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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제도 재론이 필요하다(1)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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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9  18: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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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 제도 재론이 필요하다(1)

인터넷에서 원로목사를 검색하니 누군가가 “원로 목사가 존경받는 길은”?   이라고 묻는 말에 답하기를  “목사의 직에서 물러나면 일반 교인이 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로목사라는 명칭을 주는 것은 그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겠다는 그들만의 스스로의 장기보험이죠. 원로목사님이 해야 할 일은? 시무하던 교회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시무하던 교회에 연결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원로목사는 어떻게 해야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 존경받기보다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노력해야 할 겁니다. 위의 두 가지를 지키면 존경 받고 인정받겠지요” 라 고 써 있다.

원로목사란 우리교단 법으로 한 교회에 20년 이상을 시무하고 70세 정년이 되어 은퇴하는 목사에게 교회가 공동의회에서 일정한 예우를 하는 목사를 지칭힌다. 은퇴하면 그 직에서 떠나는 것이지만 교회의 특성상 소속 노회와 교회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목사와 교인으로 관계해온 분들이 여전히 그 교회에 남아 있으니 그 분들과의 교류도 그렇고 교회로부터 여러 혜택을 기대하게 돠는 것이다.

1922년 최초로 제정된 장로교 헌법에 이르기를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면 은퇴와 동시에 노회에 요청하여 원로로 추대할 수 있다" 고 나와 있다. 1930년에는 '위임목사', '임시목사'를 비롯해 '원로목사'라는 칭호가 정식으로 생긴다. 그 교회를 위해 20년 이상 일한 목사이니 그 수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단순히 '은퇴'가 아닌 '원로'의 칭호를 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이다.

원로제도란 한국교회에만 있는 제도이다.

원로목사 제도는 사실상 은퇴하는 목사의 노후를 보장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원로목사는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매월 생활비를 지급받게 되어 있다. 교단법으로 담임목사 때 받던 월급의 몇 %를 줘야 한다고 정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거나 시무시 좋은 관계였다면 모르나 그렇치 많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해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치는 않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 목회자들중에는 미자립교회에서 은퇴하여 퇴직금도 변변치 않게 받고 다른 예우는 기대할 수 조차 없는 데 큰 교회에서 좋은 대우 받고 은퇴하고도 원로라는 제도로 다시 예우를 받는 특권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연금등이 없던 시대에 노후를 보장키 위하여 원로라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말도 사실이다.

원로 목사와 후임자

한국교회는 1970~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20년 이상 목회하고 은퇴한 목사들이 2000년대 들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의 갈등도 많아졌다.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교회도 많고, 드러나지는 않아도 원로나 후임과의 갈등으로 분쟁을 겪는 교회도 적지 않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자 교계와 언론에서는 전임자와 후임자 문제로 원로와 현역의 관계로 여러 논의와 보도가 있었다.

사실 은퇴를 했다면 그 교회를 완전히 떠나야 후임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오랜 역사의 해외 장로교회에서는 은퇴를 하면 일단 시무했던 교회로부터 아주 멀이 이사를 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오랜 경험과 역사속에서 나온 지혜일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교회의 청함이 있기전에는 그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

원로목사라는 제도가 생기자 원로장로라는 제도도 생긴다. 이 원로라는 말은 사실 장로라는 말과 같다. 헬라어로는 프레스뷔테로스, 영어로는 elder 라고 하는 데 늙었다는 말이다. 성경속의 유대인들은 노인은 신앙의 선배로 성경에도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한 자"로 라고 하는 데 우리식으로는 환갑을 넘긴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성경에는 여자장로라는 단어는 없다.

