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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선교사 장남 볼리비아 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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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2  13: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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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현 박사(목사, 의사) 10월 20일 대선에 

한국기독공보/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1039842492
조한규의 프리즘/ttp://m.sme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505&fbclid=IwAR2XJ_-lG6ngR78ou_-Mq-qS9TyLLg-2EKYTFsYBdR5zdFVIJ-jpbet5JUc 
   
                                                      * 설교중인 정은실 목사
남미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의 정은실, 정영자 선교사(우세볼대학교 총장)는 지난 27년간 선교사로 사역하는 동안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일군 특별한 선교사다. 정선교사는 지금 남미 명문 의과대학이 된 우세볼(UCEBOL) 종합대학과 장로교신학대학 등을 갖춘 복합선교센터를 갖고 있다. 이 쎈타는 정은실 선교사 부부가 돌을 나르며 직접 건설한 곳이라는 미담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분으로 땅이 엄청나게 많은 부동산 재벌이라고 오해도 있지만 학교부지등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뉴스의 촛점이 된 이유는 올 10월에 치뤄질 볼리비아 대선에 야당후보로 정선교사의 장남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국적의 목사이며 의사인 정치현 박사(49세)는 여전히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고 후보가 된 배경은 전임자의 지목으로 당에서 추대된 것이다.

2008년 한국기독공보 보도를 보면 그해 10월에 연세대학교 무학홀에서는 정선교사의 27년 선교사역을 자신의 일기형식으로 정리한 '27년을 한결 같이'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볼리비아 최초의 우리교단 선교사로 교회만 40개를 세우고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접목시킨 농촌운동을 했고 대학도 세운 분이지만 이후 현지인으로 귀화하는 문제로 파송 선교사로의 신분에 정체성 문제가 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황에 대하여 라파즈에서 같이 사역한바 있는 황규석 목사(비금도 덕산교회)의 증언에 의하면 현지 사역이 팽창하면서 외지인은 재산권이 없다는 것을 악용한 이들로 부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골욕지책으로 선교를 지키기 위하여 귀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까지 그 사역의 성과들을 사유화하지 않고 모두 현지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내논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2008년 회고록 내

그러나 현지에서의 공로는 인정받아 볼리비아를 비롯해 볼리비아 정부의 추천으로 노벨상 후보에오르는 등 세계 각지에서 1백차례가 넘는 감사패 등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역을 일구는 동안 명암도 있었다. 함께 동역자로 파송 받아 동역한 문익배 선교사와의 갈등이다. 그러나 이런 우여곡절을 딛고 성공한 선교사로 법적으로는 명예롭게 은퇴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 선교사의 볼리비아 사역은 가정적으로도 성공했다. 의사겸 목사인 장남외에 세 아들이 모두 선교사역의 동반자였다. '볼리비아의 언더우드'로 불리운 정은실선교사는 지난 1982년 5월에 우리 총회가 남미지역에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였으나 무흠으로 롱런은 하지 못했다.

정은실 선교사가 세운 의과대학과 병원에서 장남 치현씨는 대학 병원장과 목회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차남은 현지 치과의사에 볼리비아 기독교대학교 대표이사다. 삼남 수현씨도 의사이며 신학교 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들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정선교사가 맨땅에 맨손으로 일군 기적이라는 후문이다.  

순천노회에서 파송 20년 위로회 

순천의 기독교 명문 사학 매산학교를 나온 정은실 선교사가 지난 2003년 10월 29일 광양교회(윤태현목사 시무)에서 20여년간 선교사역에 대하여 치하하고 위로하는 행사를 갖았다. 온 가족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전 총회장 손세진목사와 박정식목사를 비롯한 지역 노회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볼리비아선교회 회장 유은옥목사는 "정 선교사는 그동안 25개 지역에 원주민교회를 설립하고 또 2천5백여명이 공부하는 명문 종합대학인 볼리비아기독교대학도 운영하고 있다"면서 "그는 지난 20여년간 선교사로 또 교육자로 볼리비아 선교에 전력을 쏟았다"고 소개했다.

박정식 전총회장도 축사를 통해 "순천 매산고 1년 선배인 정 목사는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 죽마고우로 늘 영어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하던 모습이 새삼 기억이 난다"면서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지구 저편,수만리 먼 곳으로 나가 성공적으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다"고 칭찬했다.

