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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야 할 선교사들과 유산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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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0  16: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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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말아야 할 선교사들과 유산

서서평선교사
지난 몇 년간 한일장신대(총장: 구춘서 목사) 의 은퇴한 임희모 교수에 의하여 잊혀져 있던 한 여선교사에 대한 집중조명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사에서 거의 잊혀졌던 서서평 선교사가 2014년 한일장신대 제작·공연한 창작뮤지컬로도 공연된바 있다.
   
 
한일장신대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라는 서서평 선교사의 좌우명을 대학교육의 기본 정신으로 계승해 세족식 및 봉사활동, 서서평 선교사의 행적찾기등 학술적으로나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일대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당시 선교사들의 수고에 대하여 오늘의 한국교회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 지를 회상하게 한다.

서서평(본명 엘리제 셰핑·1880~1934)은 독일출생이지만 미국의 간호사로 1912년 한국에 도착하여 광주선교부 제중원(원장 우월순)의 간호사로서 병원과 주일학교를 돕는다. 한국어를 배우고, 옥양목 저고리와 검정 통치마를 입었으며,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된장국을 좋아했다고 한다.

온전한 조선인이 되고자 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많은 사람을 보살폈다. ‘나환자의 어머니’라 불릴 정도였다. 광주 양림동에서는 여성의 자립을 위해 양잠업을 지도했다. 뽕나무를 더 심고 시설을 세우기 위해 미국에 기금을 요청했다.

제주에서는 여성의 자립을 위해 고사리 채취를 도왔다. 임종 때에는 자신의 시신을 의학용으로 기부하였다. 장례에 자신의 세운 이일학교(훗날 기전여신학원에서 한일장신대) 의 학생들이 운구 행렬을 이루고 그 뒤로 수많은 여성이 소복을 입고 뒤따랐다.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서 태펀 피어슨 선교사 
최근 KBS 추척 60분 보도를 통하여 사회문제가 된 평택대학교 사건을 통하여 전신인 피어선성경학원에 대한 관심이 새롭다. 이 학원 설립 동기가 된 아서 태펀 피어슨(Arthur Tappan Pierson) 한국명 피어선(皮漁鮮) 은 다양한 경력을 갖은 신학자이고 목회자이며 선교사였다. 그는 1837, 3.6일태여나 1911. 6.3 생을 마쳤는 데  미국의 뉴욕 주 뉴욕 시티 에서 태여났다.
   
 
그는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 이론가였으며 13,000개 이상의 설교문과 연설을 집필하였고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 특히 한국의 언더우드와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이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회사가 로버트 엘리엇 스피어(R.E.Speer) 교수, 이슬람 선교의 개척자 새뮤얼 즈웨머(Samuel Zwemer)[1], 기독교청년회(YMCA) 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의 지도자로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 한국의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 S. Gale)박사등 수많은 선교사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1887년 새문안교회가 시작된 해에 언더우드는 피어슨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며 깊은 교제를 시작하였다. 그 후 피어슨이 편집장으로 있던 세계선교평론(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의 조선거주 편집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후에 언더우드는 피어선성경기념학원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학교설립을 주도하였고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피어슨은 친구인 무디와 함께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1886년 미국 노스필드에서 학생자원운동(SVM) 단체를 창설하여 셔우드 에디(Sherwood Eddy), 존 모트(John R. Mott), 헨리 윈터스 루스(Henry Winters Luce, 타임지 잡지 창설자 Henry R. Luce의 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대학 청년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었고, 여기에 도전을 받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과 중국에 갔다.

1910년 12월 약한 몸을 가지고 일본을 거쳐서 조선을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11년 1월 조선을 떠나 일본, 미국 LA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간 후 1911년 6월 3일 74세로 소천하였다. 그는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후원으로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을 설립한다.

