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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래, 목사에게 달렸다도전과 실험의 목회자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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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23: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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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래는 목회에게 달렸다

도전과 실험의 목회자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이 세상 교회는 사회 안에 있다. 한국교회라면 한국사회라는 조건 안에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쇠퇴할 것이다. 교회의 3요소를 편의상 교인과 건물, 성직자라고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건물과 유능한 성직자가 있어도 교인이나 교인들이 나오는 사회나 구성원이 없다면 교회로서의 존재가치는 없을 것이다.

1884년에 내한한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지도자들을 길러냈다. 봉건제와 일제하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는 모습은 초가에 한복을 입은 누추한 사람들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내복이나 난방 없이 솜을 누비로 넣은 한복을 입었고 여름도 무더운 채 살아냈던 가난한 나라였다.

1900년 이후 우리조상들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식민지화 되는 데 정치적 지배는 물론 경제적 수탈과 문화적 억압과 종교적 자유마저 박탈 당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모이고 애국 애족의 정신을 키웠고 학생들은 학업에 열중하여 미래를 꿈꾼다.

한글로 교육하고 설교하고 기도하고 남녀전도회와 주일학교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보급하였다. 제한적이기는 했으나 여성의 권리도 교회에서는 신장되었다. 선교사들에게 잘 보인 젊은이들이 미국 등에 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개화인이나 지식인 학자들은 거의가 개종한 기독교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서재필, 안창호 등은 당시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고 기독교학교와 교회에서 배출된 근대 지식인들이 었다. 그리고 전국 주요 도시에 세워진 장로교회들을 중심으로 청년, 학생들이 성장한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통하여 교육과 의료봉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민족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국기독교는 정치적 자유는 얻지만 분열하기도 하는 데 신학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분화된다. 그러나 기독교 상층부의 노골적인 정치화는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이후다.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도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취약한 집권기반을 강화를 위하여 종교를 이용 한다.

그것은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대사관 자리를 CCC김준곤 목사에게 불하해 주고 해방 후 많은 기독교회들은 건축허가 없이 세워졌으며 마을의 가장 좋은 자리들을 선점하는 댓가로 반공과 국가주의에 복무한다. .

세속 정치는 불교에서 비구니 추방이나 기독교에서의 민족복음화와 같은 종교내부의 문제나 영적 문제는 허용을 하지만 생각하고 비판하는 문화의 기독교 지성에 대해서는 억압한다. 비판적 지성의 대표적인 모임인 크리스찬 아카데미 활동과 대화잡지 같은 곳에 대하여 감시를 했다.

아카데미 중간집단훈련은 가장 먼저 한국사회 구성을 분석하고 농민과 노동자문제에 대하여 관심 갖고 지도자들을 훈련시킨다. 이들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 비판지성을 발본색원한다. 그후 아카데미는 문화적으로  생존을 위하여 문화활동으로 전환한다.

박정희 군사정부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대학의 지성인 교수들과 학생들 언론사 기자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 일부지만 NCCK를 중심으로 하여 양심적 지식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인권운동을 통한 저항이 시작된다.

그리고 해외와 연결된 고리를 통하여 한국의 비민주적인 인권상황이 외신에 보도되고 해외에서 유학 중인 학자들에 의하여 지식인 운동으로 조직된다. 특히 북미에 유학 중인 그룹들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합류로 기독교 반정부 운동은 크게 고무된다.

독일 정부나 WCC와 같은 국제기구들의 원조와 지원으로 해직된 교수들이나 기독학생운동 등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기반 속에서 기사연이나 노동자 선교와 같은 기층운동이 명맥을 이어서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고 한국도 수출과 교역의 덕으로 기업들은 호황을 누렸다.

한국사회의 성장은 교회 성장으로 이어져 

늘어가는 인구와 직업이 없는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와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고 한국에는 대 재벌이들이 탄생한다. 이렇게 한국의 근대화와 번영에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법적 억압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경제나 살림살이는 국가나 개인이나 모두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 한가운데 바로 한국교회가 있다. 정식 학위는 없었지만 교회를 할만큼의 교육을 받은 이들로 전국 도시는 붉은 십자가로 물든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고 성공한 이들은 신도시로 이사하고 자신의 인생 성공과 교회 성장을 동일시 한다. 

