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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0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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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망한다

'과거 일을 잊지 말고 다가올 일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중국 공산 혁명 전후를 살았던 중국 기독교 지도자 정광훈(丁光訓) 성공회 주교가 쓴 책의 이름이다(현재 한글로 번역 중) 그는 중국의 혁명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교회의 지도자로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린 지도자로 칭송을 받는다. 

   
 고 정광훈 주교

정 주교는 1915년 출생해 중국 개신교 애국운동과 현대적 신학, 중국 삼자교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중국기독교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자본주의 최첨단인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중국기독학생운동 출신으로 세계교회(WCC)의 중요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소천했다. 당시 중국 신화통신 인터넷판은 "지난 22일 뛰어난 애국 종교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 정광훈 주교가 향년 97세의 나이로 중국 난징(南京)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NCCK에서도 친분이 있는 이들이 문상을 다녀왔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중국의 기독교는 두 가지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공산주의를 인정하고 그 체제 하에서 교회와 함께 살아 남았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다. 탄압 받아 변형된 명목상의 기독교이거나 반대로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드린 이상한 기독교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기독교와 그는 후자였다.

중국의 기독교와 더불어 러시아나 중남미의 쿠바, 니카라과 등과 같이 사회주의 국가체제 속에서도 기독교는 살아 남았다. 아니 공존했다고 해야 할까? 이는 현재 분단 국가인 한국교회에게도 주는 시사점이 있다. 우리 분단의 원인은 이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북의 대치로 인한 과도한 군사비용과 국토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 문학과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반쪽내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그의 책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남북분단으로 남겨진 고통과 그 유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한국교회 분단고착화에 그만 기여해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독교는 그동안 분단시대의 종식을 위한 민족의 제단에 화해와 평화의 도구이기보다 분단고착화를 이용하여 집권해 온 군사정권의 충실한 지지자였다. NCCK를 위시한 진보기독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해왔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반공우위의 집권당 안보정책으로 분단고착의 대결적 멸공통일론을 지지해 왔다.

지금도 하는 일이 막연한 기도회나 케케묵은 통일당위론에 대한 답습이다. 그사실 통일은 기반 조성이 문제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 문제는 더욱 경색되었고 민간교류마저 답보상태였다. 통일은 국가가 정한 틀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가 역사와 민족앞에 공헌을 하려면 남북한 정부간에 협의한 선언들이라도 지켜자고만 촉구해도 대단한 일이된다. 예을 들어 남북 7.4 공동선언이나 6.15 선언, 개성공단의 유지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자는 것 등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기독교는 말로는 통일을 외치지만 실상은 맘에도 없다는 증거다. 한국의 기독교회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분단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평화와 생명을 말하려면 현실을 뛰어 넘는 모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념과 체제속에서 생존하고 건재한 국가와 기독교회들의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일찍이 이 분야의 연구자 홍성현 목사(수송교회 은퇴목사, 갈릴리신학대학원 원장)는 남북분단의 아들로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자의 민족적 기여를 이상으로 삼고 미국 유학 중 프린스턴에서 중국공산당 혁명과정을 겪고 유학 온 중국교회의 오효종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중국교회의 삼자(三自) 운동 곧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에 대하여 듣고 충격을 받아 연구하고 석사논문도 썼다.  기본 기조는 서양 선교사를 배제하고 민족주체의 교회를 세우자는 것이다.

   
* 홍성현 목사

그러나 이 논문이나 그의 연구는 이후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시대적인 상황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보수 기독교 내부의 검열 문제가 더 컸다. 그의 저작과 이상은 지금도 바르게 평가 받거나 뒤를 잇지 못하고 있다. 학자로 북한을 방문하고 갖고온 책자 소유를 보안법으로 기소한바 있다. 홍 목사는 2015년 80회 생신을 지내면서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을 넘어서서 - 한반도 화해신학 서설(한울출판사)” 에서 이런 경험과 미완의 과제를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다.