피어슨 선교사를 기념한 성경학원
선교사 자신이 현지에서 사역을 하면서 그 성과를 갖고 모금을 하거나 지원을 받아서 교회나 병원, 학교를 시작한 경우는 많으나 세상을 떠난 분의 유지를 기리기 위하여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역사는 흔치 않다. 피어선기념학원의 출범은 조선에 와보고 성경학원을 염원하였던 그의 유지를 받들어서 세우진 학원이다.

피어선기념성경학원에서는 수많은 민족과 교회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는 데 송창근박사, 박연서목사, 윤치호 (교육자), 찬송가 운동을 주도한 이상준, 박석현목사, 순교자 유재헌 목사, 손재학(제헌 국회의원), 한상동목사, 조기흥박사, 지휘자 김생려(金生麗), 김삼환목사, 이필재목사, 조상열박사 등이 있다.

피어슨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가로는 미국 보스톤대학교의 데이나 L. 로버트(Dana L. Robert)교수가 있으며 평택대학교 교수인 김문기, 류원렬, 신현수, 안명준, 유윤종, 이광희, 조상열, 양유성 등이 피어슨에 관한 연구논문들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2009년에는 고광국박사가 "피어선의 선교전략과 실제에 관한 연구"로, 2011년에는 전대경박사가 "아더 피어선의 변증적 방법론으로서의 성서 해석 원리"로 각각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에는 조상열박사가 「피어선기념성경학원」(개정판, 2011)을 출판하였다. 피어슨 관련 연구 발표는 매년 피어선기념성경연구원에서 2 차례가 있으며, 피어선신학논단을 통해 출판되고 있다.
   
 
피어슨의 생전사역
피어선은 북장로교 목사로서 빙엄턴, 워터포드, 디트로이트, 인디애나폴리스,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에서 목회활동을 하였다. 또한 런던 최대의 침례교회였던 메트로폴리탄 테버너클의 담임목사인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목사가 병중에 있을 때, 그의 후계자로서 설교목사로 이 교회에서 2년간 설교하였다. 그러나 이후 침례에 대한 견해 차이로 장로교회에서 제적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당대의 저명인사인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Dwight Moody), 존 와너메이커(John Wannamaker),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 아도니람 저드슨 고든(A. J. Gordon), 조지 윌리엄스(Sir George Williams) 및 조지 뮐러(George Muller) 등과 교제하였고 전후 미국의 여러 복음주의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60여권에 이르는 저술과 수많은 논문 및 팸플릿을 기록하였으며 13,000편에 달하는 설교와 강의를 하였다. 동시에 회중교회와 장로교, 침례교와 성공회를 넘나들며 사역한 초교파주의자였다. 1910년 목회 50주년이 되던 해 허드슨 테일러의 초청으로 일본,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 등의 극동지역 선교여행을 하였고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질병이 깊었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선교사들을 위한 성경강해를 하였으며, 매우 열악한 여건에서도 성경을 공부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 받아서 성경학교 설립을 약속하였는데 질병이 심해져 고국에 돌아간 뒤에 곧 소천하게 되었다. 유족과 친구들, 후원자들이 피어선 박사의 유언을 따라 조선에 초교파적 성경학교를 설립한 것이 1912년 서울 서대문구 협성신학교 내에서 시작된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다.
   
 

피어선학원은 서울노회 소속 
이 성경학원이 PCK 총회의 서울노회에 소속되여 운영될 때 당시 학원장 덕수교회 최거덕 목사의 추천으로 교인이었던 조기홍 씨가 직원으로 입사를 한다. 그리고 학교업무를 관장하다가 1980를 전후하여 미인가학교로는 학교의 발전에 한계를 안타까워 하면서 정식대학인사를 추진한다.

