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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철홍 교수 1년만에 다시 입을 열다.더 이상 신학대학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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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6  08: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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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홍 교수 1년만에 다시 입을 열다.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라는 새로운 인터넷 신문이 2018년 1월 2일에 공개되었다. 이 신문은 그 유명한 "정규재 TV" 의 정규재씨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다. 정규재씨는 원래 한국경제신문의 기자로 출발하여 보수층과 재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평자였다.  그들을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명성과 부를 얻은 분으로 전경련 산하의 자유경제연구원이라는 기관를 통하여 대재벌과 보수정치가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해온 분이다. 

그런데 2018년 새해에  출범한 이 신문의 발행사에 보면  "2018년 1년 안에 1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고 무료 100만 명, 1일 100만부를 목표로 하여, 한국 여론시장에서 10%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  써있다. 이런 저런 목적을 갖고 나오는 인터넷 신문이 우리나라에 한 두개가 아니라지만 이 신문이 우리사회의 보수층 10%를 타켓으로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에게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런 신문에 장신대 김철홍 교수가 객원칼럼이스트로 그의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목적이 김철홍 교수가 보수주의자라거나 보수를 반대하고 비판하기 위하여 쓰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와 조직에는 찬반의견이 조화롭게 토론되고 승화되어 발전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국가도 건전한 보수와 유연한 진보가 조화롭게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서 정당이든 언론이든 연구소든 존재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건전한 보수의 형성을 위한 충언쯤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 예전에 소개된 김철홍 교수의 입장 

김 교수는 반성한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숨은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극우적인  매체를 통하여 기지개를 펴는 보수논객 정규재 씨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분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파이고 중심인 장로교 신학대학의 교수라는 신분은 보수시장에서 매력있는 상품일 것이다. 이  신문 발행사를 보면 현재 한국 언론 시장을 좌경화, 저질화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PenN은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는 선봉이 되겠다는 것인데 보수 우파의 논객 김진(전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참가하고 있다.   

김철홍 교수 1년만에 한다는 소리 여전해 
1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나온 소리치고는 실망이다.  김교수는 동성애와 명성교회 문제로 장신대와 우리교단이 열병을 앓고 있는 데에도 침묵을 하던 중이다.  차라리 그런 과정에서 김철홍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람들은 이제 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내용을 보면  변화된  세상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전의와 열의를 다지는 듯하다.  나는 김 교수가 예로든 1987년 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보고 싶지 않은 데  영화란 거의가 상업적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영화로부터 얻을 것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나는 그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도 보지 않고 비판적인 글을 쓰느냐고 핀  찮을 줄지는 몰라도 지금 영화평을 하자는 것이 아니니 상관없다. 한 가지 밝혀둘 것은 내가 그런 이런 과거의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는 영화는 새로운 정보는 주는 매체가 아니라는 점과 감독의 주관과 카메라앵글을 통하여 오히려 오역을 하거나 일방화하여 사람들의 사고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들어 만족케 하거나 추억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도 그렇고 나름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고 시대에 맡겨진 책무를 다했다고 자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혁명을 꿈꾸지도 않았고 변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이제 여러분야에서 1987년 체제나 허망한 꿈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미래를 향하여 통합의 시대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은 나름 감동들은 있겠지만 나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1987년 영화를 통한 그의 복기
그런데 김철홍 교수가 정규채씨 매체에 써내려간 추억담과 일방적인 해석은 참으로 위험천만이다. 물론 자신은 한때 그들과 하나였고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했던 시간에서 전향을 하였다고는 한바는 있다. 그런데도 남들은 30년전의 사고에 산다고 한다.  자신은 과거 학생시절의 낭만과 실천을 팔아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으면서 자기식의 재단을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안되어 보는 자는 가슴이 없는 사람이요 30대가 되어도 공산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자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학생들의 지적호기심과 왕성한 활동은 별의별 생각을 다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불의에 도전하고 그리고 다시 삶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각 나라들의 근, 현대 학생운동 역사를 봐도 구 체재와 파쇼적 폭압의 정치체제에 대하여 저항한 역사를 보면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혁명을 모델로 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당시 러시아의 학생들은 짜르체제를 유지해주는 군대와 경찰력에 저항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위하여 대중속에 파고드는 정치적 선전과 선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는 체제에 도전하는 이들을 막기 위한 각종 보안관련 법과 사회적 정서, 종교가 존재한다. 이런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체제와 싸우기 위해서 운동은 비합법이 되기도 하는 데 그 운동을 제한하는 불법적 법률과 도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운동이다.

