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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단,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에 소외되어서는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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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5  1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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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교단,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에 소외되어서는 안되
 

배민수 목사 우리 교단 소속의 목회자  
   
                                    * 고 배민수 목사 부부
총회 농어촌선교부(부장:천정명 총무:백명기)가 103회기 총회를 맞아 그동안 잊어졌고 지지부진 하였던 삼애 고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에 대하여 거론을 하였다. 그간 연세대학교와 함께 '삼애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연세대학교의 비협조로 그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이번에 바로 설수 있도록 총회는 심혈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총회 농어촌부는 지난 12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회의실에서 열린 제103-1차 실행위원회을 여는 가운데 최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게시판에 게시된 '2018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건에 대한 논의가 공동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밝히고, '삼애공동위원회' 위원회를 조직한 후 향후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그리고 우선 총회에 '삼애공동위원회 위원 파송건'을 청원하기로 했다. 총회 농어촌선교부가 청원한 삼애공동위원회 위원으로는 목사 부총회장, 사무총장, 농어촌선교부 부장과 서기, 총무 등으로 한다는 것이다.

배 목사는 일제시대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농촌부장을 지내고 농촌 지도자 양성을 위해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했는 데 이를 기증받은 연세대학교가 이 부지를 기반으로 80년대 초 낙농학과(현재 생물자원공학과)를 창설했다.  그후 삼애 기념사업은 지난 1976년 삼애농업기술학원 재단 이사회와 배민수 목사 유족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 소재 토지 6만여 평을 연세대가 운영하도록 기증한바 있다.

그러나 그간 연세대 측은 배민수 목사가 기증한 조건들을 이행하지 않자 이사회 측과 유족들이 모든 권한을 총회에 위임한 것으로 보여 앞으로 모든 기념사업이나 그 기증재산의 사용은 연세대와 총회가 함께 진행하도록 되어 있는 사업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연세대학교는 우리 총회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고 우리 총회는 방치한 것이다.  

이렇게 총회가 방치하고 모르는 '삼애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 은 작년 학술 발표회도 그렇고 올해 10월 초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게시판에서 교육 학술 삼애교회와 더불어 특별사업으로 '일산 삼애캠퍼스 아파트 건설 추진, 영구적인 교육 및 학술기금 확보'란 내용의 공고가 나면서부터 다시 이 문제가 불거 졌다.

총회 농어촌선교부는 연세대 측이 밝힌 '일산 삼애캠퍼스 아파트 건설추진', '단지 내 펜트하우스 마련' 등은 배민수 목사기념사업으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총회와 연세대가 공동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이 일체 논의 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총회는 연세대 기념사업측에 지난 2016년 7월 이후 2017년 8월과 2018년 8월 총회가 두차례에 걸쳐 삼애 기념사업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신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 가운데 이런 일이 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연세대 연합신대 관계자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아파트 뿐만 아니라 과거엔 요양병원이나 평생교육원의 건설 이야기도 나온 적이 있다"면서 "만약 아파트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녹지인 삼애캠퍼스에 인허가를 받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 땅을 아파트 개발업자에게 판매한다는 루머도 있는데 오해"라고 밝혔다고 한다.

기증 당시는 보잘 것 없는 땅이 이제는 치솟은 부동산 가치로 백억대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데 연세대학교는 신과대학을 앞세워 기증자의 유지를 무시한체 ‘제사보다는염불에 맘있다’ 는 말 처럼 우리 총회를 소외시키고 혼자 독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그 자리에 지난 2006년  삼애교회를 설립하여 현재 까지 학교 우리교단 소속의 교목들을 교대로 파송하여 목회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는 신과대학 교수인 정미현 목사를 내정했다. 따라서 이 교회는 지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세대학교가 배민수 목사가 기증한 사업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교회 설립동기를  배 목사의 숙원사업이라고 하면서 ‘어느 교파의 관념적 색채에 물들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초교파 교회’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에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들이 한국을 방문한바 있는 데 삼애교회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는 교회 설립의 취지로  '초교파 농촌 교회를 지어 달라'는 기증자와의 30년 전 약속을 늦게나마 지키고 이 정신을 후세에게 전해주게 됐다고 하는 데 이 말이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다.  교회 1층은 예배실과 친교실 사무실 등으로, 2층은 배 목사의 유품 기록 등이 소장된 삼애기념홀과 소강당 등 200여평으로 단장되어 있다. 교회 외에도 연세대학교가 사용하는 천문대 야구장 잔디 축구장 등의 시설이 있다.

최근 들어 연세대학교는 내한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대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설립이념을 무색케 하는 기독교 정신을 부정하는 정관개정이 있었다. 2011년 당시 방우영 이사장(조선일보 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기장·성공회로부터 이사 1명씩 4인이던 이사의 근거인 정관 제24조 제1항을 ‘기독교계 2인’으로 바꿨다. 당시 기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연세대 이사회의 이 같은 정관 개정을 막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20579&code=23111111&sid1=chr

이에  NCCK와 갈등을 갖었었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다가 연세대학교가 승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시 이런 개악에 우리교단 파송이사인 이승영 목사(새벽교회)와 박종화 목사(경동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사는 우리교단 총회장을 지내신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가 1차를 지내고 연임을 하고 있다.

