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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는 선교사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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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4  0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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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에서는 선교사를 조심해야 한다

필리핀 일로일로시티 지역에서 선교하고 있는 한 유명선교사가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소식이다. 필리핀은 선교사들의 사건사고가 가장 많은 곳이다. 가장 많은 선교사들이 거주하고 있는 데 선교사의 천국이라고도 한다. 이런 일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이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희생적으로 사역하지만 일부가 이런 일탈로 선교의 어두운 면으로 선교지원이나 선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드높다.

특히 필리핀은 한국선교사들이 경쟁적으로 들어가고 사역하는 곳으로 자연히 돈으로는 하는 대표적인 사역지로 유명하다.  특히 오래되고 능력있는 시니어들이 자리를 잡고 후임들의 군기를 잡고 해외에 교회를 세우거나 사역지를 찾는 주니어들을 등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챙피하거나 장차 사역에 손해를 염려하여 말도 못하고 있기도 한다. 

이번에 사기혐의로 고소한 Y목사는  S선교사를 사기죄로 처해 달라는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한다. Y목사는 “필리핀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S선교사를 통해 현지 법인을 세우고 부지매입 자금과 건축비용 등 4억8천여만원을 보냈지만 법인 이사진 명단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명됐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학교부지를 매입키로 하고, 매입자금 4억5천여만원을 선교헌금이 아닌 개인 돈으로 S선교사 개인통장과 YMY법인통장, 그리고 현금으로 S선교사에게 지불했다. 또한 학교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비용을 요구해 YMY법인통장과 현금으로 3천만원 정도를 지불했다”고 했다.

Y목사는 이어 “건축허가가 잘 되어가는지 확인차 관계기관을 방문해 담당자를 만났으나 건축허가가 신청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S선교사에게 신뢰가 가지 않아서 사임서와 권리포기각서를 받았다. 그 후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법인 이사진이 변경됐다. 2011년 S선교사가 이사장이 됐고, 2012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A교회 B장로가 이사장이 됐다. 2013년에는 이사진 명단에서 제명됐다”고 주장했다.

Y목사는 “내 평생 모은 재산을 S선교사를 만나 사기 당했다. 선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남의 재산을 편취하려는 S선교사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S선교사는 사실과 다르는 주장이다.  S선교사는 “Y목사와 현지 이사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지, 내가 Y목사를 몰아내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사직을 모두 내려놓았다. Y목사는 이사진에 다시 들어온 상태다. Y목사가 지금도 경영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S선교사는 2004년 CBS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은 선교사로, 2010년에는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동안의 간증과 경험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는 등 신실한 선교사로 평판이 나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역사

필리핀에 대한 PCK의 선교역사는 1981년에 류동원(김소자) 선교사가 첫 번째 선교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들은 신학교 사역을 위하여 파송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신학교는 필리핀 장로회 신학교(PTS)다. 처음에는 합동교단이 중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1990년 마닐라 성서신학원(MPTS) 로 그리고 1992년 마닐라장신대(RCB) 로 하고 학장으로 신기찬(홍은숙) 이 부임을 한다. 또  2004년에는 마닐라장신대 총장으로 NCCK 총무를 지내신 김소영 목사가 부임을 한다. 그리고 다시 2006년에는 CCA에 있던  이홍정 총장이 아태장신대로 개명하고 총장으로 부임하여 몬탈반으로의 이주를 시작한다.  그후 청주 청북교회 총회장을 지내신 김영태 목사가 지금은 국내 대전영락교회 김등모 목사가 이 학교의 총장으로 있으며 현지에는 명성교회 부목사 출신 한상호 목사가 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학교에 대한 초기 역사는 류동원 선교사의 전기 “내가 여기 있나이다” (서울: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1990)에 잘 나와 있다. http://www.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49437(졸업식그후 우리교단도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드나들었고 문제도 많이 발생한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선교사가 살인을 당하기도 하였고 감리교 선교사들이 지역과 출신지 패권싸움으로 큰 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필리핀은 선교사들의 천국이자 선교사 프렛홈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생활비가 싸고 영어를 사용하고 자녀들을 공부시키지 좋은 국제학교가 많다는 잇점이 있다. 그래서 국내서 하다가 안되면 필리핀이나 간다는 소리도 있다. 필리핀은 도시는 문명화 되어 있지만 농촌이 많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도시에 거주하며 농촌에 돌아다니면서 교역자 생활비를 보조하거나 선물이나 사서 사진이나 찍어서 올리고 선교지 방문하는 손님들 접대하는 게 일인 선교사들도 있다는 비판이다.

