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한국 선교사들의 천국인가?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지금 찾아갑니다.
필리핀, 한국 선교사들의 천국인가?2. 한국식 전도 언제까지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10.20  13:49:17
트위터 페이스북

필리핀, 한국 선교사들의 천국인가?

2. 한국식 전도 언제까지

※ 글 싣는 순서
 1. 지정학적 위치와 국가와 기독교 정보
 2. 한국식 전도 언제까지 
 3. 한국교회의 필리핀 선교 사역 
 4.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 

필리핀의 종교통계를 보면 천주교인이 80 % 이상이다, 개신교도 10%이상으로 90% 이상이 기독교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선교사가 필요한가?  기독교 국가에 왜 선교사들이 가야 하는가?  한인들을 위한 이민교회라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현지인 선교를 한다고 하는 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교단 초창기 선교사였던 분이 "이제 필리핀에선 더 이상 한국선교사가 필요없다" 는 말을 남긴지가 30년이 넘었다. 모든 선교사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필리핀으로 선교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쉽게 말한다면 영어권에 기독교문화가 있고 생활비 낮고 안전 문제와 항공권의 편리함을 주요 원인으로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식 선교사로 파송받기 전이나 받을 수 없는 분들의 첫 번째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일단 나가고 보는 곳, 가서 준비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교단마다 다르지만 선교사로 가려면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교단은 부부가 1년은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과 면담 결단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타 교단의 경우 별의별 이유를 달아서 마닐라에 거주하는 지망생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선교사가 후원을 받으려면 일단 선교의 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후원처를 개발하여 일단 나가고 보는 것이다.  일단 일을 저질러야 일이 되는 게 한국교회의 풍토이기 때문이다. 가서 고생하고 기도하고 선교한다는 데, 사진 찍어서 사역한다고 보고하는 데 신앙 좋은 한국교회가 외면할 수가 없다. 대답 없는 메아리 선교 편지를 보내다 보면 결실을 맺기도 한다. 그리고 일단 한 번 현지에 오라고 한다. 잘 대접 받고 돌아가면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정식 파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보면 기회가 나서 정식 회원도 되고 안 되는 일이 없다. 교단 선교부는 정식 파송을 받고 가라고 하고 개 교회에게 정식 파송 선교사를 도우라고 하지만 갖가지 인연을 달아서 구걸 선교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다. 넘치는 선교사들이 필드를 놓고 이전투구를 할 수밖에 없다.  자칭 선교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 필리핀이다.  이러니 선교사가  피선교지에 대한 공부나 연구, 준비는 뒷일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기독교 역사는 무척 오래 되었고 세계교회에도 실력있는 일꾼들이 많다. CCA(아시아 기독교 교회 협의회) 총무도 나왔고 현재 복음주의권의 총무와 아시아선교단체의 대표도 필리핀 신학자다. 

필리핀의 기독교 역사는 1521년 마젤란이 처음 로마 가톨릭을 전파했지만 이전의 필리핀에 존재했던 종교는 정령숭배 신앙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필리핀의 역사는 거의 알 길이 없다. 1521년 마젤란이 시부에 도착한 일 주일 후 시부의 왕과 여왕과 그 백성 전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은 필리핀 사람의 전통과 민속을 로마 가톨릭과 대치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대로 받아 들였다. 스페인 신부들은 세례를 베풀 때 일부일처의 결혼과 과거의 죄로부터 회개, 세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신앙을 조건으로 했으며, 이 외에도 아베 마리아, 십계명, 주기도문 등의 암송을 덧붙였다.

교회는 로마 가톨릭 종교를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곳이 되었고 반면에 가정은 정령숭배의 종교를 가르치는 곳이 되었다. 정령 신앙은 실제적인 매일의 생활 즉 농사, 사냥 등에 더 밀착되어 관심을 두고 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은 궁극적 관심 즉 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 필리핀 사람들의 식민지적 종속화는 성공했으나 로마 가톨릭 신부들은 현재의 종교가 실제의 로마 가톨릭이 아닌 혼합된 종교 즉 민속 가톨릭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민속 가톨릭은 로마 가톨릭의 모습을 가진 정령숭배 신앙일 뿐이다.

