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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대체 깊이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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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7  17: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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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로 달라진 것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적 위기와 지역적 어려움에 지도자들과 보건 담당자들이 불철주야 대처하고 일하고 있어 감사하다. 그간 역대 정부 가운데서 있었던 전염병들과 달리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파장과 충격으로 인하여 국민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의아한 것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일부 대형교회들이 너무 고민 없이 모이는 예배를 포기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목숨처럼 지켜왔던 교회당에서의 성수주일 변화는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질 문제는 아니다. 국가적 권면도 있고 명륜중앙교회가 자체적으로 알아서 조치한 일이었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주일예배 셧다운이나 대체는 보수 교단들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교단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명성교회 소망교회 주안교회등 우리교단 교회들이  대형교회들이 가장 먼져 주일예배 대체를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교회, 연세중앙, 광림교회, 수원침례교회등 보수성향의 교회들은 주일예배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보도에 네티즌들은 헌금 때문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주일예배 대체가 가능한 교회들중에는 보수성향의 교회들로 다소 문자적 신학을 하는 분들로 보인다.   그동안 교인들에게 위험이나 어려움이 올수록 반비례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온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주일 예배 변동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천주교는 교구별로 모이는 미사는 잠시 폐하는 것으로 나왔다.

영과 육이 살자고 나온 교회가 갑짜기 육의 건강을 위하여 나오지 말고 집에서 예배해도 된다는 소리를 간단하게 듣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모두 살기 위해 흩허져야 한다고 하여 사회적 명분은 있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와 공공성이라는 것도 그것을 신앙과 충돌할 때 그것과 대결하는 것을 숭상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도 논란꺼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없는 길도 사람들이 다니면 길이 되듯이 안해 본 것도 하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기간 흔들리지 않고 고수한 예배당에서의 주일성수라는 의미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게 흔들리면 앞으로  주일을 섬기는 교회에서 지키라는 것도 힘들게 될 수도 있다. 영상예배와 중계로 성수주일은 대치되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교인들이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에 조응해온 피조물

유대 중간사에 보면 경건한 마카비가문의 요한 힐카누스와 그 아들들은 애국과 신앙으로 뭉쳐 정복자 로마군과 항전한다. 로마군은 그들의 약점은 찾았는 데 안식일에는 전쟁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에 로마군은 잔인하게 안식일에만 공격을 했고 경건한 이들은 저항없이 고귀하고 순수하게 죽어간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의로운 자의 죽음에 대한 순교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상인 부활사상이다.

바리새인은 천사와 부활, 내세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종교에서의 교리나 예전, 문화는 시대적인 것이고 환경적인 것이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기도했다는 구절은 있지만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기도회를 했다는 소리는 없다. 새벽기도는 불교적 신앙으로 새벽예불을 통하여 종교적 경건의 유익을 경험한 길선주 목사 개인신앙에서 출발한 한국적인 것이다.

이번에 작은 교회들은 다른 대체 수단이 없어 모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형교회들은 모이는 것을 대치할 수단이나 써비스가 앞으로 무엇을 갖어 올지는 간과한 것 같다. 앞으로 이 사태를 보는 관점들이 논쟁이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교단은 발빠르게 지침을 내놨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융통성있는 지침을 다음과 같이 준 것은 다행인데 "드릴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명언인데 어떻게 드릴지는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대형화에서 적정화로
초기 기독교가 정착되기 전의 박해시대나 공식적인 예배를 금해하고 공격을 받거나 폐쇄하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일정한 장소를 강조해온 본당 중심의 예배나 신앙에 한순간의 변화가 온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와 목회적인 해석이 나와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전혀 훈련이 안된 상탱서 너무 급속하게 맞이한 일이다.

