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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송 목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조지송 목사와 영등포 산업선교회
이은재 기자  |  ejlee@pc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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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06  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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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송 목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조지송 목사의 80회 생신을 맞아 10월 6일(토) 오후 4시 영등포 산업선교회관에서 작은 모임을 준비중이다. 조목사님은 산업선교를 사임하셨지만 노회는 휴직으로 처리하시자 충북 보은 옥화대로 귀농을 하시다가 2011년에 연노하셔서 판교로 이주하셨다.  이 모임은 영등포산선(총무 손은정 목사)과 산선 출신 노동자회(회장 박점순) 그리고 예장 일하는 예수회(회장 유재무 목사)가 준비한다. 조목사님의 요청으로 개인 초청을 하지 않는 다. 그리고 2010년 가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 의 사업으로 선정된 전기 출판도 서덕석 목사의 대표집필로 완료되였다, 그러나 조 목사님이 출판을 원하시지 않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마침 2011년 가을 장신대 신학춘추 이은재 기자가 조 목사를 취재하여 보도 된 것이 있어 허락받아 소개한다.                    연락/ 손은정 목사 손전화 010-2304-9937

                         한국 노동운동의 주춧돌, 조지송

조지송 목사와 영등포 산업선교회                      신학춘추 이은재 기자 ejlee@pcts.ac.kr

   
 

"그가 했던 일들은 노동운동도, 정치운동도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운동이었다"

2011년 11월 13일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자살한지 4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고도의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고생했던 노동자들을 위해 교회가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듯이, 위험과 반대를 무릅쓰고 전태일보다도 더 앞선 시기에 공순이들의 친구가 되었던 사람이 있다.

■ 산업전도의 시작
조지송 목사는 1961년 장신대를 졸업하고, 산업전도 훈련을 받은 후, 1963년에 산업전도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는 영등포지구 산업전도위원회 실무목사로 부임한 후 20년간을 산업선교에 헌신했다. 1964년 2월까지는 탄광, 철광, 섬유공장과 중공업 공장에서 노동체험을 했고, 경제문제, 산업문제, 노동문제, 인구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기획원, 상공회의소, 한국노총 등 여러 곳도 드나들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훈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영등포 산업선교회의 총무로 일을 시작했지만 공장에 가서 설교하고, 기숙사에서 성경공부를 이끌고, 노동자들을 심방하는 일 이상의 것들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는 공장대표들에게 산업신학, 평신도신학, 성서의 노동관, 노동운동, 경제문제 등을 이론적으로 교육하고, 신도들이 자체적으로 전도를 하도록 하였으며, 각종 강좌, 체육회, 음악회 등을 개최하는 등의 산업전도교육을 하였다.

하지만 산업전도교육은 노동자들의 당면한 현실(임근체불, 퇴직금, 휴가, 해고, 구타 등)과 동떨어져 있고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산업사회에 대한 구조적이고 과학적 인식이 없이 온정적으로 기업주와 노동자를 선교대상으로 삼았던 점, 선교의 대상이 단순히 ‘노동자 개인’에 집중되어 ‘노동자 집단’을 보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선교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 산업전도에서 산업선교에 이르기까지
조지송 목사는 전도를 위해 공장을 다니면서 예배를 인도해주던 차에, 주로 어린 10대들인 여성 노동자들이 가혹한 업무량과 적은 임금, 열악한 업무환경과 형편없는 식사 속에서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들에게 그저 성경 가르치고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이 복음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여공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산업선교 역사의 출발점이었고 한국 노동운동 전체의 시작점이었다. 그 일들은 노동운동도, 정치운동도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운동이었다.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을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했고, 노동조합을 신학화(神學化)하게 되었다. 그는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는 교육훈련사업을 통해 평신도, 노동조합간부, 일반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조합, 근로기준법, 협동조합, 건강과 윤리 등을 교육했다. 특히 노동자들을 위한 강의는 한문 요리 꽃꽂이 등 교양 강좌부터 인문학 강의, 여가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재무부가 인가한 1호 신용조합도 이때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적은 월급을 허비하지 않고 잘 모으고, 잘 쓰게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1969년에 시작된 후 73년에는 조합원 700명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신용조합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노동자들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가는 듯 했으나 78년 정부 탄압으로 신용조합이 해산되면서 그 동안의 이익을 나누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그 이후 만든 ‘다람쥐회’는 지금도 가난한자, 집이 없는자, 서민들을 위한 신용협동운동으로 운영되고 있고, 중고 옷 나누기 ‘한울안 운동’은 지금의 ‘아나바다운동’에 해당된다.

또한 영등포 지역과 경인 지역에 합쳐서 100여개 기업에 노동조합을 조직하였고, 여기에는 4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가입하였다. 1972년 당시 영등포 산업선교회는 105개의 노동자 그룹을 조직, 운영하고 있었고, 그 모임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여러 사업체에서 임금체불, 노조결성, 부당노동행위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마침내 1971년 제56회 총회는 ‘산업전도’ 대신 공식적으로 ‘도시산업선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 유신의 시퍼런 서슬 아래에서
1970년대는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암울한 시기였다. 이제 막 노동조합들을 만들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교육을 했는데, 첫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유신’, ‘긴급조치’ 등이 발표되면서 정부는 노동운동을 ‘빨갱이’로 치부하며 여러 누명을 씌우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산업선교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노조 간부들은 숨어버렸고, 교회조차도 ‘신앙이 없는 집단’이라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선교회를 지켰던 이들은 노동자들이었다.

산업선교회를 통해 소그룹 활동을 하면서 삶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았던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해고당하고,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온갖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불의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신학자도, 철학자도, 법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조지송 목사에게 있어 노동자는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항거했던 예수의 참 제자들이었다.

조지송 목사의 젊음과 땀을 먹고 자란 산업선교회는 2008년,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였고, 2010년에는 본교단총회 역사유적지로 선정되었다. 또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민주화운동기념비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비정규직과 노숙인 문제, 생협운동과 대안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 속에 협동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암울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시기에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교회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조지송 목사’가 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놀라운 것은 핍박과 탄압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회마저도 등을 돌릴 때 교단을 대표하는 방지일 목사와 같은 교계 인사들이 조지송 목사와 산업선교회를 끊임없이 지지하고 도왔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운동은 그 누구만의 일이 아닌 교회 전체의 사명인 것이다.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진숙씨가 309일만에 크레인 아래로 내려왔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또 다른 약자들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서럽다. 여전히 교회는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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