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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 영성(성경의 영성)Spirituality of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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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6  18: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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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 영성(성경의 영성)Spirituality of Unification

/ 김종희 목사(경신중.고등학교 전 교목실장(명예교목), 교목전국연합회 명예회장

   
 

8순이 넘은 서울노회 원로 목사의 글을 소개한다. 경신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장신대를 졸업하신 어른이다. 평생 학생들을 위하여 교목으로 활동하셨다. 시대를 보며 우리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이 설교의 내용을 보면 오늘날 목회자들이 성경과 시대에 대하여 어떤 고민과 질문을 해야 하는 지를 잘보여준다.   

Unfortunately, the Spirit of reconciliation, dialogue and peaceful reunification of President Kim Dae-jung and President Roh Moo-hyun has been leaving the spirit of God for the past 10 years due to the wrong leader Lee Myung-bak and Park Geun-hye The spirit of peaceful reunification of God came again to President Kim Jong Eun, the lead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to the president, the leader of the Republic of Korea.

유감스럽게도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에 임했던 화해와 대화와 평화통일의 영이 그동안 10년동안 이명박 박근혜 등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나셨다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한민국 치고지도자 문제인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의 영이 다시 함께 임하셨다. 

   
 

누가복음1:46-56, 4:18-19,마가1:14-15  

<영성>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입니다. 영성훈련,영성세미나, 영성목회, 영성과 교회성장 등 영성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영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거나 혹시 잘못 알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만 알거나 가끔 이 영성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안도고 하는 사람들의 답변도 각양각색 구구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영성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든지 상관없이 오늘 이시간에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성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영성에 대한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이애기보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성을 몇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성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영성에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영성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특별한 것이라거나 또는 신비한 그 무엇이라고 하는 생각을 지나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휼륭한 사람들은 영성에 충만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영성하면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든가 또는 신비한 그 무엇인가 하는관심보다는 그 영성의 현상 또는 성격이 무엇인가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성경에 대표적인 영성지도자의 영성의 영태와 성격을 간단간단히 소개하고 본론에 가서 평화통일의 영성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 

1. 모세의 영성-해방의 영성(출애굽의 영성) . 
이 해방의 영성 속에 모세의 일생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영성은 그의 생 전체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궁중생활의 갈등-고난당하는 동족의 애환과 자신의 안일한 궁중생활 사이에서의 갈등이 있습니다. 

민족적 모순의 갈등-말하자면 바로왕의 폭정하에서의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고난과 민족적 모순을 경험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복지의 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회의로 고민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해방의 영이 내린 것입니다. 

출애굽기3:11-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애굽 해방의 영성은 어머니 요세벳의 유아교육의 효과였다 어머님들의 자녀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역사에서 일본치하 36년 동안 출애굽의 영성, 해방의 영성이 강조되고 형성되는 시대였다.일제하에 장로님들의 기도 에 출애급의 영성이 암시되고 있다. 주여 이 징계의 챗짓을 하루속히 거두어주옵소서하는 기도는 당시 교회 영수나 장로님들의 기도에서 빠지지 않고 울부짓은 것이다. 

목사님들의 설교 
교회학교교사들의 성경이야기를 통해서 모세의 영성, 해방의 영성, 출애굽의 영성이 일제하에서 해방되어랴하리라는 해방의 영성이 암암리에 강조되었다.  미션스쿨의 교목-경신 숭실 정신 이화 등 당시 모든 기독교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채풀시간 설교때마다 모세의 출애굽해방사건을 설교했습니다. 

기독교학교 역사선생님-들도 역사시간에 틈을 내서 모세의 출애굽해방사건을 교육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영성훈련이니 영성세미나니 하는 영성에 대한 말에 대해서 별로 모를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모세의 영성에 대해서 확실하고도 정확하게 알고 확신하고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70년대-80년대 일반사립학교교사 -칼날이 시퍼런 군사정권하에서도 기독교학교가 아닌 일반 사립학교 역사교사도 교회의 신앙이 있는 분이면 역사시간에 모세이애기를 했다가 학부형과 교장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3500년전 모세의 해방의 영성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 독립을 원하는 국가들에 의해서 지금도 역사적으로 분출되고 재현됩니다. 