필리핀의  선교 역사

그러나 필리핀의 선교역사는 길다.  스페인, 미국, 일본 등의 식민통치 영향으로 동서양이 교체되는 복합문화형태를 띄고 있으며 천주교가 국교로 되어 있으나,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천주교 신자가 83.6%이나 다수가 전통무속종교 와 혼합되어 있으며 미신적인 신자들이다.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10%정도이며 그중 5.2%가 열심히 있는 신자이다. 그런데 개신교 선교사가 넘쳐나는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오랜 선교거점이었고 미군의 주둔으로 교통의 편리와 영어권에 안전문제가 보장되고 생활비가 저렴하며 선교사에게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적 여건과 생활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필리핀 교회현황
1899년 최초의 개신교 미국 선교사가 들어온 후 지금까지 필리핀은 어느 나라보다 예배하며 활동하기에 자유롭다. 2,000여명의 선교사들이 방방곡곡에서 일하고 있으며 300여 개의 교단이 등록되어 있고 그 결과 이미 굵직한 교회들이 여럿 생겨났다. 70년까지만 해도 4,300여 교회이던 것이 80년에 13,600 교회로 90년에 27,000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성장한 교회 들도 주로 성령운동을 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많은 편이다. 

필리핀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선교사가 있는 나라이다. 164개의 언어중에 134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고, 31개는 신약만 50개가 쪽복음만 번역된 상태이다. 교육에도 열심이어서 1974년 통계로 신학교 74개이던 것이 91년통계로 210개의 교회 혹은 기관이 신학교 혹은 교육기관으로 등록되었다. 신학교육도 주로 서양의 시상을 번역하여 가르치는 단계에 있으며 많은 학교들이 지역여건을 고려하여 신학연장교육(TEE)을 많이 실시하고 있다. 문서전도기관도 63군데나 등록되어 있고 이들이 도서를 펴내고 전도지를 개발하며 교육자료, 성경공부안, 기타 신앙지를 만들고 있다. 기독교방송과 텔레비젼 방송국이 있어 방송을 통한 전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 카톨릭 선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후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원주민들 가운데 대다수가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이 된 섬은 필리핀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원시상태에 있었으며 종교적으로 고등 신앙(higher faiths)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단지 이슬람교만이 아시아 대륙에서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슬람이 세워진 곳에서 기독교는 많은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회교가 기독교보다 앞섰다.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보르네오로부터 모슬렘 상인들이 먼저 와서 그들의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슬람이 1세기 또는 2세기를 앞질렀기 때문에 필리핀 섬들이 기독교화 되기보다 이슬람화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페인 선교사들이 때에 맞게 도착했다. 물론 남쪽에 많은 모슬렘 교도들이 있었다. 스페인 정복이 시작된 몇 년 후인 1573년에 큰 북쪽 섬인 루손 섬의 원주민들 중 얼마는 (특히 해안쪽) 모슬렘교도였다. 남쪽에 흩어진 모슬렘교도들이 부분적으로 민다나오의 통치자와 교전이 있은 후 부분적으로 이슬람의 전도가 금지되었고, 이슬람교도들의 집이 파괴되었으며 기독교의 가르침만이 허락되었다. 북쪽에서 는 기독교가 이슬람이 발판을 만드는데 방해가 되었다.

