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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영 목사님의 은퇴식을 다녀와서
오영미 목사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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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9  23: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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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영 목사님의 은퇴식을 다녀와서

/ 오영미 목사(오산 다솜교회)

   
* 오영미 목사

나는 지난 달 말, 남편인 장창원 목사와 함께 고향인 대전지역에서 민중교회 사역을 하시고 조기 은퇴을 하신 김규복 목사의 은퇴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김 목사님은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71학번으로 입학하셨으나 학생운동으로 제적을 당하신 후 대전신학교에 입학하시고 졸업을 하셔서 나의 선배가 되시기도 하다. 

1984년 장신대 77기로 졸업하고 영등포 산선에서 훈련을 받고 대화동에 빈들교회를 세우셔서 목회를 하셨는 데 올해 후임자를 정하시고 은퇴를 하신 것이다. 김 목사님은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벗이 되셨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사역을 해오셨다.  김 목사님은 민중교회를 하는 우리 후배들의 멘토였는 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셔서 은퇴할 때까지 그들을 지지하고 편을 들어 주신 분이시다.

자기 몸이 상하는 줄 모르고 철거민들과 함께 그 추운 겨울도 천막에서 지내기도 했는 데 그런 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목회자로서의 소명과 고집이 있어서 인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그러나 사모님도 신학을 하신 분이고 남편의 신학과 사상을 이해하셔서 평생 그런 사역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불만은 없으신 것이 큰 복이셨다.

아무도 그런 고집이나 소신은 우리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후배들도 그렇고 세 따님도 세월이 가고 철들이 들면 부모들의 고생과 수고와 희생을 높이 평가할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사모가 되어 남편의 민중목회를 돕다고 직접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목사도 참 여러 가지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박희영 목사 부부

수원고등교회 박희영 목사 은퇴식

그런 가운데 지난 25일 성탄일 오후에 같은 노회 소속인 수원의 고등교회에서 지난 35년을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는 박희영 목사님의 은퇴식에 참석을 하면서 느낀 감동이 있어 그 내용을 실명 공개하지 않고 페이스 북에 가까운 이들과 추억하려고 글을 남겼는 데 [예장뉴스]의 요청으로 다시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날 교화에서의 성탄예배를 겸한 은퇴식에는 약 100여 명이 모였는 데 다른 교회에서 보여지는 거창하고 노회의 높은 목사들이 나오는 예식은 아니었지만 교인들과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진한 감동이 있는 은퇴식이었다. 유일하게 경기노회 직전 노회장인 마두락 목사님이 오셔서 노회의 감사패를 전달하였다.

성탄예배는 현장의 소리로 시작을 했다. 3분의 경기노회 소속의 목회자들이 나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정종훈 목사) ‘지역 청소년 센타의 아이들 이야기“ (이세광 목사) ”슬픈 이주민들과 울부짖는 노동자들의 현장“(장창원 목사) 을 들은 후 오합지졸(烏合之卒) 이라는 재미 있는 이름을 갖은 팀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이날 고등교회를 대표하는 김성아 집사는 원로목사 추대사를 했는 데 뒷 글에 첨부한다. 작은 교회지만 직접 목회를 하는 나로서는 이런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은 데 이번 성탄절에 있는 고 목사님의 은퇴식에 꼭 와 달라는 초청을 하셨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열일을 마다하고 참석했다. 그리고 이런 미담을 나누게 된 것을 감사한다.

수원 고등교회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원지역에서는 사회선교 활동을 많이 하는 교회다. 한 예로 수원 YWCA 회장이 4명과 실무자들이 이 교회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면 짐작들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시민단체에 여러 활동가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이렇게 박 목사님은 직접 나서서 활동을 하시기 보다 평신도들을 통하여 활동가로 만들고 후원을 하신 것이다.

박희영 목사의 성장과 사역

박 목사님은 대구에서 경북고등학교를 나오고 연세대학교 화공과를 나와 좀 늦게 장신대에 입학을 하셨다. 신학입문 동기로는 학교 졸업후 지인의 소개로 당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의 영문비서로 잠시 사역을 할 기회가 있었는 데 권면하셔서 장신대 74기로 입학을 하여 대구 동향인 하은규 목사 등과 같이 동숙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졸업후 하은규 목사의 소개로 부산장신에서 어학을 가르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수원에 살았는 데 공군장교 제대를 하면서 수원에 눌러 살게 된 인연으로 오늘 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수원 역 인근 고등동에 교회 개척을 주선하여 동기였던 김종춘 목사가 당시 서울 안동교회(유경재 목사)의 도움으로 1981년 고등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김 목사가 2년간 목회 후 유학길에 오르고 갑자기 후임이 없어 1983년부터 시무를 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처음 “수원 환경 운동센터” 에 참여하면서 당시 서울 농대를 나온 현 수원시 염태영 시장을 환경센터의 실무자로 대표를 맡는 등 사회선교를 시작하게 된다.