배민수(裵敏洙, 1896. 10.8-1968)

충청북도 청주 북문로에서 대한제국 청주 진위대 부교 배창근(1867년 ~ 1909년)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녔고, 당시 장대재교회에 다녔다. 1917년 장일환이 설립한 조선국민회에 참가해 서기 겸 통신부장을 지냈다. 1918년 1월 20일 일제 경찰에 체포돼 1년형을 받고 평양 감옥에 수감됐다. 1919년 2월 8일 석방된 뒤 어머니와 누나가 있는 성진으로 가서 3.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또 체포돼 1년 6개월형을 받았다. 1923년에는 4개월간 중국을 여행했다. 이후 정신적 지도자인 조만식을 만나 인도 간디식의 무저항, 불복종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위하여 농촌개혁운동을 펴는 것이 민족의 활로를 여는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유소기 등이 주축이 된 '기독교농촌연구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1931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맥코믹 신학대를 다닌 뒤 1933년 귀국해 조만식 등 옛 동료들과 함께 '기독교농촌연구회'를 재건하였고, 1933년 9월 장로교 농촌부 초대 총무에 취임했다. 1934년에는 장로교 목사가 됐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미국 내 일본인 편지 검열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해방후 한국에 돌아와 미군 군속으로 일했고, [2] 1948년 미군철수 당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메카레스터 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자유당에 입당했지만, 이승만과 결별한 뒤 주로 농촌지도자 교육사업에 몰두했다.

1956년 대전에서 기독교농민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이 됐다. 1967년에는 삼애농업기술학원과 삼애실업학교를 설립하는 등 농촌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1968년 대전 자택에서 사망했다. 1993년 8월 15일 아버지 배창근과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아버지 배창근은 의병 할동에 참가했다가 1908년 여름 일경에 체포돼 청안 감독에 수감됐고, 1908년 8월 서대문교도소에서 순사했다.'순국한 의병장의 아들 배민수'라는 자의식은 배민수의 자랑이었고, 십자가였고,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하나님 사랑, 농촌 사랑, 노동 사랑의 삼애정신(三愛情神)을 주창했다

연세대는 기증받은 부지를 기반으로 1980년대 초 낙농학과(현재 생물자원공학과)를 창설하고, 1993년부터 매년 배민수 기념강좌를 열어 농어촌 교역자 자녀인 석·박사 과정 1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삼애농업기술학원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1976년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 고봉산 기슭에 있는 삼애농장과 삼애농업기술학원 등을 연세대학교에 기증했다. 이 곳에는 2006년 9월 30일 연세대 부설 삼애교회가 설립됐다.  조선국민회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과 같이 활동했다.
   
 
* 국민일보, 2013년 8월 22일, 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⑧ 농촌운동 이끈 한국교회 
* 한겨레신문 2009년 6월 5일, [길을찾아서] 47년 미국행…그 이유는 지금도 ‘가물가물’ / 정경모 
* 기독공보, 2013년 10월 14일, 제13회 배민수 목사 기념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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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수 목사 관련 최근 기사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3996)

연세대학교 신과대학(학장 유영권)이 2017년 9월 21일 오후 3시 연세대 원두우신학과 예배실에서 제15회 배민수 목사 기념강좌를 개최한다. 
   
 
배민수 목사(1869~1968)는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으로 두 차례나 투옥된 민족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농촌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변혁하고자 한 기독교 실천가였다. 

해방 전 그는 조선국민회 조선지회 사건 및 성진 3.1만세운동 주도로 두 차례 투옥되었고, 농우회 사건으로 수배 중 망명을 떠나는 등 다사다난한 가운데에서도 장로회의 농촌운동을 주도했고, 해방 후에는 대한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후 대전과 일산에 농업기술학교를 세우며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빈곤한 농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매진했다. 배민수 목사는 1993년 의병장으로 순국한 부친 배창근과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배민수 목사의 서거 후 삼애농업기술학원은 재단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1976년 8월 30일, 교육을 통한 기독교 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연세대에 기증돼 귀속됐다. 이에 연세대는 배민수 목사의 하나님 사랑, 농촌사랑, 노동사랑이라고 하는 '삼애(三愛)정신'과 그 분의 숭고한 실천적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삼애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해, 농어촌 출신 학생 및 목회자에 대한 장학사업, 배민수기념관 건축, 청소년 체육시설 조성, 기념도서 발간, 배민수기념강좌 개설 등의 사업을 추진해 왔다. 특히 2006년에는 초교파 교회인 삼애교회를 설립해 고인의 숙원사업이던 "어느 교파의 관념적 색채에 물들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초교파 교회"로 예배드리고 있다. 

현재 연세대는 매년 삼애 신학박사과정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격년으로 신과대학 주최로 배민수 목사 기념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강연 총 주제는 '한국 기독교와 민족운동'이며, 제1강연은 유상현 교수(연세대)가 '교회와 권력-누가의 바울 사례', 제2강연은 한규무 교수(광주대)가 '배민수의 기독교 농촌운동과 고등농사학원'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전한다. 

특별히 올해 강좌에서는 「배민수 목사의 그 나라와 한국농촌(1958년 초판 발행)」의 현대어 개정판 출판 기념회도 아울러 열릴 예정이다(02-2123-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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