 필리핀이 기독교화 되었던 요인은 구미와의 접촉 때문이었다. 뚜렷하게 영향을 준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18세 기까지 유럽국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공격적이며 포르투칼과 네덜란드보다 힘이 강한 나라였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필리핀은 거의가 스페인의 소유 가 되었다. 스페인의 선교사가 동남아시아에서 다른 지역보다 필리핀에서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서구인들의 주요 목적은 상업이었고 기독교 신앙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상업보다 선교가 더 뚜렷했고 정치적 정복보다 기독교 전파가 앞섰다. 필리핀은 아시아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선교사들 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얻었으며 선교사들이 동인도와 인도차이나, 중국, 대만, 일본 등으로 갔다. 실제로 필리핀은 스페인의 정치적 종교적 정복을 위한 전략지로 생각되었다.

 마젤란(Ferdinand Magellan, 포루투칼 탐험가)은 챨스 5세 황제의 명령으로 지구의 정반대로 항해하여 유럽인들 일행과 함께 1521년 필리핀 막탄선(Mactan)에 도착하였으며 약 한달후인 5월에 라푸라 루라는 추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529년에 포르투칼인의 경계선 확장을 필리핀에 두었으나 스페인 사람들이 섬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1542년에 빌라로보스 (Villalo-bos)의 원정이 실패했으나 1565년에 레가스피(Lopez de Legaspi)의 영도 아래 섬들의 정복이 시작되었다. 필리핀을 정복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스페인의 정복의 확장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필리핀 회심 자들을 얻은 것은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마젤란과 빌라로보스에 의한 필리핀 회심자들이 생겨나긴 했으나 정치적 정복처럼 영구적인 기독교를 심은 것은 레가스피에 의해서였다. 레가스피의 지시에 의하면, 모든 탐험가들은 그리스도인들 처럼 행동해야 하며, 주님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공경해야 하며, 원주민들을 잘 대우해야 하며, 종을 사고 파는 일에 종사하지 말아야 했다.

레가스피와 함께 5명의 어거스틴 수도승들이 왔으나 그 중에 3명만이 필리핀 섬에 남았다. 어거스틴 교단에 이어서 1577년에 프란시스 교단이 도착했으며, 1578년에 도미니크 교단이 교황의 명령으로 마닐라에 주교구 성당을 세우기 위해 들어왔으며, 이어서 제수잇 교단이 들어왔다. 이들은 점유한 후 1세기 동안 종교적 열정과 군사적 정복의 결합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필리핀 회심 자들을 얻는 데 성공케 했다. 기독교는 필리핀 사회에 많은 일을 했으며 오늘날 필리핀 사람들의 72%가 아시아에서 단지 명목상 그리스도인 국가로 만든 카톨릭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의해 식민정책의 주요목적으로 신앙을 전파하게 하여 교회, 병원, 학교들을 세웠으며 원주민 성직자들을 훈련시켰다. 처음 필리핀 감독 조르게 바르린(Jorge Barlin)이 생겨난 후로 1905년까지 주교감독이 생기지 않았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북쪽으로 퍼질 때 카톨릭이 이슬람의 전진을 막는 역할을 했다.

비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수년 동안 산 속으로 쫓겨난 일백만 정도 의 부족들과 이방인들이 있다. 또한 민다나오(Mindanao) 남쪽 섬에 주로 모여 사는 모로스(Moros)라 불리는 2백만의 모슬렘교도들이 있다. 마닐라에 30만의 중국인들이 있으며 주요 도시들 가운데 주로 종교적으로 불교인, 문화적으로 유교인 들이 있다.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가 아글리파안 교회(Aglipayan Church)교회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 지도자 그레고리오 아글리피아(Gregorio Aglipay)가 로마에 반대하여 독립 국가적인 카톨릭 교회를 설립했는데 1902년에 형성되었다.

수년간 필리핀 독립 교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자유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의 불화로 인해 교회에서의 분열을 가져왔다. 1948년 이래로 필리핀 독립 교회의 세 감독들이 미국인 대주교의 손에 성별 식을 받았을 때 두 교파 가 협력하여 일했다. 케손시에 있는 성 안드루 신학교(St.Andrew"s Theological Seminary)가 지금 연합기구이며 두 교파 간치 성직자들 을 훈련시키고 있다. 1961년 이후로 그들 사이에 친밀한 교섭이 있었다. 필리핀 독립 교회는 150만 이상의 회원들을 가지고 있으며, 수십 개의 교구 안에 약 40명의 감독들을 가지고 있다.

