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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가거라 (마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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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1  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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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심하고 가거라 (마5:21-43)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마가복음 5:34)

김인주 목사(제주 봉성교회)

사순절 첫 주일입니다. 주님의 아픔을 새기는 계절에 들어섰습니다. 경건과 절제의 삶으로 앞서 가시는 예수님의 길을 좇아가는 일에 동참하십시다.

삼일운동 101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를 다시 삼일혁명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삼일혁명으로 불렀는데, 분단되는 과정에서 북쪽이 혁명이란 용어를 워낙 많이 쓰니까 우리는 양보 혹은 기피하는 쪽으로 갔다는 겁니다. 이제는 돌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왕이 다스리던 왕정 혹은 황제가 주장하던 제정에서 민주정으로 바꾼다는 선언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택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뚝 서 있는 산처럼,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아파 죽을 지경이 되자, 예수님을 찾아와 애원했습니다. 집으로 모시고 가서 고침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다시 사람들이 달려와 말합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소용 없으니, 선생님 괴롭게 하지 맙시다. 그래도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으로 가서 죽은 딸을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숨이 끊어지고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표현하던 첫 교회의 사생관이 반영되어 있기도 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달리다 굼, 소녀야 일어나라. 딸은 일어났습니다.

가던 도중에 특별히 주목할 일이 일어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부여잡았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소녀가 12년 성장하는 동안, 이 여인은 12년 세월에 생명을 조금씩 잃고 있었습니다. 불치병이었고,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부끄러운 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게 군중들 틈에 섞여 예수님의 옷을 붙잡으려고 다가왔습니다. 긍정적으로 이해하면 순수한 믿음이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면 미신에 가까운 불합리한 기적을 기대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감지하였습니다. 두려워 이실직고하는 여인을 위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코로나 19로 인한 두려움이 지구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민감하고 심한 지역인 듯합니다. 아픔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규명하여 치료책을 만들어내는 시대이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책 혹은 치료제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감염의 통로를 최선을 다하여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산의 여파로 뜻하지 않게 어려움에 빠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줄어들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중세 시대 페스트가 퍼질 때에는 이를 흑사병이라 불렀고 많은 희생을 치른 다음에야 수그러들었습니다.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하였습니다.

훨씬 담대한 마음으로 이를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환난을 당한 자녀들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성경 곳곳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천주교와 불교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종단에 비해 개신교는 각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기에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방송을 통하여, 큰 교회들이 예배를 안 모이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선거에서 개표결과를 연이어 알려주는 방송을 보는 듯했습니다.

접촉의 기회를 가급적 줄이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감염되지 않도록 우선 나를 보호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서 보면, 내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병원균들을 남에게 넘겨주는 일을 극히 조심한다는 배려가 있기도 합니다. 나의 몸의 일부가 되었고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남에게는 큰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명성교회와 소망교회의 감염자에서 보듯이 전혀 의도가 없고 잠깐의 접촉에서도 옮겨지고 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하던 전파 능력과 속도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사람들이 발견하고 교류가 시작되자 그쪽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온 낯선 병균에 노출되어 많이 사망했습니다. 물론 반대방향의 피해도 있었습니다. 제주인들은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데,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 중에 풍도병도 있다 합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영유아 혹은 성장기에 이를 이기지 못하고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고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유전자가 다르다거나 특별한 면역의 능력이 있는지는 더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통계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적 교류가 없도록 여러 나라가 차단하고, 비행기를 내리지도 못하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는 당황스러운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질병관리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데다, 부지런하게 검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신종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이단 신천지에 관한 보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새로운 내용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실상은 더 엄청난 듯합니다. 대기업을 소유한 집안에서 자녀들의 혼사를 위해서 많은 자원을 동원하여 연출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재벌이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한 것 없이 성장한 후계자에게도 결혼이란 어려운 과제입니다. 부모가 정해주는 것에 대해 이유 없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든지 나라 밖에서든지 이를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고 각본대로 진행합니다. 눈에 드러나지 않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점차 가까워지고 사귀는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선택하였다고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전이 시행되고 있는 겁니다. 어쩌다 만나게 되고, 이야기 나눠보니 생각이나 취미도 통하고, 삶의 방식도 비슷해서 거부감 없이 함께 꾸려갈 미래를 구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약속한 커플은, 자신 있게 부모에게 함께 나타나게 되는데, 실제로는 부모가 선택하고 결정한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신천지가 많은 신앙인들을 포섭하는 과정도 비슷한 수순을 거치고 있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준비과정과 치밀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우연을 가장하여 만남이 생기고, 활동영역이나 취미가 잘 통하는 사람과 연결이 됩니다. 친밀감이 충분히 생긴 다음에야 성경공부와 교리를 소개하고 신천지와 연결이 됩니다. 현재에도 이러한 포교의 대상으로 진행 중인 예비 신자들은 자신이 그러한 관계에 놓여 있고 명단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신천지는 교육 중에 있고 접촉했던 사람들의 명부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신천지에 관한 많은 정보가 언론 방송 혹은 온라인 정보유통을 통해서 얻을 수 있으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단이라 함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체는 비슷하거나 같은데 지엽적인 사항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서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은 소매를 말하는데, 말하자면 운동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입는 유니폼 같은 것입니다. 소매를 약간 다르고 특이하게 만들어서 어느 편인지 식별하도록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단은 다른 편이라는 표현이지요.