노인의 사회적 평가 달라져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노인으로 우대하는 각종 혜택을 법적으로 만 65세 이상에게 하고 있고 교단 연금도 65세부터 개시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하여 정년을 년장하고 노인의 법적 년령을 70세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에서는 성경적으로도 그렇고 인생경험을 많이 한 어른들을 장로로 세우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늘자 지도력과 경제력이 있다 하여 장로로 세우고 있다. 예전에는 법으로는 40세 이 상으로 구규정했으나 목사의 년령이 30 세 이기에 30세 이상이면 장로로 임직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로와 후임의 갈등 원인

교회의 담임목사가 세대교체를 할 때 자연스럽게 전임자와 후임자가 생긴다. 이건 사실 원로라는 제도이전에 모든 은퇴목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분란의 문제는 누가 잘했던 잘못했던 목사들로서의 품격이나 인성의 문제다. 목사들이 이럴 진데 어찌 일반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겠는 가?

서울의 교회들 가운데 가장 먼져 성장을 한 곳은 아무래도 월남한 교인들이 세운 실향민교회들로 큰 성장을 이룬다. 고향과 정든 교회를 빼앗긴 그들이 자유를 그리워 하고 흩어지지 않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고 앞장서서 몸과 마으으로 교회와 주의 종을 섬겼던 전통이다.

그러 세대들이 은퇴를 앞두자 원로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전 생을 바쳐 이룩한 교회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애착심이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에 대한 미덥지 않은 눈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잘한들 원로의 마음에 들리란 쉽지 않기도 하고 의학과 건강식품, 운동으로 수명이 길어져 청년 못지 않은 기억력과 정력을 갖은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에게 은퇴란 사실 고려장을 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야 합니다.

원로를 향한 교인들의 요구나 교제가 후임자의 입장에서 보면은 간섭으로 여겨져 과잉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라고 본다. 문제는 원로의 과잉에서 온다는 지적이다. 그것이 누적되다 보면 큰 것이 되는 것이고 온 교회를 분쟁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특히 개척자나 큰 영향력을 갖은 분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그 대표적인 예를 한국교회는 보여줬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영락교회(통합측) 충현교회(합동측),경동교회(기장측)가 모두 똑같이 겪은 일이다. 그후로도 광성교회, 두레교회, 서울교회등에서 여전히 분쟁하여 큰 교회가 양분되고 법적 분쟁으로 재정과 시간의 사회적 낭비를 하는 중이다.

여기서 가장 큰 원인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갈등이다. 자기가 모셔오고도 맘에 안든다면 말다한 것이다. 후임자들의 처신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주로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여 문제는 재정사용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목사들간의 추악한 권력투쟁은 결국은 교인들의 상처로 남게 되는 데 이 쌈에 교인들을 끌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복귀하여 설교와 목회를 하는 원로들의 현실을 보면 문제의 원인이 어디인지 나온다.

다음의 글은 우리교단의 한 원로 목사가 쓴 글이다.