 3) 개신교 선교
미국으로부터 개신교 선교협회들이 쇄도하여 들어왔다. 그 첫 번째가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였다. 장로교 개척선교사는 1899년 4월에 도착한 제임스 로저스 박사(Dr. James B.Rodgers)였다. 두마케티시에 있는 유명한 실리만 대학교(Silliman University in Cumaguete city)는 1901년에 장로교인에 의해 창설되었다. 처음부터 장로교회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주장했다. 1907년에 그들은 마닐라에 연합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를 세우기 위해 감리교인 들과 손을 잡았다. 1992년에 그들은 연합복음주의교회(United Evangelical Church)를 형성하기 위해 회중교인들과 연합형제회들과 통합했다. 1947년에 교회와 선교가 통합했으며 그 후 선교사들은 형제의 일꾼들로서 교회에서 봉사했다. 1948년 이후는 장로 교인들의 일이 필리핀 연합교회를(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왔다. 지난 10년 동안 우호적인 일꾼들의 수가 감소했다. 대략 1/3이 교회 일에 머물렀고 나머지는 의료와 교육과 행정 일에 머물렀다.

 필리핀에 들어간 두 번째 선교회는 감리교 성공회(Methodist Episcopal Church)였다. 감독 제임스 써번(Bishop James M. Thoburn)은 1899년에 마닐라를 방문하여 필리핀 섬들에서 사역을 의논했다. 처음 선교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초기의 회심자인 니콜라스 자모라 목사가 일을 수행한다. 처음 선교사들은 1900년 2월에 마닐라에 도착 한 WFMS에 소속한 5명의 여자들이었다. 한 달 후 토마스 마틴 목사가 도착했고 이어서 후에 감독이 된 호머 스텐츠

(Dr.Homer C.Stuntz)박사가 일을 수행했다. 여성들을 위한 첫 성경학교가 위니 프레드스폴 딩 양(Miss Winifred Spaulding)에 의해 열렸다. 첫 선교 회의는 1905년에 조직되었고 1908 년에 정기회의를 가졌다. 감리교 성공회는 세 번(1905, 1909, 1933년)이나 갈라졌다. 첫 필리핀 감독이 1944년에 임명되었다. 오늘날 감리교회는 5개 연회로 조직되었고 모 든 주요 직위들은 필리핀인 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선교사들은 협력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1952년까지 필리핀 연합교회의 문제로 감리교회의 사역이 북 루손섬에 한정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교회와 선교 일이 민다나오까지 확대되었다.

 미국 침례교(American Baptists)는 1900년에 현지에 도착하여 파나니(Panay)와 네그로스(Negros)섬들에 노력을 집중했다. 에릭 룬트박사(Dr.Eric Lund), 스위스 침례교 선교사는 미국 침례교 외국인선교사협회의 처음 대표자였다. 그와 그의 동료 브라우리오 마니칸(Braulio Manican)은 1912년 파나이어와 비사얀어 성경번역을 마쳤다. 첫 선교 병원이 안드루홀 박사(Dr. Andrew Hall)에 의해 일루일루(Iloilo)에서 열렸다. 1905년 미스 안나 쟌슨(Miss Anna Johnson)은 침례교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웠다. 필리핀 침례교회 협의회는 1935년에 형성되었는데 세례 교인 3만을 가진 교회로 300여 교회가 있다. 다음은 1901년에 생긴 그리스도의 제자교회(The Disciples of Christ)가 있다. 그들은 마닐라를 피하여 북 루손으로 갔으며 라오악 (Laoag)에 본부를 세웠다. 1901년과 1954년 사이에 이 선교회의 70명의 선교사들이 이 섬에서 사역했다. 1943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주의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연합형제회(United Brethren)와 통합했다. 이들은 후에 필리핀 연합교회가 1948년에 조직될 때 가장 큰 연합회원이 된 교회이기도 하다.

