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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19  22: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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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형규 목사 별세

기독교계 민주화 운동의 큰 어른 박형규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증경총회장)가 18일 오후 5시 30분 93세로 별세하셨다.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평소 "우리들은 정의파다"  라고 외치던 박형규 목사는 기독교 장로회 제66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생전에 시무하던 서울제일교회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다. 박 목사는 은퇴 후에도 남북평화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교단과 한국 교회, 우리 사회의 정의 평화 생명 운동에 크게 기여해 왔다.

마포구 공덕교회의 부목사를 시작으로 4․19 이후 크게 회심한후 기독교의 사회참여 신학을 실천하여 1973년 반유신체제 시위인 '남산부활절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사건)과 '기독교장로회 청년 전주시위사건' 등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평생 여섯 차례 옥고를 치렀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는 35년 만인 2014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박 목사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가를  "너무나도 오랫동안 쇠사슬에 묶인 손들" 이라는 가사로 개사하여 당시 고난받던 이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

이 번에 고 박 목사님의 장례가 마치고 나온 이야기들 가운데 그 어른의 평소 삶도 훌륭하였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큰 교훈이 되어서 소개한다.  최근 거동이 불편하시자  돌아가시기 일 주 전부터 곡기를 끊으시고 사흘 전부터는 물도 거부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셨는 데  큰 어른다운 모습이셨다는 것이다. 

유경재 목사는 이 이야기를 SNS에 전하면서 "100세에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난 스콧트 니어링이 생각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아내 헬렌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보면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과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 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법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 고 하였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참으로 원치 않게 병원에 실려가 쓸데없이 목숨 연명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고생하다가 삶을 마치는 것을 보면서, 요즈음에는 많은 사람이 사전 의료 의향서를 통해서 그런 최후를 맞게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품위있게 살아온 만큼 품위있게 그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본다. 헬렌은 "사람이 죽는 방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이가 품위있게 그렇게 하도록 도왔다" 고 하였다.

존경하는 박 목사님은 품위있게 사셨고, 품위있게 그 죽음을 맞이하셨다. 이런 품위있는 죽음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다.  굳센 의지로 준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품위있는 최후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햐 할 것이다.

<박형규 목사 약력>

1923년 경남 창원군 진북면 영학리에서 출생
1930년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독교학교 다님
1944년 조정하 여사와 결혼, 슬하에 2남 2녀
1944년 민족사상을 고취한다고 김해경찰서에 연행
1950년 미 극동군 일본사령부 심리작전국 방송 군속
1960년 서울교회에서 목사 안수 받음
1962년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신학 석사 받음
1966년 한국기독학생회(KSCM-KSCF의전신) 총무
1970년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회 위원장
1972년 서울 제일교회 담임목사 취임, 20년 동안 시무
1973년 남산 부활절연합예배 사건으로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1975년 선교자금 횡령과 배임 사건으로 구속
1978년 기장 청년회 전주교육대회 시위 사건으로 구속,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
1983년 국군보안사령부 공작으로 폭력배가 서울 제일교회 예배를 방해하기 시작
1984년 교인들과 함께 폭력을 피해 중부경찰서 앞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
1987년 ‘박종철 고문살인 및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범국민대회’를 주관하고 구속
1992년 서울 제일교회에서 은퇴
1998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고문
2001~2004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저서로는「해방의 길목에서」(1975), 「해방을 위한 순례」(1984), 「파수꾼의 함성」(1972),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2010)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이며, 유족은 아들 종렬, 종관, 딸 순자, 경란 씨 등 2남 2녀이다.

박 목사의 장례는 기독교장로회 총회葬(5일 간)으로  20일과 21일 서울노회, 기독교빈민선교협의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노회, 생명선교연대 등이 주관하는 추모예배와 함께 NCCK는 21일 오후 4시에 추모예배를 드리고 발인은  22일(월)오전 9시 기독교회관에서 기장총회 주관으로 장례예식을 드린다.

   
 

다음은 장례식에서 안동교회 원로인 유경재 목사의 조사전문이다

고 박형규 목사님 영전에

존경하는 박 목사님, 견디기 힘들도록 무더운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주님의 나라로 훌쩍 떠나셨군요. 더위도 더위지만 그 더위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정치 때문에도 더 이상 머물러 계실 수가 없으셔서 훌훌 털고 일어나 모든 것 뒤로 하고 자유와 기쁨이 있는 나라로 떠나신 것이겠지요.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그 주일에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에 갈 때 “이 나이에 이민 갈 수도 없고 앞으로 5년을 어떻게 견디지?”라고 한탄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결국 그 5년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 나라로 이민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실 즈음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제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계,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 나라로 들어와 안식과 자유의 기쁨을 누리라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그곳에서 제일 먼저 사랑하는 어머님을 만나셨겠지요. 목사님이 재판정에 서실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우물쭈물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고 호통 치셨던 그 어머님께서 자랑스러운 삶을 마치고 오신 아드님을 영접하며 기뻐하셨겠습니다. 엄격하며 신앙이 투철하셨던 어머님께서 족보를 따른 이름과 별도로 아들의 이름을 거룩할 성, 길도 ‘聖道’라고 지으시면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약속하신 날 목사님의 앞길은 이미 예정되었고, 목사님은 그 예정대로 쉽고 편안한 길 대신에 험난하고 어려운 길인 의의 길 거룩한 길을 끝까지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투지로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랑스러운 마침표를 찍고 미련 없이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7,80년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목사님이 계셨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자랑이며,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한국교회는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지나온 날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참된 신앙인의 길이 무엇임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불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절대로 의인의 길에 선 사람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신념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신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있는 것처럼, 박 목사님의 굽히지 않았던 신앙의 투쟁은 미래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지표가 될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자랑스럽습니다.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길이 간직할 귀중한 보배이십니다. 한국교회가 길이 기억할 신앙투사의 표본이십니다. 목사님, 이제 계신 곳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싸워야 할 후배들을 위해 성령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새 힘을 얻어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릴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이르게 하여 주십시오.

목사님, 자유와 행복이 깃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의 기쁨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16년 8월 22일

안동교회 원로목사  유경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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