2, 두 번째, 예를 들면 솔로몬의 영성입니다. 
솔로몬의 영성 하면 여러분이 익히 잘 아시는 대로 지혜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지혜의 영성은 분별력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공정한 재판의 영성입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의 판단의 공정성은 대단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왜 주일아침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욕을 먹습니까. 재판은 잘 했는데 판단 판결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그래서 국민들이 판검사들을 못믿겠다는 것입니다. 재판은 잘하고 판결을 잘못하면 빌라도처럼 천추만대에 욕을 원망과 욕을 먹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영성은 한마디로 예민한 통찰력과 분별력 그리고 철두철미한 공정성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영성하면 분별력의 지혜와 공정한 재판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무엇이 옭고 그른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 잘해라 라고만 하면 안됩니다. 정직해라, 컨닝하지 말아라 해야합니다. 

3. 세번재, 예를 들면 다윗의 영성입니다 
다윗의 영성은 두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용맹성과 하나님께 대한 외경입니다. 육척장신 적장을 물리친 용기,기름부은 사울왕에 대한 예의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데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4. 네번째, 예를 들면 요셉의 영성 
먼 미래를 꾀뚤어보는 꿈과 하해같이 넓은 용서와 관용이다. 미래를 보는 꿈으로 고난극복이 가능했고 하나님의 섬리를 믿는 신앙으로 원수같은 형제에대한 관용이 가능했다.  오늘 우리에게 용서와 관용이 그 어느시대보다도 요구된다. 아직도 6.25때 공산군에게 끌려가 희생당한 아버지와 인민군의 총탄에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낀 남편의 원수를 그대로 원수로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는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해야합니다. 나는 6.25로 부친을 잃고 여동생을 잃었지만 원한과 적개심은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5. 다섯번째, 예를 들면 마리아의 영성입니다. 
마리아의 영성 역시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복종으로서의 순종입니다. 다른 하나는 장차 자기 아들에 대한 예지입니다. (한 마지로 순종과 예지가 마리아의 여성입니다.)  누가복음1:26이하38 죽음을 담보한 각오와 결단을 한 그의 절대복종의 순종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하나님게 대한 절대순종의 영성을 봅니다. 

누가복음1:51-53 일명 마이아의 찬가라고도 하고 어떤 성서학자는 혁명의 노래라고도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 마리아의 노래를 읽어보면 자기 태중의 아이 예수가 앞으로 메시야가 될 것이라는 것과 그가 메시야로서 정척 혁명 도덕적혁명 경제적 혁명을 하게 될것임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예견한 마리아의 빛나는 메시아에 대한 예지를 볼 수 있습니다.

6. 여섯 번째, 예수의 영성-하나님의 나라 건설의 영성 
막1:14-15.때가 찻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설교는 선교벽두에 하신 예수님의 첫 번설교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 이 땅에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일방적으로 파송한 총독의 정치적 간섭(요새말로 갑질), 농부들의 등뼈가 휘도록 혹사하는 경제적 수탈과 희대의 폭군 헤롯왕의 폭정으로 챗찍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나깨나 밤이나 낮이나 밥을 먹을 때나 기도할 때마다 마치 파수군히 새벽을 기다람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할 메시야가 도래할 것을 학수기다렸습니다. 나는 군대가서 맞교대 정문보초의 경험이 있습니다. 밤 1시에 교대하면 아침 7시에 교대를 합니다. 새벽 미명 먼동이 틀때까지 새카만 금음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맞교대를 서 본 사람만이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군의 갈급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라엘은 하나님 나라를 가져올 메시야를 마치 새벽을 기다리는 보초와같이 학수고대했던 것입니다. 

첫 번 설교에서 뿐 아니라 그의 탄생 교훈 비유말씀 병고치는 기적사건 십자가 그의 모든 복음사업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그 초점이 맞추어졌다. 따라서 예수님의 영성은 하나님 나라 건설의 영성이다. 

역시 선교벽두에 고향에서 하신 설교로서 눅4:18-19 은 하나님나라 건설의 영성의 내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기가 임기중에 할 일을 공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61:1-2절을 인용한 이 예수님의 취임사에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공포하신 취임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여기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건설의 영성의 내용은 1.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2. 포로된자에 대한 자유입니다. 3. 눈 먼자에 대한 시력회복입니다. 4.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19절에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것은 같은 내용을 포괄적으로 가능케 하는 의년 제도의 실천이다. 