 1902년에 외국선교를 위한 미국인 이사회는 일치에 의해 민다나오 남쪽 섬으로 할당되었다. 그 당시 50%가 명목상 카톨릭 교도였고 30% 가 모슬렘교도였으며 나머지는 이방인이었다. 개척 선교사인 블랙 목사 부부(Rev.and Mrs.R.F.Black)는 다바오 (Davao)에 위치했다. 회중교회는 연합복음주의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1929년에 장로교회와 연합형제교회와 통합했다.

 1948년에 새로 형성된 필리핀 연합교회의 일부가 되었다. 미국성공회(Protestant Episcopal Mission)는 1902년에 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항상 마닐라에 있는 영미 사회에 중요한 사역을 계속해 왔다. 또한 루손 산간지역의 이고롯쪽(Igorots) 과 남쪽 민다나오의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펼쳤다. 성 안드루 신학교와 트리니티 대학이 필리핀 독립교회와 지금 손을 잡고 일하고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거의 6만 명에 이르는 세례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선교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은 1902년에 민다나오 남부 섬에서 일했 으며 여러 달 후에 선교사가 콜레라로 죽자 일을 보류하기도 했다. 수년 후인 1908년에 일을 시작하여 2커플을 얻었고 1941년에는 30명의 사역자를 얻었고 1947년에는 필리핀 기독교선교연맹이 독립하게 되었다. 1969년에는 558명의 회원들을 얻었다. 세례교인은 2만을 확보했다. 여러 수준에서 기독교인 훈련을 하 는 4개의 성경학교를 운영했으며 평신도 지도자 들을 훈련시켰다. 2백만장 이상의 복음서를 정기적으로 찍어내는 연합출판사를 만들었다. 또 한 라디오 방송도 민다나오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사역중 하 나이다. 1958년에 시작된 좋은 소식시간(Good News Time)은 22주간 방송으로 확대되었고 그 중에 4개의 상업방송과 하나의 교회와 관계 된 방송을 가지고 있다.

 제칠일 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는 1910년에 필리핀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여러 곳에 강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174개의 초등 학교, 20개의 고등학교, 2개 대학과 6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다. 교회 개척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125,000명의 회원을 모았고 1,165개 정도의 교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는 미국에서 회심하여 미 국 성경학교에서 훈련받았던 필리핀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1930년에 필리핀에 돌아와 하나님의 성회 교회를 세웠다. 오늘날 이들 중 몇몇은 훌륭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하나님의 성회는 복음 전도와 교회개척에 열심이다. 오늘까지 각 지역에 6개의 성경학교를 세웠고 1964년에 극동신학교(Far East School of Theology)를 마닐라에 세웠다. 성경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연장교육을 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현재 425교회에 5만의 세례교인을 확보했으며 700명의 자 국인 사역자들과 45명의 선교사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 교단과 동역관계를 맺고 있는 연합그리스도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 UCCP)는 1948년에 연합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세 개의 교파가 통합을 했다. 이 교파들은 연합복음주의교회(장로교회와 회중교회: United Evangelical Church)복음주의교회(연합형제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교회: Evangelical Church), 필리핀 감리교회(독립교회 : Philippine Methodist Church)였다. 다섯 개의 미국인 교파들이 연합 교회와 협력했다(그리스도의 제자교회, 연합장로교회, 연합 감리교회, 개혁교회, 연합그리스도교회) 

이들 교회에서 연합교회에 70여명의 선교 사역자들을 할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선교부는 교육, 의료, 행정사역에도 해마다 협력을 해왔다. 해마다 4-5%의 성장률을 가지고도 엽합교회는 1,400명의 모든 전도자들에게 신학교 훈련사역을 후원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400명만이 목사로 임명되었다. 연합그리스도 교회는 160.000명의 세례교인을 가진 분명히 필리핀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가 되었다. 연합교회는 성경학교, 학원, 중소 대학, 간호학교, 두 신학교와 실리만 대학 등 20개 이상의 학교를 세웠다.  이 교단의 지도자들은 CCA의 총무를 지낸 카리뇨도 있고 세계교회협의회(WCC)에도 나가서 일했으며 세계적인 신학자들도 많이 나왔다. 영어로 소통하고 강의를 하는 풍토 때문에 국제적인 면에선 우리보다 앞선다.    

