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석의 상지골 이야기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서덕석의 상지골 이야기상지골 이야기 6~10
예장뉴스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8.17  23:53:29
트위터 페이스북

                                         상지골 이야기(6~10)

                                    6.  나물캐던 좋은 시절은 가고

 도시민에게 남아있는 시골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인심이 푸근하고 산과 들이 사시사철 푸성귀와 과일을 제공하는 에덴 동산일수도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일 때는 사실 그랬다. 논밭을 가꿔 생산하는 곡식 외에도 산비탈에는 감, 밤, 대추 따위가 열렸고 밭둑에는 쑥이며 냉이, 달래, 돈나물, 고들빼기 같은 봄나물이 초봄의 입맛을 돋우며, 단오 무렵까지는 산속의 산나물이 봄 양식이 되곤 했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대도시 인근의 농촌은 이미 농경사회 시절의 그 농촌이 아니다. 이들 대자연이 주는 “ 하늘이 내린 먹거리 ”는 환경오염 때문에 예전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경칩을 지나 춘분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시골길을 가다가 막 싹을 내미는 길가의 쑥을 뜯어 국이라도 끓여 먹고 싶어 차를 대 놓고 무심코 도로변의 쑥을 캐는 아낙네들을 자주 보게 된다. 차가 자주 다니는 포장도로변의 중금속 오염도가 공장 안 마당의 오염도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렇다고 좀 더 멀리 들판 가운데로 가서 캔다고 해도 농약과 제초제 세례를 일년에 열 번은 족히 받은 들판의 쑥인들 안전하랴?

하여 예전의 “ 댕기머리 휘날리며 나물캐는 저 처녀야 ~ ”란 봄 노래는 “ 자가용 대놓고 못 먹을 쑥 뜯는 저 바보야~ ”로 불러야 할 판이다.

또한 환경오염 때문만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의 빗나간 <웰빙> 욕망으로 산과 들의 먹거리 생태계가 심하게 수탈되는 것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몸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우르르 그 쪽으로 몰려 먹어대는 보신 욕망에 희생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2~3년 전 오갈피가 몸에 좋다는 말이 나돌 때 상지골 산비탈의 오갈피가 모조리 뽑혀 나갔는데 재활원 농장 한 켠에다 닭 삶아 먹을 때 쓰려고 한 그루 구해다 심어 둔 오갈피까지 어느 날 뽑혀져 없어지기도 했다.

어디 그것 뿐이랴, 늦가을이면 겨울잠을 자려는 개구리를 찾아 개울의 돌들을 모조리 뒤집으며 난리를 치는 개구리파가 있고, 몇 마리 남아 있는 산토끼와 너구리를 잡으려고 산비탈 곳곳에 올가미와 덫을 깔아 놓는 올가미파, 뱀 술을 담근다며 뱀 만 찾아 헤매는 땅꾼파, 날 짐승을 노려 눈만 내리면 지프차를 몰고 이 골짝 저 골짝에서 공기총을 쏘아대는 엽총파, 복날이 가까워지면 시골 집 마당에 매어 둔 강아지를 슬쩍하는 얌체파, 이러니 몸에 좋다는 야생동물은 이미 씨가 말라 희귀한 존재가 된지 오래다.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생물도감이나 동물원에서나 이것들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각설하고 자가용 타고 나물캐러 온 그 아줌마들이 며칠 전 재활원 앞을 지나가면서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박고 있던 나에게 묻는다. “ 아저씨, 냉이가 많은 데가 어디 없어요? ” 서 목사 왈(퉁명스럽게) “ 냉이요? 요즘엔 나도 구경하기 힘들어요, 나물캐는 건 좋은데 씨가 될 작은 건 남겨 놓고 캐셔야 내년에도 캘 수 있읍죠, 도시사람들은 싹 쓸어가니 냉이고 뭐고 남아나질 않아유 ” 있는 곳은 안 가르쳐주고 잔소리만 하니 (에이, 그 딴 냉이 갖고 되게 깐깐하네) 이런 맘으로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깨끗하고 오염안된 봄 나물을 먹기 어려워진 건 도시민의 책임이 크다. 시골에서 나물을 캐는 사람은 대부분이 늙으신 할머니들인데 이분들은 처녀 시절부터 나물을 캐 오신 분이라 나물캐는 요령을 잘 아신다. 생장점이 있는 뿌리는 건드리지 않고, 냉이처럼 뿌리째 먹는 나물이라도 서너발 자국마다 씨가 될 것을 남기며, 속으로는 산과 들에게 ‘양식 좀 빌려갑니다, 잘 먹겠습니다. 내년에 또 모시겠습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캐신다. 즉 자연에게서 먹거리를 취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잊지 않고 자연의 복원력을 고려하며 내년에도 캘 수 있게 산과 들의 나물을 ‘관리’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경외할 줄 모르는 성급한 도시민들에게 들판과 산의 나물은 그저 뜯고 뽑고 쓸어가야 할 이용물에 불과하므로 보호와 관리의 개념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도시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대들은 이미 도시적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니 웬만한 것은 돈을 주고 사 드시라. 깨끗한 냉이와 달래 따위가 먹고 싶으면 어수룩하게 도로변에서 못 먹을 것을 캐거나 시골 들판을 들쑤시면서 나물밭을 망쳐 놓지 말고 시골장에 들러 할머니들이 한줌씩 늘어놓고 파시는 봄나물을 사 드시라. 그러면 그대들은 할머니들이 들판에서 <모셔 온> 좋은 나물을 싼 값에 구하는 셈이고 그 할머니에게는 용돈을 드리는 셈이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혹 등산을 하다가 산나물이라도 발견하면 뿌리째 뽑지 말고 손톱을 이용해 잎자루까지만 꺽어 그 자리에서 흙을 털고 씹어 드시라.(집에까지 갖고 가는 동안 영양소의 50%이상이 파괴되므로) 그러면 산은 내년에 또 그곳을 지나는 그대나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나물을 먹게 해 줄 터이니 ........

