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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K와 에큐메니칼 운동(WCC) 1.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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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8  12: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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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K와 에큐메니칼 운동(WCC)

글 싣는 순서

1. WCC 신학과 역사
2. 에큐메니칼 운동과 PCK
3. PCK 에큐메니칼 지도자들
4. 우리에게 맡겨진 에큐메니칼운동의 의의
결론: WCC 후임 총무 연속 도전의 의의와  교훈

지금 신학대학교에서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의 강좌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교학에서 ‘에큐메니칼신학이나 운동에 대해서는 강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70년 장신대와 1980년 서울장신에서는 홍성현 목사가 에큐메닉스라는 과목을 가르쳤는 데 민경배 교수 역의 에큐메닉스라는 단행본이 있었다. 유감인 것은 미국장로교회나 해외 유수한 교단에는 "에큐메니칼 미션 어페어" 라는 파트가 있어 이런 업무를 관장하고 관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총회 업무에서도 점점 중요해지는 파트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우리 총회는 진보나 복음주의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이 들숙날숙한 것은 문제다.  기획국이라는 파트에서 해외 동역교단과 에큐메니칼 단체나 국내 교단들이나 엽합운동을 감당하는 부서가 축소되었지만 기획실장 이라는 존재만 있지 독자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므로 이 분야 업무가 약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이 의미는 파트너 쉽에 관한 것이다.  국내업무야 아무나 해도 되지만 해외관계는 전문성이 축척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Ecumenical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οικουμενη(오이코메네, 사람이 사는 세상)로 신약성서에서 15번 정도 나온다. ‘교회일치운동’ 으로만 이해하지만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벧전 2:9),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전이 되는 교회의 본질은 하나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따라서 WCC로 대표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은 교회연합운동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조직이나 기구의 자리, 국제회의나 모임에 참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에큐메니칼이라는 의미를 매우 협소하고 패권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OIKOS)인 교회에서의 모든 영육간의 구원활동과 생명을 살리고 헌신하는 모든 사역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큐메니칼운동을 자리나 역할이 주어지면 하는 것으로 한정짓는 소아적인 직업적 에큐메니스트들의 폐해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WCC역사와 역할속에서 한국교회의 참여와 그 기여에 대하여 돌아보면서 앞선 지도자들의 유산을 계승발전 시키자는 우리의 헌신과 다짐을 하자는 의도다.

   
 
이 글에서 WCC 역사와 서론적인 것은 서울장신 정병준 교수의 글을 참조, 인용하였다. 그외에는 제 72회 총회장과 우리교단 최초로 WCC 중앙위원을 지내신 김형태 목사의 기록물, 강문규 원장의 단행본 “한반도 평화운동과 에큐메니칼운동” 박상증 목사의 회고록, 오재식 원장의 회고록, 박형규 목사의 회고록, 권호경 목사의 회고록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WCC총무 인선과정을 둘러싼 문제들과 오는  3월 WCC 중앙위원회의 인선결과를 포함 할 것이다. 

양해를 구할 것은 이 글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개인의 눈의로 본 것이기에 부족하고 미진한 것은 전공 학자들이나 직접 운동에 참여한 분들에 의하여 보강되기를 바란다.  정직하고 객관적인 논의를 위한 누군가의 기록이 필요하다.   잘된 것이나 좋은 것만 남기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후진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서도이어져온 PCK 인사들의 역활과 그 유산을 계승 발전 시키기 위한 것이다. 

WCC(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의 배경
1054년부터 시작된 동서방교회의 분열에서부터 16세기에 이르러 개혁교회로 갈라지면서 세계의 기독교는 신, 구교 혹은 독립교회와 교파들간의 대화나 연합활동을 위한 일치를 노력이나 운동을 하게 된 것은 WCC가 조직된 이후다. 그리고 이런 신학적 노력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분열된 세상에 대한 책임(정의와 평화), 창조보전의 과제도 포함된다.

서구에서 뿌리를 내린 기독교는 영국을 시작으로 하여 선의든 아니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을 헤외에 파송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1854년부터 10년에 한 번씩 대화의 자리를 같이 했다. 그 결과 1910년 160개 선교단체의 대표 1400여명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세계선교사대회’(WMC: World Missionary Conference)를 조직한다.

주제는 선교경쟁과 교파간의 경쟁과 불화를 막고 선교에 대해 공동연구하고 상호협력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교회 역사가들은 이 대회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출발이라고 본다. 당시 이 선교운동의 주역은 존 모트(John Mott)였으며 이후 1921년 뉴욕에서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nference)로 발전한다.
   
 
국가교회협의회와 선교이해의 대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교회들은 국가 교회협의회(NCC)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IMC에서는 개인구원과 사회참여를 함께 다루는 선교의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에 대하여 논의한다.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병합이었지만 김활란등 기독교 초기 지도자들이 참여를 한다.

