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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으로 밀려 나온 신학생들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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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3  00: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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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밖으로 밀려 나온 신학생들

“문제아가 있기 전에 문제 가정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이를 빗대여 말하면 “문제 학생은 문제 학교가 만든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집에서 부모가 계속 잔소리를 해대면 아이들은 밖으로 나돌게 된다.  학생이란 배움의 도상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그래서 교육을 받는 것 아닌 가?  따라서 교육자는 피교육자에 대한 헌신과 사명만을 요구하지 않고 그에 대한 댓가를 주는 것이다.  문제 학생들에 대한 한없는 인내와 차별없는 사랑을 하라고 말이다.  
   
                                 * 소양관 605호를 허락하고도 2시간 전에 이를 취소한 장신대 
그런 사명이나 책임감 없는 교육이나 교육자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학칙이라는 룰로만 학생들을 다스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학교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학칙이나 드리대는 한 교육자는 아디다. 이번에 장신대가 학생들에게 강연 장소를 허락하고도 지도교수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2시간 전에 장소를 취소했다고 한다. 자기들이야 말로만 하면 그만이지만 이것은 폭력이다.

박동현 교수 사직 관련한 기사는 사실확인이 안된 것으로 학교 측의 요청으로 삭제합니다.

왜냐하면 지도교수가 참석할 수 없다면 다른 교수로 참석하도록 하여 지도하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밖으로 밀어 내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  지도교수 없는 학생 모임이 그렇게 안스러우면 총장이라도 가 앉아서 지도를 하던지 감시를 해야 옳은 것 아닌 가?  그렇게 해놓고 학교룰에 부적응 하는 학생들이라고 말할 것인가? 교육자라면 어떤 경우라도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고 책임이다. 

지난 3월 12일 오후 7시부터 9시 30분 까지 장신대 ‘암하렛츠“ 라는 써클이 주최한 신학기를 ”불장난 2“ 가 학교측의 기우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불장난' 으로 끝났다. 장난기 어리기도 하고 다소 불경스러운 표현이라고도 보여질 수 있지만 그러니 학생들이고 교육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다. 오랜만에 모신  선배 박동현 목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만 덕분에 기분 좋은 저녁시간을 보냈다. 
   
 
박동현 목사 어려운 자리 수락해줘

박동현 목사는 장신대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교수이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분이다. 독일에서 귀국 후 신학교에 교수로 들어가기 위해서 교권과 학연에 기대지 않고 홀연히 농촌 마을인 나주의 우산교회로 부임을 한다. 그러나 시대는 박동현 교수를 다시 장신대로 부른다. 그러나 자신을 불러준 이들의 입맛에 맞는 삶은 살지 않는 다. 후학들을 위하여 최소한의 진정성있는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박교수는  학생들 앞에서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고 말씀하는 데 거기 그의 진정성이 뭍어있다. 이번에 강의에서 자신은 성장과정에서 많은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내가 역설적으로 비판한다면 "대구 출신에 경북고에 서울법대, 독일 박사” 가 그런 비주류 생을 살았다면 이 세상이나 우리는 말다한 것이다.  문벌좋고 학벌좋고 능력있고 성실함 까지 갖춘 박교수도 주류가 아니면 피해자다. 박목사가 정교수임에도 보장된 정년도 체우지 못한 것은 사실 자의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으로

이날 박동현 목사에게 주어진 강의 체목은 “혐오하는 그리스도인” 이다. 그러나 박 목사는 이론이나 학설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준비한 10쪽 짜리 원고에는 토씨까지 친절하게 풀택스트로 준비되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 그리고 떼제의 찬송가 한편과 진솔하게 엮어간 말글에서 감동이 밀려온다. 가난하게 태여나고 자랐지만 목회자요 학자로써 교수와 목회생활 지난 30년의 역사는 아쉬움을 넘어 더 확고해진 이야기들로 차있다. 이를 기사로 옮기는 것이 결례지만 실례를 무릎쓰고 내식대로 적어봤다. 
   
 
급박한 장소이동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이 참석

현재 신학의 도반으로 앞으로 목회자가 되고 우리사회의 지도자가 될 신학생들과 동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억지도 강요도 없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 너무 익숙해서 간과했던 것에 대한 되새김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할일을 하자는 것이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자는 것이다.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할 것이다. 교육과 관행, 전통, 윤리, 도덕이라는 잣대로 우리사회와 사람들을 규정한 것에서 나와 내가 배우고 깨닳고 느낀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가? 그를 이론으로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 그가 감동하게 하라는 것이다. 감동받으면 그들은 우리를 따를 것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소리와 절차로만 남은 피폐하고 박제화된 교육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우리가 교사로 가르치기 전에 삶으로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그 지위가 무엇이든지 자기 앞에 있는 회중에 대하여 가르치고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에 대하여 감동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도 감동하지 못한 것을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을 까?

