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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고막원교회 김병균 목사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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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30  1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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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고막원교회 김병균 목사 은퇴식

우리교단의 제2의 고영근 목사로 불리는 나주 고막원교회 김병균 목사가 정년은퇴를 했다. 지난 12월 29일(토) 섬기는 교회에서 교인들과 노회의 선후배 동역자들과 지역과 시민사회단체 운동을 하던 지인들이 교회를 차고 넘치게 모였다. 교회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김 목사의 지난 40년 목회 여정은 정의와 평화 생명과 평화와 통일의 목회였다. 호남지역의 현존하는 길거리 예배와 집회의 단골손님이다. 초기 농촌목회 활동에서 목정평 활동 평통사와 지역의 가난한 민중들의 한과 아픔을 치유하고 함께 하는 민중목회에서 지난 9월에는 갈릴리신학대학원에서“한반도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민중신학과 마르크시즘 및 주체사상 간의 대화”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이날 은퇴 예배 설교는 갈릴리신학대학원 한국분원 원장이신 홍성현 목사가 하셨다. 갈릴리신학대학원은 미국에 본교가 있으며 감신대 교수셨던 홍정수 박사가 설립하여 총장으로 있는 학교다. 김 목사의 고향은 전남 강진인데 광주서중 2학년 때인 1960년 ‘4·19혁명’ 을 만나면서 그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의식은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한국 ‘민중신학의 1시대중의 한분인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이셨던 안병무 박사가 펴내던 잡지 <현존>을 읽으며 역사의식을 깨쳤다.

   
 

이렇게 진보적인 신학에 입문하면서도 보수신앙과 복음주의적 신앙을 견지한 김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후 군사정권 하에서 구속된 양심수와 가난한 농민, 학생, 세월호 가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목회 여정은 호신대와 장신대 목연을 76기로 졸업하고 1978년 장성 양유교회에서 시작해 장흥, 신안, 나주 고막원교회 등 40년 동안 목회 활동을 해왔다. 이런 목회 과정에서 그는 의식은 더욱 성장했고 복음과 현실에 대한 연구열은 엄청난 독서와 자료정리와 공부로 마침내 정규대학원에서는 하기 어려운 우리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마르크시즘과 민중신학" 의 접목을 시도한 논문을 완성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도교수 였던 김흥수 교수(전 목원대, 현 기독교사상 편집위원장)와 동문들과 동료들은 크게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운명적인 목회적 전환은 1980년 5·18민중항쟁에서 부터이다. 서슬 퍼런 신군부의 독재에 맞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앞장선다. 1987년 4월에는 광주 YWCA에서 광주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소속 목사 30여 명과 함께 13일 동안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단식기도회를 열게 된다.

   
 

김 목사를 아는 분들은 그를 “광야의 소리" 라고 부르는 데 이런 칭호를 가장 먼저 받은 분은 목민 고영근 목사다. 그래서 김 목사를 제2의 고영근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의가 판치는 광야에서 불꽃처럼 강렬하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이 선지자의 모습이다. 조용한 성품이지만 불의를 보면 아모스처럼 뜨거운 열정과 신앙으로 변한다.

고막원교회에서의 농민선교는 주민운동으로 수세 폐지운동과 교통의 오지 고막원역에 ‘통일호’가 멈추는 변화에도 참여한다. 그리고 “다른 산업은 망해도 농업은 망할 수 없다. 농촌이 망하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 농촌의 어려움을 남북이 농업통일을 이뤄 해결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목회한 것이다.

   
" 전남지역의 시민운동가들 서경원 전 의원과 배종열 장로(기농 초대회장) 등

이런 목회 여정에서 가정은 어려움을 면치 못했다. 3차례의 구속과 5차례 법정 출두 등으로 고초를 겪었다. 시국사건 등으로 경찰·검찰·법원의 출두 문서가 시도때고 없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래도 직선제 개헌,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1991년 5월 분신정국 때 명지대생 강경대 군의 하관 예배를 인도하며 적극 참여한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1995년 11월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실행위원으로 통일운동에 나섰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97년 5월에는 조선대생 류재을 군에 대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2005년 5월에는 광주공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철거 투쟁을 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법무부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그를 괴롭혔다. 꿋꿋하게 버티어 낸 그는 민주·통일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오월 어머니의 집'에서 주는 ‘5월상’과 한국인권교육원의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실천적 복음주의자로 불리우는 김병균 목사의 은퇴식에는 소속 노회와 전남지역 시민운동의 대부 강진교회의 ㅇㅇㅇ 장로와 동료들과 후배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자녀들로는 인근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아들과 우리교단 목회자로 사역하는 딸을 두웠다. 광주에서 목회하는 신학교 동기이며 평생 동지인 장헌권 목사(광주 서정교회) 헌시를 실으며 김병균 목사의 은퇴 소식을 마친다.