그러나 관심의 분야에 있어 차이점이 있으나 로마 가톨릭과 정령 신앙이 겹치는 분야가 있다. 예배와 축복을 위해 종교적인 우상이나 물건들과 성수 사용, 성인들에게 기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상에 정령 신앙의 부적과 같은 능력을 부여, 종려주일에 축복이 부여된 십자가 형상으로 만든 종려 잎사귀를 집 문 위에 놓아 악령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푸니와 버스, 택시 등에 그들의 여행을 지켜준다는 신앙을 가진 동정녀 마리아나 싼토 니뇨(Santo Nino)의 형상의 제단을 가지고 있다. 시부의 뀌 아포의 검은 나사렛사람(The Black Nazarene of Quiapo)과 싼토 니뇨(Santo Nino)는 병든 자를 고치고 악한 영들에게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종교적 상징들이다. 싼토 니뇨의 집인 시부시에서 싼토 니뇨의 호의와 관심을 얻기 위해 늙은 여인들이 피트 쎄뇨(Pit Senor)라는 춤을 춘다.

이 여인들은 고객들이 사준 양초를 가지고 교회 앞에서 춤을 춘다. 이 양초들은 싼토 니뇨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1월에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시부의 싼토 니뇨를 기념하여 춤을 춘다. 가톨릭과 겹치는 또 한 가지는 연옥설로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에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정령 신앙이다. 그 예로 위령의 날(All Soul's Day)에 죽은 자의 무덤에 음식을 놓아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무덤에서 죽은 조상들과 함께 하루종일 또는 온 밤을 지내기도 한다.

특히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Iglesia ni Kristo, 타갈로그어 -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뜻)는 필리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히 토착화된 그리스도교 교단으로 1914년 펠릭스 마날로가 교회를 세웠을 때 하느님의 선민인 필리핀 민족 안에서 초대교회가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1945년부터 급속히 성장하여 20세기 후반에는 교인수가 60만 명에 이르렀고, 필리핀 전역에 화려한 예배당을 세웠으며, 펠릭스의 아들 에라뇨 마날로 주교를 중심으로 부유한 중앙 조직을 갖게 되었다.

지도자들은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개인의 헌신과 선거 참여 등을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확고한 정치적 압력 단체로 만들었다. 신학은 유니테리언적이다. 필리핀어, 필리핀 전례, 필리핀 음악을 사용하는 이 교단은 반(反)서구적인 영적 독립운동을 대표한다. 필리피노들의 기독교적 종교에 관하여 논하기 이전에 이들은 거의가 다신교나 잡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이었다. 그들은 나무, 강 등 여러 사물에 영혼이 담겨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자연을 경배하고 태양과 달, 별들을 섬겼다.

그들은 또한 전지전능한 신을 섬겼으며 그럴 것이라고 느껴지는 다른 신들도 섬겼다. 왜냐하면 고대 필리피노들의 종교인 아나모 대이즘이라고 일컬어지는 종교에서 주위의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과 사물들을 신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은 기독교 인으로 교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필리피노의 국교가 천주교로 정해져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필리핀 독립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아그리파이를 선두로 하여 일어난 천주교 종파도 있다.  이 분파는 국수주위적이며 보편적인 천주교회와는 달리 로마 교황을 천주교의 머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나 믿음은 천주교와 같다.

이러한 그룹은 그들의 시초인 그레고리오 아그리파이를 따라 아그리피안스로 불려진다. 또 다른 필리피노의 교회이며 팔라완에서 시초가 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이 나라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는 이글리시아 니 크리스토이며 필리핀 교회 중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대사전을 보면 이글리시아 니 크리스토는 필리핀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고유 기독교 교회라고 나와 있다.