                                        7.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가리라

 겨우내 얼어 붙었던 개울이 얼음녹은 물을 하류쪽으로 흘려 보내는 소리에 상지골은 겨울잠을 깬다. 따스한 기운을 머금은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상지골 골짜기의 여기저기서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부지런한 까지들은 입춘 전에 이미 미류나무에 둥지를 틀었고, 우리집 ‘바람이’(진돗개와 풍산개 사이에서 난 잡종 암캐)는 이쁜 강아지를 6마리나 낳았다.

냇가의 버들강아지 꽃봉오리가 흰털을 감싸고 부풀어 오른 후 한차례 더 봄비가 뿌려지면 우수이다. 도룡뇽과 두꺼비는 경칩도 되기전에 물웅덩이 마다 알을 쏟고 춘분까지는 참개구리도 산란을 마친다. 청명(식목일 무렵)은 나무가 깨어나는 시기이다. 산비탈의 생강나무가 눈부신 노란색으로 물들고 나면 밭둑의 매화가 수줍게 피어나고 이내 앞 뒷산의 진달래꽃의 분홍색이 뒤를 잇고 버드나무의 연초록 꽃봉오리가 골짜기를 물들인다. 곡우 무렵이면 화사한 산벚나무 꽃이 온 산을 뒤덮으면서 봄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뒤이어 나뭇가지들은 첫 잎을 일제히 내밀어 초록색으로 산과 들을 칠할 것이다. 이렇게 상지골의 봄은 수채화처럼 산뜻한 멋을 내며 하루 하루 달라진다.

자연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본능에 충실하게 생명을 보듬는 동안 사람들도 농사준비로 분주해진다. 시골생활의 핵심은 농사이다. 농사만 지어서 생업으로 삼는 전업농이 아니더라도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가꾸면서 간단한 푸성귀는 손수 가꾸어 먹어야 시골사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참 부지런하고 알뜰해서 심어 먹을 수 있는 땅이 손바닥만큼만 있어도 그곳에다 상추며 무, 배추, 들깨 따위를 가꾸어 먹는다.

몇 년전 인도 선교여행을 2주일간 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넓은 땅덩어리 어디를 가든 농사지을 만한 곳이 널렸는데도 땅을 놀리면서 구걸로 연명하는 사람으로 넘쳐나는 것을 보며 안타까와 했다. 땅 주인도 그렇거니와 인도 정부도 노는 땅에 세금을 매기거나 제재하는 등으로 토지 활용도를 높이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땅 덩어리가 아무리 크다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장애청소년 직업재활원을 구상할 때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종을 두고 많은 정보와 자료, 당사자들의 희망을 조사했는데 제조와 서비스업종보다는 예술, 농업, 축산 계통이 선호도와 적합도가 훨씬 높았다. 그 이유는 현대산업사회의 주류인 제조, 서비스업종은 효율성과 과다한 경쟁으로 인해 장애인의 적응이 어렵고 직업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보다 자유롭고 정서적, 심리적으로 치료효과를 겸할 수 있는 직종이 바로 예술과 농업인데 예술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배울 수 있으니 결국 농업쪽이 적합한 것으로 정해졌다.

