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사과, 가능한가?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설교내용 사과, 가능한가?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6.08  16:27:42
트위터 페이스북

                                          설교내용 사과, 가능한가?

지난 6월 5일(수) 분당우리교회의 한 부목사의 설교가 화제다.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내용중 그동안 기독교 내부의 갈등중 하나인 시청앞 퀴어행사와 동성애를 비판하는 일부 보수적 시각에 대하여 한소리를 한 모양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적질인가, 거룩한 분노인가’ 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내용은 그간 한국교회가 보여온 퀴어행사에 대한 반대와 그 대처가 과연 기독인으로써의 거룩한 분논라기 보다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대세는 이미(동성애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언론과 이것을 이용하는 많은 정치인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성애자를 비난하는 방식에 대하여 ‘꼰대’스럽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동성애 문제에는 난리들을 치고 있으면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별로 없고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고 한 것이다. 

동성애만 죄 아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횟수보다 탐욕에 대해 경고하는 횟수가 10배 가까이 더 많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탐욕 문제를 두고 길거리에 드러눕거나 시위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라는 근거를 들기도 한다. “동성 간의 연애에 질색하고 혐오하지만, 이성 간의 관계는 어떠냐”면서 “시기 질투, 베풀지 못하고 나만 가지려는 문제, 가지지 못해서 미래를 불안해하는 태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는 또 어떻나”고도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데 전체 분량중 이 부분만 데어내고 문제를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편향되지도 않았는 데 여기서‘ 꼰대’ 라는 말을 쓴 것에 대하여 부적절한 용어사용이라는 후문이다. 복음주의 계통의 교수들은 성경 원칙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행위를 강단에서까지 비판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합동측 교단내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고 내용에 대해서도 비교적 학습과 정리가 된 분으로 보인다. 그 분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설교라는 형식에 이런 예민한 주제에 대하여 언급한다는 것은 사실 내공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지식도 없고 논리가 딸리니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게 교회 지도자들의 풍토이기 때문이다.

부목사는 해 당회가 지도하면 된다.  

그배후에는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영향도 없잖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신학의 기반위에서 할소리를 당당히하는 호통설교가 아이콘인 파격행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고에 메이지 않는 설교자로 교단을 초월한 인기강사고 그 만큼 강단에 대해서고 개방적이고 교회분위기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보수성향의 신학대 교수들은 비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룬 주제가 크던 적든 내용으로 적절치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편향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단적으로는 통합측 보다는 제재 분위기도 아니기에 지 교회가 알아서 할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유감은 외부에서 비판론이 일자 지난 7일 교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제가 전했던 말씀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에게 큰 낙심과 좌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이 목사가 그렇다고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지혜 없음과 표현력 부족 때문”이라면서 “(설교에서)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고 밝혀 이 문제로 인한 논란을 원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교는 사과로 취소될 수 있는 것인가? 

꼰대하는 말이 욕은 아니다.

"꼰대" 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나온 말로 친일의 댓가로 천황의 작위를 받은 이들을 이르는 데 프랑스어 기사를 의미하는 “꽁데” 라는 말의 일본식 발음이다. 그것을 비하와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리타분한 아버지나 나이 값을 못하는 어른이나 갑질을 일삼는 선생을 지칭하여 ‘꼰대’ 라 부른다.

이 목사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도들을 ‘꼰대’라고 지칭했다면 우리사회 정서로 보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용어나 내용이 문제를 삼는 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소리를 듣는 이들이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따라서 성경적 원리든 신앙의 발로든 동성애 반대에 대한 감성을 ‘거룩한 분노’ 보다는 ‘지적질’이 아니냐는 비판이 맞는 것이다. 

힌국교회 다른 문제도 관심갖아야

그리고 “교회가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목청을 높이면서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빗대여서 말한 것으로 보아 실제적으로 그 목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적질말고 거룩한 분노“ 를 갖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횟수보다 탐욕에 대해 경고하는 횟수가 10배 가까이 더 많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탐욕 문제를 두고 길거리에 드러눕거나 시위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탐심은 우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성애 동성혼의 합법화가 이루어졌을 경우를 예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 설교에 대한 반응은 교회나 교단보다는 외부에서 강하게 나오는 중이다.  그의 우려대로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대표 주요셉 목사)가 비판 성명을 7일 발표했고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은 크투에 개인 기고글을 통하여 사과로는 안되며 그를 치리(징계)하라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삼자는 의도로 보인다.

설교는 무엇인가?

우리가 비판하는 구세대의 보수적인 선배 목회자들에게 배울 점은 설교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정신이다. 자구와 문장, 내용, 근거에 대하여 완벽을 기우렸던 분들이 많다. 그 이유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라는 메신져로써 자신은 온전히 도구로의 겸손함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한국교회의 설교가 성도들의 입맛에 맞춘 흥미위주로 만담이 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불신자나 설교를 지루해 하는 초신자들에게 흥미를 느끼도록 한다고 하는 것이 웃기는 코메디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즐겁게 하는 자장가 설교로 전락 되었다.

따라서 교인들은 자기들이 듣기 좋고  선호하는 설교의 유형에 따라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그 설교는 완벽한 것이 되고 그 설교자는 신이 되는 것이다. 그가 말한 것은 모두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덩달아 그의 사고와 결정 모든 것은 가히 신을 대리한다.

그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할지 모르지만 결과를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 목회자가 기도하고 결정한 것은 한번도 실패하거나 잘못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렇게 가르치고 인도하고 앞서 나가는 분이다.

설교는 선포다 되물릴 수는 없다. 