조기홍 씨의 탁월한 감각과 정식대학 인가를 위한 기본재산이 필요하여 광화문 교사를 처분하고 1981년 평택으로 이전을 하면서 사유화가 본격화 된다. 당시 총회 파송 이사들은 모두 조기홍씨 편을 들어 총회에서 조사위가 구성되고 그들에 대한 총대권이나 자격에 문제를 삼지만 시간이 흐르자 유야무야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총회 산하기관인 광화문의 교사를 매도하거나 학원인가 과정에 우리총회의 권리를 일시 학교를 대표하는 조기홍씨에게 위임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그리고 총회록에도 당시 유지재단 산하 재산은 다시 유지재단에 귀속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 총회에서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피어선 학원은 우리총회를 이탈했다.
그러나 몇 년간 활동한 수습위원회는 평택대학교를 우리총회산하 학교를 드리지 못하고 해산을 하게 되고 그 학교 졸업생을 받지 않는 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 다. 그후 1990년 12월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여 피어선대학으로 개명하였으며 1996년에 근거지명을 따라 평택대학교로 재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택대학교 홈피나 역사에는 피어선 선교사의 정신과 업적에 대하여 정직하게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총회와의 관계와 결별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기독교사학과는 달리 학교 건물이나 피어선기념박물관등 학교시설에는 많은 투자를 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KBS추척 60분에 소개된 평택대학교 문제는 그야말로 기독교학원들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끄러운 역사이다. 특히 선교사들이 남겨준 유산들이 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사유화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총회가 위탁받은 선교사역들 전수조사 필요
이제 우리교단은 기전학교, 광주, 부산일신, 계명기독, 안동성소병원등도 운영상의 문제나 적자경영으로 우리 총회의 산하기관에서 나가 법인화 되거나 개인화되었다. 평택대학교도 바로 그런 케이스다. 따라서아더 피어선 선교사에 대한 기념은 평택대학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의 어버지 언더우드와 관련이 있었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서 모은 자금이 우리총회를 통하여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노회 산하 종로시찰 소속으로 과거 설삼용, 박히민 목사가 기관목사로 시무했고 청빙을 받은 바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총회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재산권은 누구에게 있던 우리교단과 관련있는 선교사들의 유지와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전수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겠다. 기왕의 총회사료위원회가 있으니 이 점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겠다.

부산 일신기독병원 사례
그래야 앞으로 유지재단 산하의 있는 기관과 재산이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총회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을들어 지금 부산의 일신기독병원(호주선교부)도 총회가 이사를 파송하지 못하고 있는 데 그렇게 된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지역에서는 우리교단 목회자들이 이사로 파송을 받는 데 전적으로 벼원이사회의 선택에 의하여 간다는 문제다. 이런식으로는 안된다. 원래는 지역의 노회에서 공천을 하여 파송을 하던 것인데 지금은 노회의 대표가 아닌 개인파송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병원의 정신대로 운영되는 지를 관리와 감독을 할 수가 없다. 이사장(인명진 목사)이나 서기(이종삼 목사)도 우리교단의 목회자들인데도 우리교단의 추천을 받아 가지 않고 이사회의 선택에 의해서만 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최근에는 전주 예수병원 문제가 화두이다. 이 병원은 아직은 우리 총회산하기관으로 있지만 정관개정과정에서의 총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산하기관인데도 유관기관이라고 멋대로 쓰고 있다.

설립한 선교사들이 우리총회에 위탁관리한 권한을 통하여 병원의 공공성과 기독성을 지키고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총회에 있다. 그래서 현재 총회 파송 이사 3인과 지역노회 이사 3인을 파송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송된 이사들이 총회의 입장이 아닌 병원경영진들의 입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문제다.

전주 예수병원가 가장 큰 문제
앞으로 예수병원을 산하기관으로 지켜내지 못하면 눈뜨고 도둑맞게 되어 있다. 지역의 노회와 시민단체들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총회적으로는 예수병원 조사위원회(위원장: 김의식 목사)의 102회 총회 보고를 받고 입장을 정해야 할 것이다.