당시 일부 기득권층을 제하고는 대부분의 대중들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온갖 정치적장치와 종교적 제도 때문에 언로는 막히고 백성들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못하고 들어야 할 것은 듣지 못하는 눈면 장님이요 말못하는 벙어리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완전히 뒤집어놓는 개혁과 개방 개선 혁신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성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영성은 모세의 해방의 영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시대나 마리아와 예수가 살던 시대나 삶의 자리가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던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의 영성들이 오늘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성이 필요한가 

1. 창조보전(創造保全)의 영성(The spirit of the Integrity of creation) 
아담의 원죄로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창조보존의 영성이 필요한시대이다.(환경문제는 죄의 문제해결로 가능함을 설명-후에 더 자세히)

2. 평화통일의 영성(The spirit of the Reunification of Peace) 
8.15해방이 된지 70년년이나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주변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반미니 친미니하여 외세로부터 종북이니 친북이니 자유롭지 못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외세개념은 과거 일제하에 식민지하의 외세개념과는 다릅니다.-오늘날 우리나라에 해방의 영성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면 그는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내부 이데오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해방의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우리의 원죄인 분단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부자유로부터 자유를 눌릴수 있는 통일의 영성이 충만한 지도자일 것입니다.(분단-부자유 통일-자유) 

오늘날 위리나라가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한 진통을 하고있는 반미니 반미 반대(친미)니 하는 외세논쟁도 종북 좌파 우파니하는 갈등상황도 결국은 분단이라는 원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부패,정치적 혼란,사상적대립, 계층적 갈등이나 민족적인 모순도 모두 이 원죄인 분단이 원인이 되는 것들입니다. 

떼로는 교회 목사의 설교가 논란이 되어 해당교회는 물론 교계가 온통 혼란에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목사의 설교가 잘되었느냐 잘못되었느냐 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아닙니나다. 

왜 한 분의 같은 설교가 사람들을 온통 둘로 갈라놓게 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분단상황만 아니라면 그분의 설교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같은 분의 하나의 설교를 놓고 첨예한 입장 차이가 생겨 같은 교회교인은 물론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둘로 갈라져 흑백논리로 갈등하게 하는 것은 역시 남북 분단이라는 원죄가 그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날 3500년전 모세시대에 해방의 영성이 필요했다면 오늘 우리 한국에는 그 무엇보다도 통일의 영성이 절실합니다. 해방후 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온갖 불의와 부정 동서의 반목과 사상적 계층적 갈등 민족적인 분단의 모순이 하루 속히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이 되는 원죄인 남북분단의 양극화 현상들과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국가적 더 나아가서 종교적 교회적 갈등의 병리현상이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되어 8천만계례와 우리 조국 반도의 일치와 평화통일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같은 양극화현상의 대결국면에서 통일이 되려면 어떤 통일이어야 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어떤 통일의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자유와 평등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화합과 대화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6.25때 부산까지 밀려내려갔을 때 통일이되었으면 얼마나 빠른 통일이 되었겠습니까. 역으로(반대로) 유엔군이 밀고 올라가서 백두산까지 갔을 때 통일이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둘을 모두 거부하셨습니다. 왜 거렇습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그 하나는 민족의 통일은 폭력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나라역사의 섭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해방이 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서 되어졌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아직 미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남과 북을 통해서 자유와 평등의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서 더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에와서야 분단 60년만에 이제는 어느정도 자유와 평등이 성숙되어 통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하시고 2000년부터 양국정상의 대화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통일이 필요합니까.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 통일의 영성은 양쪽 둘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쌍방평화통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북조선이 호시탐탐 남침야욕을 가지고 적화통일의 허왕된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반대로 남한이 독일식 흡수통일의 안이한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쌍방평화통일은 불가능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통일은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평화통일이어야 합니다. 평화통일은 무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평화통일의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력으로 풀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남북 북남의 평화통일의 영성은 곧장 대화의 영성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의 통일의 영성은 대화의 영성이어야 합니다. 분단후 반세기를 훨신 넘어 70년이나되는 긴 기간동안을 통일을 유보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동안 양쪽 모두 진정한 대화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퍼주었느니 묻지마 돈을 주었느니 말도 많고 시비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고난중에 부르짖는 우리 나라를 불상히 여기셔서 6.15정상회담으로 이제 대화의 물고를 트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북 양쪽이 다 대화를 할 만큼 성숙했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의 정치를 국정의 슬로간으로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남북문제를 풀겠다고 한 새대통령의 통일비젼은 희망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대통령과 법관들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의사들도 대화하자고 신청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지난날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수구적 기득권세력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햇빛정책을고집하고 그렇게도 굳게 닫혔던 북조선 김정일정부도 대화에 응하는 것은 이제 두 진영이 어느정도 통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기  때문에 대화해도 손해볼 것이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폭력을 수반하는 적화통일의 북쪽만의 방법으로도 안되고 남쪽만의 흡수통일 방법으로도 안되고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오늘날 남과 북 북과 남이 통일을 만족하기 위해서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자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등의 문제입니다.우리나라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비록 따로 따로이기는 하지만 자유와 평등 이 둘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세계 어느나라도 한 나라에 이 두가지가 모두 구비된 이런 예가 없습니다.그동안 북이 이룩한 성과는 평등입니다. 그리고 남이 이루어놓은 성과는 자유입니다.물론 양쪽 모두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불완전하나마 그런대로 이제 우리는 통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피차가 성숙했습니다.북은 북대로 불완전하나마 평등으로 성숙했고 남은 남대로 불완전하나마 자유가 성숙했다고 서로 자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학사상을 한가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영은 그동안 남쪽에서만 일하시고 북쪽에서는 일하시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은 그동안 북에서도 역사하셨다고 믿어야 올바른 신앙입니다. 북에서 평등을 위해서 남에서는 자유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과 남, 남과 북이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어울리기만 하면 이 두가지 요소 평등과 자유가 모두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북남 남북이 서로어울려 평등과 자유가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면, 온 세계도 모두 서로 어울려 아름 다운나라가 될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과남 남과 북이 서로 어울리는냐 못어울리느냐하는 것은 우리나라 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지구적인 문제이고 전 세계적인 과제이고 전 인류의 숙제입니다.