대형교회 이대로 가다가는

지난 6월 4일, 베뢰아 아카데미로 유명한 성락교회 김기동의 47년 신화가 무너졌다. 대형교회 세습신화의 몰락이다. 아직은 결론이 완전히 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하나님과 교인들을 섬기는 척 했지만 실상은 돈과 권력을 숭상했기 때문이다. 귀신론, 마귀론으로 이단 시비가 있었지만 여전히 개신교회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다음으로 최대의 교인수를 자랑하던 교회다.

성락교회의 재산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천문학적이다. 전국에 걸쳐 부동산과 건물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그들 소유의 재산이다. 앞으로 그것이 밝혀지겠지만 이것은 교회를 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신실한 믿음의 일꾼들을 사병화하고 월급쟁이로 전락을 시킨 결과다.

김기동 목사가 은퇴하고 아들 김성현에게 물려 준지 얼마 안 되어 결국 사달이 났다. 문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서 시작 되었다. 작년 우리총회 100회 특사위에서 이단 해제를 받기 위하여 전방위 로비를 했던 아들 김성현과 아버지 김기동을 따르는 교인들로 나눠지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담임목사직에서 해임하게 된다.

그 이면에는 달라진 시대에 좀더 여유롭고 세련된 통치를 원하는 젊은 세대들과 여전히 제왕적 목회상을 버리지 못하는 부친과의 갈등이다. 아들 김성현의 친구이자 후견인으로 있던 협동목사 윤준호(1962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성락교회와 김기동 김성현 부자를 잘 아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이 문제다.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69년 가난의 시대 7명의 교인으로 시작한 교회다. 한 때 우리교단의 기라성 같은 목회자들이 가서 성경공부를 하고 신유와 기적을 배우던 곳이다.   

   
* 잠긴 문을 용접으로 뜯고 들어가 비상총회중인 성락교회 개혁측

새 술은 새부대에 

민주적이고 현대화된 교육을 받고 달라진 시대의 리더십을 가진 윤준호를 따르는 교인들이 나오고 윤준호가 치리되자 개혁의 불이 점화된 것이다. 이미 영적으로나 도적적으로 타락한 김기동은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김 부자는 여전히 월 5천만 원 이상을 생활비로 가져간다는 후문이다. 이에 옹호자에서 반대자로 돌아선 교인들은 ‘감독 김기동’ 씨에 대한 불신임안에 99.5%로 찬성을 한다.

이 총동원 전교인 총회는 성락교회 개혁을 요구하는 성락교회개혁협의회(성개협)의 주도로 6월 4일 주일에 열렸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23일 소속 지방회서도 제명된 바 있다. 성개협은 김기동의 교회 재산 처분권, 인사권, 행정처리권의 전권 일임에 관한 가부의 안건을 내걸었다.

이번 투표에는 총 4,914명이 참여했으며 이 중에 4,881명이 ‘김기동 씨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성락교회의 대표가 아니며 그의 해당직위와 권한은 원천 무효’라는 취지의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심없는 개혁이라면 성공하게 될 것이다.

도미노현상 되지 않으려면

대형교회를 유지했던 목회자의 은퇴와 함께 변화된 우리사회의 인식은 이제 더 이상 순종과 안내가 미덕이 아닌 게 되었다. 이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촉발된 조용기 원로의 재정비리는 결국 사회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기에 이른다.