   
* 시민운동 시절 염태영 시장과 함께 한 박희영 목사

그리고 통일운동과 농촌선교, 해외선교 등에도 교회 내 위원회를 두워 평신도들로 하여금 함께 하는 목회를 한다. 그리고 지난 2001년 그 지역이 재개발로 편입이 되면서 이주를 하게 되는 데 현재 팔탄면 기천 저수지 앞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주변에 수원여대와 장안대학 카톨릭 대학등이 있어 큰 꿈과 전망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생각보다는 입지가 좋치 않아  수원에서 오는 기존교인들 외에는 아직은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농촌지역으로 이주를 한 이상 환경을 생각하고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목회를 지향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목회여정에서 한 때 장로 2인을 세우기도 하지만 현재는 장로는 없는 상태로 평생 임시목사(담임목사)로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

목사님은 전형적인 경상도 분으로 목회적인 카리스마가 막상한 분이라고 사회를 보신 분이 전한다. 그러나 일찍부터 원주 호저교회등 농촌교회들과 도농직거래를 하는 등 추수감사절 연합예배와 상생의 목회를 실천해보신 분이다. 돈이나 주고 보고나 내라고 하는 식의 농촌교회 지원은 안하신 분이다. 시기와 국면마다 역량에 걸맞는 목회적 실험과 도전을 해오신 것이다.

당시 원주의 호저교회 한경호 목사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데 대광고 시절 정신여고와 함께하는 기독학생 서클의 회원이었던 한 목사와 만났다는 것이다. 당시 이들과 성경공부 인도를 잠시하게 된 인연이 있어서 오랜 지기로 함께 하게 된 것이라고 소회하셨다. 그리고 노회의 임원이나 총대와 같은 일에는 눈길 한번 안주고 오직 목회와 사회선교에만 매진 하신 것이다. 

박 목사의 퇴임사

박 목사님의 퇴임사에서  4가지를 염두에 둔 목회를 하였고 또 부탁도 하셨다.

1. “예전이 있는 목회” 인데 교회력과 절기에 맞는 목회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체성 없는 예배와 만담과 무용담으로 변한 강단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신 것이다.  목회도 예측가능한 목회를 하려면 절기를 틀로 하여야 한다.

2. “십일조” 인데 박목사님은 십일조의 반을 떼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라는 권면을 하셨다고 한다. 신약성경에 ‘고르반’이라는 말이 있는 데 그 말의 뜻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따로 거룩하게 구분하여 떼어 놓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고르반’ (하나님께 드린다) 라고 선언을 하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악용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목사님은 그런 핑계를 대지 말고 부모님께 십일조의 반을 용돈으로 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의 나머지 반은 시민단체나 꼭 필요한 일에 회비도 내고 후원도 하고 돈을 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논쟁이 될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신정국가에서의 십일조라는 개념은 다른 조세 제도가 없을 때의 것이고 구약적인 근거이기에 현재에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은 무리하는 이론들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정서로는 아직은 어려운 말인데 과감하게 하신 것이다. 아무래도 목회란 지 교회의 목회자의 신학과 소신에 의한 것이니 자신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3. "쉼이 있는 교회" 다. 지금의 교회는 너무 과도한 시간과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을 하신 것 같다.

4. "기도하는 교회“인데 그러나 주술과 기복주의적인 판에 박힌 기도가 아니라 성숙한 성도로 받은 것을 감사할 줄아는 성도가 되자는 것이다. 받은 것을 감사하지 못하면서 주실 복을 바란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진실한 기도를 가르치고 하는 교회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나도 한 마디 시간

박 목사님의 사모님은 다음의 4가지를 꼭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첫째는 자신의 자녀들 앞에서 이 집사님이 어떻다, 박 집사님이 어떻다 하는 성도들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셨다고 한다. 둘째는 가끔 집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이 사모님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비밀을 지켜 달라고 요청하면 절대로 비밀을 지켜 남편 목사님에게조차 그 비밀을 꼭 지켜온 것 같다고 하셨다.

셋째는 남편 목사님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좀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그렇게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한번도 돈에 대해 불평을 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넷째는 자신과 아이들이 남편의 목회생활에서 소신껏 일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하셨단다. 사모님은 37년 동안 잘 한 것도 없는데 자신이 한 것보다 더 과분하게 대접을 받았다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그 교회 성도들도 여기 참여를 하였는 데 어떤 성도는 ‘참으로 어려울 때 진실로 우리를 보살펴 주셨다’고 증언했다.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은 참으로 훌륭하시다. 우리를 잘 인도하시고 목회도 소신껏 훌륭하게 하셨다. 그러나 목사님은 화를 벌컥벌컥 잘 내셨다’ 고 한다. 아마도 경상도 사나이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수원지역 목회자 월요 성서연구 모임

박 목사님의 여러 사역중 가장 본 받아야 할 것은 매주 월요일마다 지역의 목회자들과 초교파적으로 성서정과에 의한 공동체 성경공부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점이다. 나는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목회자들의 모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개혁교회의 모형인 제네바의 목회자들도 모여서 공동의 성서연구와 설교 나누기 등을 통하여 교제를 했다고 하는 데 그런 유산이었다.