하여 건축을 하기 전부터 부지에다 비닐하우스를 한 동 지어 놓고 농사를 해마다 지었다. 수익을 바라기보다는 그저 땅을 놀려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잎 채소, 열매채소, 뿌리채소(감자, 고구마, 무 등), 콩 따위와 한쪽으로는 건축 후 조경수로 쓸 묘목들을 심어 가꾸었다. 이 과정에서 막연했던 직업교육 얼개가 <유기농 채소재배>, <조경수관리 및 분재 생산>, <강단 장식용 야생화 화분생산>, <애완견 사육과 훈련>, <가축 사육>, <목공예> 등으로 구체화 되어갔다.

 흙은 생명활동의 시작이요 끝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도 흙(뭍)이 드러난 후부터 식물과 동물, 인간이 뒤이어 만들어진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어 역시 흙더미인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으며, 타락한 후에는 흙을 가꾸는 노동을 하다가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사람은 근본인 흙에서 나와 흙에서 난 것(식물)을 먹고, 흙집에서 살며 흙에서 뽑아낸 광물로 도구를 만들어 문명을 누리다가 결국은 한줌의 흙이 된다. 그래서 농사는 하나님의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직업이요 창조사역을 닮았다.

제조업은 사람이 만든 (혹은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기계를 돌린 만큼 생산물이 쏟아지고 서비스업은 스스로 노력한 만큼 가치가 증가하지만 농사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자만심이 들어 설 자리가 최소한으로 줄어 든 대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흙(토질)과 물과 햇빛에 더 크게 의존하기에 기도와 감사가 절실한 직업이다.

밤낮으로 흙을 주물럭거린다고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흙을 돌보며 씨앗을 뿌리고 거둘 뿐인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과 비유에는 농사와 관련된 일이 자주 인용된다.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와 누룩>,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열매>, <가라지의 비유>, <백합화와 새>, <포도원농부의 비유>, <무화과의 저주>, <밭에 감추인 보화> 이것들을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유추하는데 가장 적절하기에 사용하신 것이다.

장애청소년들 특히 정신지체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깨닫는데 농사보다 더 적절한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보다 어제까지 없었던 방울 토마토가 내일이나 모레는 탐스럽게 열리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밤새 주신 선물’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상지골 재활원의 봄은 꽃내음 속에서 퇴비를 만들고 밭을 뒤집으며 농사준비와 함께 깊어 간다. 

                                           8.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행3:6)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밑바닥 선교사역에 뛰어든 지 열일곱 해 째가 되었다. 순식간에 지난 세월이었지만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노동자 선교>로 시작했으나 이내 <빈민 지역주민>들의 힘겨운 삶이 눈에 들어왔고 곧 이어 오갈 데 없는 <정신지체 장애아동>들과 함께 부대끼다 그들이 자라나면서 관심은 <장애청소년들의 직업재활>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 어려운 이웃들의 삶 속에서 모든 방법을 다해 예수 사랑을 증거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선교모토를 갖고 시작했다. 창립예배 당일까지 15평 지하예배실의 보증금 잔액을 지불을 못하면 계약 파기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건물주를 설득해서 창립예배 때 드려진 헌금으로 보증금을 겨우 낼 수 있을 정도로 내핍에 시달렸다. 이런 형편속에서 창립예배 순서를 맡으신 선배어른들과 노회 전도부장님께 사례도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결례를 범하였다.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무지 마련할 재간이 없으니 “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니 할 수 없이 미룰 수 밖에 ..... ”

한번 배짱이 생기니까 용감해져서 그 후로도 열린공동체가 행사때 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시고 말씀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선배 동역자님들을 빈 손으로 보내 드리길 여러번 했다. 어쩌다가 들꽃과 책 나부랭이나 과자 따위로 인사 드릴려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 다른 사람에게 잘 떨어지는 돈 벼락이 내게는 왜 좀 안 떨어지냐? ”는 하소연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열린공동체를 아껴 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선배 동역자님들은 서목사의 대접이 시원치 않아도 한결같이 17년간 후원을 계속해 주시며 뜨거운 격려와 관심을 이끼지 않으시니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시다.