그런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공산주의로 부터 대한민국를 지킨다는 국보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 법에 규정한 것을 위배된 사람과 연구 활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처벌하는 법이 엄연하다.  그런데도 좌파척결을 위허여 무엇이 더 부족하다는 말인가?  당시 학생운동의 과정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이나 고문등으로 첨철된 시간은 누구도 다시 추억하고 싶은 대목이 아니다. 그런데 김철홍 교수는 이것을 왜곡하여 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마디로 공산혁명을 꿈꾸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이들이요 모두 북한의 대학에 적을 갖게 되고 영웅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사실이라고 하여도 죽은 그들이 원한 일이 아니고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동료들의 그 죽엄에 대하여 왜곡하고 거기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의 정치지형을 좌파들의 친공전략으로 보는 것이며 야당중 일부의원들이 말하듯이 현 정권은 나라를 북에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과 다를 것이 없다. 신학자가 이런 글을 그렇게 천연적 스럽게 쓰고 해석을 한다는 것이 놀랍다.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보수나 진보라는 인사들이 과거의 무용담으로 추억을 팔고 녹슨 훈장에 취하여 이런 저런 후담을 하고 사진으로 자기의 신분을 자랑하는 것도 안좋아 한다. 비유하면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해병대나 특전사 이야기를 하거나 멀쩡한 대낮에 개구리 옷을 입고 완장들을 찬 전우회들의 우월감과 위화감도 비슷하다.  4.19 주역이니 6.3세대니, 전대협 몇기라고 신화를 먹고 사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나는 80년 중반의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학생운동 중심인자들의 이념적 세례를 받고 그들과 동지적 유대를 통하여 기독청년운동의 중심에 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87년과 나의 시간
내가 모셨던 분은 청담교회 조남기 목사로 NCCK인권위원장으로 1976년부터 10년이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학생등과 교수들 노동자들 기자들의 해고와 구속에 대하여 뒷바라지를 하는 기관의 대표였다. 나는 같은 교회 선배였던 송진섭 전 안산시장의 권유로 78년부터 장청운동에 투신하게 되었고 80년에는 NCCK-EYC의 서울지구 회장도 역임을 하였는 데 당시 기독교회관에서 자살한 EYC  농춘분과 위원장인 김의기의 죽음도 목도했다. 그후 조 목사님을 모시고 있을 때에 김대중 선생 사형선고후 생사를 알수 없을 때 막 취임한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를 하여 당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최초로 알아내 국제 사면운동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다. 나는 조목사님의 이런 일을 뒷바라지 했다.  

그후 나는 장신대를 졸업하던 1983년에 김영락, 안기성, 빅진석, 김규복 목사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조지송 인명진 목사에게 산업선교 훈련을 받고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교회들를 개척하였는 데 나는 뚝섬에서 서울대 80-82학번 학생들과 노동자 야학을 했다. 따라서 이들을 통하여 당시 학내 상황과 “아방타방” 이나 "강철서신" 과  언더 팜프렛도 보는 등 당시 우리운동의 방향과 사상투쟁에 대하여는 비교적 소상하게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들도 혁명을 꿈꾸웠지만 지금은 이 사회의 책임있는 지도자들로 모두 서있다. 

성수삼일교회는 당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의장 김문수와 같이 노동자로 부의장을 역임한 고 이옥순이 숨어 지낸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원풍모방 노조 총무 출신으로 산업선교 멤버로 나의 처와 오랜 친구다. 그는 서노련이 발행하는 신문으로 정부나 장안이 발칵 뒤짚어지고 경찰의 추적이 시작된다. 그후 배포할 곳이 없게 되자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여 교회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몇 번의 배포를 돕기도 하였다. 인쇄된 신문을 트럭으로 실고오면 밤중에 조직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이 신문을 갖고 전국으로 배포한 일이다. .