필자가 속한 예장 통합측 서울노회만도 107교회 중 13명이나 되고 필자의 동기들(장신대63회) 56명 중 20여명이 원로목사가 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국교회가 원로목사의 위상을 시급히 정립할 때가 온 것이다. 원로목사를 어떻게 예우해야 되며, 원로목사는 자기가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와, 자기에 이어 목회하는 후임목사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교회에 덕이 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 원로목사가 교회 사역에서 떠나야 교회가 새로워진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갈등의 원인 중의 하나가 한국사회는 공의보다는 인정에 약하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도 사실 큰 실세를 이루는 것은 지연(地緣) 학연(學綠) 혈연(血緣)이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 같은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로목사는 20년,30년을 장기목회 하는 동안 각 가정의 온갖 애환과 함께 하며 끈끈한 정을 맺기 마련이다. 결혼주례,돌,유아세례,자녀합격,가족의 사고와 입원,부모님의 장례 등 온갖 슬픔과 기쁨에 동참하는 동안 깊은 정이 쌓인다. 그런 끈끈한 정이, 구태의연한 설교를 하든지 목회행정이 짜임새가 없어 무질서하든지 좀체 교회가 성장이 되지 못한 채 여러 해가 흐를지라도 감히 정면으로 따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 목회자에게서 수세(水洗)를 하고 결혼 주례를 받은 처지요,더욱 그 목사의 안수 하에 중직(重職)이 되었다면 때로 못마땅한 일이 있더라도 감히 고개를 들고 직언(直言)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은퇴하는 날이면 아마 상당히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우유부단하던 전임자와는 달리 적극적이고 단호하며 설교도 화려하고도 명쾌하며 오늘의 상황에 맞아 떨어지도록 외칠 때,그리고 교회는 날로 성장하여 조직이 방대하여 갈 때,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깐,담임목사가 급성장을 위해 연달아 무슨 사순절 40일 새벽기도회 전도폭발 총동원주일 몇 천 명 돌파 등등 이벤트 위주로 교인들을 몰아세울 때, 당회장실은 으리으리하게 꾸미고,무슨 예식 때면 화려한 박사가운 입기를 즐겨할 때 승용차가 교인들의 수준에 비해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기 시작할 때, 그리고 가까이 가면 왜인지 차가운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도시의 차가움에 지친 사람이 고향의 포근한 맛을 그리워하듯 무능한 것 같아도 한없이 포용해주던 원로목사의 품이 새삼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서 지도력의 누수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빛이 강하면 그늘이 진하게 생기듯이 강한 지도자 밑에서 반대측도 있게 마련이다. 그중 어느 분이 원로목사를 찾아가 담임목사의 문제를 앞뒤는 생략하고 알맹이에 말을 보태서 쇼킹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너무 과시적인 데만 열을 올리므로 생기는 불화,독단적인 태도,호화사치판의 재정운영, 그리고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열한다.

이 때 만약 원로목사가 그 미끼에 넘어가 ‘그래서야 되는가?’라는 한 마디를 했다면 이 사람은 교회에 돌아가 ‘원로목사님이 담임목사에 대해 대단히 노여워 하더라’고 과장해서 퍼트릴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담임목사에게 전달될 것이고 담임목사는 ‘아니,목회를 맡겼으면 전적으로 일임해야지 왜 노인이 일일이 간섭인가?’라면서 대단히 화를 낼 것이요, 이 말도 원로목사에게 자연적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초창기 부임 당시에는 자주 찾아오던 담임목사가 자리가 잡혔다 싶은지 노골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에 소외감을 느끼던 차라 이런 말을 들을 때 노여움이 폭발하기 일쑤이다. ‘이름도 없는 자를 불러다 저만큼 키웠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가. 그새 호랑이를 키웠구나’라는 식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사탄은 더 기승을 부리고 결국 교회는 어둔 골에 깊어 빠져들 것이다.

그 싸움에서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던 원로목사가 힘이 있어 보이던 담임목사를 압도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인정이라는 무기 때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이런 갈등이 심화되면 결국 교회는 시험에 빠지면서 분열의 위기를 만나게 되고 심함 경우에는 담임목사가 사임하거나 사회법정으로 비화되어 교회의 추태를 사회 앞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원로목사가 진정 교회와 양떼들을 사랑하거든 과감히 모든 사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래야 후임목사가 자기 능력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 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대권(大權)을 맡기시고 모세를 데려가셨다. 만약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함께 가나안 땅에 입국했더라면 모세의 권위에 눌리어서 여호수아는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더 나가서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부진할 때마다 모세를 향한 민중의 쏠림현상이 강하게 나타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 원로목사들은 후임자에게 목회권을 넘긴 이상 교회 제반 사역에서 멀어져야 교회의 덕이 되는 것이요, 후임자의 지도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목회자마다 다 스타일이 다르다.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라도 자기와 같을 수가 없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될수록 간섭은 피해야 덕이 된다.