신천지에서는 계시록에 나오는 구원받는 숫자 144,000을 이용하여, 이 안에 들어가야 구원받거나 그 나라에서 우대받는다고 미혹합니다. 신도가 많아지면서 그 안에서도 이제는 무한경쟁을 통하여 서열상 그 숫자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거기에 매달리도록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의 소속을 감추고 관련이 없는 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모습은 바로 한국개신교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생각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한경쟁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 한 달 반 남은 총선거와 관련되는 발언일 수도 있기에 많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려니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국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어떻게 생각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지 이번 사태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가 헌법에 나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막상 어느 조항이냐고 물어보면 헌법 정신이라고 약간 물러섭니다. 제가 볼 때는 일방적인 해석입니다. 앞으로 통일 과정에서 자유의 가치를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평준화하여 삶의 질이 나빠지는 방향으로 간다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의 단계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함께 더 크고 본질적인 자유를 누리도록 나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양쪽 체제와 가치관의 평균을 내는 것이 통일이라면, 안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질서의 자유로운 흐름이 모든 것을 자애롭게 순리에 따라 조절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이게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의 고전적인 주장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서 난리입니다. 생산이 부족합니까? 중국을 도와주느라고 많이 줘버려서 그렇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중간에서 이를 비축하고 많은 수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창고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전 소설 “허생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부당이득을 챙기게 되면, 소비자들은 고통을 지게 됩니다. 결코 유쾌한 세상은 아니라 봅니다.

몇 년 전에는 경남 진주의 공공병원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없어지고도 했습니다. 이를 시장 마인드에만 맡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 코로나19 검진에도 우리는 저렴한 가격으로 해결하는데, 미국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각자 부담해야 합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부인이던 시절에,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재직 중에 많은 공을 들이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시장의 폐혜입니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노동시장 등등 모든 것을 자유롭게 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좋은 세상이 될까요? 수완이 좋아서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어려움으로 시달릴 사람이 많이 생겨납니다.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대에는 이득을 보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이를 축복이라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를 성공의 모범으로 삼고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뿐이 아니라 제 분야가 이 문제에 대해 심히 대립하는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회마저도 이러한 사안에 대책을 갖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잘못된 강단이 오히려 부추기는 형국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 중요한 도전과 매력은 윤리적인 보편성에 있다고 봅니다.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유대교에서 벗어나서, 중요한 그리고 결정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모든 인류를 향해 열려있는 사랑을 핵심 가치로 선언했던 것입니다. 구약에는 약자를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무시하지 말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정신이 신약에서는 보편적으로 실행해야 할 덕목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1에서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시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본다면 맑은 영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절한 판단력입니다. 모여서 예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거룩한 삶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결정에 대해서 많은 목회자들이 안타까와 하고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어제 늦게서야 이러한 선택을 어렵게 했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시선도 고려해야 합니다. 사회가 원하지 않고, 나라에서도 권유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을 고집한다면, 신천지나 다름없다고 느낄 사람도 꽤 있을 겁니다.

101년 전 독립을 외치는 일에 앞장섰던 신앙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한국사회, 나라와 겨레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먼저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에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주님의 손길이 우리들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켜 평화와 생명으로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0년 사순절 첫 주일이 우리들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복된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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