당시 교회는 밀려오는 신자들만 맞아도 호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부흥하고 성장한 교회들이 바로 1980년에 세워진 교회들이다. 기존의 오래된 교회들은 이미 장로나 지도자들에 의하여 서열화되었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주역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성장 일변도의 번영신학과 대형화의 흐름에 반하여 나온 것이 의미있는 공동체 교회운동이다. 민중교회, 노동교회라는 특수한 사역의 도전이 있었지만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 형태로 도시화되고 대형화되는 교회에 반기를 드는 생명과 평화 희망의 공동체는 늘어갔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한 도농생명체를 위한 지역 목회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성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은 최고의 영광을 맛보았다.  그 지도자들은 해외여행과 자녀유학, 성공목회에 대한 간증과 부흥회, 강연회 등으로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적이고 율법적인 기성교회의 조직에서 새로운 모험을 한 분이 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시작한 김동호 목사가 그 예이다.

   
* 김동호 목사

흩어지는 교회시대를 연 김동호 목사

김동호 목사는 장신대 학부 출신으로 당시 최고 엘리트들이 다니던 영락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같은 서울노회 효자동 승동교회로 낙하산을 타지만 목회에 실패하고 다시 영락교회로 돌아간다. 그후 평북노회의 한 중견교회로 부임을 한다. 영락교회 출신이면 선도 안 보고 데려가던 시절이다.

김 목사는 이곳에서 기성교회의 관성과 난점을 극복하려고 많은 목회적 실험들을 하면서 성과도 냈지만 벽에도 부딪친다. 군더더기 없는 메시지와 참심함으로 당시 선후배들과 다른 결의 목회를 보여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고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진화하여 당시로는 무모하다 할 정도로 안락을 버리고 다시 교회 개척에 도전한다. 그리고 당시 고학력으로 좋은 직장에 안정된 연봉을 받던 현대적 크리스찬들의 윤리성에 포커스를 맞춘다. 당시 어거지형의 목회자들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그러고도 재정 공개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회의 투명성 확보와 발언으로 많은 젊은 크리스찬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오늘의 청어람이나 열매은행 등 기성교회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역에 도전을 한다. 그리고 다시 모험을 하는 데 개척한 교회를 4개의 교회로 분립한 것이다.

그러나 김동호 목사도 여전히 그 연배에 배인 제왕적 리더십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들이 모아놓은 재정은 묶어두고 생존에 필요한 것만 주고 4개교회로 흩는다. 이름도 그렇고 목회자 파송의 권한도 김동호 목사가 갖는다. 그리고 "높은 뜻 연합선교회“ 라는 조직을 맡아서 이사장을 하다가 물려주었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당시도 지금도 김동호 목사는 은퇴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창업주로 무시 못할 존재이다. 그러나 목회 현장을 떠난 지는 오래다. 그러면서도 산하 교회들을 돌며 집회를 하고 문제있는 국내외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케케묵은 얘기들을 하는 데도 감동들을 받는 교인들이 대단하다는 평이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하여 모으는 목회에서 흩는 목회로의 전환을 한 유일한 신화는 여전하다. 여러 사유로 비판을 받지만 김동호 목사의 장점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이다. 동년배와는 전혀 다른 구상과 독서, 논쟁과 수용, 무엇보다 성공신화 속에서 확신은 그만의 자산이다.

   
* 이재철 목사

이재철 목사 이후의 4인 공동목회

이재철 목사는 우리교단 출신으로 주님의교회에서의 성공 이후 남 다른 목회적 도전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목회자다. 이미 장로회를 떠난 분이니 장로회의 눈이나 틀로 봐서는 안 된다. 최근의 화제는 자신이 은퇴하면서 4명의 후임자에게 공동목회를 제안하고 교회가 받아드리는 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100주년 교회에 대한 신화는 앞으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양화진 선교사 묘역의 관리권을 위임받는다. 거기는 자신들이 조성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100주년 교회가 후발주자로 들어가서 먼저 모이고 있던 선교사들의 예배처소는 밀어낸다.  

선교사들이 재판에서는 패소하였지만 이건 인사가 아니다. 그후 100주년 교회는 날로 교세를 확장하여 인근 서노회 교회들의 질시를 받고 결국은 이들의 고발로 이재철 목사를 치리하게 된다. 치리를 하는 자도 당하는 곳도 모두 경솔한 짓이었다는 것이 후문이다.

이재철 목사는 외국어대 출신으로 성우 고은아 권사의 동생으로 홍성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신학에 입문하여 목사가 된 분으로 홍성사는 베스트셀러가 많고 이재찰 목사의 저작도 많아 인세도 만만치 않고 이제는 사모가 대표로 재직하여 여전히 부자 목사인 것은 사실인데도 없는 티를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잠실 정신여고 강당에서 주님의교회를 개척하여 10년만 목회한다고 선언하고 후임에 임영수 목사를 모시고 이후 선교사로 나가 미자립교회인 제네바 한인교회를 3년간 섬긴다. 그리고 귀국하여 여전도회회관에서 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여 부임한 것이 2005년 7월이다.