김철홍 교수의 글은 정치인 뺨치는 수준  
사실 김철홍 교수의 글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박을 하고 싶은 마음도 시간도 없다. 내가 여기 끼어든 것은 언론을 하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학이라는 큰 학문의 장에서는 적절한 논쟁이 있어야 긴장감도 학문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풍은 실력있는 교수들이라도 신학대학에서만 들어가면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무사안일과 논쟁없는 학풍을 아쉬어 하던 차에 김철홍 교수가 내용은 차제하고 라도 속 시원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면에서 나는 그를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김철홍 교수의 과한 논리에 대하여 누구하나 비판이든 찬성이든 논쟁할만한 실력도 인물들도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김 교수의 논리전개나 방식이 워낙 거칠고 쌈닭수준이라서, 교수들이 나서기를 꺼리는 것 같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논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 수준으로는 학생만도 못한 억지로 일관한 것이 한두변이 아니다.  그런 점은 교수들의 성명서에서 여러번 지적되었다.

거기다가 시간이 갈수록 그의 논리는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며 교수로써의 품위나 교양도 져버리는 막말수준에는 사실 나나 학생들, 동문들은 두 손을 들었다. 김철홍 교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국정화 교과서 반대 입장을 낸 역사신학과 교수들의 면모를 보면 김철홍 교수에 비하여 정치적은 분이 없다. 학생들과 교회로 부터 존경받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작년 탄핵국면의 전후에서는 김 교수는 학교밖으로 튀어나와 나와 범죄자 박근혜를 지킨다고 하는 이유로 김평우 변호사등과 같이 경망한 내용으로 언론기관의 토론이나 인터뷰, 기고을 하기도 하였다. 한 매체는 그를 국정화교과서 반대의 영웅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당시 김철홍 교수는 학교 이사회로부터 징계를 막 끝낸 시기였다. 그것은 백남기 농민 사망전후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한 막말로 인하여 교수윤리위에 회부되고 이사회는 1개월 정직을 내린 바 있다. 그런 과정에서 김철홍 교수는 학교 홈피에 사과문을 내고 당당하게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해서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다. 그것도 원래는 3개월인데 그렇게 되면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없는 것을 참작하여 줄여준 것이라는 후문이다. 그런 전력으로 보아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3번으로 3진 아웃을 해야 한다는 말들이다.

그런데 탄핵국면에서 돌출행동으로 인하여 큰 구설수가 되어 교단내 목회자단체들로부터 당시 새누리당의 비대원장으로 간 인명진 목사와 100만 당원 모집을 독려한 서경석 목사와 함께 ‘예장 3인방’ 으로 이들은 모두 교단의 목사직을 면직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도 김철홍 교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 촛불과 태극기집회로 양분된 국민의 분열과정에서 분명히 태극기 세력을 지지한 것은 분명하고 지금도 그것을 87년 넥타이 부대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근혜를 지켜야 한다는 기조에 여전히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후 나는 한 글에서 박근혜가 탄핵이 된 지금 어떤 소회를 갖고 있는 지를 공개적으로 물은 적이 있으며 지식인이라면 사과를 하던지 박근혜의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던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했어도 달리 반응은 없었다.

그리고 1년후 김철홍 교수는 다시 정규재와 연대하며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신문 1월 5일 그의 글을 이렇게 시작했고 맺는 다.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630

“영화 ‘1987년’을 2017년 12월 31일 저녁 10시에 보았다. 영화를 본 뒤 머리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맞다. 2017년에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은 사실 1987년에 시작된 일이다”였다. 1987년에 심겨진 씨앗이 30년 동안 자랐고, 그 결과 우리는 2017년을 수확하게 되었다.