달라질 것은 없다, 예수병원은 기록대로 우리총회의 산하기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하며 100기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결정한 예수병원 정관허락을 전제로 언급한 이사임기의 3년과 법인의 합병과 해산시 총회로의 귀속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에 피어선 학원의 경우도 우리총회는 피어선 학원에서 연구한 기록과 학술연구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합동으로 기념과 추념을 하고 후신인 평택대학교를 이만큼 발전시킨 조기홍 명예 총장의 공로는 인정하고 현재 신학대학 교수로 근무하는 자녀들에게 대해서는 신분을 보장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만 기독교 사학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차원에서 학생회와 교수회의 자율권과 학교운영을 투명하게 하도록 요구하루 의무가 있다고 보겠다. 이 학교는 조기홍씨의 개인재산이나 학원이 아니라 장로교 선교사들 그리고 우리선배들이 공부하고 가르친 학원이기에 그렇다.

평택대학교 정상화의 주제들 
이런 사건이 일기전 김삼환 목사(2016년 1월-2020년)가 이사장으로 선임이 되었다, 김목사는 이 학원을 잠시 다니기도 했지만 과거 평택대 문제로 우리총회와 결별을 한후 부총회장 시절에 중재로 조기홍 총장을 당시 영락교회 총회로 초청하여 과거일에 대하여 사과하고 화해를 주선한 일도 있다.

이번 보도에서도 이사회가 조기홍 명예총장을 보호하거나 두둔하는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이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평택대학교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우리총회도 102회기서 과거역사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조직하여 과연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걸쳐서 그렇게 되었는 지를 백서형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지금은 방학이라 조용하지만 학생들과 교수회 동문회와 지역주민들도 나서서 조기홍 명예총장의 퇴진을 위하여 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조 전 총장이 검찰에 기소단계로 만약애 협의가 입증되여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분쟁사학이 되어 관선이사가 파송되고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피어선 선교사의 약력
1859년, 1869년 여름: 코네티컷 주 윈스테드 회중교회
1860년 ~ 1863년: 뉴욕 주 빙엄턴 빙엄턴 회중교회
1863년 ~ 1869년: 뉴욕 주 워터포드 장로교회
1869년 ~ 1882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포트 스트리트 장로교회
1882년 ~ 1883년: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애나폴리스 제2 장로교회
1883년, 1889년: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베다니 장로교회
1891년 ~ 1893년: 런던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

피어선선교사에 대한 연구와 저작
The Crisis of Missions (New York, 1886)
Many Infallible Proofs: Chapters on the Evidences of Christianity (1886)
Evangelistic Work in Principle and Practise (1887)
Keys to the Word: or, Helps to Bible Study (1887)
The Divine Enterprise of Missions (1891)
Miracles of Missions (4 vols., 1891-1901)
The Divine Art of Preaching (1892)
From the Pulpit to the Palm-Branch: Memorial of Charles H. Spurgeon (1892)
The Heart of the Gospel (sermons; 1892)
New Acts of the Apostles (1894)
LifePower: or, Character Culture, and Conduct (1895)
Lessons in the School of Prayer (1895)
Acts of the Holy Spirit (1895)
The Coming of the Lord (1896)
Shall we continue in Sin? (1897)
In Christ Jesus: or, The Sphere of the Believer's Life (1898)
Catharine of Siena, an ancient Lay Preacher (1898)
George Muller of Bristol and his Witness to a Prayer-Hearing God (1899)
Forward Movements of the last half Century (1900)
Seed Thoughts for Public Speakers (1900)
The Modern Mission Century viewed as a Cycle of Divine Working (1901)
The Gordian Knot: or, The Problem which baffles Infidelity (1902)
The Keswick Movement in Precept and Practice (1903)
God's Living Oracles (1904)
The Bible and Spiritual Criticism (1906)
The Bible and Spiritual Life (1908)
Godly Self-control (1909)

국내연구 문헌
안명준 피어선의 신학적 해석학
안명준 A. T. 피어선의 박사의 신학방법론 한국개혁신학회 50 (2016)
Arthur T. Pierson's illustriousheritage by Dan Graves
A. T. Pierson mission theorist and promoter, Boston University
조상열, 피어선기념성경학원, 2011, 대한기독교서회
"아더 피어선 생애와 세계복음화", 1, 2부 CTS, 2012년 10월 13일, 20일 예일 대학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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