또한 어느 목회자나 모든 교인에게 만족을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때로 불만을 가지고 일부러 온 자이든지,결혼주례를 했기에 인사차 왔든지,심한 경우에 당회원 몇 명이 목회자의 결정적인 실수를 가지고 집단불만을 표하러 왔든지 간에 담임목사 편에 서서 변호하고 순종하도록 권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교회의 유익이 되는 것이요,이 소식을 전해들은 담임목사도 큰 감동과 선한 결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원로목사를 오래 모시고 싶지 않은 담임이 누가 있겠는가?

또한 한 가지 부언하고 싶은 것은 설교 문제이다. 원로목사들 중에 은퇴한 후에 매주일 본 교회에 참석하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한 달에 한 번이든,아니면 더 자주 설교하는 경우를 본다. 장기목회 하던 입장에서 단번에 담임목사 체제로 변화되는 것은 교회성장에 혹 문제가 생길까 우려해서 하게 되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오래 끌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본다.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는 설교가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한 주간 지내는 동안에 그 주간에 반드시 해야 될 말씀이 있음을 발견한다. 성경연구나 기도하는 중이든, 누구와 상담을 하든지,혹은 심방을 하는 도중에 마음에 불붙는 말씀이 있다. 그것을 전하지 못한 채 원로목사가 설교를 해버린다면 교회에는 손해가 될 것이다.

주일 아침 설교가 은혜가 넘치면 한 주간 동안 교회의 모든 운영이나 각 가정이 윤활유를 칠한 것처럼 순조로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속된 말로 설교를 죽을 쑤고 나면 이상하게 여기저기서 시험의 기운이 싹트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담임자는 깊은 기도 속에서 양떼들을 살피며 필요한 자양분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은퇴한 분이 그 시간을 차지해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고(故) 임택진 목사는 “저는 23년 간 사역하던 청량리중앙교회를 교회를 그만두면서 분명히 공언하기를 ‘나는 이 교회 헌금의 의무는 하겠으나 출석의 의무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좀체 안 갑니다. 작년에도 두 번 갔습니다. 잘 안 가는 이유는 담임목사님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인도 될수록 안 만나려고 합니다. 주례를 해 준 교인들이 진심으로 ‘왜 아니 오느냐’고 아쉬워하는 말을 하지만,목사는 들리지 않는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 사진은 이 글과 상관없지만 은퇴자 숫자가 시무자들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지표
   
                   * 사진은 이 글과 상관없지만 은퇴자 숫자가 시무자들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지표

이 말 속에 모든 해답이 들었다고 본다.

바울도 분파의 기운이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권고하기를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4)”고 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교회를 향한 간섭을 줄이면 줄일수록 담임목사와 교회는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원로와 후임간에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임자의 후덕으로 목회의 안정과 부흥을 이룬 케이스도 많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좋은 것 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것이 통계다. 그 분들도 다 문제가 없지 않치만 인내와 신앙으로 극복한 것이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속으로 골병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원로 폐지는 당사자들이 앞장서야

따라서 이제는 년금이나 사회보장이 생겼으니 재정적으로도 교회의 부담이 되는 원로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들이 나오는 것이다. 교회역사가 좀 되는 곳에서는 원로 목사가 2인이 나오는 곳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실 교회로써는 부담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원로 목사 자신들이 과감히 결단하여 헌법상의 원로 목사 제도 폐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원로 장로 제도도 자연히 폐지가 될 것인데 이 문제는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서울과 지방의 두 교회의 광고를 소개하면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겠다. 어디서나 가장 오래되고 많이 알면 문제다. 원로장로란 그 교회에서 가장 오래되신 분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어른이다. 그런데 더 이상 교회가 부흥하지 않고 정체되면 시무장로들 보다 은퇴자나 원로들이 늘어 교회의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위치가 된다. 그 분들의 자녀들과 지기들을 포함하면 그 교회는 사실상 은퇴자들의 교회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정당 가족을 5인으로 보면 항존직자 50명이면 약 200명의 교인 교회가 된다.

이렇게 되면 좋은 의미에서 그 교회의 주인은 바로 이 분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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