여기의 구성원들은 옛부터 신이 선택한 나라인 필리핀에서 특히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일컬어지며 1914년 형제 펠릭스 Y. 마날로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종파는 1945년 이후 급성장을 이루었는데, 20세기 후반엔 교회들을 전국에 세웠고 펠릭스의 아들 신부 엘라노 G 마닐로 아래 핵심 부유층들로 중심을 이룬 구성으로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성경으로부터 적용되는 엄격한 규례들과 명령들, 중심적인 구성원들로부터 그 교파의 확장과 안녕을 위한 투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종파의 역량을 키워간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교리와 고유어인 필리피노-타갈로그어를 사용하고 유명한 서양 문물들과 신들을 배척하는 노래들을 만드는 한편 서양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외치는 종파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필리피노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2개의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민족이다. 이슬람교는 14세기경 아랍 세계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초기에 필리핀에 전파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서구세계가 동방으로 확장세를 펴기 시작함과 동시에 스페인이 상륙하기 전까지 빠르게 이슬람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현재는 이슬람 세력들이 필리핀 남부지역에 밀집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슬람은 지금까지 많은 변화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기독교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활동구역 확장을 계속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구상하고 있으나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서구세계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기독교는 스페인을 통해 필리핀에 들어왔으며 초창기 선교사들은 이슬람교도들이 가득한 곳에서 자신들의 종교와 생활양식 등을 전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필리노들은 자신들이 “moro”또는 “moors””로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경향이 배어 있는데 이것은 스페인에게서 기독교가 전파될 때 '무슬림'을 가리키는 위 말들을 필리피노를 폄하하는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카톨릭 기독교 신앙은 1521년 펠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한 이후 16세기경부터 필리핀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신 종교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자신들의 식민지화하겠다는 의견을 굳힌 17세기까지는 그렇게 뚜렷한 교세 확장 활동은 없었다. 로마 교황청의 정책을 바탕으로 실시한 스페인 기독교의 교세 확장 활동의 결과, 필리핀은 수세기 동안 굳건히 카톨릭 국가로 자리 잡았다. 타종교들과 함께 1899년 필리핀에 소개된 개신교는 스페인-미국의 전쟁기간 동안 미군들과 함께 상륙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을 통해 전파되었다.

1900년 침례교, 감독교회, 예수회, 신교정통파(1901), 조합교회(1902)등이 끊임없이 필리핀으로 유입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 독립교회로는 Aglipay(필리핀 성공회)와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예수교)로 각각 1902년과 1914년에 창설되어 현재까지 교세를 계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아글리파이는 영국 성공회와 서약을 해 성공회로 인정되었으며 자국 내 성공회 활동을 활발히 해 나가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의 천주교 인식

따라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표방하는 이들은 필리핀의 천주교회나 개신교 아류들은  이질화된 기독교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은 필리핀의 부패와 부정의 온상이고 무속적이고 토착화되었으며 미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대중을 외면하고 부유층의 종교가 되어 있고 상류층을 대변하는 것이 가톨릭교회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필리핀 천주교회와  상층 종교지도자들은 대토지 소유자들이고  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나 1%의 부자들과 연대하여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선교사들은 미전도 종족 국가가 아닌데도 가톨릭 교도들을 대상으로 개신교로의 개종을 목표로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리핀 천주교회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아주 못마땅해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선교사들과 현지에 이미 있는 기존의 10%의 개신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거의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현지 기독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인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교단은 예외지만 거의 모든 교단의 선교사들이 현지교회(UCCP)에 대하여 파트너쉽이나 동역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 보수적인 교단들은 현지에 또 하나의 장로교단을 세우고 신학교를 세워서 임의로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상하는 데 교파 분열에 크게 일조하는 것이 된다.

물론 우리교단도 아태장신대(아시아태평양 국제신학대학)라는 신학대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현지 교단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운영하지 않는 신학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선교인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해외 여행이 늘고 싼값으로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다는 선교사들의 홍보에 현혹된 교회와 신도들이 현지의 필요나 요구를 모른 채 교회당을 세워놓고 도와주기 위하여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현지 선교사들의 얘기는 이미 세워진 교회를 잘 돌보고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사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업적 위주의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 전체를 조망하는 사역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다.  물론 현지교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지에 선교를 하러가서 현지 교회와 동역이나 협력을 외면한다는 것은 선교의 기본이 잘못된 것이다.