 그러나 대화와 협력의 영성은 김대통령이나 노대통령 그리고 김정일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통일정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화와 협력의 영성을 통해 이룩하는 평화통일의 영성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영성이 필요합니다. 

1. 만남과 대화의 영성입니다.
요한복음15장에 신비로운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15:4절 이하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 15:4-7). 

특벌히 이 말씀은 우리 모두 서로가 하나가 되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창출해 내려고 하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적절한 말씀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물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영역 모든 계층의, 대립이나 단절을 지양하고 대화를 통해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을 현실적으로 적용해보면김 남쪽대통령이 복쪽위원장안에, 북쪽위원장이 남쪽 대통령 안에. 남한이 북조선 안에, 북조선이 남한 안에, 북조선교회가 남한교회안에 남한 교회가 북조선교회 안에 있어야 남북, 북남의 화해와 민족과 국가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남한 기독교인 안에 북조선 기독교인이, 북조선 기독교인안에 남한의 기독교인이 서로 들어갈때 완전한 통일, 이상적인 하나님의 나라, 평화의 공동체, 샬롬의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이같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쌍방간에 진정한 만남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쌍방간의 대화는 1:1의 대화이어야 합니다.  쌍방간에 1:1로 만나고 신뢰를 통해서, 사상과 이념 민족과 계층간의 굳게 닫혔던 장벽으로 인한 대립과 단절을 극복하고 화해와 통일을 이루는 이상적인 모델, 모범적인 민족공동체를 전 세계에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이와 같은 대화를 통한 통일의 영이 오늘 우리 나라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 한국교회에 특별히 오늘 교사세미나를 하는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몇일전 3월2일 최초로 소망교회에서 남북북남교회가 서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었던 일이라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80년대초 스위스 그리온대회에 처음으로 남북교회의 대화가 있은후 지금까지 일본 등 국외에서 그리고 복조선에서 수십차례에 걸친 끈질긴 대화의 결과로 앞으로 더욱 깊은 대화가 성사되기를 바랍니다.   

2. 조화의 아름다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 통일을 교육하는 교사 여러분 서로 갈등하는 것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대화의 영성뿐 아니라 아름다운 조화의 영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보기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은 다릅니다.아름다운 것은 조화입니다. 말하자면 같은 것이 잘정돈된것을 보고는 보기좋다고 하고 서로 다른것들이 어울려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같은 색깔의 꽃이나 같은 키의 나무가 잘 정돈된 것을 보고는 보기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좋은 것은 금방 지루해지지만 다른 색깔의 꽃이 어울렸다거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로 섞여있는 모습은 보기좋다고 하지 않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것은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을 좋아하십니다.  