방파선교회의 후원을 받아 사역한 정은실 선교가 현지에서 사역을 활발하게 하면서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난곡 신일에서 파송한 문익배 선교사를 받는 다. 그러나 현지어에 능통한 문선교사와 사역문제로 갈등이 있어 총회적으로 조사를 하는 등 구설수가 있었으나 문익배 선교사는 이후 이별하고 볼리비아 다른 곳에서 사역중이다. 

선교지 은퇴나 귀국시 원칙 

그러나 정은실 선교사가 현지인으로 귀화하므로 교단 선교부와 갈등을 빚는 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현지인으로 귀화를 하면 형성된 재산은 모두 사유화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선교부 규정에는 귀화하거나 현지인과 결혼하면 선교사직은 자동해임이고 사역지와 재산은 모두 선교부로 귀속해야 하는 데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일본선교사 였던 분이 선배 선교사의 자녀(현지서 출생하여 현지인)과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선교사에서 해임된 사례가 있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들의 현지 성과도 생기고 자산이 늘자 선교부는 장차 은퇴를 예비하여 그 내용을 파악하고자 하지만 시니어들이 협조하지 않는 다.

특히 남미에서의 저항으로 듀알 멤버쉽(우리교단 소속이면서 미국이나 현지 교단) 얘기도 나오는 등 문제가 있었다. 그후로도 선교부는 국내서 가져간 재원으로 형성된 학교나 병원 농장 건물등에 대하여 그 소유권을 선교사 개인보다 현지선교회 혹은 법인화나 현지 교회에 이양하는 방안들을 권면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아 총회적으로 선교자 재산을 우선 조사라도 하자는 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 앞으로 은퇴를 앞둔 선교사들이 일군 사역지를 그 나라에 파송된 후배선교사들이나 현지 선교회와 상의없이 처분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콩고대학 루룸바 대학, 더반과 케냐등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은퇴하거나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사역의 산물인 교육기관들을 현지에게 임대을 주거나 우호적인 이사회를 만들어 사유화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인과 결혼을 하여 비자문제와 신분을 해결하기도 하고 다른 교단으로 처분한 경우도 있어 세계선교부의 훈련과 지역 선교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장남 정치현 박사 볼리비아 대선 후보 

BBC 코리아,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국계 정치현 박사(49)가 오는 10월 20일 볼리비아에서 치뤄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자로 결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대권주자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비록 야당이지만 한국인이 볼리비아에서 대선후보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민족의 세계진출 역사에 일대 획을 긋는 일이라는 소리다.

볼리비아 기독교민주당(PDC)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하이메 파스 자모라(Jaime Paz Zamora) 대통령 후보가 한국인 정 박사를 PDC의 대통령후보로 지명하고 당은 이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2005년 일본계 미치아키 나가타니(Michiaki Nagatani)에 이어 볼리비아 역사상 두 번째로 아시아 출신의 대통령 후보다.

그는 현지로 귀화했지만 이름은 여전히 ‘Chi Hyun Chung’ 으로 한국식 이름을 쓰고 있다. 한국인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증거라는 것, 그는 볼리비아 수크레의 샌프란시스코 하비에르국립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외과의사이며, 현지에서 예수교장로회 국제연합 총회장을 맡고 있는 복음주의 목사다.

정 박사의 한국 지인들에 따르면 그가 대선에 출마한 것은 지난 13년간의 공산주의체제가 볼리비아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볼리비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순종 ▲삶과 가족 존중 ▲기업가 격려와 사유재산 보호 ▲정의와 감사 ▲나태와의 싸움 등 기독교적인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박사는 특히 “볼리비아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한국의 새마을 정신이 결합하면 빠른 시일 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 박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 정은실 목사라고 고백한다. 그런면에 정은실 선교사는 사역에서 성공한 분이다.

정 목사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가 파송한 선교사다. 순천 기독교 지도자들에겐 널리 알려진 인물로 교사 출신의 부인과 함께 1982년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 정착, ‘교육선교-문화선교-농업선교’의 슬로건을 내걸고 선교활동을 한 결과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기독교종합대학도 설립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2개의 보건소와 병원, 그리고 500만평 규모의 노장을 소유할 정도로 상당한 재력도 지니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은 2009년 볼리비아 빈곤극복과 교육·의료·복지 분야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정 목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하지만 정 박사 대권가도는 쉽지 않은 전망이다. 현직 대통령 모랄레스는 사회주의운동당(MAS) 출신으로 2006년 이래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다. 원주민인 아이마라족 출신인 그는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타파를 주장하는 독립주의자로서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로 불리며 원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서도 지지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2005년 처음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2009년과 2014년에 연임했다. 오는 10월 대선에서 4선에 도전하는 셈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하면 2025년까지 20년간 집권하게 된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구했지만, 사법부 개입과 연속적인 대권 야망으로 민심을 잃었다.

