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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망설존(齒亡舌存)김동호 목사 발언 문제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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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0  21: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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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망설존(齒亡舌存)  

지난 8월 7일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한 총회 재판국 결정이 8:7로 원고 패소가 나오자 예상대로 그 후푹풍이 만만치 않다. 세반운동을 이끌며 앞장섰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적인 소회들은 차제하고 라도 모든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 판결은 물론 총회와 교단을 들먹이는 비판을 하는 중이다. 예상은 하였다고 하지만 만만치 않다.  

노자(老子)가 병석에 누운 스승 상용(商容)을 찾아뵈었다. 상용이 자기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혀가 아직 그대로 있느냐" 노자가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그러면 내 이는 아직 있느냐?"하고 묻자, 노자가 "다 빠지고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상용이 "왜 그런지 까닭을 알겠느냐?"라고 다시 묻자, 이에 노자는 "무릇 혀가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부드럽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상용은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의 이치가 이와 같다. 이제 너 에게 더 해 줄 말이 없구나(치망설존齒亡舌存)"라고 말했다. 중국 한나라 유황(劉向)의 설원(說苑)의 경신(敬愼)편에 실려 있는 글이다.  혀처럼 부드러우면 꺾이지 않고 부러지지도 않는다. 이빨은 너무 강해 부러지거나 닳아 없어진다. 태풍이 분다. 홍수가 진다. 갈대는 휘어질망정,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딱딱한 나무나 숲은 갈라지거나 부러지거나 뿌리 채 뽑혀 간다. 
   

      * 서울 지역의 중견 교회로는 유일하게 내놓고 세반운동을 하는 한 목회자의 세반상징어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 모두에게 거부감이 없는 그러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서기 좋아하고 독설을 일삼는  김동호 목사의 말을 이용하여 세반운동을 가져가려면 자살꼴이다. 재판국을 조폭이니 금권이니 무책임한 망발를 하는 데 이는 제 얼굴에 침밷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동호 목사가 할말은 아니다.  사실 김동호 목사 때문에 세반운동의 진정성이  의심받기도 하는 데 감정과 앞서는 발언을 하는 데 난세에도 자기 인기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http://www.timesisa.com//m/content/view.html?section=1&category=151&no=20396(시사타임) 

그래서 이번 재판은 판결보다 재판을 하고도 사표를 낸 6인의 재판국원이 더 문제다. 마침 열린 총회 임원회는 수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6인은 의인이 되었고 나머지는 국원들을 의심하게 하고 죄인으로 만든 셈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원인은 마지막 기도회에서 재판국원들의 얼굴공개가 부른 참화다.  
   
 * 사표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국원들을 표기하고 알수 없다는 국원도 별도의 표기를 했다.

재판국원 사진 실명 공개가 원인 
뒤에서 이일의 판을 키우는 이들은 언제나 자기 주장은 않고 남의 글이나 펴서 나르고 재판관들 사진에 표기해서 내돌리고 있다. 결국은 사표를 내지 않은 1인이 누구냐? 그 사람을 추적하고 한 인터넷 신문은 누가 반대했는 지 해설기사와 평까지 한다.  급기야 지목되는 분으로 부터 명예훼손 소리가 나오자 잦아드는 데 재판국원들의 사퇴가 가져온 불행이다. 
   
                          * 보도가 아니라 추측성의 기사는 과욕이다.

그 연장선상으로 이번 가을 103회기 총회가 열리면 헌법을 어긴 사안이라는 이유로 이번 재판에서  면죄부를 준 재판국을 탄핵하자고 선동을 한다.  아마 그러려고 일부 국원들은 미리 사표를 낸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지금은 그 판결 보다 더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재판국원들의 사표소동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무책임한 것이다. 재판관은 판결로 말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버리고 판결후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다.  원래 국장 이경희 목사는 이번에도 심리를 하고 다음에 판결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국원들과 외부세력의 결심 주문에 굴복하여 무기명 비밀투표로 판결을 강행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국원 사퇴는 무책임한 일
모름지기 재판국원이라함은 소신못지 않게 재판국원으로의 권위와 처신을 지키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판결에는 참가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안되자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판결에 대한 불만을 공개화 하므로“나는 반대했다”  라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재판국원 윤리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국원으로 재판진행과 관련하여 부당한 일이나 불만이 있었다면 판결 전에 사퇴를 하였거나 다른 방식으로 구제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판결에 임하고도 사퇴를 한 것은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항명으로 비겁한 것이다. 이 재판은 사실 원고나 피고나 모두 모험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대위인 원고는 이 재판에 결과에 승복하겠다고는 했지만 예상외의 불만과 요동에 고무되고 재판국원 집단 사퇴를 기화로 가을 총회에서 이를 뒤짚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즉 이 판을 더 키워 재판국원을 탄핵하자는 것이다. 그런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내린 판결은 뒤짚을 수는 없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재심은 총회에서 새로운 증거나 상황이 있다면 총대들의 결의로 할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역시 다시 재판을 한다는 면에서 그 끝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총회가 하면 하는 것이지만 총회가 기본적으로 치리회를 통한 헌의 안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해당 치리회가 장상화되어 나선 다면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 사안은 총회나 노회 교회들에게 큰 피로감을 주고 있고 에너지도 너무 소비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 교수들의 지속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9일에 나온 장신대 교수들의 격문에 대해서도 다소 과격한 내용이 많아 신학대학 교수의 신분을 크게 어긋났다는 비판이다. 