질문과 답변을 재 구성

15세기 유럽의 이름을 남긴 종교 개혁가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당대에 수많은 작은 루터와 칼빈이 존재했기에 그들은 그들 앞에 설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여진 힘과 지지가 개혁가들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했고 종교개혁은 불길처럼 번져갔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한 것이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고 나만이 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해야할일을 하면 된다. 세상이 절망적이고 장벽이 높더라도 우리의 일을 하면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실제로 마더 데레사도 기자가 묻기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냐고 하자 나는 한 사람씩 변화시켰다고 한바 있다.

내 앞에 있는 것들은 어느 누군가가 뿌린 씨앗이고 내가 뿌린 것을 내가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울며 애써서 뿌려야 할 이유다. 어떤 일본인 목회자와 대화을 했는 데 한번도 일본에 사는 한국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의를 제기 했더니 자신은 한번도 그 문제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면 그의 책임이 아니라 그의 교사들 가족들 어른들이 문제다.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 말하지 못한다. 어렵고 난해한 주제라고 우리는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 회피하지 말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한다.  누가 그것을 억압하고 잘못하고 있다면 아니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일말에 “Nein” 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No”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한다면 현재의 것을 부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식인과 연구자의 책무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그것이 왜 그런지 상고하였다” 라는 구절이 있다. 성경은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 다. 전부터 있었던 당연한 것 그속에 있는 한 진보는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No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성장했다는 증거는 바로 부모나 어른들이 말한 것에 대하여 “아니요”(왜) 라고 할 때이다. 이것은 반항이나 저항이 아니라 아이들의 지성과 감성이 성장을 하는 것이 자기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다. 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이것이 다른 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왜 다른지를 알 때 비로써 나의 지식이 생기는 것이다.

공부나 연구가 바로 바로 그런 사고를 하게 하는 훈련이다.  누가 어떤 것을 주장했다면 그것과 다른 주장을 찾아내 그것을 비교분석하여 보는 것이다. 그것을 내것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공부다.  한반도 통일론에 관한 논문이라면 이 분야의 이전 연구을 먼져 공부해야 한다. 냉전시대의 반공론과 승공 통일론과 한국가 두체제론, 최근의 햇빛정책을 비교분석하여 그것에 대한 장단점이나 긍정과 부정을 찾아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성서학' 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문제든 동성애든 비슷하거나 일부 구절만 있을 뿐이다. 침묵하거나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것이다 일부 다처제나, 독신주의나 금욕, 다산은 족장시대의 유물로 지금은 그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서를 갖고 어떤 난제에 억지로 답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서는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지식의 균등화를 요구하는 책도 아니다. 따라서 신학도 시대의 학문이다. 계속되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발전적 해석과 연구를 수용해야 한다. 성경은 인문학도 아니고 윤리책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이고 공동체에 주신 약속이다.

그러나 성경은 무시간적으로 모두에게가 아니라 철저하게 약자을 베려하고 그들을 돌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중심이다. 복음서의 예수님도 사회적으로 “죄인”(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들로 불리우는 세리나 창녀들과 환대의 식탁을 교제하셨다. 그들의 직업이나 하는 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도 말한 곳도 없다. “불결” 한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이방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구원의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으셨다.

그런 예수님을 비난하는 바리세인들에게 “다른 이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신의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함”(마태 7:3)함을 한탄하셨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일부가 모슬림이나 타문화권(불교나 이교)에 선교사를 보내면서도 국내에 있는 모슬림이나 이방민인들에 대해서는 차별과 배제를 일상화하고 있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반동성애나 차별도 같는 맥락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 다하여 주님은 일찍이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즉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본인의 내면을 먼저 보도록 가르치셨다. 율법을 어긴 여인이 돌팔매질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 8:7)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의 가르침이고 삶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무슨 이유로 우리의 이웃을 배제하고 혐오해야 한다는 말인가?

치열하게 투쟁의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늘 빚진자의 마음으로 학문적으로 후학들에게 본이 되고자 최고의 노력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아쉬워 한마디 첨언을 하자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나 계층은 이제 어느 정도 섰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도 이제는 자구적인 조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조직되고 투쟁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구조적인 약자들이 있는 데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Mute) 이 있다. 이들은 가부장제로 여전히 억압받는 여성과 온통 정상인들로 이뤄진 사회로 인한 불편해 하는 장애인과 최근 복음의 의인들에게 병균 취급을 받는 성소수자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정서나 문화가 폭력적인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가 아닌 교회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한다는 정치논리에 전도되여 복음의 진수를 잃어버린 교회는 예수의 교회는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함하렛츠(땅의 사람들)은 과거에는 가난한 빈민과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지지자, 대언자 였다면 이제 경제적으로는 세계 11위의 OECD 국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차별받는 이의 대언자가 되야 한다. 그런 댓가로 오해와 핍박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은 복이 있다고 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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