1952년 독일의 빌링엔에서 열린 IMC 에서는 '하나님 선교'(missio Dei) 개념이 등장했다. '하나님 선교 신학'은 선교의 주체가 교회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며 교회는 선교의 도구라고 보는 것이다. 선교의 목적은 성령을 통해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으로 기존의 개인 영혼을 구원만을 강조했던 선교에서 영혼과 사회를 구원한다는 통전적 선교신학이 태동된다.

그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당시 기독교 국가의 중심인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평화보다는 전쟁이나 국가 이익에 더 매진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스웨덴 출신 루터교 감독 나단 죄더블롬(Nathan Söderblom, 1866~1931)을 선두로 1925년 8월 스톡홀름에서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성으로 ‘삶과 봉사’(Life and Work)를 하는 운동이 태동된다.

191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선교사대회가 폐막할 때 미국 성공회의 주교이며, 필리핀 선교사였던 찰스 브렌트(Charles Brent, 1862~1929)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을 제안했다. 그 목적은 각 교파들이 타교파의 신앙과 직제에 대해 상이점과 공통점을 연구하고, 공유하고 있는 신앙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치의 모델은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어 1927년 스위스 로잔에서 127개 교회를 대표하는 400명 이상의 참석자들이 모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일치점과 중대한 불일치점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었다. 제1차 '신앙과 직제 대회' 로 명명되는 이 대회는 복음이 교회 일치의 기초임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세상을 위한 교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항상 복음이어야 한다. 복음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쁜 소식인 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에 주어진 선물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창립
선교운동(IMC), 봉사운동(Life and Work), 신학운동(Faith and Order)이라는 큰 3가지 흐름에 참여하는 국가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거의 같았기에 운동의 효율성을 위해 이것들을 하나로 묶는 방안을 강구한다. 그 결과 1938년 ‘신앙과 직제’와 ‘삶과 봉사’는 유트레히트에 모여 WCC 세계교회협의회를 창설하기로 이른다.

그러나 ‘국제선교협의회’(IMC)는 이런 흐름에 종속되지 않으려고 WCC에 연합하지 않고 협력단체가 된다. 이러한 세계교회의 연합체의 결성이 1948년으로 지연된 것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10년의 공백기를 거치게 된다.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라는 주제로 147개 교회 351명 총대가 참여하였다. 그러나 당시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브럭화 양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WCC는 교회는 세상에 '참여'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초월'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윤리적 고백을 밝혔다.

미국 에반스턴에서 열린 제2차 WCC 총회(1954)는 '그리스도는 세계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161개 교회의 502명의 대표가 모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responsible society)을 강조했다. 한국전쟁 직후, 교회는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의 사회참여 표준이고, 모든 사회에 대한 비판의 척도라고 했다. 이 총회는 평신도에게 교회와 세상의 다리를 놓는 선교적 책임이 있다고 하는 평신도 신학(Ray Thology)을 발견한다.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WCC 총회에서는 IMC가 WCC와 연합하여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CWME: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부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WCC에 가입치 않았던 동방정교회도 가입을 하면서 WCC는 개신교와 동방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된다. 이로써 WCC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가입하게 되자 일부 극단적 반공주의자들이 WCC는 공산당이 움직인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 한국부산 총회 주제와 로고
10차 한국총회와 지도력 가능성 보여줘

그간 WCC 총회는 유럽(화란, 영국, 스웨덴, 독일) 북미(미국과 캐나다) 아프리카(케냐와 짐바브에) 남미(브라질) 아세안(방콕, 뉴델리, 호주 캔바라, 한국 부산)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것은 지난 10차 총회가 한국 부산에서 열린 일이다. 냉정시대가 끝나고 서구교회의 쇠퇴와 개인의 자유와 모던니즘의 사조가 급속한 도전속에서 열린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마지막 총회라고 불려왔다. 이 총회를 준비한 사람은 아프리카 셈 코비아였는 데 지한파로 소문이 났었다.

한국은 이 총회 유치와 당시 후임 총무 인선에 박성원 박사가 지원을 한바 있다. 총회 장소와 총무자리라는 너무 큰 두 개의 목표설정은 무리였인지 총무가 되는 데는 실패는 했지만 한국인이 총무에 도전한 것 자체가 세계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자 전쟁을 치루고 현재 까지 세계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로써는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미 기업이나 학자, 유엔사무총장등 국제연합 책임자 스포츠맨등 여러분야의 지도자들이 나왔지만 교회사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은 WCC의 지도력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그 가능성과 한국교회의 저력은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 모든 것은 한국교회의 신심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도 세계의 교회을 위하여 봉사하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는 부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교회 특히 우리교단의 에큐메니칼지도자들의 헌신과 교단의 뒷 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WCC에 이름을 올린 우리교단 지도자들의 역사와 업적을 알아보고 그 정신적 신앙적 유산을 어떻게 우리 후진들이 계승발전 시킬 것이냐? 하는 것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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