쟁점은 헌법 개정위로
또 지난 총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이 문제가 이미 101회기 헌법해석위에서 개정지시가 있었고, 이번에 또 다시 헌법위는 '헌법 제28조 6항 제1호의 적용범위' 에 대하여 102회기 헌법위원회(위원장:이재팔)는 '법의 미비로 인해 은퇴한 목사의 아들 목사 청빙을 제한할 수 없다'고 1차 해석했다.

이는 당시 입법과정에서 '해당 교회에서 이전에 사임(사직) 또는 은퇴한 위임(담임) 목사 및 장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제3호 조항이 부결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헌법위원회의 2차에 걸친 이 해석에 대하여 현 총회장과 임원회는 '총회의 자존감을 정치적 판단으로라도 최소한 지켜내겠다'라는 의지로 이 법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도 또 다른 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누구나 총회의 일은 하고 싶어서 하는 분도 있지만 공천부를 통하여 맡겨지는 것인데 신앙이나 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도매금으로 막말하는 것은 근거없는 비방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재판국원들의 자학적행위는 총회 역사이래 처음 있는 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 교회의 세습이 가져온 일치고는 참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교회에 비중이나 사안의 관심이 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은 그들이 한일이 사회 통념상으로 볼 때 반사회적이거나 범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법은 가변적이고 필요에 의하여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총회의 위법실태는 그건 만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헌법위반이고 법의 잣대는 형평성에서 볼 때 명성교회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명성교회 하나 바로잡고 되돌린다고 해서 교단이 정화되는 것도 아니고 뇌둔다고 해서 교단이 무너지고 신사참배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다.   

원고들은 침묵속의  아우성 
이번 판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동남노회 비대위원들이다. 이들은 소속 노회에서 면직과 출교라는 치리까지 받은 상태다. 그래서 판을 더 키워 교단이 요동을 치고 교단이 분립되고 망가지기를 원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분노는 결국 막장으로 가자는 것이다 총회 재판을 더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부담이 없지 않을 것이지만 평정심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분간 세반운동 구룹들은 이번 판결에서 느낀 절망과 배신감을 동력으로 하여 오는 9월 3일에 예고된 전국 목회자 대회와 가을 총회까지 반대 여론 몰이를 해 갈 것으로 보인다. 마침 장신대 세교모 교수들 60여명이나 실명 서명으로 9일에 화답하듯 격문을 내므로 세반운동은 재결집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수들의 이번 성명은 너무 감정적으로 흘렀다는 평이다. 장신대 교수들이란 사실 어디다가  이름만 내도 그 권위와 의미는 크고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 했다는 것만으로도 진심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한 표현은 도움이 안될 것이다. 차라리 말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으로 총장에게 교수 사표를 써서 맡기는 배수진이 더 설득력있고 감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비대위는 이 과정에서 희생을 당하면서 세습반대 운동에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방식은 사정도 해보고 성경적으로나 법적으로 정서적으로 잘못했다고 정죄도 해보고 망신도 주고 비난도 해오면서 운동의 당위성은 확보했다. 다만 명성교회나 소속 노회로 부터는 그 진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세습을 잘했다는 사람은 없어 
사실 들을 귀가 없고 듣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말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김하나 목사는 사퇴하고교인들에게 교회를 떠나라고도 하지만 내 쫒을 수는 없는 것 아닌 가?  비판자면 충분하지 심판자가 된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세습을 합법화해주거나 용인해주자는 뜻에서가 아니가 불법 교회로 낙인 찍는 것 이상 무엇을 더 한다는 것인가 

이들에 대한 징벌이 있다면 해노회나 치리회가 할 일이이고 하나님이나 하실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비난과 원망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내가 나서서 버릇까지 고치겠다는 것은 할일이 아니다.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나가고 그렇게 교단이 혼란을 겪게 하는 것은 정당으로 치면 교단에 해당행위가 되고 제 얼굴에 침밷기다. 

이 땅의 교회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모두 불손하고 불안정하여 우리 주님의 긍휼과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성경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분별할 것이 아니라 심판 날까지 기다리자고 하신다. 죄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아버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반운동의 전선은 넓어졌을 까?  우군인 노회장 협의회는 침묵하고  재판도 패소했지만 명분론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고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외연을 넗히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을 찾아내야 하고 인간적인 생각이야 어떻게 하던지 가을 총회까지 이 이슈를 가져가서 총대들을 이용하여 무슨 일을 내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남의 입이나 힘을 빌려 뉴스를 더 생산하고 비난을 증폭시켜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뒤에서 남의 말이나 돌리는  비겁하게 하지말고 떳떳하게 자신의 주장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쉽다.  무슨 바램과 두려움이 더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   

제도개혁 까지 가야 진정성 이다.  
신학생이나 어려운 가운데 목회를 하는 후진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은 이해해야 한다. 상속세도 없이 날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우스게 소리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앞으로 이런 목회풍토를 잠재우려면 목사의 위임제와 장로의 항존직를 폐지하는 데 까지 나가야 한다. 

명성교회 하나 군기잡고 버릇고치고 원상회복시키는 것만이 개혁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도고 시스탬이다. 불합리한 헌법체계와 시대에 조응하는 법으로 정비해야 하고 우리교단의 신학과 현안에 대한 새롭게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반운동세력이 반대자 비판자의 위치를 넘어 심판자가 되어가지고  몰아 세우는 것이 목표인가?  그러나 목회자들이라면 교회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안의 분노와 적개심을 모두 내려놓고 모두 죄인 된 심정으로 눈물어린 기도가 더 강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정죄와 낙인만으로는 자신의 영혼만 피폐해지고 마음만 상할 수 있으니 비대위건 세교모건 세반연이건 날카로운 검들을 내려놓고 일곱 번씩 일흔번이나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관용의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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