원래 한국교회 교인들이야 대상화되고 객체화 되어 교회의 주체가 되지 못했기에 이걸 교인들에게 물어 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문제는 여론의 초점이 되는 메가쳐치(초대형교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끊이지 않는 다, 주일 예배 대체에 대하여 71% 찬성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만 대형화는 긴급한 때에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보여주었다. 역사적으로 강하고 큰 짐승들은 멸종하고 약한 종들이 더 번식했는 데 큰 것들은 지진이나 기근, 전염병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번과 같은 전염성 질환은 다중이 모이는 큰 공간이나 시설이나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크고 많은 것들이 힘이 되고 유용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치 않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대형빌딩이 화제나 재난에 취약하고 오히려 짐이 되고 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소형 교회의 강점이 다시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우려야

SNS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요약)
“저는 전도사입니다. 대형교회와 총회가 앞장서서 예배를 가정에서 드리자고 하니 웬지 드는 느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는 세상과 사이비 집단, 전염병을 더 두려워해서 내놓은 인간적 대안으로 저는 인식되어지네요.  과거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꺼려했던 한센병자들을 자진해서 찾아가 함께 격리 되었었고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불편해했던 노숙자들에게도 다가갔었고, 시한폭탄 같은 비행청소년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저는 그들이 세상 질병이나 사람을 두려워함이 아닌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뭐라 말하든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사람 눈치도 봐가며 신앙생활하면 과연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총회의 결정이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피조물인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해서야 되는 건지 궁금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주님의 평안이 가득하길 빕니다. 나라와 교인들을 위해서 총회나 대형교회가 한 결정들이 반드시 옳은 것이 었을 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로 보인다.

또 이런 글도 있다.

”목사 한 사람만 결단하면 예배를 모이지 않고 온라인 원격 영상으로 대신할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교회는 목사 혼자만의 생각으로 끌고 가는 단체가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한 데 모아 이뤄지는 공동체이다. 그 중에서 목사의 의지나 결단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맞다. 현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으로 설득해야 할 책임도 목사에게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면 예배시간을 공지하고 예배실 문을 열고 주보를 만들고 예배를 인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목사에게 있다“

이런 고민들은 모두 설득력 있는 지적으로 목사들에게 이런 고뇌조차 없다면 성직자도 아니다. 그러나 모이는 예배에서 흩으는 예배로 가자는 것에 대하여 교회내에서 최소한의 절차는 지켰는 지 궁금하다.
   
 
종교과잉의 시대
이번 질병사태는 예상하지 못한 국가재난으로 이전 정부에서 경험한 것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런데다가 이단 신천지 본산인 청도와 오버랩되고 대형교회들의 신속한 모이는 예배중단 뉴스와 대형교회 교역자의 확진이라는 것들이 여과없이 보도되고 있다. 한마디로 종교과잉의 시대임을 실감한다. 교회가 예배를 어디서 드리던 말든 상관할 문제도 아닌 데도 언론들은 드리면 드린다고 안드리면 안드린다고 시비꺼리를 만든다. 

그러나 인류와 지구에 대한 무한책임을 고백하는 기독교는 이것만 모면 할일이 아니라 이러한 원인에 대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것은 이미 밝혀진 대로 지구온난화와 무한증산을 위한 화학농업과 약탈적 축산에서 기인한다. 이것을 지연시키거나 막지 못하면 온 세계는 인간의 문명과 발전으로 인하여 멸망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잘사는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질병과 신약들 이를 둘러싼 대형 제약사들의 이익경쟁으로 신약개발과 과다한 약물복용으로 면역력의 약화나 지나친 육류소비와 인스탄트식품의 소비로 인하여 현대인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이제는 예수을 믿는 것이 살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길로 가야 살 수 있다.  그래서 살려면 좁은 생명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혼란에 대하여 교인들은 시간이 가면 이해를 하고 진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어떻게 받아드려질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전도와 성장에 메몰되여 부르짖었던 목숨을 건 전도와 모이고자 했던 공간중심의 성수주일과 예배에 국한 하였던 것에서 더 많은 것들 생각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대형교회의 예배변화는 그 자체로 고유하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언론들은 모이는 교회와 폐하는 교회를 교묘하게 분열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은 대형교회 얘기만 나오면 시비다.  잘못하면 비판받고 견제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예배를 안드린다고 비판하더니 드린다고 해도 시비네  성년의 한국교회는 이제 욕먹을 일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눅 12장에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요" 라더니 이래도 시비 저래도 시비다. 한 언론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 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책 ‘장미의 이름’에서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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