100주년교회가 양화진을 가꾼 공은 있고 문화원 활동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기서 일하다 해고된 한 사역자는 무단해고로 재판에서 승소하기도 하였다. 내규도 제멋대로라는 평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은퇴를 하고 거창으로 낙향을 한다고 알려졌다. 아예 공간적으로 자기의 영향 하에 있던 교회를 떠남으로 전임자로서의 영향력을 단절하겠다는 의지로 신선하게 받아드리는 분위기다. 은퇴를 하고도 후임자나 교회에 짐이 되는 과거세대들과는 바른 이미지다.

이 실험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신 후임으로 4명의 목회자들이 마음과 뜻을 맞춰서 공동목회를 한다는 것이 한국적인 풍토에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무임승차한 교회의 부교역자의 지위로 대표 목사의 지휘 아래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교인들의 쏠림현상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철 목사의 은퇴변과 후임구도는 앞으로 지켜볼만한 사안이다. 어떤 교회는 후임자를 위임목사는 사양한다고 하는 데 그러면 부목사만 오라는 얘기로 전임자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또 다른 꼼수라는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철 목사의 공동목회 유산은 확실히 모험으로 성공한다면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 김형국 목사(사진출처 뉴스엔죠이)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의 4개 분립 교회

지난 2001년, 서울 대학로서 '가정 교회'로 시작한 나들목교회도 새로운 실험을 발표했다. 이 교회는 가정과 같은 작은교회를 표방했지만 현재 100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가면 2000명까지는 문제없이 성장할 거라고 전망이다. 그러면서 이런 끊임없는 성장이 과연 건강한 교회이고 하나님나라 복음에 부합하는지 고민이라고 한다.

안 되는 분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라고 욕 먹을 일이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분도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김형국 목사는 이런 문제를 내부 논의 끝에 내년 5월 경기 양평, 서울 서부·동북부·중부·남부 등 5개 지역으로 분립한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아마도 그 방향에서 오는 교인들을 편재하여 분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립된 5개의 교회 협의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김동호 목사의 방식과 비슷하다. 높은뜻숭의교회가 분립한 교회들이 처음에는 김동호 목사가 소속한 이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최근에는 지역노회로 가입을 하고 장로교 직제대로 위임목사도 받아드렸지만 여전히 연합 선교회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더 강하고 그후 늘어나서 현재 해외까지 포함 8개의 교회가 되어 있다.

나들목교회의 교회 분립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교인 수가 300~400명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시스템으로 상쇄했지만 1000명이 넘어가고 다시 2000으로 육박을 한다면 과거처럼 교인들 간의 깊고 내밀한 관계가 유지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형국 목사가 주장하는 둘째 이론은 '침투 모델' 강화란다. 이는 한 곳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다. 반대의 방식이 필요한 것인데 교회가 거꾸로 교인들이 있는 지역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호켄다이크의 "흩어지는 교회“ 와 같은 신학적 방법이다.

세 번째는 계승 문제다. 많은 개척 교회가 창립자 이후 후임 목사가 부임하면서 분쟁을 겪는다. 계승 문제를 빠른 시일에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개척한 지 18년째다. 아무리 리더십을 이양하고 수평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교회에서 자신을 향한 의존도가 자꾸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인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흩는 교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형국 목사의 목회철학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분립교회들에 대한 목회 방향에서 찾아야 하는 데 여기서 도입한 순회 설교가 눈여겨 볼만하다. 대표자인 김형국 목사를 포함한 목사 5명이 ‘나들목 네트워크지원센터’ 소속으로 순회 설교단을 꾸려 다섯 교회를 돌면서 설교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각 교회 대표 목사가 설교하고, 중간에 한 달씩 지원센터 목사가 설교를 하게 된다. 교인들 입장에서 보면, 1년에 5개월은 대표 목사가 아닌 다른 목사들 설교를 듣는 셈이니 대단한 실험인데 교인들이 한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 한국교회 문제 중 하나가 사제 또는 성직 독점주의라는 지적이 크다. 교인들이 담임목사 설교에 너무 의존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단단한 음식도 먹고 스스로도 먹어야 하는 데 지나치게 유아적인 목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판단이 미숙한 병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양주 큰빛교회 박영득 목사, 분립교회로 부임

