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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퇴 이유서교단 신학교 몰락의 시작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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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8  10: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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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자퇴 이유서

하유승(호남신학대학교)
   
 


1. 저는 2018년 5월 31일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자퇴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자퇴서를 제출한 이유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 자퇴이유서를 쓰는 것은 저의 무결함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학교의 흠을 끄집어 내고자 함도 아님을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도리어 이 글을 통해 제가 자퇴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기 위함이고, 동시에 자퇴하는 이유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켜 또 다른 상처를 남겨드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2. 저의 자퇴는 신학공부라는 신성한 노동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신앙생활로부터의 벗어남이 아닙니다. 도리어 신학을 양심껏 공부하려는 개인의 의지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보려는 작은 시도와 표현입니다.

3. 하나님에 관한 학문인 신학의 장소는 항상 교단의 교리를 초월하는 영역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뜻은 언제나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만든 교리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단의 교리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또 성령의 도우심으로 정해지지만, 교리는 교회의 오만한 결론이 아니라 언제나 겸손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지고한 하나님의 뜻이 항상 편협하고 오만한 우리 인간이라는 틀에 갇혀 왜곡되어왔음을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그 어떤 교리도 완전하지 못했다는 진실을 2018년인 현재 우리들이 겸손히 받아들인다면, 교리와 신학적의사표시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학적의사표시가 교단의 교리를 넘어서는 경우라면,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의 장에서 심층있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지, 교단의 교리가 신학적인 주장을 하는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단의 교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대화를 위한 출발점인 것이지, 우리의 존재와 사상을 판단하는 결승점이 아닌 것입니다.

4. 그러나 2018년 호남신학대학교가 속해있는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교단의 교리를 우리의 존재와 사상을 판단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바로 성소수자(LGBTQI)지지자/옹호자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였습니다. 저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반대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존중할뿐이지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의견 또한 비신학적이거나 비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5. 아직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별을 여자/남자라는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해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인구의 약 1.7%(UN보고서 출처)를 간성(intersex)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이 비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비웃는 오만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계시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간성이란 여성남성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자와 같이 이분법적 성구분을 벗어난 분들을 말합니다. 간성아기들의 보호자들은 대부분 간성아기의 두 성기 중 하나를 ‘제거’합니다. 보호자들은 이 제거수술을 ‘정상화수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커가면서 이것을 ‘정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성은 ‘자각’의 영역에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어렸을 때 남성의 성기를 제거한다고 해서 간성아기가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도리어 그들은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거나, 혹은 간성 그 자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정의일까요?

6. 다수자들은 다수의 경험에 ‘일반 혹은 정상’이라는 포장지를 덮습니다. 그러나 다수자들은 언제나 소수자들의 영역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소수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종교인들이 종교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서 종교인들을 배제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할까요? 종교를 가진 사람은 입학이 안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회사에 들어올 수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따라서 아직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형편인 지금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섣부른 배제’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논의’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7. 사람을 혐오하고 차별/배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참된 배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인간을 차별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시대/문화적 한계를 지닌 인간의 손을 통해 쓰인 까닭이지, 인간 존재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살인은 성경규례에 따르면 죄이지만, 자살은 죄가 아닙니다. 자살이 ‘사회적 타살’로 규명된 시대에는 자살은 죄가 아니라,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피해자의 절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자살한 사람을 정죄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살에 대한 새로운 교리적 이해를 논의하고, 약자들이 삶을 튼튼히 살아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대안을 논의/제시해야하는 것입니다. 낙태에 대한 이해도 같은 맥락입니다.

8. 성경의 증거들도 이런 맥락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세 가지 법전(계약법전, 신명기법전, 성결법전)에서도 종에 대한 규례가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약법전에서는 안식년에 남자 종만 자신의 뜻에 따라 해방될 수 있고, 신명기법전에서는 성별관계없이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하시는 뜻은 ‘율법조문을 따라 인간의 상태를 돌아보는 것’뿐 아니라, ‘인간과 시대에 대한 이해에 따라 성경해석(심지어 율법조문까지)을 바꾸기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율법해석이 당시의 전통(교리)과 부딪힌 이유도 그러한 맥락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성경해석은 시대/인간에 대한 이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여러가지 사실들에 따라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논의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제가 속해있는 교단과 학교장들의 결의는 ‘통합’이라는 이름과는 모순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9. 저의 자퇴는 이러한 교단의 결의, 또 그 결의를 따라 학칙을 수정하겠다는 총회산하 7개 신학대학교장들로부터의 벗어남입니다. 또한 저의 자퇴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리를 포함한 교단의 모든 교리를 그것을 초월하는 영역에서도 신중히 살펴보고 표현해보고자 하는 신학도로서의 나아감입니다. 저는 그들의 결의에 따라 입학해서는 안되는 학생이었고, 따라서 졸업 또한 해서는 안되는 사람임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인정합니다. 저는 교단의 교리에 복종하기 위해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교단의 교리를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수정하기 위해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10. 교단 내에서 교단 내의 목사로 저의 뜻을 펼쳐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거절했습니다. 신학과 학부4년, 신대원 약 3년, 호남신학대학교 동아리인 ‘현대신학제작소’ 동아리장으로 활동한 기간의 경험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 신학적 소견을 여러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단의 불성실함을 규탄했고, 박근혜 전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본교의 입장을 요구했고, 성소수자 배제 결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현도 했습니다. 동아리에서는 설교가 ‘선포의 장’으로서가 아니라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채플을 듣는 학생들의 의견을 설교자에게 전달하는 ’채플딥’이라는 설교소통시스템도 운영했습니다.

11. 그런데 그 때마다 ‘교단/학교 각 기관 구성원들의 생계문제’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교단의 교리가 억압적인 상황에서는, 저의 신학적인 소견이 때때로 저와 연관된 주변의 목사님들, 교수님들, 학생들의 ‘생계의 자리’를 위협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 신학적인 소견이 폭력적이라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교단과 교회의 구조와 분위기가 개인의 합리적인 비판을 배제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주변의 목사님들, 교수님들, 선후배님들, 친구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 의견에 저만이 책임질 수 있는 ‘평신도’의 자리로 가려는 것입니다.

12. 생계가 걸려있으면 겁이 나는 것이 우리 연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저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것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그런데 지금 목사의 자리에서 또 학생의 자리에서 교단의 구조와 부딪히려면, 제 주변에 계신 가장들의 ‘인간적 본성’과도 부딪혀야 합니다. 저에게는 양심적인 신학공부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만, 다른 가장들의 생계까지 위협할 권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저의 선택이 이 두 권리가 허용하는 범위안에서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7년간의 배움과 29년의 삶으로 결론지었습니다.

13.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의 시 구절로 자퇴이유서를 마칩니다.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뱀을 볼 때 마다
소스라치게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함민복>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소스라치다, 함민복)   

                                   2018년 6월 14일 하나님의 피조물 하유승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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