설교란 성경을 근거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현현을 알게 하고 믿는 자로 바르고 선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교회성장과 부흥을 가져올 수는 없다. 긴박한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서 종말론이 나오고 기복신앙과 공덕사상이 나오는 것이다. 인격체를 획일화 하고 단순화하고 관리나 통제에 용이하게 하고 수치화 하는 것이 경영기법이다.

대형교회를 이룬 목회자의 고백이다. 교회부흥은 기도하고 심방하고 하나님의 도움심보다는 경영을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빚을 내서라도 우선 교회당을 짓고 그곳을 체우기 위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해야 하고 경영을 잘해야 교회가 부흥하지 진실해서 부흥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백이다.

현세에서의 잘되고 싶다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관심에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교회 중심의 양육으로 하나님 앞에 건강한 신앙의 성장보다 지 교회 목회자에게 충성하고 교파교회의 구성원으로의 제한적인 규격화다.  직분의 사모와 성직 계급의 선망으로 양육이 아닌 사육을 한다. 한마디로 믿음의 분량은 교회내 직분 상승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문화다. 그래서 명예, 협동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설교 무엇을 담아야 하나

설교자가 성도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하는 설교는 아는 것을 더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소개하기도 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꾸게 하는 것도 포함한다. 거기에는 설교자의 인식과 경험,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규신학을 공부하고 인성과 영성의 조화로운 지도자들 길러내기 위하여 교회는 인턴과정의 부목사나 전도사들의 연장교육과 계속교육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목사라면 아직은 성장하는 가운데 있는 분이니 다양한 주제들을 공부하고 검증할 수 있겠다.

그런 기회를 주고 장려하는 것이 앞으로 다원화된 시대를 맞이할 젊은이들을 교육할 지도자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다 아는 얘기 판에 박힌 얘기를 설교에서 주구장창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교육자란 자늘 새로운 학문과 연구 그리고 변화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설교를 한 부목사는 잘 훈련받고 가능성이 큰 목회자로 보인다. 그를 보호하고 잘훈련시키는 것이 교단이고 교회지 말한마디 잘못했다고 치리운운하는 것은 독재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나마 사과도 했다고 하니 그 정도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담임인 이친수 목사도 홍피의 댓글로 "가까이서 지켜본 (해당 설교를 한) 목사님은 순수하고 복음에 대해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다"며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으로 둘러 댈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절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으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써 문제를 삼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밖에서 난리들인데 자중해야 할 것이다.

교인들중 목사들의 설교에서 은혜받고 도전 받고 회개를 하고 새로워 지는 사람들 못지 않게 좌절하고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이 없지 않다. 오늘날 목사들이 직면해 있는 설교의 위기는 곧 목회자의 위기다. 귀만 천당하게 하는 설교, 감동이 아니라 억지와 강요의 설교의 갈림길에 너나없이 서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인은 그 목사만큼 만 성장되는 것이다. 목사 역시 그 교인들의 수준만큼만 되는 것이다. 잘못된 목사가 있다면 그 괴물을 키운 것은 그 교회다. 물론 책임론에 있어서는 지도자가 더 한 것이지만 피장파장이라는 말이다. 

목사가 설교를 사과하면 그것이 용서되고 면죄부가 된다는 말인가? 그것을 요구하는 교회도 그렇고 세태가 슬프다. 하나님의 말씀의 담지자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서는 것이 도리라면 그렇게 전한 것을 시비로 사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다음은 사과문 전문

지난 수요예배때 제가 했던 설교 '지적질인가, 거룩한 분노인가'에 대해서 성도님들께, 그리고 교회 밖에서 글을 보시는 분들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어제 공휴일을 하루 보내고 오늘 아침부터 심방을 돌고 있다가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로부터, 그리고 사랑으로 꾸짖어주시는 분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부족한 제가 전했던 말씀 나눔과 적용점들에 대한 내용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온 맘과 마음을 바쳐 눈물 흘려 애쓰고 계신 분들에게 큰 낙심과 좌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저의 지혜 없음과 표현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해주시는 말씀과, 또 읽어보라고 전해주신 글들을 읽어보면서 '전혀 이런 의도의 말이 아니었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구나. 이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제 잘못이다'라고 절감합니다.

이건 부족한 종이 너무 큰 자리에서 감히 말씀을 전하는 과정 가운데에서 혼자 애를 쓰다가 표현 과정에서 제 부족함이 드러난 것 뿐입니다.

저는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그 입장을 반대하고, 막아야 한다는 동일한 입장입니다.

제가 했던 설교는 제가 믿지 않는 분들을 매주 뵈면서 끊임없이 지적과 욕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대에 조금 더 저의 믿음과 주관이 전달되기 위해선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던 '제 상황 가운데에서의 저의 다짐'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라는 것이 개인의 묵상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성도님들께는 목사가 어떤 고민을 하다가 이 말을 한 것인지를 당연히 아실 수 없기에 제가 전해드린 말씀만 들으면 제가 생각했던 의도가 전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습니다.

저를 위해 지적해주셨던 분들의 말씀들은 제가 의도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저의 표현의 부족함의 결과임을 인정합니다.

오해가 없게 해드리려면 제가 설교내용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 더 지혜로웠어야만 했습니다. 전혀 제가 의도했던 바가 아니며,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며 애쓰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참하지는 못할 지언정, 힘을 빠지게 해드린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 글이 얼마나 그분들에게 읽혀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며 교회에 해당 설교와 자료를 모두 삭제해달라고 부탁드려놓은 상황입니다.

이번 기회를 삼아 조금 더 많이 듣고, 조금 덜 표현하며 자중하며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아가는 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예장뉴스 보도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5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6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명성교회 후임 청빙위원회 발표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