도대체 1987년에 무엇이 심겨졌기에 30년 후 우리는 대통령 탄핵과 친북·친중 성향의 정부를 맞이하는 쓴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 ‘1987년’은 나를 30년 전 역사의 그 자리로 데리고 가서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 수 한 수의 복기(復碁)를 통해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백만관객을 돌파했다는 “1987년” 이라는 영화이야기를 통하야 이전부터 김철홍 교수가 주창한 교육현장에서의 좌파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올 2018년 6월에는 있을 전국 17개 선거구에서 교육감 선거에서 자유민주 세력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2명, 중도,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3명은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중고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하여 좌파들이 교육을 장악하고 생산라인에서 좌파이념에 친화적인 세대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구도를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두고는 전쟁(이념)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선거에서 승리하여야만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데 그러려면 첫째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갖고 교육이란 전쟁터에서 상대와 맞장을 붙을 수 있는 전사(戰士)가 선거전에 나가야 한다 것이다“

이게 결론부분인데 이 글을 신학대학의 교수 글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겠지만 이런 정신과 사고를 갖은 분이 신학대학의 교수로 있다는 것은 우리교단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그의 정신이나 취향이 좌이거나 우라는 문제가 아니다. 신학대학의 교수가 편향된 정치성향의 인물들과 내통하며 이런 격문을 쓰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를 말하는 것이다.

똑같은 잣대로 나는 장신대 교수가 진보정치와 현안에 참여하는 것도 반대다. 그런 일을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어느 대학보다도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은 학문만이 아니라 교수들의 인성에서 먼져 귀감이 되야 한다고 본다. 목회자들 보다 더 기도하고 연구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나 위해서 높은 년봉을 주고 연구실을 주고 휴식을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신학적으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하면 좋다고 본다. 예을 들어 공적신학회가 중도적인 학파라면 이에 대하여 좀더 진보적인 연구와 보수적인 연구구룹들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그런데 보수를 대변하는 김철홍 교수는 딴전을 피고 있는 것이다.  학문에 정진하고 전공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와 교단의 문제에 대하여 해법을 내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초에 신학대학의 교수라는 사람이 현재 정치권에서도 아직 공식화 하지 않은 지방선거, 특히 교육감선거의 구도를 보혁으로 구분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세력들을 전사 운운하며 교육전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나는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목회자로 신학자로 지성인으로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선생의 도리이며 임무가 아닌가? 그런데도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다가 정권이 바뀌고 폐기가 되었어도 여전히 이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의 글이라면 품위도 있고 교훈이 있어야
특히 사회적으로도 과도하게 편향적인 매체를 운영하는 정규재와 같은 이들과 교감하며 이런 천박한 글을 써대면서도 자기가 장신대 교수라고 밝히는 것은 한마디로 문제다. 장신대에 많은 교수들이 있었고 보수적이고 꽉막힌 분들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렇게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분은 일찍이 없었다. 정규재는 범죄자 박근혜를 옹호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그를 변호하기 위한 단독 면담을 주선한 분이 아닌 가?

장신대 총장이나 이사회 교수들과 학생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김철홍 교수가 소속한 노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학대학 교수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자유롭게 기고를 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매체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한다. 글의 비중과 영향력 때문이다. 김교수가 목회자요 신학자로 여전히 우리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반대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축에서 이런 식으로 편을 가르고, 캐캐묵은 이념을 도구화하는 일을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의 지적풍부함이나 실력으로 보아 그런 식의 말 말고도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도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피력하고 설파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장신대나 교단 산하 신학교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연구자들과 교감하며 학문적으로 공헌하지 않고 톡불장군 처럼 나가서 활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예을 들어 장신대 소기천 교수가 그런 부류일 것 같은 데 그는 우군인 소교수를 공격한다.  이건 정말 아니러니다.  그리고 정치인 보다도 더 정치적인 글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니 페이스북의 한 동문은 김철홍 교수는 한 야당의 전국구로 불려러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혼란한 시대의 미성숙하고 준비없이  통용했던 이념의 구도를 갖고 지금의 사회와 교육을 재단하는 것은 한마디로 질병수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글은 김철홍 교수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그의 글은 매우 위험한 논리라는 비판에 한정한다.  그의 글에 상처받거나 생각없이 현혹되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글이라는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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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121.XXX.XXX.46)
기자님 글쓰시는 수준이 좀 많이 부족한거 같아 보입니다. 주장하는 바에 근거도 제시함이 없으시고 말그대로 싫은 감정 담아 어찌어찌 엮어간 글로만 보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주장과 근거를 가진 제대로 된 글로 상대할 실력있는 인물도 없고 수준도 안되는 것임을 인정하세요. 무슨 거친 상대라 상대를 안한다 라는 조잡한 핑계로 흐리십니까?
(2018-01-20 12: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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