필리핀에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기독교 대학이 별로 없는 가운데  1907년에 장로교인에 의해 세워진 두마케티시(Dumaguete)에 있는 실리만 대학(Silliman University)교는 한국의 연세대학과 같은 역사를 갖고 있는 기독교사립 대학이다. 207명의 교수진과 3,500명의 등록학생들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도 여기에 유학을 했는 데 PCK에서는 황남덕 목사가 석사과정을 지냈다. 실리만 대학은 현재 연합그리스도교회와 관계를 갖고 있는 에큐메니칼에 속한 대학교이다. 그외   UTC라는  UCCP 직영신학교도 있다.  마닐라에 필리핀중앙대학(Centeral Philippine University)은 미국 침례교회와 관계가 있는데 1905년에 일로일로(Iloilo)에서 시작 되었다.

 1953년에 정부로부터 정식인가 받은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로 10개의 중소 대학교로 구성되었으며 한 개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선교 단체들이 일어났다. 이 선교단체들은 미개한 부족들에게 더많은 선교를 집중하고 있는 선교단체들이다. 남침례교선교회는 1948년에 마닐라에 있는 전중국선교사들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빠르게 성장하여 북쪽에 루손 섬과 남쪽에 민다나오섬 과 중앙에 시부섬에 현재 1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 했으며 이미 145 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그중 130개의 교회가 자립하고 있다. 세례교인 이 13,000명에 이르고 있다. 

해외선교사협의회(Over Missionary Fellowship)는 1952년에 민도로섬(Mindoro)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그 당시까지 거주하는 개신교 선교사가 하나도 없었다. 오늘날 선교사의 절반이 부족들이 사는 산간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 중에 약 30,000명에 이르는 망얀 (Mangyan) 지역에 사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6개의 주요 부족들에게 선교를 하고 있다. 문서선교를통하여 필리핀 교회들에게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선교 단체이다.

 위클리프 성경번역(Wycliffe Bible Translators)선교회는 피트만 박 사(Dr. Richard Pittman) 의 인솔로 22명의 성경번역자들이 1953년에 필리핀에서 도착함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에는 150명의 선교사들이 42부족들 가운데서 일했다. 성경의 부분들이 23개의 언어로 번역 되었다. 이방인 부족들도 관심을 가졌으며 모슬렘 족에게까지 사역이 확 대되었다. 번역자들은 직접전도를 하지 않았으나 현재 36부족 가운데 신앙인들이 생겼다.

현재와 같은 선교방식 재고해야

현재 필리핀에는 한국교회와 개인들이 투자하여 운영하는 미션이나 학교등이 넘쳐나고 있다. 유명한 MK학교도 선교사들이 운영을 하다가 한 대형교회가 인수하여 운영과 재정 인사문제로 현지법을 무시하고는 등 학부형들의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천주교도가 80%이고 개신교도 있지만 현지 교회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들어가서 선교를 한다고 각축을 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지 오래되었다. 지금 몬탈반으로 이주한 신학교도 그런 중복과 오명을벗기위해 마닐라 아태장신대로 개명하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중에 그래도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필리핀의 선교나 투자는 중복된 감이 있고 국내 교권정치의 산물의 피난쳐거나 휴양지 성격이 더 강하다.  차라리 지역발전을 위한 기술학교등 선교의 내용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이상 전통적인 교회나 학교를 세우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특히 현지 동역교단과의 협약이나 관계없이 개인적 차원의 선심선 선교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현지에서는 한국선교사는 봉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도 안되고 사역은 쉽지 않으나 돈은 있으니 현지인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그를 먹여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코가 꿰인다. 특히 필리핀의 UCCP교단과 협력없는 선교는 이제 그만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부 선교사들이 자기사역을 자랑하고 떠벌려도 이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 이상 주관적인 사명만 의지하고 무조건 나가서 깃발꼽고 하는 선교는 지향해야 한다. 필리핀은 거의 모든 한국교회의  교단들이 선교사들이 정식파송  없이 무조건 나가는 곳이 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필리핀 선교사 대분분은 무조건 와서 자리잡고 정회원이 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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