공언하건데 지금의 열린공동체의 성장은 서 목사의 노력이라기보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애써주신 자원 봉사자들의 땀과 노고요, 당연히 받을 것을 받지 못하시고(사양하신 분이 더 많지만)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신 동역교회, 목사님들의 공로이다. 가진 것이 있어야 나누어 줄 수 있고 주님께서 주셔야 베풀 수 있다. 열린공동체는 동역교회로부터 너무 많이 받았기에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따로 없는 놀라운 사역의 현장이다. 성남지역 장애아동의 거의 절반이 열린공동체의 교육을 수료했고, 현재는 푸드뱅크를 통해 3,000명이 주 2~3번씩 음식물을 받아 생활한다. 우리는 가난한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느라 정작 우리 자신을 위해 쓸 것이 없었을 뿐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주님은 말씀 하셨다.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6:20) 지금 내가 받고 내가 쓰면 땅에 쌓는 것이지만 이웃에게 베풀고 복음에 합당하게 사용하면 하늘에 쌓는 것이다. 하늘에 쌓은 그 보물이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가장 큰 열매는 역시 기도의 열매이다. 열린공동체와 함께 해 주신 후원자, 동역교회, 목사님을 위해 열린교회는 매 주일예배시간 마다 기도해 왔다. 그것도 대표기도와 목회자의 봉헌기도 이렇게 두번씩이나 한다. 아마도 공예배때마다 다른교회의 이름을 부르면서 중보기도를 하는 교회는 드물 것이다. 17년간 기도한 보람이 있었던지 동역교회가 한결같이 평안하고 목사님에게는 능력과 은혜가 떠나지 않고 부흥을 계속한다.

하여 동역교회의 행사나 임직식때 찾아가 멀리서 말석에라도 앉아 축하하다보면 그 교회와 목회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과 사랑에 감격하곤 한다. “ 주님 이 교회와 이 교회 목사님을 위한 저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더욱 크게 쓰임받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 동역자들께선 서 목사가 순서를 맡아 축하나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간절하게 동역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함을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혹 교회에 어려움이 있거나 목사님께서 힘이 빠지시면 “서 목사, 요즘 우리교회와 나를 위해 기도를 잘 안하지 섭섭하네!” 하고 닥달해 주시기 바란다.

다음으로 열매 맺기 시작한 보물은 곤지암 재활원에서 키운 나무들이다. 처음에는 나무가 어리고 볼품이 없어유기농법으로 기른 김장채소와 호박, 고구마 따위를 가끔 동역교회 추수감사절에 맞춰 강단에 올리도록 드리는 것이 고작이다가 10년 동안 자란 나무들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새로 본당이나 수양관을 신축한 동역교회들이 필요하면 적당한 나무를 한 그루씩 나누어 드리는 것이다. 많이 드리지는 못하지만 서목사와 장애우들이 10년간 애정을 쏟은 의미있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일회용 난초화분이나 꽃보다 훨씬 복된 나무들이다. 왜냐하면 두고 두고 열린공동체와 동역한 것을 기념하게 하고, 나무가 자라듯 동역교회도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 열린공동체가 가진 것을 드리니 하늘에 쌓았던 것을 이제 받으소서! ”

                                                9.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새들

 빠르게 돌아가다가도 / 네 앞에 서면 / 할 말을 잊는다 /

네가 울고 간 자리에 / 묻어나는 물기/ 물기를 지우는 / 소리의 그림자 /

슬픔도 사려 접었다가 / 풀 풀 / 깃을 치며 / 아홉 하늘 내 가슴도 / 날아라 새야 /

네가 날지 않는 하늘은 / 다만 / 뻥 뚫린 허공일 뿐이다 / ( 졸시 “새야” )

 장남감도 없고 TV도 없었던 산골 소년이었던 나에게는 방문을 열면 다가오는 자연이 곧 친구였다. 햇살도 따가와져 가는 여름에 접어드는 5월이면 새 둥지 찾기가 시작된다. 요즘 아이들이 철새 도래지를 찾아 멀리서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이른 바 ‘탐조’로는 도무지 알길 없는 새들의 보금자리와 알 품기, 새끼 기르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스릴만점의 시골놀이이다.

학교를 오가는 길이나 소꼴 베러 논두렁 밭두렁을 다닐 때 새가 찌푸리기나 벌레를 물고 배회하면 근처에 틀림없이 둥지가 있다. 몸을 숨기고 숨소리도 낮추고 지켜보면 어미새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열심히 둥지로 드나든다. 어미새가 떠난 다음 그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면.....!!!! 마른 풀과 이끼들로 둥지를 예쁘게 틀고 가운데는 보드라운 깃털에 싸인 더댓개의 앙증맞은 산새알이 놓여 있거나 아직 깃털도 나지 않고 눈도 뜨지 않은 발그스럼한 새끼들이 인기척에 어미가 온 줄로만 알고 일제히 목을 빼고 노란부리를 벌려 먹이를 조른다. 장난삼아 벌레 몇 마리를 잡아 나뭇가지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 주면 재빨리 삼키고는 꽁무니를 치켜들고 하얀 똥을 눈다. 어미새는 그 똥을 재빨리 물고 둥지 밖으로 날아가 먼 곳에다 버리지만 “ 나는 어미새가 아니니깐 네 똥은 책임 안져! ” 하고는 둥지를 떠난다.