필리핀의 신자들은 우리 식의 눈으로 보면 성경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기독교의 구원교리인 '이신칭의'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러한 기독교의 근본적인 구원교리를 현지 기독교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고 구원문제에 있어서도 믿음보다 행위를 더 강조함으로써 신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성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는 더 이상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 이외의 어떤 중보자나 제사장도 필요없고 만인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수 이름으로 직접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를 만인제사장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은 모든 사람이 베드로의 후예인 교황과 그의 권위를 대행하는 사제(신부)들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만인제사장설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필리핀 선교 역사

1. 필리핀 선교의 세 時期

이제 35년을 넘긴 한국교회 필리핀 선교역사를 세 시기로 분류를 하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필리핀 선교가 시작된 1970년대 중반은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를 재개(再開)한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당시 필리핀에는 교민이 약 200여 명 정도 있었고, 소수의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시작하던 때로 본다.

필리핀 선교의 첫 10년은 1975년~1984년까지로 필리핀 선교의 개척기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식적인 선교사 수는 10여 명 남짓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 수가 조금씩 늘기 시작하였다. 필리핀 선교의 두 번째 10년은 1985년~1994년으로 필리핀 선교의 정착기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는 각 교단들이 열정적으로 선교사 파송을 하면서 선교사 수가 급증하였다. 이런 현상은 1988년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료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한국에서 필리핀 선교를 위해 파송 받은 선교사는 1985-1990년에는 47명, 1991-1995년에는 127명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그 숫자가 200여 명이 되었다.

필리핀 선교의 세 번째 10년은 1995년 이후로 필리핀 선교의 확장기라고 볼 수 있다. 선교사의 수가 2000년대까지 높은 증가세를 보였고, 이 기간 동안 한국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의 수는 2005년에 450여 명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는 이 후에도 계속하여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2010년에는 필리핀 선교사들이 1,2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누가 한국인 최초로 필리핀에 선교사로 갔는가?” 에 대해서 몇 가지 의견들이 있다. 1960년 후반에 감리교 임홍빈 목사가 여러 해 동안 필리핀에서 선교했다는 말이 있기도 하며, 1970년도에 감리교 한경수 감독이 바기오에 선교사를 파송했으나 그 선교사가 미국으로 이주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기록이나 자료들이 없는 관계로 선교역사의 근거로는 삼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장로교 측은 최찬영 목사를 한국 여권을 가진 필리핀의 첫 한인 선교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태국에서 오래 선교하다가 United Bible Society(국제성서협회)로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성경 반포 총무'로 임명되어 필리핀에 1974년 8월부터 1978년 7월까지 마카티 지역에서 거주하며 사역하였다.

한편 감리교 측에서는 1973년 6월에 유학 차 필리핀에 간 한상휴 목사를 필리핀 최초 선교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1974년 1월부터 한인예배를 인도하던 중 1974년 4월10일 부활주일에 마닐라 한인연합교회(초교파 해외 독립교회)가 창립되면서 초대 담임목사가 되었고, 클라크 공군기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우선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에 한국 감리교단은 유학생 신분이었던 한상휴 목사를 정식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한국교회의 필리핀 선교가 비록 개척기였지만,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은 1977년 3월30일, 장로교 합동측 교단 선교부의 파송을 받은 김활영 선교사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977년 6월부터 1978년 3월까지 북부 루손 라왁시의 독립 성서학원(Independent Bible Institute)에서 1년간 교수로 사역하였다. 그 후 마닐라에서 사역하면서, 연합교회(UCCP), 연합감리교회(UMC), 선교단체 협의회(PMF) 등과 동역의 가능성을 타진하였고, 동역자들을 초청하기로 하였다.

