 사회과학적 학습이 부족하여 정신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철학적 체계나 주관이 약한 것이 아닌 가 한다. 

학생들은 어느 시대나 부조리나 부정에 대하여 가장 먼져 저항하고 집단화 하는 것이다. 그래도 후에 그들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세미나를 하고 토론을 하고 집단으로 거리와 현장의 경험을 통하여 산 지식이 되는 것이다. 예배와 설교만으로는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요즘은 민주적 가치를 충분하게 누린 산물인  떼제식의 개인적 기도와 감상으로는 우리사회가 변화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오직 주님" 만으로 열린예배와 딴라라문화로 잔락하여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의 엄중한 사명을 찬양과 어설픈 멘트에 동화되고 두손들어 회개기도하는 것으로 산화하는 것과 비판한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갖으려면  정신의 무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치 않고 남의 아픔을 공유하는 식의 측은지심으로는 항상  원위치하는 것을 반복한다.  바쁘고 힘든 일상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제는 그럴 듯한 설교와 좋은 말로는 아무것도 변화되지도 받지도 못한다. 이제는 더 아상은 말로 하는 시대가 아니다.  현장과 이론학습 그리고 순수하고 정직한 품성에 기초한 휴머니즘이 절실하다. 

정신적 유산이어가야

장신대에서의 이런 학풍은 3년전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되는 해의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일단의 외침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전에 해에 학교 사경회 강사의 흥미위주의 설교에 저항하는 일부 학생들의 선도적인 외침이 있기도 했다. 그후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누가 말하지도 않았지만 자생적으로 학내에서 안산에서 거리에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한 공감들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흐름은 년초 시작된 국사교과서 국정화로 불거진 김철홍 교수의 글에 대한 진지하고 밀도 높은  학생들의 판전승으로 보인다. 당시 김 교수의 문제기는 그 내용은 차제하고 라도  오랜 침묵과 서열문화에 젖은 교수사회에 한줄기 빛과 같은 일이기도 했다. 

이는 모초럼 나온 장신대 신학 교수 신학 선언이나 교회사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기대와 감격으로 한껏 고양된 인문사회적 정신이 고양될 수 있던 국면에  초를 친 분은 다름아니라 김철홍 교수로  당시 김교수는 동료 교수는 몰론 교단 총회장 까지 서슴치 않은 비판은 신선하기 까지 하다.   

결국 이 문제는 20대 총선에서 국민적 심판을 받아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어 낸다.  국정교과서는 폐기되지 일보직전이다, 한 정권이 교육의 백년대계를 좌우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제기한 방식에 환호하는 이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엎은 것은 바로 김 교수 자신이다. 당시  학내외서의 반응은 김 교수의 주장보다 그 방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신학대학의 오랜전통인  상명하복식 문화와 무사안일에서 자신의 생각과 발언을 소신있게 한 것에 더 점수를 준 것이다.  학교에서는 어떠한 학문적 이론이나 사상도 자유롭게 발표되고 비판받고 논쟁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던 장신대 학풍에  일대 전환의 시기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는 데 이것은 김 교수만의 책임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김 교수의 잘못되고 교조화된 논리에 반박하거나 논쟁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처럼 온 기회를 건강한 학문의  논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교수들의  무대응은  장신대의 지적유산이 되지는 못하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의 논리정연한 글에도 훈장 식의 갑질비판을 하는 김 교수의 구상유치한 전개는 결국 논객들의 팬을 접는 다. 사실 장신대 교수들중 이론적으로 김 교수를 반박할 수있는 인문사회적 관점이나 이론이 안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언제인가 누군가 한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장신대  학생들의 사회적 발언은 박근혜 정부들어 시작되었다. 문창극의 총리파동 반대, 국정원 직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비판과 선거부정 문제,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최근 구의역 공사장에서의 청년죽음에 대한신학춘추 기자들의 성명서도 나왔다.
   
 

이날 호신대 여학생이 봉독한 마가복음 4:35-39 의 말씀 가운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치도 않으십니까?” 라는 제자들의 절규에 대하여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는 말씀은 그 어떤 설교메시지 보다 강력했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마가 4:39)

... 잠잠해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닙니다. 잠잠해야 할 것은 바로 저 깊은 바다입니다. 잠잠해야 할 대상은 가족들이 아닙니다. 잠잠해야 할 것들은, ‘그만 잊으라’는 사람들, ‘이제 그만 하나님께 맡기라’는 사람들, 인양을 방해하고 그 과정들을 숨기면서 여전히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 속에 저며오는 눈물의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잠잠할 수 없어서, 예수를 깨웁니다...

                                   한 학생이 남긴 팽목항 참관기

팽목항에서 드리는 기도회를 잘 마쳤습니다. 장신대 뿐만 아니라 다른 신학교와 교회에서도 찾아와 주셨고, 광주, 익산 등에서 찾아와 주신 신학생, 기독인들, 목회자 분들도 계셨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언론의 건조한 보도와는 분명 달랐습니다. 현장에서 드리는 기도 역시 분명 힘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론 등에서는 인양에 대하여 계속해서 부정적인 전망이 담긴 보도를 냅니다. 인양을 안 하려고 저러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난무합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고 듣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속은 더욱 타들어갑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인양이 좀 늦어질지언정, 안전하고 온전하게 인양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함께 힘을 모으고 알려 줄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미수습자 9명을 찾는 일, 세월호를 인양하는 일, 이것이 세월호 사건을 푸는 시작입니다.  아직 세월호 참사의 규명은,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양이 시작입니다.

한 번의 기도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양이 되고 미수습자 9명을 모두 찾을 때까지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인양 과정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입니다. 아래의 기도제목을 정리해 드립니다. 계속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세월호가 유실 없이, 온전히 잘 인양되게 하소서.
∙ 9명의 미수습자 모두 가족의 품으로 잘 돌아오게 하시고, 한 명의 실종자도 없게 하소서.
∙ 인양작업이 가능한 ‘소조기’때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소서.
∙ 인양하는 업체, 장비, 잠수사들, 그 밖의 많은 과정 속에서 안전을 지켜 주소서.
∙ 미수습자 가족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도우시고, 건강을 지켜 주소서.
   
 
더 이상 인양을 더디하고, 숨기고, 방해하는 이들로부터 잠잠해서는 안된다. 오늘도 미수습자 가족들은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바다에서 나올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을 삼킨 바다를 보며 결코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생들의 기도와 봉사활동은 예수님을 깨우고 한국교회를 깨우는 자리였다.   

[관련기사]

예장뉴스 보도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박윤준
(175.XXX.XXX.202)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처지가 교계에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2016-06-21 16:08:40)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10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발행인 : 유재무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주사무소 : 상동발행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