지난 11월 11일 오후 큰빛교회 본당에서는 평양남노회 분립위원장 조남주 목사의 주관으로 큰빛교회가 인근 마석에 "하늘정원 큰빛교회" 를 분립하는 예식이 있었다. 빅영득 목사도 큰빛교회에서의 목회를 마치고 분립하는 교회의 안정을 이루고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여력으로 개척교회를 도와주거나 교인을 좀 나눠주는 형식의 개척교회들은 있었으나 이렇게 박영득 목사나 정성진 목사처럼 분립되는 교회로 자신이 아예 부임하는 목회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것은 또 하나의 실험이고 도전이다. 이제 목회적 안정을 교권과 누림의 여생을 즐길 나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재 목사 숫자는 늘고 임지는 한정되어 있어 무임 목사가 2천여 명을 육박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한 교회에서 20년 30년 이상 시무를 하며 누리는 목회를 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목회만 하는 게 아니라 총회다 교계다 하는 대외 활동을 뒷받침하는 교회의 불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과거처럼 노회나 총회 일을 하는 목회자를 교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한 주간 내내 교회 목양이 아닌 일에 시간과 돈을 내는 목회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교권 정치에 물든 꾼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목사가 교단정치를 하게 되면 결국은 장로들도 나서게 되고 당연히 교회의 에너지는 소진된다. 

이제 교인들도 쉽게 자기네 목사가 총회나 노회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회장이나 총회장으로 출마하는 것을 쉽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제 목회자들도 좀 자중해야 한다. 그런 교권정치를 하려고 목회자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가고 연륜이 주어져서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그것 좀 일찍하고 이름 내고 명예 얻으려고 밤낮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분들이 안쓰럽다. 

이것은 워낙 가난하고 힘없이 자라고 없이 지낸 이들의 한풀이로 보여진다. 세속의 권력도 아니고 교회의 직분을 맡기 위해서 돈을 쓰고 거래를 하고 아부를 하고 줄을 서는 것은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장기 목회를 하신 분들은 좀 이르게 목양지를 떠나서 새로운 일을 하거나  은퇴를 하고 인생 이모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번 글은 바로 이런 목회를 실험하고 도전한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망설이고 계신 분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이다. 

   
 

고양시의 정성진 목사도 아예 분립교회로 부임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도  65세 은퇴를 선언한 것을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다. 우선 후임자 청빙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교회에 맡겨서 결정 되어 11월 25일부터 강단에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신은 21번째 개척하는 거룩한빛운정교회로 가서 내년 3월까지 안정화 시킨 후 후임자를 청빙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21개 교회를 개척하였다고 하니 1년에 1개씩 한 셈이다.

이 교회에는 현 교회의 1/5에 해당하는 4천여 명이 분립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이나 좀 주고 지원한 교회의 이름을 붙이는 식의 개척으로 부목사나 지인들에게 생색내기용 개척은 있었으나 정성진 목사처럼 통크게 한 교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나 김삼환 목사도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통 크게 개척을 해 준 바는 있다. 

교회나 목회자 이런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목회 철학이기도 하고 현재 한국교회 위기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정 목사는 교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화되는 교회를 계속 나누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데  "교회를 점점 줄이는 것, 교회가 사역에 집중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분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는 대형교회 목회를 통해서 나온 경험이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탐욕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식이 아니어도 구조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이 있는 데 위임목사제를 폐지하는 길이다. 자기의 공로나 제왕적 목회를 가능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무 투표제를 통하여 인간의 야망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

김동호, 이재철, 김형국, 박영득, 정성진 목사를 넘어선 이들이 나와야

한국교회의 성장의 신화는 이제 내리막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더 이상 교회로 올 사람들이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도의 저하는 천주교 불교에 이어 3위로 꼴찌다. 한국교회의 영광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대형교회들은 좀더 가겠지만 중소형 교회는 비어갈 것이고 기독교 내부의 논쟁과 갈등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교회를 이루고, 그 결과로 영광과 명예을 누리고 있고 그것을 대물림하는 진통 속에 있지만 여기 숙주가 된 이들로 인하여 좀더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고 역동성 있는 교회로의 희망은 될 수 없다. 현상은 유지 될 것이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시대, 자기와 자기교회만의 풍요와 만족을 보는 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자가 참 지도자이다. 혼자만 잘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같이 잘 되면 더 좋지만 안 되더라도 같이 간다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교회는 내 교회 나 목회만 잘 되고 이름 나고 칭찬받고 알아주는 목회가 아니라 다함께 사는 목회 그것을 제시하고 이뤄내는 목회자가 우리들 가운데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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