교단의 동역자를 요청한 이유는 첫째, 한국교회와 현장이 교리적 차이점을 가진 것이었고, 둘째, 한국선교사들 간의 팀 사역에 대한 비전 때문이었으며, 셋째, 필리핀의 교단적인 필요성 때문이라고 하였다. 교단 선교부 지원 속에 동역 선교사들을 초청하게 되었고 필리핀에서의 사역이 점점 확장되게 되었다. 이것은 비록 한 교단의 사례지만 이런 형태로 여러 교단들이 사역들을 하면서 필리핀 선교는 점점 자리를 잡아 가게 되었다. 

2. 한국교회, 필리핀 선교의 확장기

한국교회는 짧은 30여 년의 시간에 얼마나 많은 필리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교회 필리핀 선교 35년사”의 자료에는 1,217명, KWMA는 1,245명이 필리핀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고 하였다. 

1) 기독교 대한 감리회(UMC-KOREA)
1974년 4월에 기감 교단의 파송을 받은 한상휴 목사가 초교파 해외 독립교회인 “마닐라 한인연합감리교회”에 협력회원으로 가입하고 회원 자격으로 원주민 선교에 동참한 것이 필리핀 선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79년 12월 한상휴 목사의 귀국하고 정신택 목사가 파송되었고, 1986년도에 이원식 선교사가 원주민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많은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하여 약 80가정을 파송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교회 개척 및 미자립 교회 지원 사업, 원주민 목회자 양성, 문서선교, 소수부족 선교, 빈민선교, 구제사업 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PCKMP)
1981년 10월6일 류동원 선교사를 서울 영락교회의 후원과 파송으로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의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함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11년간의 교회개척 사역을 하던 류 선교사는 1992년 8월 한국목회를 위해 공식 퇴임했으나, 1990년 1월 8일, 크리스찬 시티교회에서 성서학원이 시작되었다(야간 2년제, 초대원장: Cyroe Contreras). “마닐라 선언” 를 채택하고 필리핀 장로교단(PCP) 중심의 협력 선교를 본격화하게 되었다. 1984년에 김진호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89년 이교성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전체적으로 약 50가정을 파송하여, 선교사 자녀학교인 한국아카데미, 신학교육, 한인교회, PCP와 UCCP 협력선교, 체육선교, 어린이선교 등 여러 분야에서 사역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장로교단 운동에 협력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현재 100여명이 정식 선교사로 비공식으로도 100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3)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기독교대한 성결교회의 필리핀 선교는 1988년 송평구/이미경, 깅광수/송재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시작되었다. 1991년 이창용(세부지역)선교사와 권영한 선교사를 파송하며 본격적으로 필리핀 선교를 진행하였다. 필리핀에서의 기성의 선교역사는 국제성결대학(IEC)과 역사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IEC(국제성경대학)은 제1대 송평구선교사에 의해 파식(Pasig)에서 “필리핀성경대학” 이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고, 제2대 권영한 선교사에 의해 퀘존(Quezon city)과 현 안티폴로(Antipolo city)로 이주한 이래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다. 1990년 중반 이후에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하였고, 약 30가정의 선교사들이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 및 필리핀 리더양성, IEC를 통한 교도소 선교, IEC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한 교회개척 사역들을 하고 있다.

4)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1977년 박정자 선교사를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필리핀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시작되었다. 1979년 마원석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80년 교단 총회에 선교국이 조직되었고 그때로부터 선교사파송 및 지원이 조직적으로 되기 시작하였다. 1983년 이봉식, 김은처 선교사, 1984년 김병윤 선교사, 1986년 정재용 선교사, 1989년 김장영, 이민수, 윤정렬 선교사와 송성룡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전체적으로 약 24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오순절 영성을 바탕으로 한 성령운동 및 은사사역을 바탕으로 기도원 사역, 성령치유 집회, 교회개척, 신학교 사역과 학원사역, 구제사역, 의료사역 등을 사역을 하고 있다.

