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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외면치 않았던 우리 총회광주항쟁 정당한 역사 평가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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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6  09: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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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아픔을 외면치 않았던 우리 총회 
   
 

한국기독공보 기자를 역임하고 현재 국민일보 기자로 있는 장창일 기자에 의하여 발굴된 기사가 화제다. 1980년 5월 20일 예장통합 총회장(조원곤 목사)과 총회가 당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체 아픔을 당한 광주 시민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기도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기독공보’ 기사를 인용하면 그 해 6월 7일자에 ‘6월 1일 광주 위한 기도일’로 지켰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총회의 어른들을 보수로 비판하고 시대정신을 외면한 것으로 오인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국가적 아픔이며 아직도 진행중인 광주 5.18에 대하여 우리 총회는 즉각적으로 응답하며 기도하며 모금하여 전달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총회는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하루 전인 1980년 5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총회 본부에서 긴급 임원회를 열고 광주 시민을 위한 모금을 한 것이다. 당시 예장통합 전남노회는 광주 상황 보고서를 총회에 올렸고 이날 회의에서 오는 6월 1일을 ‘광주를 위한 기도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기독공보’ 기자였던 이기환 장로는 15일 “회의에선 광주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며 교회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 “총회 총무였던 성갑식 목사가 교단의 적극적 대응을 강조했고 모금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증언했다.  이는 신군부에 의하여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당시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이었다. 언론과 정부는 ‘군인들이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로 인한 상황속에서 폭도라고 명명한 광주을 위하여 모금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보도와 내용에 대해서 당시 서울 안동교회 담임목사였던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도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이런 사실을 총회 회의록을 근거로 하여  당시 성명서와 이런 회의를 주도한 분들의 명단도 공개해 주셨다. 이는 감춰지지 않는 역사의 진실에 우리 후진들은 큰  자긍심을 느끼고 총회등의 공적 지도자들에게는 모든 언행이 훗날 모두 남는 다는 교훈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호소문(1)

우리는 우리의 해방자요 구주요 희망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한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본 교단은 현재 우리 국가가 직면한 시국을 중대시하며 이에 대한 깊은 우려와 책임을 느끼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1. 정부는 전국민의 여망인 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일정을 단축, 선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
2. 현재 학생들은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가두시위는 자제하고 학원으로 돌아가 학업에 정진할 것을 진심으로 권유한다.
3. 정치인들은 집권야욕에 눈이 어두워 정계를 혼란케 하고 국민의 단합을 저해하는 일은 삼가며 조속한 민주화 실현에 적극적인 기여가 있기를 바란다.
4. 기업주와 노동자들은 한국경제의 파국위기를 의식하여 국가 번영과 민생안전을 지상과제로 삼아 보다 건전한 경제성장을 위하여 상호간에 밀접한 협력이 있기를 요망한다.
5. 우리는 국군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국군은 군의 본연의 업무인 국토방위에 전념에 주기를 바란다.
6. 교육자는 교육운영에 있는 모든 부조리와 비정상적인 운영을 과감하게 시정하고 내일의 국가를 위한 인재양성에 정진하기를 바란다.
7. 우리 교단 3,600교회 백만신도는 오늘의 난국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문제해결자이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어 보다 선량하고 명랑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되도록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1980년 5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회장 조 원 곤
   
                               * 발포가 있던 5. 18 다음 날 바로 64회 총회장은 이런 성명서를 낸다. 
총회는 당시 부총회장 박치순 목사(해방교회)를 대표로 하여 임원들이 구호금을 갖고 28일 광주를 방문하여 당시 기독교광주사태구호위원장 한완석 목사(양림교회)에게 1차 구호금을 전달했다. 당시 전체 구호금은 2000만원으로 알려졌는 데 당시 총회의 1년 예산이 1억 3천으로 적은 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이후 한완석 목사의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공식적인 직함이나 기록에 의하면 우리교단과 광주를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사였다)  

이런 사실은 그해 영락교회에서 열린 65회 총회에 자세히 보고된바 있다. 또 총회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5월 30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서울지역 목회자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광주보고회를 갖고 함께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 주류의 흐름은 이와는 반대였다. 광주에서의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장군은 이후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되는 데 당시 기독교지도자들은 그를 위하여 국가조찬기도회를 여는 데 한경직 목사등이 그 주역이 된 것으로 인하여 큰 저항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것을 진보와 보수의 구도라고 볼 수 있는 바 보수런 기득권을 갖은 이들은 자신의 지위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진보란 젊고 의식있는 이들이 기득권에 도전하고 개혁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당시 장로교청년회나  산업선교, 의식있는 목회자 구룹(새시대, 현대목회연구회)등이 바로 개혁의 견인차였다. 

역사는 이런 보혁의 논쟁과 갈등을 통하여 앞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교단의 책임자들을 향하여 우리는 보수적이고 답답하다고 비판들 하지만 역사속에서 직면한 국가적 위기나 어려움에는 회피하지 않고 도도히 대처하고 참여하여 왔다. 이후 총회에 조직된 인권위원회(초대 위원장 조남기 목사)나 예장목회자협의회(초대 회장 고 이정학 목사)등을 통하여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낸 새문안교회에서의 목회자 기도회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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