만세반석 같았던 조용기 목사의 신화와 체제도 그 수명을 다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교인들의 의식이나 생각이 변한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 원인은 그 자신들의 영적 도적적 타락이 원인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거짓말과 위선을 군림했기에 급속한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기동과 조용기는 혈육적 세습과 인간적 세습이라는 면에서는 같다. 그런데 혈육적 세습은 실패했고 인간적 세습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혈육적 세습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레마선교회의 이명범도 아들과의 불화로 그를 해임한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 세습교회인 수정교회도 결국 로버트 슐러의 상왕적 목회로 아들에서 딸에게로 갔지만 결국은 파산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더욱 가혹하게 양떼들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세습하는 교회는 드물다. 성공의 신화를 물려주고 여전히 영향력을 향유하려는 것이 세습을 하는 자들의 속마음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거나 이룰 수는 없다. 명예나 부, 둘 중의 하나만 가져야 한다. 과유불급이라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가혹하게 채찍질하고 바닥에서 섬기는 목회가 아니라면 세습은 결단코 실패한다. 그러나 그럴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불행이다. 후임자를 찍어서 데려온 인간적 세습인 소망교회, 광성교회, 두레교회, 서울교회, 주안교회 모두 정도만 달리할뿐 편치  않다

민주정부에서 배워야 할 것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1달이 되었다. 기대는 있었지만 막상 보여지는 현상은 기대 이상이란다. 전국민적 지지가 80%이상을 육박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당청의 동등한 예우를 원한 추미애 당대표는 자신의 위상을 확보하려고 인사검증과 당청협의의 정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말해보았지만 문 대통렁의 국정지지도가 워낙 높아 불만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면 몰라도 지금 새 정부각료 인선도 못했는데. 도와주기는 커녕  당의 위상만 따질 때가 아니다. 당은 당의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지 청와대와 만나고 사진 찍고 밥 먹는 일은 그만 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서 감동하는 동시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지난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의 기념사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모사와 이번 현충일 추념사도 한마디로 한 편의 설교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용은 평범한 것 같지만 그의 국정 철학이 오롯이 담겼음을 본다. 이번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애국의 지평을 전쟁 참가자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여성 노동자들로 확대했다. 더 이상 안보와 애국주의를 정권에 이용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 말을 대통령이 의례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말했기 때문에 감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청와대 인선에서부터 장차관 인사에서도 측근 배제와 적폐청산, 개혁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장관급 후보자들 개인적으로는 국민의 눈높이에 미흡하지만 그 정도면 과거 정부나 인사에 비하여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재인은 개인이 아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것과 부족한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 단초는 김대중 대통령이 놓았다. 김대중은 전라도라는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지만 노무현에게는 "노사모" 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문빠" 는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지난 4월 조기숙 교수 북콘써트에서 눈물을 그렁거리며 나온 말이란다. '문재인 지지하는 거 너무 힘들다, 대한민국 극한직업 1위는 문재인이고 2위는 문재인 지지자라고.'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를 전후하여 당에서부터 패권주의라고 시달리면서도 인내해 왔다. 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조차 문재인을 해당자이고 분열주의자라고 하였다. 보다 못해서 나선 사람들이 소위 '문빠'다. 노사모는 집권 후 너무 빨리 비판자가 되었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반성에 따라 문빠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누가 되든 노무현, 문재인의 정신이 공격받고  가치가 상처받는 것을 그대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재인의 말도 듣지 않는다. 앞으로 이 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만큼 역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우리 기독교회다. 구경만하고 욕을 하던가 아니면 감동만 할 것인가? 여전히 줄을 대고 기웃거릴 것인가? 이제  진짜 한국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역사와 현실로부터 배우고 변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이제 교인들을 더 이상 호구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인사권과 결정권을 회중에게 돌려주고 들러리가 아닌 참여자가 되게 하고 강대권를 제외한 모든 행정에서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기에 견디고 이기려면 몸집을 줄여야 한다. 여전히 순종 강요와 빈말로 농락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은혜와 감사라는 용어로 침묵과 인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높아진 알 권리 요구와 참여 의식에 따라 강하고 높은 도덕성과 공적 의무감으로 헌신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망하는 길 밖에 없다. 국가나 기업이 왜 혁신에 주력할까? 급변하는 세태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것만이 아니다. 급격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리 준비해야 큰 화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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