5) 대한 기독교 나사렛 성결교회
1988년 3월 김병기 목사를 파송하면서 대한 기독교 나사렛성결회의 공식적인 필리핀 선교가 시작되었다. 김병기 목사는 1984년 7월 5일에 필리핀에 입국하여 1986년 4월 12일까지 ‘아시아-태평양 나사렛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중에, 현지 신학교 학생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결국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아시아 선교에 큰 관심을 가졌던 김성갑 목사는 1984년 4월부터 ‘아시아-태평양 나사렛 신학대학원’에서 유학생활 하는 중에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s)이라고 불리는 마닐라 톤도(Tondo) 지역의 빈민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여 복음 전도와 구제활동을 펼침으로 사실상의 필리핀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5) 대한예수교 장로회(대신, PCK-Daeshin)
1981년 김지주 선교사를 WME 아시아 태평양 지부장으로 필리핀에 파송하면서 필리핀 선교에 문을 열었다. 교단 선교부는 계속하여 1980년대 추반부터 김석주, 이성찬, 손기만, 주경찬, 최세종 선교사들을 필리핀에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에 이성찬 선교사를 파송하여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s)이라고 불리는 마닐라 톤도(Tondo) 지역의 빈민들을 위한 문명퇴치와 교회개척 사역을 시작하였고, 1987년에는 최세종 선교사를 파송하여 신학교 사역과 교회개척사역을 시작하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교단 전체적으로 약 55가정을 파송하였고, 여러 지역에서 학교사역과 청소년 캠프사역, 신학교 사역, 국제대학설립, 구제와 의료사역, 빈민 퇴치 운동 등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필리핀을 타문화권 선교의 모판으로 삼은 교단 선교부가 선교사 재배치의 개념으로 필리핀 선교사들을 다른 국가로 옮기게 한 것이다. 필리핀에서 훈련받은 선교사들 혹은 한 기간(term)의 사역을 마친 선교사들을 다른 나라로 재배치하여 교단 선교사들이 필리핀이 아닌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발한 사역을 펼치게 한 것이다. 그들은 김연정(네팔), 김영섭(요르단), 서희범(불가리아), 송홍석(케냐), 이경수(터키), 정우원일(캄보디아), 윤태구(키르키스탄) 등이다.

6)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PCK, KOSIN, KPM)
1986년 김자신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고신 총회의 선교는 시작되었고, 1980년 중반 이후에 많은 선교사들을 필리핀에 보냈다. 1987년 김형규 선교사와 남후수 선교사, 1989년 김영숙선교사와 김성일 선교사를,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전체적으로 약 30가정정도가 되었다. 이들은 주로 교회개척, 학교사역과 신학교 사역, 미전도 종족 사역, 급식사역, 선교사 자녀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7)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1977년 3월30일, 장로교 합동측 교단 선교부가 김활영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시작된 합동측의 필리핀 선교는 왕성하게 되었다. 1979년 김유식 선교사, 1980년 백병수 선교사, 1981년 여상일 선교사와 홍희헌 선교사, 강영원 선교사, 1985년 배상호 선교사, 1987년 신원태 선교사 등을 필두로 계속하여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교단 전체적으로 약 135 가정 정도가 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교회개척과 신학교 사역, 제자훈련, 갬퍼스 사역, 어린이 선교, 한국 아카데미 사역, 교도소사역, 현지어 교육, 부족선교, 문서사역, 의료사역 등 많은 선교사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역을 하고 있다.

8) 기독교 한국침례회
기독교 한국 침례회의 필리핀 선교는 1981년 홍승구 선교사를 교단의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시작되었고 계속하여 진행되었다. 1986년 박도연 선교사, 1988년 이광수선교사와 오승영 선교사, 1990년 김종희 선교사 등을 필두로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약 80여 가정을 파송하였다. 이들은 교회개척 사역과 신학교 사역, 부족입양사역, 의료사역, 무슬림사역, 기도원사역, 어린이 심장병 수술 등 여러 가지의 사역으로 일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몇몇 교단만을 언급하였을 뿐, 이외에도 다수의 교단들이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필리핀 전 지역에서 다양한 전략들을 가지고 필리핀의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다.