야권은 연임을 위한 그의 재출마가 헌법을 위반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비판한다. 남미의 대표적인 강경좌파인 그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최악이다. 하지만 최근 남미의 국가들이 미국일방에서 정치적 중립이나 주체성을 높이는 상황으로 미국의존이 될 수 밖에 없는 박사의 도전의 먹 구름이다.

볼리비아는 우유니 소금사막 여행으로 유명한 데 국토 면적 1억985만8000㏊(세계26위), 인구 1137만9861명(세계82위), GDP 375억864만2112.9달러(세계91위)의 나라이다. 하지만 석유, 리튬, 철광석, 희토류 등 천연자원이 풍부해 잠재력이 큰 국가다.

정치현 박사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우리의 국익에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청년들에게 세계진출의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그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소리가 높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지원도 교회차원의 기도와 후원이 절실하다는 후문인데 순천의 임화식 목사와 고무송 목사가 9월 중 볼리비아를 방문 할 것으로 알려졌다.
   
                                                 * 중앙, 대선 후보 정치현 박사
순천노회가 관계 개선 앞장서

이에 순천노회에서도 총회에 정은실 목사가 관계하는 볼리비아 장로교단과 협력을 위한 청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주 열리는 세계선교부 실행위원회에서는 이를 다룰 것으로 보이는 데 지난 일에 메여서 불편한 관계에 머물기 보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화해와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1세대 선교사들이 선교의 열정과 사역의 성과를 규정대로 다루지 못하여 사유화했거나 현지화 한 것은 지난 일로 하고 볼리비아에서의 선교성공담은 정 선교사 가족이 뿌리처럼 생각하는 한국과 우리교단에 두고 관계정상화를 원한다면 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행정적으로도 정은실 선교사는 지난 2008년 공식적으로 사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지인으로의 그의 사역은 목회자로 선교사로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갖고 순천지역과의 관계속에서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훈은 남겨야 하고 원칙적인 방향은 굴절되지 말아야 한다.

즉 이런 케이스는 앞으로 나오지 않토록 세계선교부는 현재 총회에 계류중인 선교사가 형성한 재산이나 사역지를 개인적으로 처분하거나 이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훈련과 파송선서에서 다시 확인하고 현지선교회도 이를 명심하고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귀국을 하고도 선교사로 버젖이 등재하여 활동을 하고 사임을 하고도 부인이나 지인을 사역지에 남겨주고 후원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다. 국내에서 재난을 이유로 구호금 관리가 투명하지 못했던 아이티와 네팔등에서의 사역지 이양과정에서도 룰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등 관리와 인계인수가 여전히 투명하지 못해 보인다.

볼리비아 개관

행정수도는 라파스이고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이다. 국토의 약 1/3을 차지하는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 있던 도시들이 수백 년 동안 광업·상업·사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20세기 후반 산타크루스를 비롯한 동부의 저지대가 빠르게 성장했다. 볼리비아는 고대 티아우아나코 제국의 중심지였고, 15세기~16세기 초까지는 잉카 제국의 일부였다. 신대륙 정복자들의 상륙 이후 남아메리카 식민지 대부분을 포괄하는 페루 부왕령에 편입되었으며 페인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했다.

볼리비아는 인디언과 스페인계의 혼혈인 메스티소, 스페인계 등 3개의 인종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디언은 주로 아이마라족(族)과 케추아족(族)의 후손이며, 아마존 강 유역 및 안데스 산맥의 삼림지대에 사는 수많은 종족도 포함한다.  인디언들은 농사를 짓거나 광산·공장·건설 인부로 일한다. 주요언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아이마라어·케추아어 같은 인디언어도 스페인어와 함께 공식어로 지정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메스티소는 도시에서 살면서 수공예품 무역이나 소규모 사업을 해왔다.