동물의 세계도 그렇고 자연의 세계도 인간사회도 그렇습니다. 쟁끼와 까투리 서로다른 나무와 꽃들 여자와 남자의 어울림, 코믹하게 말한다면 꺼꾸리와 장다리, 뚱뚱이와 홀쭉이가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테레비젼에 보면 이영자가 나오면 반드시 홍진경이가 그 옆에 나오는 것은 그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인간사회가 조화로운 사회가 될려면 이같읕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이치와 월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동과 서가, 남과 북이 큰나라와 작은 나라가, 강자와 약자, 있는 자와 없는자가 서로 어울려 살 때에 그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잇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특징은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금을 내서 없는 사람들도 기본적인 삶을 누리도록 하는 훈륭한 제도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지 않터라도 지금 세계는 어울리지 않고는 피차간에 못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회가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가 될려면 이와같이 서로 다른 것들이 상호인정하며 받아들여 서로 어울려사는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는 흑과 백의 조화입니다. 말하자면 서로 완전이 이색적인 것이 서로 만날 때에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흑백의 조화 - 나는 1981년 여름 남녀 학생 30여명을 인솔하고 미국 콜로라도에 일주일간 캠핑차 가는 길에 와싱턴 백아관을 구경하기 위해서 갔는데 백아관 인근 잔디밭에 흑백두남녀가 팔장을 끼고 걸어가는 아름다운 조화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숯덩이같이 새까만 흑인 남자는 구두와 모자가 새카맣고 눈알그리고 치아만 새하얗고 그의 팔장을 끼고 같이 걸어가는 한 백인 여인은 새하얀 원피스와 부라우스 흰 구두 에 흰 모자에 눈만 새파란 여인의 걸어가는 모습은 나는 눈을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그 모습이 살아질때까지 바라 보았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고 해도 틀림이없습니다 .  

우리나라는 어울리기만 하면 그 어느나라보다도 더 아름다운 어울림이 될 수 는 데도 그렇지 못한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남과 북이 어울리기만 한다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나라는 한 나라이면서 서로 다른 두개의 이념과 체제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서로 다른 둘이 하나로만 합할 수 있다면 세상에 그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한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세계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려면 먼저 우리나라가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혀 다른 체제를 가진 반도의 평화통일입니다. 우리 남북의 북남의 통일의 의미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문제이고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임했던 화해와 대화와 평화통일의 영이 그동안 10년동안 이명박 박근혜 등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나셨다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과국 최고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 문제인대통령에게 하나님의 평화통일의 영이다시 임하셨다 

2018년 4월 27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과국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한민국 문제인대통령이 그 문제의 역사적인 해결의 물고를 텄습니다. 판문점 군사분단선에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서로 다른것이 어룰리는 자연 ,인생, 이념, 국가, 세게가 될때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평화가있고 하나님의 이상적인 평화의 나라 샬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아름다운 조화의 세계를 그려주셨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11:6-9에 보면 이상적인, 아름다운 인간사회를 비유적으로 예언한 이사야의 꿈 이애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고도의 인간문명을 자랑하는 20세기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루터 킹목사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아르라함 링컨 기념관 주변에 모인 26만명의 군중들 앞에서 마틴루터 킹 목사는 구약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려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그의 연설-나는 꿈을 가졌노라). 오늘 우리도 이사야와 마틴루터 킹이 가졌던 같은 꿈을 꾸어야 하겠습니다.마틴 루터가 이사야서를 근거로 꾸었던 미국의 꿈을 우리 한국적인 상황으로 꾸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졌노라 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자유와 평등의 메아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리라. 우리는 꿈을 가졌노라 핵폭탄의 공포 전쟁의 불안,억압과 부자유 갈등과 불만이 가득한 이 한반도의 민족적 모순과 계층적 갈등속에서 남과 북이, 민족과 민족이, 동과 서가, 노와 사가 빈과 부가 유식과 무식이 상하 죄우가 남과 여가 서로 서로 손에 손잡고 한 형제 자매가 되어 함께 지내는 그날이 올것을! 

우리는 꿈을 가졌노라 남한의 소년소녀들이 북조선의 소년소녀들과 손에 손잡고 함께 울고 웃으며 서울과 평양거리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그날이 올것을 ! 우리는 꿈을 가졌노라 남한의 기독교가 북한의 기독교가 서로서로 손잡고 한자리에 어울려 앉아 하나님께 기빤찬송 부를날이 올것을. 우리는 꿈을 가졌노라 한반도 평화통일의 우렁찬 메라리가 조국 한 반도 온천지에 울려펴지는 그 날이 올것을! 

이는 새로운 지도자가 태어날 때 가능합니다. 이제것 해오던 그런 왕이 아니라 전혀 달른 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새 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십시다. 김정은 문제인 두 정상이 손을 굳게 마주잡은 세기적인 역사적 계기로 대통령도 거듭나고 국무의원도 양쪽 정치지도자들도 양쪽 인민과 국민들도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것이 앞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실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조국 반토 평화통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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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목사
(121.XXX.XXX.80)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유재무 목사님 샬롬
부족한 사람을 글을 예장신문에 올려주셔서 감사감사감사합니다. 샬롬

(2018-05-06 18: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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