선교단체의 필리핀 선교사 파송현황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필리핀 선교에 열심을 내었고, 아울러 많은 선교단체들도 필리핀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1980년 후반부터 많은 수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국내 선교단체로 필리핀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가나안 농군학교/1997, G.P. 선교회/1999, 겟세마네 선교회/1991, 필리핀 북장로교단, 군.경목 선교회/1992, 코람데오 선교회/1985, 글로리 국제선교회/1993, 코람필 선교회, 나눔 선교회/1997, KCN 방송 선교회/2008, 다니엘 복음 선교회, 팬월드 맹인선교회/1990, 동남아선교회/2002, 페이머스 선교회, 디모데 기독교교육 센타/1995, 필리핀 제자선교회/1991, 국제청소년 선교협회/2009, 한사랑 선교회/1993, 디모데 성경 연구원/2008, 두마게테 장로회신학대학 선교회/1989, 리조이스 선교회/1995, 겨자씨 선교회, 모퉁이돌 선교회/1992, 성서번역선교회/2000, 바울 선교회/1987, 빚진자 선교회, 세계 체육인 선교회/1995, Followers of Jesus in the World, Inc.,/1983, C.C.C, 아시아 빈민 복지기구/2001, 열린마음 선교회, 아세아 연합선교회/1990 브니엘 세계 선교회, 열린 선교회/2003, 한필세계선교회/1997, 영혼의 샘 선교회/2004, 국제개혁 선교회/2000, 유니세계 선교회/1986, 인차 국제 선교회/2009, 임마누엘 선교회/1999, 제자들 선교회/1992 등이다.

이상의 단체들은 필리핀 이민국에 비영리 선교단체로 등록된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들은 각각 선교단체의 목적에 따라 교회개척과 제자훈련사역, 학교사역, 빈민구제사역, 유치원 사역, 필리핀교회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선교사 훈련 등의 사역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이런 선교단체들 가운데 교단의 통제도 현지 선교회와의 교류도 없는 곳도 많는 점이다.

한국인 선교사의 지역별 분포 현황

한 나라에 1,2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시대적으로 요청되는 선교 집중지역이기도 하고, 전략적으로 선교 요충지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필리핀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봄으로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섬 지역에도 선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1,200여 명의 선교사들이 여러 지역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필리핀을 크게 일곱 지역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북부 루손 115 (10.1%), 중부 루손 129 (11.3%), 수도 마닐라 274 (24.1%), 동부지역 276 (24.1%), 남부-남부루손 135 (12%), 세부-두마케테-일로일로 111 (10%), 민다나오 94 (8.3%), 기타 으로 분포되어 있다. 수도와 중부지역이 24%로 많고, 나머지 지역들은 분포도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 박기호 선교사라는 분이 1996년 5월27-31 열린 “필리핀 복음화 선교회의” 강의에서 한국 선교사가 필리핀에 몰리고 있는 이유는, 첫째로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워서 그 동안 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필리핀을 방문하여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며, 둘째로 아시아인으로써 친절하여 선교의 경험과 역사가 짧은 한국선교사들이 살며 사역하기 비교적 용이하며, 셋째로 필리핀이 영어를 사용함으로 다른 언어보다 영어에 친근감 가지고 있는 한국선교사들에게는 언어에 대한 부담이 적을 것이며, 넷째로 서구식 교육제도 속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교육하는 좋은 학교들이 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이고 섭리적 요인으로는 그 동안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교사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거나 제한하고 있었지만 필리핀은 하나님께서 비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선교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열린 문을 주신 까닭이다.

2000년대의 통계지만 선교사는 예장합동이 163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기독교침례회 120명, 기독교대한 감리회 103명, 하나님이 성회 101명, 예장 통합 85명, 예장대신 64명, 예수교 대한 성결교 57명, 예장 백석 46명, 기독교 대한 성결교 33명, 예장 고신 32명, 예장 개혁 27명, 기독교장로회 21 명 등 기타 교단이 있다. 

유재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