   
 

                                   광야의 소리꾼의 길

김병균 목사 은퇴 축하시

청자빛 하늘 내려와 어둠 흔들어 깨우는 시간
다산 초당 뿌리의 길 오르고 오르며
짓눌린 민중들의 신음소리 들었네
모란이 피기까지 봄을 기다리며
어린나이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민주주의 외침 들으며
시위대열에 함께한 맑은 영혼
강원도 속초우체국에서 머물다가
찬란한 슬픔의 고향으로 와서
강진약국 황호신장로 통하여 현존 마중물 되어
민중신학 마음에 담아두었네
씨알의 소리와 영문다락방으로 해방신학 사귀며
낮은 자리에 오신 주님 닮아가면서
젊음 꽃피는 꿈 자라고 자라 하나님 출석부에
김병균 이름 석자 호출 받았네
늦깎이로 선지동산에서 세속에 찌든 때 씻어가며
잔잔한 호수처럼 속울음 삼키며
반평생 말없이 묵묵히 함께 한 광야의 영원한 동반자 전보애 사모님
애간장 녹이며 사랑 꽃 피우고
아들 딸 주님 선물 꽃밭 되었네
양림동 언덕 기울어진 몸으로 갈멜산 올라가는 동안
무등산 향해 불의 앞에 거침없이 카랑카랑한 목소리
엘리야 예언자의 길 걸었네
서울의 봄소식 통하여 신학도로서
타는 목마름 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스러진 꽃들과 함께 도청에서 망월동에서
어둠의 언덕을 넘고 넘어 십자가 길 걸었네
6.10항쟁 최루탄을 뚫고 도청을 향해 가는 동안
단식과 눈물로 생명파도의 일어남과 스러짐 밀려감으로
그립다 못해 눈물겨운 온몸으로 민주주의 살리는 길
도청에서
금남로에서
광화문에서
팽목항에서
소성리에서
강정에서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작은 예수의 길 걸었네
척박한 땅 갈릴리 장성.장흥.신안도초.나주에서
강도만난 농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논두렁 밭두렁 다니면서
농산물 수입반대
수세폐지
미국 곡물재벌
군부독재에게
빼앗긴 들판 봄이 찾아오는 길 그 길
온몸으로 거침없이 외친 농민 목회자 아모스 정의의 길 걸었네

분단 반세기의 반쪽의 봄을 온몸으로 외치고 뛰어다니다가
서러운 금성산 흐드러지게 진달래 울음 가운데
정의가 꽃피는 그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얼싸안고 춤추며 인간해방과 평등공동체를 위하여
조국통일의 길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 민주 통일된 세상 만들기 위해
보안법으로
집시법으로
감옥에 갇혀 분단병으로 앓으며
고난의 종으로 한 평생 살았던 좁은 길 가시 밭길
민족사랑의 길 걸었네
사람꽃 사랑하여 인권의 봄바람이 불어오도록
양심수와 농민 학생 성 소수자 세월호 가족 곁에 늘 함께 하면서
현장에서 법정에서 길거리 신학을 배우며 실천하는 거리의 사제로 빼앗긴 역사의 봄을 분신으로
시들어간 꽃들을 눈물로 안아주고
사랑하는 양들의 영혼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성경책 다 닳아지도록 읽고 읽으며 성경에만 밑줄 긋는것이 아니라 생활에 실천으로 모든 자료와 책을 아낌없이 주고 주는
호세아 사랑의 길 걸었네
북풍 한설 휘몰아쳐 꽃 구경 고사하고
벌 나비도 없는 계절 곱게 피는 내 사랑
동지 섣달 기나긴 밤 붉은 열정 꽃 봉오리 고이 고이 사모 하며
모든 길 님께 맡기고 외로웠던 기억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따스한 시간을 나누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사람 생각하며 봉고차 타고 단 둘이 가면서
낭만과 멋을 노래와 입담으로 채우는 달변가의 길 걸었네
총회와 노회에서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독교를 향해서 생명 정의 평화 창조 보존을 외치고 외쳤던
광야의 예언자의 애타는 심정으로 한국교회를 깨우는
새벽의 파수꾼의 길 걸었네
외롭고 의로운 돌로로사의 길 광야의 소리가 걷고 걸었던 길
세례요한의 길에 자유평등 세상 꿈꾸는 사회복음주의자 길

그 길 40년을 하루 같이 기도와 말씀으로 목자의 길
낮은자 힘없는 자 소외 되고 헐벗고 병든자 안아주며
소리 없는 속울음으로 산새울음소리 가슴에 파고
영상강에 흘러가는 은혜의 강물따라 가면서
골수에 사무치며 한 밤 지새우며
뚜벅뚜벅 목양의 길 걸었네
이제 더 넓은 강단으로 가시라
한반도 평화통일과 민중신학과 주체사상의 바다로 가시라
이제 더 깊은 침묵과 고독한 고요를 찾아 깊고 깊은
사회해방 영성의 길 가시라
당신이 없이 어찌 우리가 있겠습니까
40여년 정의와 사랑을 꿈꾸며
이리와 어린양이 놀면서 송아지와 사자가 나뒹굴기는 새로운 길
3.1독립운동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새해
부디 모세처럼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눈이 흐려지지 않는 광야의 소리꾼의 길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야
청바지 인생으로 살아가시라
우리 주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그 길 정의를 실천하며
기꺼이 은덕을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야웨 하나님과 함께 걷고 걷는 그 길
평화 통일의 카이로스 광야의 소리꾼이여
오직 그분만 흥하실 바라는 한국의 세례요한 광야의 소리
온 겨레 가슴속에 영원하소서!
멋진 주님의 아들이며
나의 소중한 동기이신 형님 김병균 목사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2018년 12월29일 장헌권 시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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