시골 아이들은 새 새끼가 벌레만 먹기 때문에 사람이 키우기가 힘들고 키운다 해도 새장속에서 며칠 밖에 못산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잡아 오지 않는다. 대신 알에서 부화하여 눈을 뜨고 깃털이 자라 마침내 둥지를 떠나기까지 관찰하는 재미로 새집을 찾는다. 역시 초가지붕에 깃드는 참새둥지가 제일 흔하고 멧새, 쑥새, 종달새, 할미새, 딱새, 박새, 산비둘기 등 풀숲이나 바위틈 또는 낮은 나뭇가지에 깃드는 새가 주요 대상이다. 까치와 꾀꼬리, 밀화부리는 높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만들기 때문에 구경하기가 어렵고, 왜가리 종류는 개구리, 물고기 등을 먹기 때문에 똥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 환영을 못 받는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 올리게 만들던 새 둥지가 열린학교에 세 개나 생겨 5월 한달을 행복하게, 황홀하게 보낼 수 있었다. 대문 옆 팽나무 둥치에 난 구멍속에는 쇠박새부부가 둥지를 틀었고, 주차장 처마에 걸린 새끼다발속에는 딱새가, 보일러실 뒤편 샌드위치 판넬지붕 처마틈새에는 박새가 둥지를 틀었다. 딱새와 박새둥지는 처마끝이라 어미새가 드나드는 것만 볼 수 있지만 팽나무 구멍속의 쇠박새 둥지는 구멍 높이가 지면에서 80cm 정도여서 관찰하기 딱 좋은 위치다.

쇠박새가 팽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 것을 알게 된 날이 4월 28일인데 알이 6개였다. 사흘 후 다시 들여다 보니 알은 8개로 늘어났고 어미새는 알을 품고 아비새가 어미새에게 먹이를 물어 다 주고 있었다. 앞집 허씨 영감님은 겨울에 새먹이가 부족할 때 돼지비계 덩어리를 마당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새들이 와서 뜯어 먹는 것을 구경하시곤 했는데, 쇠박새가 팽나무 둥치구멍에다 둥지를 틀었다니까 와서 보고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고 좋아하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코흘리개 소년이다. 2주쯤 지나 쇠박새부부가 부지런히 벌레를 물고 드나드는 것을 보니 새끼들이 부화된 것 같아 들여다보니 8마리가 어른 주먹만한 팽나무 둥치의 썩은 구멍속에서 와글와글 커 가고 있었다. 쇠박새부부는 사람이 팽나무 가까이에 있으면 옆의 벚나무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어서 비켜달라고 요란하게 울어댄다. 들예배를 드리러 온 교회학교 꼬맹이들이 새끼를 제대로 못 봤다고 몸 달아했지만 딱 한번씩만 보게 했다.

깊은 산속 썩은 나무의 구멍속에 둥지를 트는 것은 흔한 일인데 이처럼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대문간에 심겨진 나무둥치에 집을 짓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신문에도 나왔듯 세워둔 트럭발판에다 딱새가 둥지를 틀기까지 할까. 안쓰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손으로 심은 나무에 둥지를 튼 새가 대견스럽다. 요즈음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휘파람을 부는 습관이 생겼다. 전에 안하던 짓이라 누구에게 부느냐니깐 새들이 대답한단다. 5월 25일 아침, 쇠박새 일가는 조심스럽게 새끼들을 이끌고 둥지를 떠나갔다. 이틀 뒤에는 딱새가족이 이사 갔고. 살아남으면 내년에 또 오겠지. 사람과 야생새가 한 울타리안에 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참새도 주의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트는 은총을 입는다고 시편은 노래하지 않았던가.

[관련기사]

예장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박혜연
(116.XXX.XXX.46)
서덕석 목사님 저 오늘 뵈었는데 기억하시죠? 내일도 야탑역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희생자 촛불집회에 있다는데 저 꼭 참석하겠습니다~! 제가 참고로 친미성향이 들어간 보수적인 독립교회 소속의 교회를 다니는지라 이념과 사상갈등으로 많은 시민들의 상처를 주게했으니....! 어쨌든 세월호참사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이 없는 대한민국정부는 유럽권 서방국가의 비난을 많이받아야 마땅할것같아요!
(2014-04-22 22:20:08)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