1952년 주요사회개혁이 단행된 후 메스티소의 상당수가 초·중등 학교, 단과대학 및 종합대학에 들어갔고 전문직에 진출했다. 스페인인의 후손들은 역사적으로 지주, 광산소유자,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지배세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스페인계 주민이 메스티소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져 두 집단 사이의 구분이 다소 희미해졌다.

국민의 약 95%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다. 알티플라노 고원에 있는 인디언 사회에는 신대륙 발견 이전의 다신교적 특징이 지금도 남아 있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신자도 어느 정도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출생률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비교적 높다. 인구는 2018년 기준 1,121만 5,674명이다. 사망률도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으며 국민의 32% 이상이 15세 미만이다. 전체 인구의 69%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2017) 

정치와 사회

볼리비아는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지만 이후 1980년 쿠테타가 일어난다.  볼리비아는 지난 154년 동안 189번 쿠데타가 일어 났는 데 1985년 수립된 민간정부가 1947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볼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다.   당시 구리광산의 채굴권을 미국이 소유하고 있었는 데 이를 국영화하자 친미 쿠테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권은 하원과 상원 157명으로 구성된 국회에 있다.

대통령과 입법부 의원들은 4년 임기로 선출되며, 대통령의 경우 연임은 금지되어 있다. 주요정당으로는 극우파인 '민족민주동맹'과 중도우파인 '민족혁명운동당'이 있다. 사법부 최고기관은 국회가 임명하는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이다. 보건상태는 비교적 나쁜 편이며 농촌지역의 상태가 특히 좋지 않다. 장티푸스·결핵·말라리아 등의 중병이 지금도 많이 발생하고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국민도 적지 않다.  유아사망과 평균수명 51세는 남미에서 가장 열악하다. 

초등 및 중등 교육은 무상으로 실시되어, 6∼14세 아동의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다. 문맹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전국민의 약 60%에 불과하다. 고등 교육기관 중 가장 큰 곳은 라파스에 있는 산안드레스하이어대학교이다. 방송매체는 보통 군사정권하에서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만 했다. 신문은 민간소유이며, 가장 영향력있는 라디오 방송국은 정부가 운영하는 라디오 이이마니, 즉 '볼리비아의 소리'이다. 

볼리비아와 한국과의 관계

볼리비아는 1965년 4월에 대사급 외교를 수립한 후 그해 7월에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은 1976년 7월에 주 볼리비아 대한민국 대사관 공관을 개설했다가 1998년 12월에 철수한 후 2008년 9월에 재개설했으며, 볼리비아는 1981년 8월에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99년 5월에 철수한 후 2014년에 재개설했다. 한국은 의약품·컬러 텔레비전 등을 원조해왔다. 볼리비아는 2010년 8월에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방한 이후 각 부처 장관의 방한이 이어졌으며, 한국은 1993년 8월에 이상옥 대통령 특사가 파견된 이후 여러 차례 특사 파견과 차관급 방문이 있었다. 한편 볼리비아는 북한과 미수교 상태이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볼리비아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1991년부터 2015년까지 총 3,708만 달러를 지원했다. 2018년 기준 볼리비아의 대한국 수출액은 5억 9,000만 달러, 수입액은 49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아연, 연, 은, 곡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외 기계류, 철강제품, 전자제품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문화협정(1971년 9월), 경제기술협력협정(1986년 11월), 투자보장협정(1996년 4월), 외교관·관용여권사증(비자)면제협정(2010년 8월), 무상원조기본협정(2014년 5월), 체육협력기관 간 약정체결(2016년 2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17년 기준 볼리비아에는 648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65명의 볼리비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은 1973년부터 매년 볼리비아의 연수생을 초청하거나 또는 볼리비아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기술교육을 실시하여 왔다. 볼리비아에 4개의 한글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볼리비아인의 한글교육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은 태권도 시범공연단, 퓨전국악 및 우석대 태권무팀의 공연, 한복패션쇼 등을 통해 볼리비아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볼리비아가 남미 국가 가운데 유명해진 것은 쿠바혁명의 아버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에 참여한 스페인 아일랜드계 아르헨티나 국적의 체 게바라 때문이다. 그는 쿠바 혁명이후 보건상에 임명되었으나 개인의 안정보다 남미 전체의 해방없는 일국의 해방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국가를 누비는 혁명아가 된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활동했으나 농민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후를 볼리비아 안데스산에서 정부군에게  사살되었다. 이후 그는 남미 반미의 상징이 되고 세계 젊은이들의 혁명의 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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