여러 목회자들이 참여를 했는 데 김정서 목사(전 총회장)는 수원서둔교회에서 목회할 때 함께 월요 성경공부에 함께 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최근 목회자들의 교회개혁 담론이 너무 거대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자기의 자리나 시찰 노회에서 목회자들이 모이고 공부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 아닌 가 한다.

요즘 목회자들이 누구와 무엇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지 안다면 참으로 귀한 사역의 유산을 남기신 분이다. 이 성경모임은 오랜 전통으로 성경적 지식도 그렇치만 성경공부을 하고 친교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성경적인 목회를 지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날 수원지역에서 동역하시던 김진춘 감리교 원로 목사님 부부가 오셔서 덕담을 하셨는 데 “은퇴식에 참석하여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이 분은 결코 헛말이나 인사 겉치레를 하는 분이 아니라고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박희영 목사님의 35 년 사역은 참으로 복되고 칭찬받을 만한 사역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하시지만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분간 교회의 요청으로 설교목사로 지낼 것이지만 교인들이 이전한 교회의 비전에 걸맞는 목회자를 찾을 때까지는 봉사를 할 계획이시라고 한다. 열린 마음으로 그러나 지금까지 교인들과 합의로 세워진 교회의 원칙과 비젼을 잇는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목사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셨는 데 따님은 중국에서 교사로 아들은 기독교장로회 목사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간사로 사역중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번 은퇴식을 참석하여 듣고 본 것 가운데 가장 감명적인 것은 고등교회에서 은퇴하는 박 목사를 고등교회 원로목사로 추대하신 분의 추대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김성아 집사의 원로 목사 추대사

1, 제가 박희영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박목사님이 36살 때 37년 전인 것 같습니다. 박목사님은 35년 동안 고등교회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처음에는 1년씩 임시목사로 교인들에게 청빙 허락을 받으셨고, 나중에는 3년마다 담임목사로 청빙하였으며 도합 15번 쯤 청빙했습니다. 물론 만장일치였죠...

영락교회등 큰 교회 두서너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한경직 목사님 직접방문) 그 때마다 큰 교회에 눈 한번 돌리지 않으시고 고등교회를 맡아주셔서 박목사님은 작은 교회목사인줄 알았고, 떠나지 않아서 교인들은 고마워했습니다만, 강남스타일아닌, 고등교인스타일이 생겼어요, '부흥회. 아멘, 박수치고, 고함치며 통성기도' 이런 것들을 잘 못합니다.

박 목사님과 함께 고등교회는 새로운 교회를 꿈꾸며 여러가지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해외선교, 농촌선교, 환경선교, 작은자선교, 다솜마을. 평신도교회, 공동체 성서읽기. 교회력에 따른 예배로 인해 교인들이 목사님 설교를 공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전두환대통령시절에는 고등동문제교회로 낙인찍혀 주일예배시간에 낯선?사람(프락치 [fraktsiya]로 의심)들이 오면 제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안내집사).
IMF때는 십시일반헌금을 발동하는 간? 큰 목사의 제안을 통?큰 교인들의 적극실천하여 공동체어려움을 극복하였고, 탈도시화를 부르짖어 삼척으로 안성으로 농촌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박목사님은 교회 밖 일도 쉬지 않고 했습니다.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의제, 통일운동등. 그래서 교인들도 환경과평화, 공동선을 이루는 지역사회 일에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ywca회장이 4명, 실무자4명이나 배출되었고, 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은 멘탈이 강한 목사님과 함께 한 덕분이었다고 봅니다.

2,원로목사를 추대하면서(교회마당에 들어오시면서 느꼈겠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나무들을 모두 잘랐습니다. 나무 자르는 분 왈? “목사님이 웬 힘이 저렇게 쎄요?” 물어보더군요, “70밖에 안됐다”고 답했죠, 자른 나무둥치를 혼자서 다 옮겼고 도끼로 매주 사용할 땔감을 쪼갭니다.

건강으로 보면 은퇴가 아쉽기도 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실 후임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좀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원로목사라는 굴레를 쒸우기로 교인들이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고등교회 미래의 그림만 그렸지 딱히 이루어 놓은 것이 없습니다, 해서 우리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많고많은 교회중에 고등교회가 존속해야하는 이유를 원로목사로써 유감없이 발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박목사님은 시무능력35년, 교회개혁실험경험, 신학과 신앙을 겸비한 공동체성서훈련,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품격, 제도속 교회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교회개혁을 바라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대를 아실 것입니다. 역대상 4장10절: 인용하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저는 야베스의 기도를 요즘 드리고 있습니다. 원로목사님과 교인들, 앞으로 오실 목사님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여 주께서 주시는 복을 온전히 받기를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박목사님! 원로목사 포스한번 지어보십시오.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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